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68화 (168/197)

<-- 20층 - 아슈켈론 -->

“유명하신 분이신가 봐요?”

“뭐, 그보다 이국의 아가씨는 어디로 가시오? 이쪽으로 가면 몬스터가 가득한 스탬마 산맥밖에 없는데.”

“그쪽에 조금 볼 일이 있죠.”

백고은은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녀가 타고 있는 적토마는 빠르게 달려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걸 지켜본 체이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팔로스를 바라봤다.

“대장, 붙잡아서 신원조사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수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쫓는 레이나라는 여자와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팔로스는 조카의 도망친 신부를 쫓는 일만 아니었다면 백고은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상당량의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승원 일행은 날이 어두워지자 숲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지폈다.

노움을 통해 땅을 평평하게 다지고 잡초 따위를 모두 없앴다.

게다가 모닥불이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벽에 작은 벽을 두르고 땅에서 바위가 솟아나게 해 간단한 의자도 만들었다.

“오오오오! 말로만 듣던 정령을 실제 볼 날이 올 줄이야!”

빅토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정령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노움을 이리보고 저리 살펴봤다. 레이나도 가까이 다가와서 보고 싶은 듯 했지만 무서워하는 듯 했다.

“무서워 할 거 없어. 얌전해.”

“정말이요?”

“그래.”

레이나는 승원의 장담이 있고서야 조심스레 노움을 만져봤다.

그동안 승원은 소시지나 마시멜로를 꺼내 꼬챙이에 꽂아 모닥불에 구웠다.

달콤한 냄새가 주변에 퍼지자 게르엔이 군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그 하얀 거 냄새가 좋네요. 뭐에요?”

“마시멜로.”

“마시멜로?”

“달걀흰자하고 젤라틴으로 만드는 건데 한 번 먹어봐.”

게르엔은 승원이 건네는 꼬챙이를 조심스레 건네받아 마시멜로를 바라봤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마시멜로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어?”

게르엔이 조심스레 마시멜로를 한입 베어 물자 트리아와 레이나가 반응이 궁금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옷! 맛있어!”

쭉쭉 늘어지는 마시멜로를 게르엔이 맛있게 먹자 트리아도 하나 집어 베어 물었다.

“와, 맛있네요. 승원님이 살던 곳은 맛있는 음식이 참 많나 봐요.”

“뭐, 이곳과 달리 먹고살 걱정은 없는 곳이라 맛있는 걸 만드는 데 많이 집중하거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빅토르가 궁금하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승원님은 살던 곳이 어딘데요?”

“말해도 모를 거야. 지도에 없는 먼 곳에서 왔거든.”

그 말에 레이나도 관심을 보여왔다.

한평생을 작은 도시에서 살던 두 사람으로서는 바깥 세계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그보다 너희 두 사람은 내일 아침 일찍 마법으로 보내버릴 거니까 먹고 텐트로 들어가서 얼른 자.”

“네? 스탬마 산맥에 들렸다 가는 거 아니었어요?”

레이나와 빅토르가 당황한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어째 아쉬운 표정들이다?”

처음에 스탬마 산맥이 너무 위험해서 함께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반응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

“그게 처음에는 도시를 나오는 게 너무 무서웠는데. 막상 나와 보니까 무섭기 보다 재미있어서요.”

“아직 몬스터를 만나서 목숨을 위협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내일부터는 스탬마 산맥에 들어간다.

안개가 낀 산맥의 숲은 약육강식의 세계로 연약한 인간은 그대로 찢어발길 수 있는 몬스터가 즐비한 곳이었다.

“아쉬워요. 이제 세분하고 조금 정이 드는가 싶었는데.”

“캠핑은 오늘까지야. 어서 자.”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텐트로 들어갔다.

승원은 굳이 불침번을 서지 않아도 됐지만 잠이 오지 않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밤새 모닥불을 지켰다.

**

다음 날 아침.

새벽 동이 틀 때 게르엔과 트리아가 숲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장거리 텔레포트인 만큼 6서클 마법사인 두 사람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초대형 마법진을 그려야 했다.

“으하암!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운디네를 불러 줄테니까 씻고 떠날 준비 해.”

“네…….”

승원은 이제 도시와 제법 떨어졌으니 마법진을 이용해 텔레포트를 하더라도 그 기운을 느끼고 종단이 추격해 올 때 그들을 피해 스탬마 산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근데 승원님은 왜 목적지로 텔레포트해서 가지 않는 거예요?”

레이나가 세수를 하다말고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했다.

그 대답은 트리아가 대신했다.

“스탬마 산맥은 마나의 흐름이 불규칙한 곳이라 그곳으로 텔레포트 했다가는 바위나 나무 따위와 몸이 하나로 합쳐질 수가 있거든요. 결정적으로 알고 있는 좌표도 없고요.”

“아아…….”

레이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먹자.”

승원이 간단하게 스프로 아침 식사를 만드는 동안 마법진은 9할이 완성되었다.

곧 있으면 상급 마나석을 이용해 두 사람이 떠날 것이기 때문에 승원은 마지막 배려로 두 사람에게 아침을 제공했다.

“이거 받아.”

스프를 떠먹던 레이나는 승원이 건네는 주머니를 엉거주춤 받았다.

“뭐에요?”

“네 어머니가 주라고 한 돈이야.”

“아…….”

레이나는 그제야 어머니 생각이 나는지 주머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걱정을 했다.

“어머니는 잘 도착했겠죠?”

“걱정되면 얼른 가 봐.”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이 완성됐다.

두 사람은 트리아가 시키는 대로 마법진으로 올라섰다.

“요 며칠 감사했어요.”

“뭘…….”

원활한 이동을 위해 게르엔과 트리아 두 사람이 함께 마법 주문을 외웠다.

주변은 두 사람이 발휘하는 흑 마법에 의해 진득한 어둠의 마나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분명 먼 도시에 있는 종단의 성기사와 이단심문관이 이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그럼.”

주문이 끝나자 마법진이 눈부시게 빛났다.

- 화악!

마법진에서 뻗어 나가는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잠시 후 빛이 사그라들자 레이나와 빅토르는 사라져있었다.

“어때? 마법은 잘 됐어?”

승원의 물음에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법은 잘 완성됐으니 잘 도착했을 거예요.”

승원은 트리아에게 두 사람이 도시 인근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를 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나타났다가는 괜한 집중을 받아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브 퀘스트가 완료 되었습니다.]

메시지 창이 뜨는 것을 보니 잘 도착한 거 같았다.

승원은 마차에서 말들을 떼어내고 그 위에 안장을 앉혔다.

“우리도 이만 출발하지.”

“승원님. 우리 아침은요?”

게르엔이 또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는지 승원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면서 왜 그렇게 식탐이 많아?”

“……치.”

이제 도시에서 종단의 추격자가 출발할 게 분명했다.

스탬마 산맥에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니 만큼 길이 확실치 않아 가서 길을 헤매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었다.

“검을 찾으면 배부르게 먹여줄테니까. 삐지지 말고 어서 서둘러 출발하자고.”

“네!”

말이 4마리였기에 한 마리는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버리고 남은 세 마리에 각자 올라타 출발했다.

“이랴!”

날씨가 좋아 저 멀리 스탬마 산맥이 눈에 보였다.

승원은 말에 박차를 가해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

정오쯤 됐을 때 스탬마 산맥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만 더 가면 안개가 가득한 산 안에 진입할 수 있을 듯했다.

“음?”

승원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뒤를 돌아봤다.

“왜 그래요?”

승원이 뒤를 돌아보자 트리아도 뒤를 돌아봤다.

“어?”

저 멀리 아주 작은 점이 보였다.

트리아가 마법을 이용해 시야를 확장 시키자 한 여자가 말을 타고 질주해오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벌써 추격자가 붙을 리가…….”

트리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승원은 다른 의미에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저건 적토마?’

승원이 회귀 전의 기억에 따르면 적토마는 오강록이라는 클라이머가 탑을 오르다 얻은 레어 아이템으로 소환할 수 있는 명마였다.

‘내가 갖고 싶었지만, 그가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포기한 아이템이었는데.’

문제는 승원은 오강록의 외모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수염 가득한 근육질의 남자였지 저렇게 몸매 좋은 여자가 아니었다.

“두 사람 전투 준비해.”

“네?”

“싸워야 할지도 몰라.”

승원이 말에서 내리자 게르엔과 트리아도 말에서 내렸다.

적토마가 달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세 사람이 있는 곳에 도달하는 건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워워!”

백고은이 승원의 앞에 다다라 말을 멈춰 세웠다.

그녀는 승원과 게르엔 그리고 트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상하게 괴물이 가득한 산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 참 많네요.”

승원은 관찰 스킬을 사용했다.

상대의 이름은 백고은. 클라이머였다.

성향은 중립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승원은 클라이머가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다.

파티가 다른 경우 클라이머마다 각기 다른 퀘스트를 부여받지만, 스탬마 산맥은 통상적으로 20층까지 올라온 클라이머가 임무를 수행하기 힘든 장소였기 때문이다.

“오다가 한 무리의 기사들을 봤어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누군가를 추격하는 거 같던데 혹시 여러분?”

승원이 게르엔과 트리아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레이나를 쫓아 추격해오는 기사들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마 우리를 쫓아오는 건 아닐 겁니다. 저희는 잘못한 게 없거든요.”

승원이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백고은은 적토마에서 내려오지 않고 대화하고 있었는데 승원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회귀자.’

중간층에서 분명 누군가 벽보를 붙여 회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다.

회귀자는 본인이 직접 정체를 밝히기 전에 알아낼 수 없지만, 회귀자가 할 행동은 뻔했다. 미리 좋은 아이템을 선점하는 것. 만약 백고은이 아슈겔론을 노리고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라이벌이었다.

“그런가요?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어요.”

백고은은 승원이 클라이머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승원은 관찰 스킬이 있고 적토마를 알아봤기 때문에 상대가 클라이머라는 것을 알아봤던 것이지 그 두 개가 없었다면 승원 역시 백고은이 클라이머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잠깐만요! 어디 가시는 거죠?”

백고은이 출발하려고 하자 승원이 다급하며 물었다.

그녀는 말고삐를 잡아 당기려다 말고 승원을 바라봤다.

“이 앞에 있는 건 하나밖에 없잖아요.”

“괴물이 가득한 산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제가 말해주면 그쪽도 이유를 말해줄 건가요?”

“…….”

승원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걸 말하는 순간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고은이 회귀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했다.

“정승원입니다. 그쪽은?”

“클라이머?”

“네.”

백고은이 제법 놀란 눈치였다.

“전 백고은이라고 해요.”

“네, 그쪽도 클라이머시군요.”

“……네.”

백고은이 말이 없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머리를 굴려보는 듯했다.

“임무 때문에 가시나 봐요?”

“아, 네. 뭐 그렇죠.”

백고은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승원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는 승원 씨는요?”

“저도요.”

승원은 그 질문을 받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기사들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달리는 속도를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오는데 하루는 꼬박 걸릴 거예요.”

“흐음.”

“쫓기시나봐요?”

“쫓기는 사람은 이미 떠났지요.”

“그래요?”

백고은은 집요하게 질문해오지 않았다.

그 부분이 궁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승원 씨는…….”

백고은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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