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51화 (151/197)

<-- 19층 - 마령의 숲 -->

“하아아아앗!”

예원의 마력이 가득 담긴 창끝이 수십 개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왕팡을 압박했다. 지현과 가랑 역시 쾌검을 사용해 공격해 들어갔다.

“아니?”

왕팡은 처음에 세 명의 공격을 무척 버거워했지만, 이들이 합공을 연습한 적이 없는지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차분히 한 명씩 상대하면 못 쓰러트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잠깐, 너!”

왕팡이 크게 뒤로 물러나려 하자 세 사람이 바로 따라붙었다.

그는 잠시 대화의 틈을 갖기 위해 검기를 크게 뻗어 주변에 흩뿌렸다.

- 콰쾅!

세 사람은 그 공격을 피해 하늘로 높이 뛰어올랐다.

왕팡은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보다 대화를 택했다.

“거기, 너 이름이 뭐지?”

왕팡은 정확히 지현을 지목했다.

“뭐?”

서로 목숨을 노리고 싸우던 와중에 갑자기 이름을 묻자 지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왕팡을 바라봤다.

“왜? 자기소개라도 하자고?”

“매화옥녀심공(玉女心功)의 기운에 매화삼십육신검형(梅花三十六神劍形)이라니 처음 보는 네가 어떻게 화산파의 무공을 익힌 것이냐.”

왕팡은 가랑의 검술과 아영이 휘두르는 스태프에서 무공을 알아봤다.

“게다가 개방의 난타봉법에 넌 삼류 무사들만 배운다는 정용검법을 익혔구나.”

왕팡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정용검법을 알아?”

가랑이 놀랍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정용신공과 정용검법은 그녀의 어머니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농부의 딸로 태어나 무술을 익힐 수 없어 시중에 떠다니는 삼류 무사들이나 익히는 검술책을 독학으로 익히고 개량하고 정리한 것이다.

“내가 다양한 무공에 관심이 많아 젊을 적 호기롭게 무림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무공을 구경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 언제?”

가랑이 궁금한 듯 물었지만, 왕판의 시선은 지현에게 가 있었다.

“그보다 거기 너! 어떻게 매화검법을 알고 있는 것이냐? 네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혹시 훔쳐 배운…….”

왕판의 말을 이어지지 못 했다.

잔뜩 흥분한 가랑이 소리를 친 것이다.

“누가 사용하는 것을 봤냐고!”

평상시 감정 컨트롤을 잘하던 가랑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가 지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옆에 있던 아영과 지현뿐만 아니라 한참 싸우고 있던 승원의 시선까지 잡아끌 정도였기 때문이다.

“뭐?”

“정용검법은 우리 어머니가 만든 검법이야. 네 말대로 동전 몇냥에 시중에서 구할 정도로 시정잡배나 배울 만한 검술을 짜깁기 한 게 맞아. 어머니가 그렇게 말 했으니까.”

가랑은 어머니가 만든 자랑스런 무공을 자기 스스로 깔아뭉개는 거 같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기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검술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며 무림을 돌고 오겠다고 떠나고 돌아오지 않은 지 10년. 내가 알기로 이 검법을 배운 사람은 나와 어머니 그리고 저기 있는 저 남자.”

가랑은 손을 들어 승원을 가리켰다.

과거에 자신이 가르친 것이지만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가르쳐준 여자가 승원을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승원이 그녀에게 자신의 나이 또래 여자가 가르쳐줬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네가 무림에서 어머니를 만난 게 언제지?”

“왜? 실종된 어머니가 살아 계신지 궁금한가?”

왕팡은 가랑이 집요하게 묻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흥분한 자는 자세가 커지고 그만큼 빈틈이 생긴다.’

그리고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서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죽였다.”

“뭐?”

“내가 직접 검을 섞어봤으니 그딴 삼류검술을 알아봤지. 지나가다 봤으면 기억이나 했겠나? 아무래도 네 어머니는 내게 죽은 거 같군.”

“어, 언제? 왜?”

가랑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승원은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왕웨이와 검을 섞으며 목소리만 들어도 거짓말인 걸 알았는데 가랑은 어머니의 일이다 보니 흥분해서 진실을 꿰뚫어 보지 못 했다.

“왜 죽였어!”

잔뜩 흥분한 가랑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영과 지현이 뒤늦게 따라붙었지만, 한 박자 늦었다.

‘멍청이!’

왕팡이 가랑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 그녀의 손을 베었다.

흥분해서 자세가 커진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악!”

동맥이 베인 것인지 손에서 피가 솟구치며 검을 놓쳤다.

이어지는 왕팡의 공격. 가랑은 지현과 아영이 쫓아와 막아서지 않았다면 목이나 심장을 베어 죽을 뻔했다.

“칫!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네.”

왕팡은 입맛을 다시며 아영과 지현을 몰아붙였다.

셋 중 가장 강한 가랑이 빠지자 이미 힘의 균형은 무너졌다.

왕팡의 거센 공격에 두 사람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뭐야 니들? 검기를 유지하는 거 보면 10년 이상 내공을 익힌 거 같은데 검술은 어째 몇 달 속성으로 익힌 거 같다?”

왕팡이 정확히 꿰뚫어 봤다.

승원이 웬만한 고수라도 불가능한 방법으로 일행의 단전을 강제 개방했다.

그것은 과거 승원이 화경. 즉, 소드 마스터 수준에 다다랐던 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 때문에 일행은 보통 처음 내공을 익히기 시작한 무림인들과 달리 처음부터 승원의 기(氣)를 받아 상당량을 갖고 시작했다.

“으으…….”

가랑이 어머니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며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지혈하려고 혈도를 눌러도 깊게 베여서인지 피가 멈추지 않았다.

“가랑! 이거 받아!”

승원은 과거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인 체력 회복 물약을 던졌다.

가서 직접 전달하고 싶었지만 지금 왕웨이와 싸우는 도중에 자신이 빠진다면 정환과 예원은 끔살을 당할 게 분명했다.

“어딜!”

- 쨍그랑!

왕웨이가 승원이 던진 물약을 허공에서 발로 차 깨트렸다.

승원은 할 수 없이 그다음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정환이형, 예원 누나 두 분이 가서 지현이랑 아영이를 도와요. 그리고 아영이에게 힐링으로 가랑을 회복시켜주라고 하세요.”

“너 혼자 괜찮겠어?”

정환이 걱정된다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왕웨이의 실력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정환은 방패를 들었기에 망정이지 검을 들었다면 몇 번 죽고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원은 중거리에서 창을 쓰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거리를 벌렸고 결정적으로 두 사람이 위험해질 때마다 승원이 끼어들어 막았다.

“괜찮아요. 구슬이 있으니까.”

이미 왕웨이에게 구슬만으로는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랑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면 두 사람을 보내는 게 맞았다.

“이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왕웨이가 화가 난 듯 검을 휘둘렀다.

승원은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받아내며 대답했다.

“무시라니, 너랑 검 한번 섞을 때 마다 손마디가 저릿저릿한데.”

승원이 천마신공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 공격 하나 하나가 패도적이라 주변을 초토화 시키는 공격이 많아서 주변에 동료를 두고 쓸만한 무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사용하는 것 자체가 손에 익지 않고 서툴러서 고수를 상대로 미숙한 모습을 보여 빈틈을 노출한다면 치명적인 반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익숙한 정용검법을 사용하며 정환하고 예원과 함께 리스크를 줄인 것이다.

‘어차피 그 짧은 틈새는 신의 구슬이 보완해 줄 테지.’

시선을 살짝 돌려보니 정환과 예원이 왕팡에게 붙어 아영이 전투를 이탈해서 가랑을 치유해주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옷!”

왕웨이는 공세를 퍼붇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이탈해 치료를 하는 아영과 치료를 받는 가랑 두 사람이 다시 전투에 가담한다면 왕팡이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정환과 예원하고 지현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검폭!’

승원의 검 끝에서 천마신공의 비기 중 하나인 천마검폭이 발현됐다.

검이 향하는 방향으로 레이져포 같은 빛줄기가 왕웨이에게 날아갔다.

- 콰콰콰콰콰쾅!

“……!”

한참 어지럽게 검을 섞고 있던 왕팡과 정환, 예원, 지현이 놀라서 전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치료에 전념하던 아영과 가랑까지 놀라서 바라볼 정도였다.

“크헉!”

십여 미터를 날아간 왕웨이가 전신에 화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피를 토했다.

승원과 왕웨이 사이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숲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무슨?”

왕팡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봤다.

다양한 무공을 경험해보기 위해 수년을 무림을 떠돌며 여러 무림인들과 검을 섞었지만, 개인이 저런 폭발력을 보이는 무공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방심했을 때 죽이려고 단전에 있는 내공의 3분의 1을 썼는데.’

천마신공의 기공술 중 1인에게 가장 강한 폭발력을 보이는 것이 천마폭검이었다.

일대 다 전투를 할 때 주변 일대를 더 넓게 공격하는 기술도 있었지만, 그 위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기술 중 가장 강했기에 사용했는데 그걸 버텨낸 것이다.

“……이건 마교의 교주가 사용하는 천마신공이 아니더냐.”

왕웨이가 천마신공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승원은 그가 회복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줄 알고 서둘러 처리하려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지 검을 놓치고 무릎을 꿇었다.

“대 사형!”

“둘째야. 도망쳐라.”

왕웨이는 단전 안에 있는 내공이 바닥난 것을 느끼고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무슨?”

왕팡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왕웨이를 바라봤다.

어렸을 때 천재 소리를 듣고 화산파에 입문은 그는 처음 왕웨이를 만나보고 자신은 범재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가 대 사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궁에 오지 않았다면 다음 장문인이 됐을 사람은 대 사형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 보는 그것도 마교의 인간으로 보이는 자에게 패하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마교의 교주는 그리 젊다 듣지 않았어. 자네는 소 교주인가?”

소교주는 교주의 아들을 뜻했다.

나이는 둘째치고 승원이 만약 교주였다면 자신 따위는 검을 열 번도 섞어보기 전에 죽음을 당했을 것이기에 그리 생각한 것이다.

“아니, 난 교주도 소교주도 아니야.”

왕웨이는 이제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매의 죽음으로 흥분하지 않고 내공을 조절하며 냉정하게 사용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강자의 아량으로 저기 저 사제는 용서해주지 않겠나.”

“그럴 순 없어. 알지 않나?”

이미 이들은 원수 사이가 됐다.

저들은 이미 둘이나 죽었기에 살려 보내면 앞으로 잘 때 두 다리 뻗고 잘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복수를 하겠다고 힘을 길러 야밤에 찾아오는 상황이 없으리란 보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왕팡 사제는 저 여성의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않나?”

왕웨이는 왕팡을 지켜봐와서 그의 기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왕팡은 이유 없이 여성을 죽일 정도로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네, 흥분해서 빈틈을 유도하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 일전에 주막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검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기에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대련을 한판 했을 뿐입니다.”

“거짓말! 죽고 싶지 않아 아우 말이나 뱉어내는 것 아니냐!”

치료를 마친 가랑이 화가 난 듯 검을 들고 소리쳤다.

그러자 왕팡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놀란 표정으로 가랑을 바라봤다.

“맞아, 중간층에서 그때 그 여자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다가가 말을 걸 정도로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무시했다만.”

“뭐? 어머니가 미궁에?”

가랑이 놀란 기색으로 왕팡을 바라봤다.

“……근데.”

계속 피를 토하며 바닥에 두 손을 짚은 왕웨이가 힘없이 고개를 들어 승원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보니 곧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정말 사매가 먼저 자네들을 죽이려고 했는 가? 죽기 전이니 솔직히 말해주게.”

“그래, 다크웜을 끌고 왔고 우리가 도망치자 추격해와서 포인트를 벌기 위해 죽으라며 공격했지.”

“이런, 결국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사제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구나.”

그 말을 끝으로 왕웨이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승원은 다가가 확인하지 않아도 생명력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사형!”

왕판이 왕웨이에게 달려가 그를 돌아 눕혔다.

이미 숨어 끊어져 호흡이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크흐흑!”

그는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승원은 그 틈에 공격을 할까 하다가 그 정도의 여유는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줬다.

잠시 후 그가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려줘서 고맙군.”

“별말씀을.”

승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곧 죽을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네만.”

왕팡이 검을 늘어뜨리고 승원을 바라봤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