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층 - 저주받은 능력 -->
대륙 최남단에 있는 타지룬 왕국은 주변 2개국을 복속시켜 하나의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클라이머 강건우가 이번 층에 와서 퀘스트 내용을 무시하고 처음 눈을 뜬 엘프의 숲에서 하나의 능력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아아… 무료하구나.”
높은 계단 위 왕좌에 앉아있는 강건우의 나이는 열다섯 살.
한국으로 따지면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제가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의 옆에 보좌하고 있는 지적이면서 몸매까지 좋은 여성 하나가 다가왔다.
건우는 흥미가 돋는 듣 손뼉을 쳤다.
“그래, 어디 불러보거라. 악기도 곁들여서 하면 좋겠구나.”
“노래를 부르면서 악기까지 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래야 더 흥이 나지 않겠느냐.”
“저, 전하!”
마법사이자 궁중 음악가 그리고 왕의 정치를 돕는 그녀 미레아는 감탄했다는 듯 바닥에 납작 업드렸다.
“뭐냐?”
“전하는 진정 천재이시옵니다! 어찌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친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젠장.’
건우의 표정이 똥 씹은 얼굴이 됐다.
미레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왕국 마법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시민들의 생활 편리를 돕는 생활 마법을 연달아 개발해냈으며 백작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지지 않고 스스로의 실력으로 정계에 진출한 바 있었다.
‘그런 미레아가 이렇게 되다니. 내가 정말 미안하다!’
미레아 뿐만이 아니었다.
왕좌의 옆에는 그의 말을 받아 적는 서기가 있었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폐하. 준비된 종이가 다 떨어져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건우는 흘긋 자신의 말을 받아 적었던 책을 바라봤다.
“왜 한쪽 면만 적어? 뒷면도 적어야지.”
“아, 아니! 어찌 그런 천재적인 발상을?”
서기가 마치 큰 깨달음을 얻어 유레카를 외치듯 뒷면에 종이를 적으면 된다는 발상에 크게 감탄해서 존경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봤다.
‘젠장, 이러다가 내가 바보가 되겠어. 이 능력 어떻게 조절 안 되는 거야?’
강건우를 왕에 이어 황제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한 능력.
그 능력은 그가 어느 정도 검술과 마법에 능통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제법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 정도 능력은 클라이머 상위 10%쯤이라고 봐야 했다.
‘아무리 이 능력 덕분에 이 자리에 올랐다지만. 미쳐버리겠네!’
그 능력은 주변인들의 지능을 낮추는 고유 능력이었다.
강건우의 주변에 다가온 사람들은 지능이 급격히 낮아진다.
건우가 무슨 말만 하면 세기의 발견을 한 것처럼 천재라며 치켜세울 정도로 바보가 되어 버리니 그 문제가 심각했다.
“둘 다 나가.”
“예?”
“둘 다 나가라고. 나갈 때 문 닫고.”
“문을 닫는 이유가 무엇인지…….”
“찬 바람 들어오잖아! 벌레도 들어오고!”
“오오! 그렇군요. 문을 닫으면 바람과 벌레를 막을 수 있군요!”
건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을 올려 관자놀이를 꾹 꾹 눌렀다.
이 능력의 진정한 무서움은 한 번 능력이 발동되면 반나절이 간다는 것 그리고 능력에서 풀려나도 능력에 걸렸을 때 했던 말이나 행동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 한 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유니크 스킬 얻었다고 진짜 좋아했는데.’
이 능력은 발동 범위가 무시무시 했다.
건우는 눈길이 닿는 저 멀리 지평선까지 범위가 다다르니 지금 제국의 수도라 불리는 미르아툰은 지금 제대로 된 생활이 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답답하네. 좀 나가서 산책 좀 할까.’
건우는 왕좌에서 내려와 방을 빠져나갔다.
호위병들이 즉시 따라 붙었지만 그는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품에서 펜을 하나 꺼내 코 옆에 찍었다.
“아, 아니 전하는 어디 가셨지?”
호위병들이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 있다가 감쪽 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봐. 자네 폐하가 어디 갔는지 봤는 가?”
코 옆에 점을 하나 찍었을 뿐인데 자신을 못 알아보는 근위병들을 보며 건우는 손을 뻗어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아까 절로 가시던데.”
“고맙군! 자! 어서 가자!”
건우는 이 능력이 날이 갈수록 능력이 강력해지는 거 같다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온, 오프가 안되는 게 이 스킬의 최대 단점이었다.
- 슥슥
복도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하녀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빗자루질을 하며 먼지는 성벽 밑으로 떨어트리고 있었다.
“이봐!”
“네? 저요?”
하녀는 건우를 보고 황제임을 알아보지 못 했다.
코 옆에 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너 그렇게 먼지를 밖으로 떨어트리면 지나가는 사람이 머리에 맞잖아.”
“그, 그럼 어찌해야…….”
누군지는 모르지만 다짜고짜 하대하는 것이 왕족 아니면 귀족이라 생각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쓰레받기에 담아서 따로 봉투에 담아서 버리면 되잖아.”
“어, 어찌 그런 발상을! 정말 그렇게 하면 먼지를 처리하기 수월하겠군요.”
“……그래.”
건우는 깨달음을 얻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하녀를 뒤로하고 황후의 방으로 향했다.
엘프의 숲에서 처음 만나 여러 역경을 같이 넘어서며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엘프 이브릴이 있는 곳이었다.
- 똑똑
건우는 코 옆에 점을 지우며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브릴이 요리를 하다가 화들짝 놀라 음식을 가렸다.
“응? 뭐하길래 그렇게 숨겨?”
“아, 자기에게 요리를 해다 주려고 하는데 자꾸 실패해서 부끄러워. 보지 마.”
건우는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다가가 봤다.
거기에는 전투 시커멓게 타서 먹을 수 없는 고기들이 수북했다.
“이, 이게 뭐야?”
“자기 주려고 고기를 굽는데 자꾸 타버려서 그만…….”
엘프는 채식주의자다.
순전히 건우를 위해 냄새만 맡아도 역한 고기를 굽고 있던 것이다.
“이거 돼지고기야?”
“응.”
“굽지 말고 삶는 건 어때? 난 수육도 괜찮은데.”
“삶는다는 건 물에 넣고 끓이는 거 맞지?”
“맞아.”
“천재적이야! 고기를 물에 넣고 끓인다는 발상을 하다니!”
“……그래. 잘 해봐.”
이브릴과 함께 있는 것도 답답해진 건우는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는 그라마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로 갔다.
그곳은 20년간 아카데미를 다니며 우수한 성적은 거둔 이들이 법을 제정하고 세금을 계산하며 나라의 재정을 책임지는 곳이기도 했다.
“폐, 폐하! 어찌 이 누추한 곳에 호위도 없이 혼자 오셨단 말입니까!”
입구에 있던 경비병의 통보에 그라마 최고 책임자인 브리오 백작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예의는 됐다. 혼자 조용히 구경을 할 터이니 따라오지 말 거라.”
“하지만…….”
“명령이다.”
황제의 명령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백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건우는 건물 내부를 한 바퀴 슥 둘러보고는 벤치에 앉았다.
상점 창에서 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불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 힘이 극대화되는 건 전장이지.’
능력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발휘되지만 그가 작정하고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힘은 더 강해진다.
전장에서 사용할 경우 군인들은 병사와 지휘관을 불문하고 일 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가 명령을 내리면 기습 작전이나 포위 작전만으로도 굉장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곧 있으면 연합군과의 전쟁이 시작되겠군.’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분히 산책도 했고 전쟁을 하려면 준비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둘러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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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승원 일행이 건물을 나서자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멜키세데크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아, 편지 남겨봤는데 생각보다 일찍 보셨네요.”
승원의 말에 그녀는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였다.
“지금 타지룬 왕국에 간다는 거예요?”
“네.”
“위험합니다. 양측 국가들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잠입할 스파이들을 솎아내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어요. 가다가 잡히면 죽을 겁니다. 그러지 말고 저랑 전장에 나가서 같이 싸우면서 기회를 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승원은 그 말을 믿고 한 달을 기다렸다.
전쟁은커녕 한 달이 지났지만 양 국가는 전쟁 준비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은 언제 하는데요?”
“네?”
“곧 전쟁이 날 거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한 달 동안 준비만 하고 있잖아요.”
“아시겠지만 전쟁이란 게 예산과 보급 그리고 징병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제법 걸려요. 병사들 훈련도 시켜야 하고요.”
“우린 그걸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안전한 길을 놔두고 왜 어렵게…….”
“제가 보기에는 이쪽 길이 더 쉬워 보여서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멜키세데크는 승원을 말릴 수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는 건 타 차원에서 넘어온 강건우의 죽음이다.
굳이 전쟁을 통하지 않더라도 그가 죽기만 하면 그녀의 목표는 이루는 거였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네?”
“마차도 준비해 줄 테니까 같이 가자고요.”
승원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승원보고 알아서 하라는 듯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뭐 그러시죠.”
같이 간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녀는 이 세계에 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나서 가는 길이라던가 이곳 문화에 능통해서 가는 길에 고생할 확률이 줄어들 게 분명했다.
“그럼 얼른 준비하고 나올게요. 신전에 들어와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결국 델키세데크도 같이 타지룬 왕국으로 가게 됐다.
**
타지룬 왕국은 제법 삼엄한 경비 속에 입국자 검사를 하고 있었지만 승원 일행 중 제임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육체 수준이 평범함을 아득히 넘어섰기에 문제없이 몰래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제임스 같은 경우는 승원이 노움을 시켜 땅 밑으로 넘어오도록 했다.
“드디어 도착했네.”
마차만 탔다 하면 멀미를 하는 지현은 드디어 마차를 안 타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왕국 안으로 들어온 것에 무한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몸 좀 어때?”
“아직은 걷기만 해도 속이 좀 울렁거려.”
“그럼 좀 쉬었다 가자.”
그때였다.
순간 승원은 머리가 아찔해 지는 기분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위기라고 생각한 그는 마나를 끌어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정신공격?’
승원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주변에서 누군가 쏘아 보내는 게 아니었다.
이 인근 일대 전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다들 괜찮아?”
“뭐가?”
정환이 대답했다.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한 듯 했다.
“가랑 너는?”
“나? 뭐?”
“이게 안 느껴진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랑은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미세하긴 하지만 독특한 이 기운을 그녀가 느끼지 못 한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이었기 때문에 내가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가?’
보통 마나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한 기운이긴 했다.
‘이건 대체 뭐지? 탐지? 지배? 방어? 공격?’
짐작도 가지 않았다.
혹시 독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반지에 달린 보석은 색이 변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거점부터 잡자.”
단기간에 끝날 거 같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왕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병력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전에 영주를 노렸던 것처럼 그의 이동 경로와 호위 병력을 파악하고 기회를 노려 기습하는 게 가장 좋아 보였다.
“음?”
지나가다 괜찮은 여관이 보이길래 들어가 보려고 했더니 앞서가던 정환이 문을 잡고 열지 못하고 있었다.
“형, 왜 그래요? 문 닫혔어요?”
분명 여관 겸 술집 안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안에서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장사는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상하다. 왜 문이 안 열리지?”
승원은 문득 그가 문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옆으로 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거 여닫이문이 아니라 미닫이문인데…….”
“응? 아아! 내 정신 좀 봐.”
문을 옆으로 밀던 정환은 고리를 잡고 잡아당기자 문이 활짝 열렸다.
‘착각할 게 따로있지. 저런 걸 착각하나?’
승원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따라 여관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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