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층 - 저주받은 능력 -->
츠츠츠츠
사람들의 눈을 가리던 다크 디멘션이 사라졌다.
일행의 몸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흑 공간이 사라지고 원래 있던 제인의 방이 나타났다.
“어어? 해치운 거야?”
정환은 승원이 어둠 속을 빠르게 이동하며 허공에 칼을 긋는 것만 봤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승원은 오히려 설명하기 쉬워졌다고 생각했다.
“네, 다크 디멘션 공간이 제가 쓰는 어둠의 마나랑 같은 성질이라 저는 제약을 받지 않았네요.”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가 모두 끝이 났다.
승원 일행은 성을 빠져 나가 빛의 기둥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이미 군대는 모두 콜로세움으로 가 있어서 그들을 막는 이들은 없었다.
“휴, 별문제 없이 도착했네?”
빛의 기둥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자.”
승원 일행은 중간층으로 향하는 빛의 기둥으로 발을 내디뎠다.
**
[미궁 18층에 진입했습니다.]
승원 일행은 중간층에서의 한 달 동안 푹 쉬고 다음 층으로 진입했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어떤 세계에서 무슨 임무를 받게 될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음?”
주변은 어두운 동굴이었다.
동굴 안의 차가운 냉기가 피부에 느껴지며 습한 공기가 코끝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기형학적인 문양은 무언가를 소환할 때 사용하는 마법진 같았다.
눈앞에는 한 무리의 사제들이 서서 승원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후드 망토를 두르고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앞에 있던 자가 인사를 하며 후드를 벗었다.
새하얀 피부에 금발인 여성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를 자랑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승원이 대표로 물었다.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층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자연히 긴장하고 오른손을 검 손잡이 위로 천천히 올렸다.
“저는 천계의 일원 중 한 명인 멜키세데크라고 합니다.”
“천계?”
천계의 존재를 만나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었다.
승원은 그녀가 무슨 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일단 퀘스트부터 확인할까.’
[메인 퀘스트]
□ 지천사 멜키세데크의 부탁을 들어줄 것
‘어라?’
퀘스트의 내용이 무척 간단했다.
보통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는 게 일반적인데 멜키세데크의 부탁을 들어주라는 평상시와 다른 퀘스트 내용이 나와 있었다.
“……그래서 저희에게 원하는 게 뭐죠?”
“장소를 옮길까요?”
멜키세데크의 안내를 따라 승원 일행은 동굴을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고급스러운 마차가 3대 준비되어 있었다.
“일단 이야기부터 듣고 마차에 타고 싶은데요.”
“아, 그럴까요? 식사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할까 했습니다만.”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게 좀…….”
“죄송합니다. 제가 좀 성급했군요.”
멜키세데크는 생각을 정리하는지 잠시 침묵했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이계에서 이쪽 차원으로 넘어온 자가 있습니다. 그를 처리해주십사 하고 여러분께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계에서 넘어온 자요?”
승원 일행도 이계에서 넘어왔다고 봐야 했다.
혹시 같은 클라이머를 잡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승원은 잠시 생각해 봤다.
“네, 그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이곳에 넘어온 지 6개월 만에 남부에 있는 타지룬 왕국의 왕좌를 차지하고 인근 3개국을 통일시켰습니다.”
“그래서요?”
“이계의 존재가 전쟁을 일으키고 세계를 통일하려 하는 것은 이 세계의 균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주신께서는 그를 배제하기 위해 저를 내려보냈습니다만…….”
그녀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 힘이 미천하여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천계에서 중간계로 넘어오며 소모된 기력이 회복되지 않아…….”
승원은 더 자세한 속 사정을 듣기 전에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저희가 올 줄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 주신께서 신탁을 내려주셔서 알게 됐습니다만.”
“저희를 어떤 존재로 알고 있죠?”
“그게 저를 도와주러 올 이계의 존재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멜키세데크는 승원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부탁하는 처지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답했다.
“그 주신께서 우리를 이곳에 불러들인 겁니까?”
“아닐 겁니다. 주신께서 다른 차원의 신에게 부탁해서 용사를 막을 존재들을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다른 차원의 신이라 함은?”
“그거까지는 저도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시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승원은 자신들을 이곳에 보낸 자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물어봤지만, 이 세계의 신이 부탁해서 다른 차원의 신이 보낸 것이라면 자세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야.’
눈앞에 있는 천사는 지금 승원 일행을 다른 차원에서 신에 의해 도움을 주기 위한 존재 정도로 알고 있었다.
원인도 모른 체 강제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소리였다.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승원이 자신의 일을 도와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뭔가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흔쾌히 허락하자 마음이 놓인 것이다.
“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네, 뭐든 말씀하시지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승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편하실 대로 하시죠.”
멜키세데크는 대화에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깊게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부탁을 하고 상대는 그 부탁을 들어준다. 그거면 됐다.
“그럼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네, 그는 여러분처럼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남자입니다.”
멜키세데크는 자신이 알아놓은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건우라는 남자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타지룬 왕국의 사막 지역의 붉은 오크들을 토벌한 것으로 그 오크들은 빠르게 번식하여 왕국을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엘프들과 무척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어 타지룬 왕국의 구세주가 되었다.
처음에는 국왕도 그를 용사 취급하며 자신의 어린 딸과 그를 결혼 시키는 등 그를 자신의 왕국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국왕을 암살하고 자신이 직접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 대륙을 통일하겠다며 전쟁을 일으켰지요.”
“그럼 지금 우리보고 한 나라의 국왕이 된 자를 죽이라는 말입니까?”
“네, 어렵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영주에 이어 이번에는 국왕이었다.
아르크스 백작이 거대한 상업 도시의 주인이긴 했지만 한 나라의 국왕하고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주변국을 복속시켰다면 그는 이제 국왕이라고 하기 보다 황제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이거 이름도 그렇고 왠지 그 녀석 클라이머인 거 같은데.’
승원은 일단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강건우라는 그 남자는 어떤 능력이 있죠?”
“그는 뛰어난 검술 실력과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주변을 어지럽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지럽게라 함은?”
“그게 직접 대면해보기 전에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를 마주하면 제 자신이 이상해지는 거 같아 도저히 그와 싸울 수 없었습니다.”
‘정신 공격을 하는 스킬이라도 있는 건가?’
승원은 일단 개인적인 조사를 추가 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죠?”
“여기는 루베르 왕국입니다. 타지룬 왕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왕국이죠.”
대충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알게 됐으니 계속 동굴 입구에 서서 대화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장소를 옮겨 계속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마차에는 멜키세데크와 승원 그리고 지현, 아영, 가랑이 앉았고 두 번째 마차에는 정환과 예원 그리고 경호와 제임스가 앉았다.
“참, 아까 옆에 계신 분들은 누구죠?”
승원은 멜키세데크를 처음 대변한 동굴 안에서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을 떠 올리고 이야기 했다.
“그들은 필리아교 신도들입니다. 주신을 믿는 이들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물심양면 도움을 줄 겁니다.”
그들은 세 번째 마차에 타서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 덜컹덜컹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며 마차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마차 바퀴가 돌부리를 밟으며 계속됐기 때문에 지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 마차가 흔들리니까 속이 안 좋아.”
“이런, 물을 좀 드릴까요?”
멜키세데크가 수통을 건네려 하자 지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이제 얼마나 남았나요?”
“20분 정도는 더 가야 합니다.”
“아…….”
제법 거리가 있다는 말에 지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멀미를 하는지 속을 메스꺼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 좀 붙여.”
“그래… 한 번 자볼게.”
지현은 억지로 잠을 청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조금 안정된 모습을 보이자 승원은 델키세데크에서 도착해서 대화를 나누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성향을 좀 볼까?’
관찰 스킬을 사용해 봤다.
예상대로 멜키세데크는 성향이 ‘선’이 나왔다.
천계의 존재들은 대부분 성향이 선으로 세상의 균형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배신을 당하거나 뒤통수 맞을 일은 없겠네.’
승원은 마음을 느긋이 먹고 창밖을 바라봤다.
밖에는 논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만 보고 있자면 승원이 앞으로 할 일이나 이 세계에 닥칠 위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원도 지현처럼 잠시 눈을 감았다.
**
도착한 곳은 루베르 왕국 외성 내에 있는 필리아교의 신전이었다.
승원 일행은 멜키세데크의 안내로 신전 내에서 가장 좋은 방을 안내받았다.
“이야! 여기 진짜 좋네요?”
경호가 창밖을 보며 감탄했다.
느지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신전 2층에 있는 방은 창밖으로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 같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여기 우리가 중간층에 지어놓은 집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정환의 말대로 대리석 바닥에 벽에는 명화가 걸려있고 커튼이며 카펫이며 이불이 모두 비단으로 되어 있었다.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 푹 쉴 수 있겠네요.”
승원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하나 베어 물었다.
“참, 다들 저번 층에서 보상으로 받은 반지 끼도록 해.”
승원은 17층에서 보상으로 받은 레어 아이템을 꺼냈다.
음식물에 독이 있는지 확인하고 독이 있으면 해독까지 해주는 큐어 반지였다.
아영이 쓰는 큐어 마법은 사람에게 독이 걸린 상태 이상만 회복해주는 것이었다면 이 반지는 독에 대한 경고를 해주며 독에 의해 손상된 음식을 정상으로 돌려주는 기능을 했다.
“사용할 일이 있을까?”
지현이 아이템 창에서 반지를 꺼내 착용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사용할 일이 없어야지. 아무튼 덕분에 독살당할 위험은 없겠네.”
아이템 창에 나온 설명을 보니 파란색 보석이 박힌 이 반지는 독이 있는 음식을 집으면 보석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그보다 적대 국가에 있는 왕을 우리가 어떻게 죽여?”
예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봤다.
마차에서 내려 신전에 오는 길에 승원이 말해줘서 두 번째 마차에 탄 사람들도 모두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됐다.
“저들도 우리가 무작정 타지룬 왕국에 찾아가서 국왕을 암살하기를 원하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다행이지만.”
-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신도들이 들어와 음식을 날랐다.
칠면조 요리에 각종 빵이 한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맨 마지막에는 멜키세데크가 따라 들어와 승원 일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 불편하신 부분은 없으시죠?”
“네, 덕분에 편하게 있습니다. 그보다…….”
승원은 일행이 불안해하는 부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부탁한 그 일. 계획은 있으신 가요?”
듣는 귀가 있으니 말을 조심했다.
승원의 배려에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참여해서 싸워주셨으면 해요.”
“네?”
예원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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