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31화 (131/197)

<-- 16층 - 면역자 -->

아영과 면역자들은 연구소 뒤편의 식품 의약품 안전 처 건물 옆 나무가 우거진 주차장에 숨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승원은 아영을 만나 재빨리 수지의 치료를 부탁했다.

“할 수 있겠어?”

“네, 이미 버스에 타신 분 몇 명을 상대로 힐링을 사용했어요.”

스킬은 사용할 수 없지만 힐링을 사용했던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영의 손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오자 그 손길을 받는 수지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아저씨…….”

수지가 깨어났다.

하지만 허벅지에 관통당한 상처는 치료됐지만 사라진 피가 복구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 아저씨야. 몸은 좀 어때?”

“……어지러워.”

“눈 좀 붙여.”

승원은 소매로 수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줬다.

소현과 연아 그리고 다른 면역자들은 아영의 손에서 흘러나온 빛과 사라진 상처에 대해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방금 손에서 빛이?”

“상처가 사라졌잖아!”

승원은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걸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좀비들이 후문을 부순 것인지 아니면 군인들이 막고 있던 정문이 돌파된 것인지 담벼락 안으로 좀비들이 몇 마리 뛰어다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서 이야기 하자.”

승원이 운전대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차량을 출발 시켰다.

‘이제 수지를 안전한 도시에 데려다주면 메인 퀘스트는 끝나.’

어느 도시가 안전한 지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멀쩡한 곳은 부산과 목포였다.

대전에서 가자면 무척이나 먼 길이었다.

“크아아아!”

좀비 몇 마리가 달리는 버스에 다가왔지만 일반 차량도 아니고 버스였다.

그대로 깔아뭉개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질병 관리 본부는 서문, 남문, 동문이 있었다.

남문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 군인들과 좀비가 대치중이었고 서문은 군인들은 없었지만 좀비가 가득 차 있던걸 확인한 터 였다.

‘동문으로 가볼까?’

승원은 문득 아영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몸이 마력의 흐름을 기억해서 힐링을 사용했다는 것.

승원은 정령을 소환할 때 느꼈던 몸의 기억을 떠올렸다.

‘실프.’

몸 안에 충만한 대 자연의 기운이 기억났다.

승원은 그 기운을 따라서 마나를 움직여봤다.

츠츠츠츠.

‘실프!’

정말로 눈 앞에 실프가 나타났다.

승원은 언제나 정령을 소환할 때 몸을 투명화 시키고 소환 시키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 실프는 승원의 눈에만 보이도록 나타났다.

‘실프를 만나는 게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승원은 서둘러 실프를 동문으로 보내 좀비가 있는지 보내봤다.

잠시 후 돌아온 실프는 그곳도 좀비가 30마리 넘게 포진해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그나마 숫자가 가장 적어. 실프 그곳의 좀비들을 처리해 줘.’

승원의 명령에 실프는 다시 동문으로 날아갔다.

버스가 동문에 도착해 있을 때 이미 좀비들은 몸이 토막토막 잘려서 모두 죽어 있는 상태였다.

“어? 좀비들이?”

아영이 문 앞에 죽어 있는 좀비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실프가 쇠사슬을 자르고 문도 열어놓은 상태였다.

승원은 그대로 차를 몰아 죽어있는 좀비들을 밟고 도로로 나갔다.

“오빠 설마?”

“맞아.”

아영은 토막난 시체들을 보며 실프를 떠올렸다.

승원이 바람의 정령으로 적을 죽이는 것을 여러 번 봐온 아영은 시체만 보고도 실프의 느낌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소환했어요?”

“너처럼 나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어.”

“아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현은 지금 무슨 말이 오가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수현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김수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버스는 그렇게 부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차는 밤새 달려 다음 날 아침 해가 뜰 무렵에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까지 오는 길이 쉬운 건 아니었다.

도로는 막혀있고 톨게이트에 좀비들은 가득했다.

때때로 구울과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으로 버스가 다가가기 전에 처리하고 땅의 정령으로 도로를 막고 있던 자동차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정령술을 사용하는 승원 앞에 가로막을 좀비나 구울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내리세요.”

밤새 운전한 승원은 피곤할 법도 하건만 문을 열고 면역자들이 하나 둘 내리는 것을 도왔다.

긴장한 탓에 밤에 모두 차에서 골아 떨어졌던 사람들은 비몽사몽 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어? 부산까지 아무 일도 없이 도착한 거예요?”

연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부산 톨게이트를 바라봤다.

그들은 버스가 도착하자 긴장한 표정으로 총구를 겨누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간 사람들은 신체검사 및 간단한 인적사항을 조사 한 뒤 도시로의 진입을 허가 받았다.

“소현아. 수지야. 여행은 여기까지야.”

경부고속도로의 종점인 구서역 도시까지 들어오자 승원은 버스를 멈춰 세웠다.

사람들이 부산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에 환호할 때 승원은 수지와 소현만 버스 옆으로 따로 불러내 작별인사를 고했다.

“아저씨 그게 무슨 소리야?”

“수현아 왜 떠날 사람처럼 인사를 해?”

소현과 수지는 당황한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난 함께할 수 없어. 여기서 작별이야.”

승원 역시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그간 두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무척 각별했기 때문이다.

“오빠…….”

아영이 눈앞에 빛의 기둥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 승원을 불렀다.

승원은 잠시 시간을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지금 내가 이유를 얼버무리고 떠나면 두 사람은 평생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겠지. 아마 죽는 그 날까지 내가 사라진 이유를 궁금해 할 거야.”

승원은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다.

그걸 거짓말로 치부하던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건 두 사람의 사정이었다.

말하지 않고 떠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다른 세계에서 모종의 임무를 받고 이곳에 왔어.”

“다른 세계? 임무?”

소현은 지금 승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신? 천사? 악마? 누가 나에게 임무를 시키는지는 몰라. 그 누군가 때문에 나는 100개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어. 그 여행이 끝날 때면 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게 이곳은 아니야.”

이해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승원은 계속해서 이야기 했다.

“이번 세계에 온 이유는 수지 너와 수현이 두 사람을 구해서 안전한 곳으로 보내주라는 거 였어.”

소현은 처음에 승원이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성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에서 수지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저 옆에 있는 여자 분은?”

“나와 함께 여행하는 동료야.”

“그럼 우리는?”

“너희도 내 소중한 동료지.”

승원은 소현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소현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승원이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으리란 것을 직감했다.

“안 가면 안 돼?”

승원은 문득 오래 전 사라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에는 미궁 4층에서 만난 인연 때문에 다음 층으로 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때에 이어 두 번째였다.

“……미안.”

승원은 한쪽 다리를 꿇어 수지와 시선을 맞췄다.

“수지야.”

“아저씨. 나 지금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대전에 다시 간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야.”

승원은 손을 뻗어 수지의 손을 잡았다.

그 안으로 미약한 마나를 불어 넣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소량이었다.

수지는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승원을 바라봤다.

“아저씨?”

“네 건강의 회복을 돕는데 힘이 될 거야.”

억지로 마력을 개통하는 게 아니라 건강을 되찾아주는 정도의 극소량 마나였다.

수지는 어리지만 이게 평범한 인간이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대체…….”

승원은 수지를 꼭 안아줬다.

그러자 수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옆에 있던 소현도 몸을 굽혀 승원을 껴안고 같이 울었다.

“미안, 이제 그만 가봐야 돼.”

시간을 끌면 끌수록 떠나는 건 힘들어졌다.

승원은 자신을 잡고 놔주지 않는 두 사람의 손을 풀고 뒷걸음질 쳤다.

“아저씨!”

“수현아!”

승원이 몸을 돌려 아영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영은 서울에서 소현을 만나지 못 했지만 수지와는 대전까지 같이 온 바 있었다.

“넌 인사 안 해?”

“이곳은 오빠의 세계인 걸요. 저 아이는 제가 아는 그 아이가 아니에요.”

“……그래.”

승원은 아영과 빛의 기둥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모습이 도로 한복판에서 사라져 버렸다.

수지와 소현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바라봤다.

“언니… 아저씨가…….”

“나, 나도 봤어…….”

두 사람이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 소리에 버스 반대편에 있던 연아와 면역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 그 김수현인가 하는 남자랑 옆에 있던 여자는 어디 갔어?”

연아의 질문에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어디 갔는지 자신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

[중간층에 진입 했습니다.]

[15,000포인트를 받았습니다.]

[Safe-zone에 들어왔습니다.]

승원과 아영은 중간 층 자신들의 집 안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쓰러지듯 소파에 드러누웠다.

잠시 후, 정환과 예원, 경호와 제임스 그리고 지현과 가랑이 도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으아아! 집이다!”

경호 역시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웠다.

4인용 소파가 3개나 있었기 때문에 누울 공간을 많았다.

다들 서로의 퀘스트가 어땠는지 궁금할 법도 하건만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무척 피곤했기 때문이다.

“일단 오늘은 다들 들어가서 푹 쉬고 내일 보자.”

승원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굿 아이디어.”

시계를 바라보니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낮 10시였다.

해가 중천에 뜬 낮이지만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싶었다.

승원은 소파에서 일어나 좀비처럼 걸어서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쓰는 방이지만 킹사이즈 침대가 승원을 맞이했다.

털썩.

침대에 누운 승원은 자신을 바라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두 사람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올라가야 할 층이 84층이다 승원아.’

각 층의 원주민들에게 정을 주면 안 된다.

탑을 오르는 클라이머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 정에 휘둘리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 남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승원은 우울한 기분을 잊으려는 듯 베개 속에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침대 옆 선반에 있는 핸드폰과 이어폰을 집어 노래를 틀고 귀에 꼽았다.

값비싼 전자제품도 중간층에서는 헐값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승원은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

그 후 한 달 동안 별다른 일이 없이 지나갔다.

다들 지난 층에서 있었던 일을 잊으려는 듯 그 주제로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다.

다들 필요 이상으로 밝은 척 떠들었고 웃었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겼다.

매일 운동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으아악!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갔잖아!”

경호가 아쉽다는 듯 시계를 바라봤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중간층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모두 사용한 것이다.

중간층은 육체적 시간이 멈추기 때문에 늙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달콤한 휴식 시간이 지나가 모두 아쉬운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휴가가 끝나고 군대를 복귀해야 하는 이등병의 표정이었다.

“아아, 이번 층에는 또 어떤 악랄한 임무가 주어질까?”

지현은 가기 싫다는 듯 머리를 쥐어 잡았다.

“이번에는 능력이 봉인되지 않고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야지.”

승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피땀 흘려 무공을 정진했더니 마력을 봉인당해 다들 얼마나 고생했단 말인 가.

승원은 김재관에게 죽을 뻔 한 것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찼다.

“그것보다 이번에는 다 같이 임무를 갔으면 좋겠어요.”

아영이 말 했다.

15층과 16층은 동료들과 떨어져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무척 외로운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자.”

시간이 됐다.

다들 어떤 세계에서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기대가 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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