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층 - 좀비 아포칼립스 -->
보름달이 생각보다 밝아서 모란역 일대가 한눈에 들어 왔다.
계단을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언 듯 보이는 좀비만 서른 마리가 넘었다.
하지만 넓게 분포되어 있는 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승원은 고속도로 방향으로 걸어가며 주변으로 작은 돌들을 주웠다.
잠실역에 들어갈 때처럼 좀비가 다가오면 반대편으로 돌을 던져 신경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주운 것이다.
자박 자박.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 조심해서 걷는다고 하더라도 소리가 안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원체 작았고 좀비들도 걸어 다니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인지 이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좀비는 없었다.
휘잉.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해가 저물 며 저녁이 찾아오는 서늘한 바람이었다.
이 바람이 땀이 나지 않게 해주지만 그리 반갑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냄새가 좀비에게 날아갈까 두려운 탓이다.
“크르르르!”
냄새를 맡았는지는 모르지만 길 건너편에 있는 좀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상황 상 보아하니 승원 일행을 눈치 챈 게 아니라 그의 이동경로에 세 사람이 있던 것이다.
승원은 수지와 소현에게 정지신호를 보내고 좀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좀비는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좀비가 멀어지자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로를 건너 자동차 수리 센터에 가는 동안 좀비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차가 없네.”
“자동차 판매점도 아니고 수리 센터니까 없는 게 당연할지도.”
저 멀리 바이크 수리 센터가 보였다.
게다가 인도까지 바이크가 잔뜩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저기 봐봐. 바이크가 많아.”
“어서 가보자.”
“응.”
인도에 바이크가 있거니와 매장 문까지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바이크 열쇠까지 친절히 달려 있었다.
“수현이, 너 바이크 몰 줄 알아?”
“응, 알지.”
문제는 바이크에 시동을 걸 때 소리가 만만치 않게 난다는 것이다.
“내가 가운데 타고 앞에 수지가 뒤에 소현이 네가 타고 나서 시동 걸면 바로 달릴 거야.”
“기름은 충분해?”
“충분해.”
먼저 키를 한 칸 돌리니 배터리가 들어오고 바이크 라이트가 켜졌다.
확실히 손전등과는 비교할 것도 없이 멀리까지 길이 밝아졌다.
“이제 옷 입어도 돼.”
서둘러 옷을 입은 세 사람은 바이크에 올라탔다.
승원은 최대한 시동을 늦게 켜기 위해 발을 굴러 앞으로 나가며 시동을 걸었다.
부릉.
“크아아아아!”
멀리서 엔진 소리를 듣고 좀비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 수현아 어서!”
부아아아아앙!
1단인데 스트롤을 너무 잡아당겼더니 RPM이 치솟으며 엔진에서 굉음이 났다.
서둘러 왼손으로 클러치를 잡아당기고 왼발을 밟아 2단으로 기아변속을 하자 바이크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크아아아아!”
좀비들이 전력으로 달려왔지만 바이크 기아가 2단에서 3단으로 변속되자 달려서는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도로는 듬성듬성 차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바이크는 좁은 틈을 지나 서울순환외곽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휴…….”
후방 거울을 보니 다행히 쫓아오는 좀비가 없었다.
도로는 시내 권과 달리 정차되어 있는 차가 없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소현아 괜찮아?”
“응, 괜찮아.”
소현이 겁을 먹고 승원을 꽉 끌어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아저씨. 난 왜 안 물어 봐?”
“넌 내 앞에 앉아있어서 다 보이잖아.”
“칫.”
바이크는 10분을 달리자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자 해가 저물었다.
어둠이 찾아왔지만 보름달이 떠서 길이 잘 보였다.
이동하는데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단지 밤공기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으…….”
바이크라는 게 외부 바람과 신체가 직접 맞닿다보니 한 여름에 타도 오래타면 온몸이 떨릴 정도로 체온이 내려가는데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초가을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밤에 바이크 타니까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아저씨 나 너무 추워.”
뒤에 앉은 소현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것 같았지만 앞에서 바람을 직격으로 맞는 수지는 추울 만 했다.
“좀 쉬었다 가자.”
승원은 잠시 바이크를 세우고 멈췄다.
고속도로 한복판이라 어두워서 안 보이는 곳이 많았다.
좀비가 달려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체온을 좀 나눠줄게.”
“응?”
승원이 수지를 꼭 안았다.
수지는 당황했지만 이내 베시시 웃으며 승원을 꼭 껴안았다.
“어머, 수지 너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니?”
소현의 말에 수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많이 승원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나자 수지의 떨림이 잦아 들었다.
“이제 괜찮지?”
“조금만 더.”
“여기 있으면 위험해.”
다시 바이크에 탑승했다.
부웅.
바이크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길만 이대로 뚫려 있다면 이대로 대전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수지야 어때? 이제 좀 괜찮아?”
“응.”
승원은 수지를 뒤에 앉히고 제일 뒤에 소현을 앉혔다.
두 사람 사이에 낀 수지는 이제 춥지 않은 듯 승원을 꼭 안았다.
**
계속 달리다 보니 죽전 휴게소가 나왔지만 주변이 도심인지라 이 휴게소에 들어가기에는 큰 위험부담이 따랐다. 게다가 라이트에는 비춰지지 않았지만 어두운 휴게소 주차장 안에는 좀비들이 가득했다.
“죽전 휴게소는 못 들리겠다.”
“으응.”
소현이 화장실을 가고 싶어 했다.
대충 길에서 눌 것을 종용했더니 큰 일이라고 얼굴을 붉혔다.
‘다음 휴게소가…….’
50분을 더 달리니 안성 휴게소가 나왔다.
이 휴게소는 주변에 건물이 없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휴게소다 보니 안전할 거 같았다.
주차장으로 진입하기 전에 입구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휴게소에 진입하니까 다들 똑바로 정신 차려.”
“응.”
수지와 소현 모두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아아아!”
바이크 소리를 들었는지 화장실 쪽에서 좀비 두 마리가 나타났다.
“수현아 저기!”
“나도 봤어.”
승원은 허리춤에 달아놨던 빠루를 꺼내 바이크에서 내렸다.
“수현아 차라리 도망치는 게!”
“걱정하지 마.”
무서운 것은 숨어서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좀비지 저렇게 대놓고 다가오는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
퍽! 퍽!
두 마리 정도는 가볍게 해치웠다.
하지만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때려도 적응되지 않는 손 느낌이다.
한 때 가족들 품에서 웃고 떠들며 사랑받던 사람들을 죽인다는 일이 유쾌할 리 없었다.
“수현아 너 무슨 운동했어? 움직임이…….”
“아, 검도 좀 했어.”
“응? 아저씨 레슬링 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수지는 이제 좀 적응했겠지만 소현은 승원이 좀비를 때려잡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을 했다.
좀비의 공격을 피해 머리를 가격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자.”
다시 바이크를 타고 휴게소 가까이로 다가갔다.
휴게소는 일반 휴게소보다 작았는데 주차장에는 차가 십 여대 주차되어 있었다.
“이제 화장실 좀 들려도 될까?”
“아저씨 나도!”
“일단 안부터 확인하고.”
승원은 바이크를 화장실 앞에 세웠다.
“화장실 안에 좀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으응.”
활짝 열려 있는 여자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불이 꺼져 있는 화장실은 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단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해 봐도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텅!
변기 칸 문을 여는데 안에서 좀비가 튀어 나올까봐 심장이 벌렁거렸다.
좀비가 물어도 상처하나 나지 않는 보호 장비가 있지만 안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일단 이 두 칸은 안전하니까 사용해.”
“응.”
급했는지 두 여자는 서둘러 변기 칸으로 들어갔다.
승원아 그 동안 다른 변기 칸을 둘러봤는데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어디 있어?”
“어, 나 여기 있어.”
“안 갔지?”
“어, 안 갔어.”
“가지마. 가면 안 돼?”
“안 가. 입구에 있을 게.”
승원은 화장실 입구에 가서 밖을 바라봤다.
이 세계는 종말로 치닫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달빛에 비친 휴게소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아저씨 물이 안 나와서 손을 못 닦았어.”
뒤에서 소현과 수지가 걸어 나왔다.
승원은 고개를 돌려 휴게소를 바라봤다.
“휴게소로 가보자.”
안 그래도 수지 가방에 초코파이가 몇 개 남지 않았고 물도 반밖에 남지 않았다.
대전까지 가려면 식량을 여기서 더 찾아야 했다.
“응?”
유리창 너머 휴게소 안은 문 안쪽에서 신문지가 붙어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문의 손잡이를 밀어보자 잠겨 있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걸까?”
소현의 말에 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신문지가 붙어있고 주차장에 차가 있잖아. 사람들이 있을 거야.”
문에 귀를 가져다 대니 안쪽 깊은 곳에서 남자가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원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인근에 좀비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두드렸다.
탕탕탕!
“안에 계십니까?”
승원의 외침에 문 근처에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기척이 들렸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안쪽으로 달려갔는데 정황상 동료를 부르러 가는 것 같았다.
“어? 정말 안에 사람 있네?”
“일단 기다려보자.”
안쪽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대충 목소리를 들어보니 십여 명이 넘었다.
대화만 하고 문이 열리지 않자 수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문을 안 열어주지? 좀비가 들어 올까봐 그런가?”
“쉿! 조용히 해봐.”
안쪽에서는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문을 열어주자는 쪽과 열어주지 말자는 쪽. 문제는 문을 열어주지 말자는 쪽이 더 많았다.
안에 식량이 많다지만 사람 숫자가 많았고 식량은 한정되어 있는 만큼 사람 숫자를 늘리기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남자가 밖이 돌아가는 상황을 들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들 바깥 상황이 궁금한지 밖에 몇 명인지 먼저 알아보자는 말이 나왔다.
한 남자가 조심스레 다가와 신문지 밑 부분을 열고 승원 일행을 바라봤다.
그리고 돌아가 세 명이라는 말에 문을 열어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통일 됐다.
“문 열기 전에 몇 가지 물을 게요.”
20대 정도의 젊은 남성 목소리다.
“네.”
“근처에 좀비 있지 않았어요?”
“두 마리 있었어요.”
“어떻게 했어요?”
“빠루로 쓰러트렸습니다.”
“물린 사람은 없고요?”
“네, 없습니다.”
남자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그쪽 인원은 총 몇 명이죠? 눈에 보이는 세 명이 모두 다 인가요?”
“네.”
다시 신문지가 닫히고 문의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자 꾀죄죄한 남자 한명이 세 사람을 반겼다.
“어서 들어오세요.”
셋이 들어오자 그는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본 후 서둘러 문을 닫았다.
안에는 사람들이 모두 마중 나와 승원 일행을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공포에 질린 이도 있었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인 사람도 있었다.
“바깥 사정은 어때요?”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상황은 호전 됐나요?”
“군대를 보지 못 했어요?”
“고속도로는 어때요?”
쏟아지는 질문에 승원과 수지 그리고 소현은 모두 당황했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그렇게 질문해서야 질문이 들리겠어요?”
리더로 생각되는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와 승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하셨을 텐데 뭐라도 드시면서 이야기 하죠.”
휴게소 식당에 앉아 테이블 위에 물과 과자 몇 봉지를 받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방에서는 몇몇 여자들이 컵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잠실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쪽은 좀비가 없습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승원은 그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야, 목숨을 건 탈주를 하셨군요. 근데 소현씨가 의사시라고?”
“네, S병원 레지던트였었죠.”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저쪽 현수 어머니가 몸이 아픈데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소현이 자리를 비우자 이름이 이동기라 밝힌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회사일로 지방 출장을 가던 길에 너무 잠이 와서 휴게소 주차장에서 잠을 자던 그는 소란에 눈을 떴는데 정신없이 휴게소를 떠나던 사람들을 보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고 했다.
그는 휴게소를 떠나는 대신 식량이 많은 휴게소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는 쪽을 선택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게 잘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길이 막히다니?”
승원이 이동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대전 방향으로 10분 정도 차를 몰고 가면 길이 오토바이도 타고 가지 못 할 정도로 막혀 있고 거기에는 수백 마리의 좀비들이 있어요.”
‘그럴 리가…….’
승원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 상황이 달라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과거랑 왜 다르지?’
과거에는 소현을 만나지 않은 만큼 휴게소를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대전까지 가는 길에 완전히 막힌 길 따위 전혀 없었다.
“혹시 왜 길이 막힌 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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