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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의 회귀자-120화 (120/197)

<-- 15층 - 좀비 아포칼립스 -->

꼬르륵.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승원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리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배고파요?”

“아, 밥을 먹은 지 오래 돼서…….”

“지금까지 편의점에서 생존에 계셨으면서 왜요?”

“음식이 냄새나기도 하고 먹으면 나중에 뒤처리하기도 곤란해서 하루에 한 끼만 먹었거든요.”

그 말에 다시 얼굴을 보니 의사들 모두 얼굴이 수척해보였다.

“진작 말하시지. 여기서 식사하고 올라가죠.”

“괜찮을까요? 냄새를 맡고 위에서 좀비라도 내려오면…….”

“냄새 맡고 내려올 좀비라면 어차피 있다가 우리가 올라갈 때 만날 좀비에요. 제가 상대할 테니까 걱정 말고 드세요.”

손전등에 비친 유리의 표정은 승원이 못 미 더워 보인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근육질의 군인이라고 해도 좀비 수십 마리를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쿵!

문에서 다시 좀비가 문을 두들겨 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은 뒤에 좀비가 문을 두드리고 앞에는 계단에서 좀비가 튀어 나올 지도 모르니 다들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식사 안하실 거 에요?”

“해, 해야죠.”

여자들은 비닐봉지에서 초코바를 꺼내 나눠먹었다.

일반 과자는 질소가 가득하고 유통기한이 짧고 라면 같은 것은 물과 불이 필요하니 비닐봉지 속은 통조림과 초코바와 물. 이 세 종류로 가득 차 있었다.

“수현 씨도 드세요.”

소현이 초코바를 하나 건넸지만 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오기 전에 헌혈의 집에서 좀 먹어뒀어요.”

“아, 그래요?”

소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초코바를 봉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승원은 문득 유리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왜 그렇게 빤히 바라보세요?”

“편의점에서는 빛이 없어서 얼굴을 못 봤는데 이제 보니까 수현 씨 굉장히 잘 생겼네요?”

“아, 네…….”

승원은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한 외모칭찬이었다.

진짜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무안함을 느꼈는지 얼굴을 붉혔다.

“아저씨.”

수지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왜?”

“아파트 근처 편의점에서 챙겨온 가방 잠실역 들어올 때 잃어버렸잖아. 그 가방에 뭐 들어 있었어?”

아파트에서 기껏 가지고 온 물건은 잠실역 입구에서 가방을 버려서 결국 잃어버렸었다.

“그게 왜 궁금해?”

승원의 반문에 수지는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가방이 무척 컸던 거 같아서…….”

“휴지.”

“응?”

수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휴지 챙겼었어.”

“헐. 왜?”

“볼일보고 손으로 닦을래?”

“…….”

수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생각해보면 물과 식량 확보 다음으로 중요한 건 휴지 확보가 분명했다.

매일 한 번 씩은 대변을 봐야 하는데 뒤처리를 하려면 휴지가 필요했다.

물론 손으로 닦을 수도 있지만 그건 물이 아주 많거나 주변에 흐르는 물이 있을 때나 가능한 방법이다.

‘단순히 깔끔 떠는 게 아니라 좀비는 냄새에 민감하니까.’

문득 수지가 내려놓은 손전등으로 눈이 갔다.

승원은 그걸 들어 올려서 일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비춰봤다.

“다 드셨으면 출발 할까요?”

“네.”

승원의 왼손에는 손전등. 오른손에는 빠루가 들려있다.

수지는 가방에 헌혈의 집에서 챙겨온 식량이 있었고 네 명의 여 의사들은 양 손 가득 식량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헉… 헉…….”

10층에 도착하니 여자들의 목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비닐봉지 안에는 무거운 물통과 통조림이 있어서 체력이 부칠 만 했다.

“이거 남자인 제가 제일 가벼운 손전등이랑 빠루만 들고 올라가기 죄송하네요. 다들 봉지 하나씩 주세요.”

“그래주실래요?”

유리가 비닐봉지를 내미려고 할 때 소현이 고개를 저었다.

“수현 씨는 앞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좀비에 대비해서 무기만 들고 계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승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소현을 쏘아봤다.

“아 무거워서 손에 피도 안 통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수현 씨 출발하셔도 되요.”

소현을 말에 다시 조심스레 손전등을 비추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30층에 도달했을 때 유리가 털썩 주저앉았다.

“힘들어서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유리야 조금만 힘내. 76층 올라가서 쉬자. 언제 다시 좀비가 나타날지도 모르고.”

소현의 말에 유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야! 네 비닐봉지는 가벼워서 그렇지. 내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

“무슨 소리야? 거의 균등하게 물이랑 통조림 넣어서 무게가 똑 같을 텐데.”

“뭐래? 아까 네 비닐봉지에서 초코바 5개 꺼내서 나눠먹었잖아.”

“너, 그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니까 무게가 똑같지는 않겠지?”

소현과 유리의 말다툼이 심해지자 소은과 현경이 말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왜 그래. 싸우지 마.”

“그래, 싸우지들 마.”

유리는 감정의 골이 깊어졌는지 고개를 세차게 옆으로 돌렸다.

“치! 지 혼자 잘난 척이야.”

“유리 너!”

소현은 화가 났는지 부들부들 떨었지만 말을 꾹 삼키는 것 같았다.

유리는 계단에 앉아있고 다른 여자들은 서서 그런 유리를 바라봤다.

유리는 씩씩거리며 소현을 노려보다가 슬쩍 승원의 눈치를 봤다.

‘쯧.’

계속 계단에 있을 수는 없었다.

서브 퀘스트 때문에 여자들을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봉지 하나 주세요.”

“정말요?”

“네.”

유리에게서 봉지를 하나 건네받았다.

“수지야 손전등은 네가 들어.”

“응.”

“내 앞에 잘 비추고.”

“걱정 하지 마셔.”

‘대견하네.’

수지는 헌혈의 집에서 찾은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여 의사들과 달리 물통 한 개와 초코파이만 들어있어 무겁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고 있어 무척 힘이 들 텐데 불평불만 하나 없었다.

“출발할게요.”

“네.”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던 승원은 50층에서 멈춰 섰다.

“아저씨 왜 그래?”

“쉿!”

승원이 멈춰 서자 수지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봤지만 그는 검지로 조용히 할 것을 주문했다.

작은 소리가 들렸다.

제일 앞에 있던 승원이 아니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비상계단 문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계단 내에서 나는 소리다.

‘여기가 41층. 소리는 50층 언저리에서 나는데.’

좀비가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다.

계단 통로 안에 벽에서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어쩌지.’

승원이 먼저 올라가서 좀비를 처리하는 게 좋겠지만 여자들을 여기서 내버려 두고 가는 것도 불안했다.

손전등이 한 개라 두고 가기에는 여자들이 어둠 속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나.’

승원은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모두 조용히 잘 들으세요. 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요. 느낌상 좀비 같은데 아무리 무섭고 놀라도 비명을 지르면 안돼요.”

“하지만 비닐봉지 소리는…….”

현경이 불안한 듯 바라보자 승원은 안심하라는 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봉지소리는 어쩔 수 없는 거 알아요. 제가 걱정하는 건 통로에 있는 좀비가 아니라 각 층 비상계단 문 너머에 있는 좀비들이에요.”

“좀비는 문을 열지 못 하잖아요?”

“만약을 대비하자는 거죠. 일단 따라오세요.”

“자, 자신 있어요?”

소은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를요?”

“좀비 죽일 수 있냐고요.”

“몇 마리 죽여 봤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들은 승원의 말에 안심이 되지 않는지 서로 손을 꼭 잡고 바들바들 떨었다.

소현과 유리가 같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작은 다툼은 이미 잊혀 진 듯 했다.

“갑시다.”

48층까지 올라가자 벽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 여자들에게 까지 들리는 듯 했다.

쿵! 쿵! 쿵!

흡사 고기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

주먹이나 발 혹은 머리로 벽에 부딪쳐야 나는 소리다.

어둠속에 손전등 하나로 불을 밝히고 저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강심장인 승원 역시 공포감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살짝 거리를 두고 올라오세요.”

“…….”

작게 소근 거렸는데 쿵쿵 거리는 소리가 딱 멈췄다.

‘들린 걸까?’

눈에 보이는 좀비는 무섭지 않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 좀비는 무섭다.

계단 복도는 너무 고요했고 좀비가 아닌 귀신이나 유령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쿵! 쿵! 쿵!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꿀꺽.

유리에게 받은 비닐봉지를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수지에게 손을 뻗어 손전등을 건네받았다.

승원은 소리를 내지 않고 손동작으로 다들 이곳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을 것을 주문했다.

퉁.

바스락.

현경이 비닐봉지를 내려놓을 때 물병과 통조림이 바닥에 닿으며 작은 소음이 났다.

다른 여자들보다 조금 더 큰 소음이 났다.

다들 얼음이 되어 계단을 바라봤다.

쿵! 쿵! 쿵!

소리는 계속 됐다.

다들 한숨을 내쉬고는 승원을 바라봤다.

‘갑니다.’

승원이 올라갔다 오겠다고 손동작을 보내자 다들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승원도 걱정되지만 그가 올라가면 여자들은 완전히 어두운 암흑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들 따라오겠다고 수신호를 해왔다.

승원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 올라가자고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저벅. 저벅.

신발이 계단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얼굴과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승원이 회귀 이후 역대 최대치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후…….’

49층으로 올라와 반 층을 더 올라갔다.

고개를 돌려 50층 쪽을 바라보니 누군가 서 있었다.

‘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여자가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승원이 들은 소리는 벽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쿵! 쿵! 쿵!

기괴했다. 옆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옷은 검은색 계열의 정강이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입고 있어 마치 귀신같은 모습이었다.

털썩.

뒤를 돌아보니 여자들이 겁에 질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뚝.

소리가 멈추자 승원이 깜짝 놀라 다시 계단 위를 바라봤다.

여자가 벽에 머리를 박는 것을 멈췄다.

까드득. 까득. 까드득. 까득. 까드득. 까득.

목에서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며 몸은 벽을 향해 있는데 목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사이로 형형색색 빛나는 두 눈이 승원을 바라봤다.

‘오, 오줌 싸겠네.’

투두둑.

침? 아니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히힛.”

‘웃어?’

분명 웃었다. 웃음소리. 좀비가 아니다.

좀비는 웃을 수 없었다.

뚜벅.

그녀가 계단을 한 계단 내려왔다.

“키킥.”

기괴한 웃음소리.

뚜벅.

한 계단 더 내려왔다.

‘설마 구울은 아니겠지?’

좀비라면 미친 듯이 달려 들 텐데 여자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그 느린 행동이 좀비만큼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총도 없이 구울을 마주치면 죽은 목숨인데.’

문득 머리카락 사이로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귀를 다쳤어?’

아니다. 그녀 검지를 보니 피가 묻어있다.

보아하니 자기스스로 귀를 깊게 파서 피가 난 것이다.

승원이 조심스레 한 발자국 계단을 오르자 그제야 여자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

깊고 높은 하이톤의 비명 소리. 위험하다.

좀비가 모여들 위험이 있었다.

쾅! 쾅! 쾅! 쾅! 쾅!

“크아아아아아!”

50층 비상계단 강철문 너머로 좀비들이 다가와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다. 위층 아래층 문에서도 좀비들이 문을 두들기는 소리로 모든 층의 비상구 문이 울리는 거 같았다.

“젠장!”

각 층 비상문들이 좀비들의 여자의 비명에 호응하듯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니 부술 듯이 부딪치고 있다. 지금 위험한 것은 좀비들이 강철 문을 부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나올까 걱정해야 했다.

“그 여자 좀 어떻게 해봐요!”

여자 중 하나가 소리쳤다.

승원은 잔뜩 긴장해서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빠루를 들고 있는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빡-!

두꺼운 강철 빠루가 여자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졌으나 어깨를 가격했다.

으직!

여자의 왼쪽 어깨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끼아아아아아아!”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오른손으로 재빨리 자신을 때린 빠루를 움켜쥐었다.

‘아니?’

승원이 깜짝 놀랐다.

여자와 힘겨루기에 돌입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빠루를 잡고 흔드는 힘이 무척 약했다.

‘구울이 아니야?’

승원은 빠루를 잡은 손에 힘을 줘서 여자가 잡은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 왼손으로 여자의 목줄기를 움켜쥐고 힘으로 밀어냈다.

쿵!

체중이 가벼운 여자는 쉽사리 뒤로 밀려났다.

앙상하게 마른 손은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 하고 있었다.

‘좀비도 구울도 아니야. 인간?’

승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끼아아아아아아!”

쿵! 쿵! 쿵! 쿵!

비명 때문에 자꾸 좀비들이 호응했다.

승원은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목 줄기를 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줬다.

우득-!

여자의 두 팔이 축 늘어졌다.

손을 놓자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인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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