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19화 (119/197)

<-- 15층 - 좀비 아포칼립스 -->

“근데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여자 들 중 하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분명 사람을 물어 죽이는 좀비가 가득한 서울부터 대전까지 간다는 건 일반인 기준에서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어봐야 결국 마트를 털며 연명할 수 있을 뿐. 언젠 가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물과 식량이 바닥나면 어쩌시려고요?”

승원이 생각하는 서울은 콘크리트 사막과 같았다.

수도 시설은 끊겼고 전기와 도시가스가 끊긴 이곳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식량으로 버티면 길어봐야 1년 이었다.

라면의 유통기한이 6개월이었으니 과자나 기타 음식들로 버텨봐야 통조림이 바닥나면 끝이었다.

“하, 하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와 수지는 대전으로 갈 거니까요.”

“으음.”

승원은 일단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저는 김수현이라고 합니다. 직업 군인이죠.”

“저는 김수지고요!”

의사들도 자기소개를 했다.

“김소현이에요.”

“이소인입니다.”

“한형경이라고 해요.”

“저는 박유리에요.”

여 의사들은 승원이 직업 군인이라고 하는 것에 조금 안도한 표정이다.

뭐니뭐니해도 군인이라고 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여기 언제부터 있었죠?”

“좀비가 발생하던 날. 우리는 여기 롯데월드 몰 지하 일층 푸드 코트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때가 언제였죠?”

“한 달도 더 됐죠.”

승원이 이 쪽 세계로 넘어오기 며칠 전에 좀비 바이러스 사태가 터진 듯 했다.

“밥을 먹다가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어요.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비명이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군데서 들려왔어요. 당황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왕좌왕 하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오기 시작했고 우리도 거기 편승해서 같이 달리기 시작했죠. 근데 여기 소현이가 편의점 안으로 숨자고 소리쳐서…….”

손전등이 꺼진지 한참이 지나자 어둠 속에서 눈이 익어갔다.

지금 말하는 소인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말을 건넨 여자 이름이 소현 인 듯 했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어깨까지 머리카락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얼굴을 보니 꽤 미녀였다.

“소현이의 선택이 옳았어요. 우리도 뒤에서 계속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겁이 나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고 입구에 사람이 몰려 빠져 나가지 못하던 사람들은 괴물들에게 공격당했죠.”

그녀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 그때처럼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경찰이나 소방서에 전화해도 아무도 받지 않더군요.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우린 그걸 봐버렸어요.”

“뭘요?”

“사람들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모습을요.”

“…….”

“우린 그게 사람들을 도망치게 만든 원흉이란 걸 알았죠.”

그녀의 이야기는 무척 실감이 나서 그 이야기를 듣는 승원과 수지는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편의점 주변에 그 식인을 하는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로부터 그것들을 좀비라고 부른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이소인은 목이 타는지 생수통 뚜껑을 열고 거침없이 마셨다.

“아무리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그들 역시 자기 코가 석자라 우리를 구조하러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 후 핸드폰은 끊겼고 지금 보는바와 같이 우리는 계속 여기 숨어 있었던 거예요.”

승원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생리 현상은 어떻게 처리하신 거예요? 좀비들은 냄새가 민감한데.”

괜한 질문을 했을까? 어두웠는데도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걸 알 수 있었다.

“좀비들이 근처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처리하곤 했어요. 비닐봉지에 처리해서 휴지나 물티슈로 뒤처리하고 봉지를 묶어서 밖에다 던졌죠.”

생각해보면 실례되는 질문이라 화를 내거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녀는 서로 생존 정보를 공유하고 싶었는지 거리낌 없이 부끄러운 기억도 모두 말해줬다.

“두 분은 아파트부터 여기까지 걸어오신 거예요? 일행은 두 분이 다고요?”

“네.”

“밖에는 어때요? 좀비가 많이 있나요?”

“없는 데가 없죠. 숫자도 많고요.”

승원의 말에 제일 끝에 있던 유리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두 분은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그럼 나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저 말은 자신을 데리고 나가달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담할 수는 없네요. 아파트에서 잠실역으로 올 때 8마리를 상대했는데 나중에 들켜서 역으로 뛰어 들어올 때 수십 마리가 쫓아 왔거든요.”

그냥 솔직히 말 했다.

수지 하나로도 벅차지만 수지는 다음 퀘스트와 연계될 확률이 높아서 데리고 가는 것이다.

되도록 따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더 과장되게 이야기 했다.

“저와 수지는 여기 편의점에서 식량을 좀 챙겨서 대전으로 이동할 거예요. 따라오고 싶으신 분은 말하세요. 막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위험해지면 저와 수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겁니다.”

여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초면에 자신들을 챙겨서 목숨까지 지켜달라는 말을 할 염치 없는 사람은 없었다.

“대전까지 어떻게 가실 건데요?”

처음 말을 건 소현이라는 여 의사였다.

“여기 8호선을 따라 이동해서 종점인 성남까지 간 다음 오토바이 구해서 대전까지 가려고요.”

“네?”

네 명의 여 의사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아니 다시 보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8호선 노선을 따라 걸어간다는 거죠? 지하로?”

“네.”

“당장 여기 롯데월드 몰에만 해도 좀비가 가득한데 지하철을 따라 이동한다니요? 가는 길에 좀비가 얼마나 많을지 알고요?”

승원 슬쩍 고개를 돌려 편의점 창밖을 바라봤다. 수지와 들어올 때는 좀비가 없었는데 두 마리가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좀비 두 마리가 인근에 있는 걸 확인 한 소현이 작게 말을 이어갔다.

“좀비들이 이동하는 대는 패턴이 있어요. 다행히 그쪽이 편의점 앞에 없을 때 온 거구요.”

“근데 패턴이라니요? 좀비 움직임에 패턴이 있다고요?”

승원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네, 사람을 발견하면 미친 듯이 쫓아가서 자기 구역을 벗어나는데 그런 자극이 없다면 좀비들은 규칙적으로 정해진 루트를 돌아다녀요.”

“확실한 거예요?”

소현은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 의사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소은이 대답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꺼질 때까지 계속 지켜봐서 알아요. 저기 보이는 여자 좀비 있죠?”

소은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니 계단으로 통하는 입구 앞에 긴 생머리의 여자 좀비가 벽에 머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소은이 어두 운데 어떻게 저 좀비를 봤나 했더니 문 위에 비상구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 조명은 정전과 상관없이 내부 건전지로 켜지는 모양이었다.

“저 좀비는 조금 있으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갈 거예요.”

그 말이 사실인지 계속 지켜보자 정말로 여자 좀비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했다.

“몰랐어요! 좀비에게 패턴이 있는 줄은.”

아파트에 있을 때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좀비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는데 설마하니 패턴대로 움직이는 줄은 몰랐다.

“이건 알고 있죠? 좀비는 시각은 없고 청각하고 후각만 살아있는 거요.”

“좀비에게 시각이 없는 거 확실해요?”

“네, 몰랐어요?”

“네, 움직임을 봐서 혹시나 싶은 건 있었는데 확신하진 못 했어요.”

승원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을 이야기 했다.

“대, 대단하네요. 저 같으면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좀비 옆은 지나지 못 할 거 같아요.”

“대단하긴요.”

여기 앉아 계속 의사들과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승원은 가방을 열고 통조림 위주로 챙기기 시작했다.

“저기…….”

“네?”

혹시 통조림은 자기들 거니까 가져가지 말라고 할까봐 살짝 인상을 쓰고 소현을 바라봤다.

표정을 보니 그런 뜻으로 부른 건 아닌 거 같았다.

“언제 출발하실 거예요?”

“지금 바로요.”

“그럼 저도 따라 갈 수 있을까요?”

“소현아!”

옆에 동료 의사들이 기겁해서 소현을 말렸다.

“대전까지 가는 것보다 여기서 버티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나아.”

“언제 올 줄 알고? 한 달이나 지났는데 이 사람들이 처음으로 여기 왔잖아.”

“아무리 그래도 대전은…….”

“대전에 임시 정부가 생겼다는 거는 서울을 포기한다는 말이야.”

“그래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하도를 걸어서 성남까지 간다는 건…….”

소은은 생각만 해도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현아 차라리 저 분에게 우리를 롯데타워로 데려다 달라고 하자.”

현경의 말에 승원은 무슨 말인가 싶었다.

“롯데타워요? 뭐 원하신다면 데려다 드릴 수는 있는데 거기는 왜요?”

이 여자들을 만난다고 서브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다.

이 4명의 부탁을 들어주면 퀘스트가 완료되지 싶었다.

“롯데타워는 1층에서 12층까지가 복합서비스시설이 있고, 14층에서 38층까지 사무실, 42층부터 71층까지 오피스텔, 76층부터 101층까지 호텔, 108층부터 114층까지 사무시설, 117층부터 122층까지 판매시설, 123층이 전망대에요. 여기 편의점에 있는 음식을 챙겨서 호텔에 가서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자세히 아시네요?”

“롯데타워 몰에 들어올 때 입구에 붙어있던 지도를 봤거든요. 저는 한번 본 것은 까먹지 않아요.”

“대, 대단한 기억력이시네요.”

“근데 호텔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식량이 바닥나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요?”

“그럼 굶어 죽는 거죠. 저는 지하터널을 따라 성남까지 걸어간다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요. 자살행위라고 봐요.”

“…….”

틀린 말은 아니다.

지하 터널에 과거와 달리 좀비가 수백 마리가 있다면 승원 역시 어찌 될지 몰랐다.

“소현이는 가기로 마음 정한거야?”

“응.”

“소현이는 그럼 떠나는 거고 현경이랑 유리 어떻게 할 거야? 소현이랑 같이 떠날래? 나랑 남을래?”

현경과 유리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 했다.

이 선택의 갈림길이 죽느냐 사느냐로 갈리는 것이다.

“수현 씨 정말 우리 호텔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어요?”

현경의 말에 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데려다 드리고 출발하도록 하죠. 76층이라고 했죠. 소은 씨?”

“네.”

“정전이 됐으니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작동하지 않을 테고 계단으로 올라가야겠군요.”

“게다가 식량까지 들 고요.”

승원과 소은이 이야기 하는 동안 현경과 유리는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전 남을게요.”

“저도 남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현경과 유리가 남기로 결정하자 남은 건 소현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전 떠날 거예요.”

“좋습니다.”

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현씨는 저와 수지와 떠나고 남은 세분은 호텔에 남기로 결정한 만큼 지금 바로 챙길 수 있는 거 모두 챙기세요. 지금 바로 호텔로 이동합니다.”

다행히 편의점 통로 건너에 바로 계단이 보였다.

76층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

짐을 챙기고 조심스레 편의점을 나왔다.

소은이 편의점 앞을 지나는 좀비들의 이동 패턴을 알고 있기에 안전할 때 맞춰 나온 것이다.

부스럭.

“쉿!”

비닐봉지 소리가 너무 크게 났다.

그녀들은 큰 가방이 없기 때문에 편의점에 있는 비닐봉지 중 가장 큰 봉지에 유통기한이 긴 식량을 위주로 가득 채워 넣어서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끼이이익.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조심스레 열었지만 결국 마찰음이 들리며 소음이 났다.

“크아아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서!”

수지, 소현, 소은, 현경, 유리 모두 승원의 옆을 지나 비상계단으로 들어오자 그는 서둘러 문을 닫았다.

쾅! 쾅!

간발의 차로 문이 닫혀서 좀비들이 문에다 몸통 박치기를 했다.

문을 잠그기도 했지만 손잡이를 돌리지 않는 것을 보니 문을 열려고 시도할 정도의 지능은 없는 듯 했다.

“여기가 지하 1층이니까 76층까지 총 77층을 올라가야 되네요.”

승원은 말하면서 수지의 손전등에 비춰진 여 의사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식량을 가득 채운 비닐봉지를 양 손에 들고 있어서 77층을 올라갈 체력이 될 까 싶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승원은 빠루를 들고 싸워야 했기에 그녀들의 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보다.’

승원은 계단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그런다고 뭐가 보여요?”

조명이 없는 계단은 수지의 손전등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둠에 잠식되어 형체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현경이 승원에게 무언가 보이냐고 묻는 것은 당연했다.

“모두 조용히 해보세요. 좀비가 있는지 알아 야죠.”

승원의 말에 여성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이 계단으로 가득한 통로는 비상구기 때문에 두꺼운 벽과 문 이외에는 그 어떤 장비와 시설도 없어서 고요했다.

좀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좀비가 달려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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