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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의 회귀자-105화 (105/197)

<-- 12층 - 프리퍼족 -->

밀폐된 아파트 복도에서 출입구에 불을 지르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흐려진 판단 때문이다.

불을 진화할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저 배가 고파서 서둘러 음식을 빼앗고 싶은 마음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것이다.

[어어?]

불을 지른 남자도 불이 커지자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눈치 챘는지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책장과 책만 불타는 게 아니라 그 서랍 안에 있던 플라스틱 생활용품이 녹아내리며 매캐한 유독 가스를 분출했다.

[콜록! 콜록!]

눈이 따갑고 기침이 나왔다.

남자는 불을 끄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복도를 벗어나는 선택을 했다.

그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어, 어떻게 해?]

신발장에서 불이 붙은 것을 본 용필 가족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복도에서 난 불이라면 강철 문을 닫을 테지만 문은 이미 뜯겨 나갔고 집 안에 있는 신발장에서 물건들이 불타고 있었다.

[물!]

당황한 가족들은 판단력이 흐려졌다.

특히 용필이 그랬다.

조금만 생각을 했더라면 불붙은 기름에 물을 붓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촤악!

생명수라고 할 수 있는 생수를 마구 부었지만, 기름에 붙은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이 그 범위가 더 넓어져서 집 안으로 불길이 흘러 들어왔다.

[도, 도망쳐!]

뜨거운 열기는 견디지 못 한 가족은 안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불길은 꺼질 줄 모르고 더 거세졌고 뜨거운 불길보다도 유독 가스가 가득한 연기에 먼저 질식해서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그 불은 아파트 전체로 퍼져서 아파트 주민 전부를 집어 삼키고 나서야 꺼질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 입니다.”

용필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사정이 어떻든 간에 일가족이 고통스럽게 죽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제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설명하겠습니다.”

설명은 이랬다.

용필은 자신이 최선의 수라고 생각한대로 움직여 죽음을 맞이했다.

죽고 나서 계속 생각해보니 과연 그때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생각에 잠긴 것이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각자 제 몸에 들어가서 당시 제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어리석은 결과를 만들어 낸 저와 달리 여러분은 좋은 결말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승원 일행 각자가 용필의 몸에 들어가서 동시에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다.

무공, 게임 시스템이 불가능했고 들어가는 몸 역시 용필의 몸이었다.

대신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시스템을 마련해 놨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죠?”

경호가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만족도 0%로 스킬이나 아이템 하나를 제게 넘기고 다음 층으로 넘어갈 뿐 입니다.”

“죽지는 않는 건가요?”

“물론이죠.”

역대 미궁을 오르며 가장 안전한 층이었다.

임무에 실패해도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다녀오시길.”

주변 시야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

“오빠 일어나 봐!”

누군가 흔들어 깨우자 승원이 천천히 눈을 떴다.

부드러운 침대와 이불 속에서 자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용필의 여동생 정지유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작됐군.’

승원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오빠! 잠 좀 깨 봐!”

지유는 무척 다급한 표정이었다.

승원이 용필의 몸에서 적응하기 위해 꿈지럭 대는 것을 그녀는 오빠가 잠에서 덜 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아니, 빨리 나와서 창밖을 봐봐.”

승원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른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있다는 것은 무척 생소한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지금 나와 같은 상황이겠지.’

승원은 방을 나와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향하며 통신을 켜봤다.

[승원 : 다들 내 메시지 보여?]

[경호 : 어 이런 식으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거군요.]

무공도 마력도 마법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한 가지 가능한 게 있다면 바로 일행과 작전 회의를 할 수 있다는 거 였다.

[지현 : 아까 물어보려다 말았는데, 이거 하는 목적이 뭘까?]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그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이미 죽은 용필이 살아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승원 : 그 남자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일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로 하여금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길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달라는 거 같아.]

[아영 : 식량을 모두에게 나눠주고 버텨보는 건 어떨까요?]

[승원 : 아까 이야기 제대로 안 봤어? 4인 가족이 아껴가며 버텨야 1년이 가는 식량이야. 아파트 주민들과 나누면 한 달안에 모두 죽을 걸.]

[예원 : 잠깐! 그럼 우리 이 몸에서 1년을 있어야 해?]

[용필 : 그건 아닙니다. 선택의 순간 같은 중요한 순간에만 여러분이 판단할 기회가 주어지며 불필요한 시간 같은 경우 제가 앞 당겨 줄 겁니다.]

용필이 대화를 듣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일행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어어어! 저 초록색 연기들은 대체 뭐야?”

베란다에는 용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승원은 난간으로 가서 함께 밑을 바라봤다.

도시 전체가 초록색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정환 : 아까 방독면 착용해도 안 된다고 했지?]

[승원 : 네, 피부에 닿으면 그냥 죽는다고 했어요.]

다행한건 강한 돌풍이 불어도 연기가 위로 올라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연기는 딱 4층까지만 잠식해 있었고 흔들리지 않았다.

쾅-! 쾅!

“모두 모여보세요!”

누군가 복도에서 용필 가족의 집 문을 두드렸다.

분명 연기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확인되자 5층부터 20층까지 주민들이 대책회의를 하기 위해 모이자고 두드리는 신호였다.

“……정말요?”

사정을 모두 들은 용필 엄마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출입문에 서 있던 5층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가려던 남편이 연기에 들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다들 8층 아줌마네로 가보자. 거기서 회의가 벌어질 거래.”

“전 조금 어지러워서 쉬고 있을 테니까 세 분이 다녀오실래요?”

승원은 이미 과거에 가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모두 알고 있었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대체 뭘까 하고 추측만 난무하는 자리였다.

“후…….”

가족이 모두 나가고 소파에 앉은 승원은 베란다에 가득한 식량을 바라봤다.

아공간 주머니가 있다면 모두 숨겨버릴 수 있지만 그건 당연히 사라져 있었다.

상점 창도 사용할 수 없었다.

정말 용필의 몸으로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과거에는 이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 했었지만…….’

과거에 승원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살아남아 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역시나 문 앞에 불이 붙어 죽어버렸다.

만족도 0%로 이때 아이템을 하나 빼앗겼다.

무작위로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잘 쓰지 않던 것을 빼앗겨서 큰 타격은 없었지만 해결하지 못 했다는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지금은 답을 알고 있지.’

나중에 고층에 가서 같은 퀘스트를 한 사람들에게 만족도 100%가 나온 방법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로만 들었던 것이기에 승원이 직접 용필의 몸으로 그걸 해나간다는 건 또 다른 것이었다.

[지현 : 다들 반상회에 와 있지? 도움 안 되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네?]

반상회에 참가한 지현이 지겨웠는지 채팅을 걸어왔다.

[경호 : 이거 언제 끝나나?]

승원 빼고 모두 참석했는지 다들 무척 지루해했다.

[용필 : 개인마다 넘기고 싶은 지루한 시간이 있을 테니 채팅으로 저를 부르면 제가 시간을 당겨줄게요.]

[제임스 : 반상회만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정환 : 전 끝까지 들어볼게요.]

이제부터 각자의 시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용필이 시간을 당겨주는 것이 각자 달랐기 때문이다.

[승원 : 나는 혁이 엄마가 식량을 달라고 찾아오는 날 아침으로 당겨줬으면 좋겠는데.]

[용필 : 일주일을 당기는 건데 괜찮겠어요?]

[승원 : 네.]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생략되는 시간의 경우 이전과 마찬가지로 용필의 시점에서 진행이 됐다.

[용필 : 일주일을 넘겼습니다.]

빨리 흘러가는 과정을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있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 그저 티브이, 라디오가 안 되고 전기, 수도, 도시가스가 끊겨 불안에 떨기만 하던 시간이었다.

‘여기서 부터 잘 해야 해.’

승원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사람들이 한정된 식량을 다 먹어가고 있을 테니 혁이 엄마같이 자신이 모은 식량을 탐내는 사람이 집에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설명한 것이다.

“일단 식량은 출입구에서 안 보이는 안방으로 모두 옮겨 놓고요. 누군가 찾아오거든 그건 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보관을 잘 못해서 상했다고 말해야 해요.”

“그걸 믿을까?”

동생 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믿으면 지들이 어쩌겠어? 칼을 들고 협박하겠어? 문을 부수고 들어오겠어?”

식량이 모두 상해서 버렸다는 걸 믿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단 처음에 단칼에 거절하는 게 중요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배를 굶주려 자존심을 버리는 상황이 오기 전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혁이 엄마랑 친하다고 막 넘겨주면 안돼요. 알겠죠?”

“으응.”

용필 엄마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배를 굶주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 혼자 배를 채운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8개월 정도 버텨야 살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고.’

해도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믿지 않을 테고 용필의 만족도는 대폭 떨어질 게 분명했다.

미래를 봤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은 이야기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우리 가족만 생각해요. 가족만.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저 식량이 많아 보여도 우리 넷이 먹으면 많은 것도 아니에요.”

식량도 식량이지만 물이 부피를 많이 차지했다.

‘몇몇 또라이들은 새벽에 외벽 난간타고 다른 집 들어가서 아파트 주민들을 죽였다고 했었지.’

마법, 무공은 없어도 용필의 몸은 건장한 20대 남자고 영양섭취도 잘 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아파트 주민들을 하나하나 죽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족도 20%가 나왔다고 했으니 0%인 나보다야 낫지만.’

그런식으로 인간임을 포기한 방법을 동원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잘 하고 있나?’

[승원 : 다들 어때?]

[정환 : 문을 강화하고 있어.]

[지현 : 아파트 주민들 성향을 알아보고 있어.]

[경호 : 식량들을 옷장에 숨기고 있어요.]

다들 자기만의 방법대로 이야기를 진행해가고 있었다.

[승원 : 아영이 너는?]

[아영 : 저는 식량이 있다는 걸 공개하고 반장 집에 옮겨서 공동 관리하기로 했어요.]

[승원 : 뭐? 그럼 결국 다 굶어죽을 텐데?]

[아영 : 제가 내놓으면 다른 집들도 숨겨 놓은 식량을 내 놓을 테고 그러면 배급제를 통해서 조금씩 먹으며 버티면…….]

[승원 : 아까 이야기 못 봤어? 최소 6개월에서 8개월을 버텨야 하는데 한 집 당 평균 열흘 치 식량밖에 없어. 30가구가 이 집 식량을 나눠 먹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버티려고?]

[아영 : 그렇지만 식량을 혼자 숨겨놓고 버텨봐야 같은 결과가 나올 거 같아서…….]

아영은 그저 양심이 가는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 함께하고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이번 층에서 용필에게 만족도를 주기는 글러 먹었다.

[승원 : 제임스는?]

[제임스 : 전 식량을 한데 모으고 제비뽑기를 통해 자살하기를 유도해서 최종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승원 : 미쳤구나. 가랑은?]

[가랑 : 굶어 죽은 사람을 잡아먹는 걸 유도하는 건 어떨까 싶어.]

[승원 : 와우…….]

제임스와 가랑의 방법은 무척 독특했다.

일단 용필이 죽지만 않으면 만족도 0%가 나오지는 않을 테니 그것도 방법이라면 하나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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