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04화 (104/197)

<-- 12층 - 프리퍼족 -->

아파트 입주민은 5층부터 20층까지 살아남았다.

정용필 가족이 사는 곳은 11층이었다.

다행히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 사건이 터져서 모두 무사했다.

아파트는 곧 반상회가 열렸다.

[119나 112가 안 받아!]

[북한이 생화학 테러를 한 게 분명해!]

[외계인이 한 짓이 아닐까? 왜 영화 보면…….]

[하나님이 천벌을 내리는 거야!]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상식적인 이야기가 오고 갈 줄 알았는데 상황이 상식적이지 않다보니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헬기 같은 걸로 구해주러 오지 않을까?]

[나라 전체가 이렇게 된 거라면? 세계가 이렇게 됐다면?]

[에이, 이 도시만 이런 거겠지. 화학공장에서 뭐 터진 거 아냐?]

[정부를 믿어? 남 탓만 하면서 말싸움만 하다가 구조는 몇 달 뒤에 올 걸?]

한정 된 공간에 한정 된 사람들이 몇날 며칠을 모여 고민을 해도 원인이나 해결 방안을 알 수 없었다.

희망으로 여겼던 티브이는 전기가 끊기자 틀수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가스가 끊기고 수도도 끊겼다.

보통 아파트 사람들은 일주일치 식량을 가지고 있었다.

전기가 나가 냉장실과 냉동실을 사용할 수 없자 식량의 소모도는 더 빨랐다.

부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먹어서 사라지는 게 빨랐다.

똑똑.

용필의 집에 누군가 노크를 했다.

혁이 엄마였다.

[용필 엄마 우리 물하고 식량이 다 떨어져서 그런데 먹을 것 좀 줄래?]

[응? 물은 목욕탕에 받아놓지 않았어?]

[아, 글쎄 혁이가 머리 가렵다고 매일 머리를 감아서.]

[에잉, 쯧쯧 그 녀석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구먼. 잠깐만 기다려 봐.]

용필 엄마가 베란다로 가자 방에서 쉬고 있던 용필이 뛰쳐나왔다.

[아! 엄마 뭐하는 거야!]

[뭐하긴? 진혁 엄마가 물하고 식량 좀 달라고 해서 내주려고 그러지.]

[무슨 소리야! 이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 모르는데 우리 가족만 먹고 마시는데 써야지! 이게 한 달 갈지 일 년이 될지 누가 알아?]

[그럼 혁이 엄마가 달라고 찾아왔는데 안주고 내 쫓아?]

[아니, 그냥 문을 열어주지 말았어야지. 아니 애초에 그때 이걸 왜 말했어?]

열려있던 문으로 대화를 듣고 있던 진혁 엄마는 기분이 불쾌해진 듯 했다.

[어머머 별꼴이야 진짜. 그거 몇 개 좀 얻어간다고 내가 별 소리를 다 듣네.]

[아니, 그게 아니고 저희 가족을 우선시 생각하다보니까…….]

[참나 더럽고 치사해서 안 받아간다!]

진혁 엄마가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용필 엄마는 문을 잠그며 투덜 거렸다.

[참나, 저 여편에 왜 승질이래?]

그래도 아들이 한 소리 들은 게 불쾌했는지 용필 엄마는 혁이 엄마를 실랄하게 욕 했다.

[아니 글쎄 그 집 아들은 우리 아들하고 나이도 같으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목욕탕에 받아놓은 물로 머리를 감아서 벌써 물을 다 썼데.]

용필 엄마는 용필 아빠와 용필 동생에게 혁이 엄마 뒷담 화를 했다.

문제는 3일이 지난 후 였다.

똑똑

[용필 엄마!]

가스가 퍼진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였다.

혁이 엄마가 다시 찾아왔다.

[응? 무슨 일이야?]

[우리 물이랑 음식이 완전히 다 떨어졌어. 목마르고 배고파서 그런데 물하고 식량 좀 줄래?]

[으이그, 그때 받아갔어야지.]

[으응.]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지 혁이 엄마가 고분고분했다.

용필은 그때 자고 있었고 용필 엄마는 두 손 가득 물과 식량을 혁이 엄마에게 줬다.

혁이 엄마는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마른 체질이다 보니 힘이 없었다.

[고마워, 근데 다 못 들겠다. 남편하고 아들 좀 데리고 올게.]

[응? 내가 들어다 줄까?]

용필 엄마는 통통한 체형으로 힘이 장사였다.

때문에 용필 엄마가 가득 들고 온 것을 혁이 엄마는 다 들지 못 했다.

[아냐 받는 것도 미안한데.]

혁이 엄마는 짐을 들기 위해 남편과 아들을 불렀다.

남편은 신발장으로 들어와서 짐을 들다가 흘긋 베란다를 바라봤다.

[와! 저게 아드님이 다 모아둔 거예요?]

[네? 호호호! 아들이 저거 남들에게 보이는 거 싫어하니까 조용히 해요. 지금 자고 있거든요.]

[들어가서 좀 봐도 돼요?]

[네? 아들이 싫어할 텐데…….]

혁이 아빠는 순순히 물어났다.

하지만 며칠 주기로 받아가는 건 변하지 않았다.

용필은 빨리 줄어가는 식량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거 정량대로 먹으면 우리 4인 가족이 1년을 버틸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줄었지?]

[그게…….]

용필 엄마가 아들에게 솔직히 이야기 했다.

그러자 용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사태가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퍼주면 어떻게 해요?]

[아니, 찾아오는 걸 어떻게 거절해…….]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말하지 않았어야!]

지난 과거를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집 안 가득 메운 식량을 남들에게 말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파트 아줌마들끼리는 친해서 자주 집을 오고 갔기 때문에 안 들키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엄마 이제부터라도 주지 마요.]

[그럼 굶어죽을텐데…….]

[안 그러면 우리가 굶어 죽어요.]

그 이후 혁이 엄마가 몇 번 찾아왔다.

노크를 했지만 열어주지 않자 하루에도 열 번씩 찾아왔다.

나중에는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지금 일부러 안 여는 거지? 그런 거지?]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혁이 엄마가 굶주리던 아파트 사람들 전부에게 이 사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쾅! 쾅! 쾅!

[문 열어보세요! 식량을 산더미처럼 쌓아 놨다면서요?]

[와 어쩜 그래? 우리 굶주리는 거 뻔히 알면서.]

[혼자 살겠다는 거지!]

[너무하네.]

[이런 사태 터질 줄 알고 있었던 거 아냐?]

[아냐, 그 집 아들이 좀 특이해서…….]

집 안에 있던 용필 가족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눠주면 한 달도 못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엄마! 봐요. 연기가 조금씩 줄고 있어요.]

베란다에 있던 용필 동생이 소리쳤다.

확실히 연기는 줄어들고 있었다.

4층에서 5층 사이까지 차올랐던 연기가 꽤나 줄어있었다.

수학과를 나온 동생은 종이에다가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15일 동안이라는 기간하고 연기가 줄어든 높이를 계산하면…….]

아파트만 연기가 걷히면 끝나는 게 아니었다.

1,2,3층이야 전기가 끊겨서 냉장고 음식은 다 상했을 테고 통조림이 몇 개 있는 게 전부일 터였다.

도시 전체가 연기가 빠져야 대형 식품매장 통조림 파트를 털 수 있을 터 였다.

[최소 6개월은 지나야 도시에 연기가 사라지겠는데? 안정권은 8개월 정도고.]

베란다에 있는 식량과 물은 10개월은 버틸 수 있다.

[지금 먹는 것도 최소한의 생존 칼로리에 맞춘 거야. 살이 계속 빠질 텐데 나중에 구조대를 기다릴 게 아니라 산을 내려가서 식량을 구하러 다닐 체력을 만들어 두려면 앞으로 이만큼씩은 먹어둬야 해.]

종일 침대에 누워서 버틸만한 식량 말고 체력을 유지하는 식량을 계산해보자 딱 8개월이 나왔다.

[우리 가족끼리만 먹으면 연기가 걷힐 때까지 버틸 수 있어.]

문제는 며칠이 자나자 밖에서 소리치던 주민들이 문을 뜯으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는 입구가 하나고 강철 문으로 되어 있어 강제로 열기 쉽지 않았다.

빠루 같은 것이 있다면 몇 시간이면 뜯었겠지만 일반 아파트 가정집에 빠루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망치나 일자드라이버로 열려고 하니 기스만 나고 열리지 않았다.

[용필 엄마 이러기야!]

[혼자 살겠다는 거야?]

[우리 딸이 배고프다고 울고 있어!]

[들어가면 가만 안 둬!]

용필 가족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아무리 강철 문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발장에 책장과 서랍장을 놔서 막아버렸다.

위이이이이잉!

누군가 뒤늦게 충전식 해머 드릴을 가지고 있던 것이 떠올랐는지 드릴이 나타났다.

치지지지지직!

충전이 충분하지 않았던 건지 30분이 지나자 힘이 약해져 꺼져 버렸지만 손잡이를 떨어져 나가게 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일차 잠금을 풀어도 이차 잠금이 있었다.

망치가 들어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 생겼기에 문을 조금씩 뜯어내기 시작했다.

[어쩌지? 어떻게 해?]

여동생이 겁에 질린 듯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문을 보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용필은 서둘러 식칼과 마대자루를 준비하고 철사와 테이프로 기다란 창을 만들었다.

[문을 부수지 마세요!]

[식량을 내놔!]

용필은 손잡이를 부수고 생긴 작은 구멍으로 나무 봉에 매달린 식칼을 찔러 넣었다.

[아악! 나 베였어!]

[저 새끼가?]

[문 부수지 말라고!]

작은 구멍을 망치로 틀어막고 열기 시작하자 반나절이 지날 때쯤 결국 문이 열려버렸다.

[들어가!]

[뭐야? 책장으로 막혀 있어!]

[밀어!]

하지만 용필과 그의 아버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작은 틈으로 계속해서 창을 찔러 넣었다.

[아악!]

[물러나!]

손을 베인 남자들이 복도로 물러났다.

책장에는 온갖 무거운 것을 올려놓고 서랍장에선 넣어놔서 무방비한 상태로 치우도록 20분 이상을 내버려 두지 않는 한 뚫리지 않을 거 같았다.

[문을 부쉈으니까 좀 쉬자.]

사람들이 물러났다.

용필과 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빠 위층에서 창문으로 내려오지는 않을까?]

[사람 체중을 버틸만한 밧줄을 가정집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 있을까?]

[하긴…….]

게다가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도 상당한 힘과 노하우를 필요로 했다.

용필은 실내 암벽등반을 취미로 해서 다룰 수 있어도 아파트 사람들이 그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파트는 천연의 요새야. 입구만 잘 버티면 돼.]

결국 가족들은 거실에서 먹고 자고하며 문을 지켰다.

아파트 주민들도 냄비 뚜껑을 가져와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입구를 뚫어보려 했지만 창이 날아드는 것과 무거운 책장을 치우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

[젠장! 굶어죽은 사람이 나왔어! 다 너희 탓이야!]

[그게 왜 우리 탓인데? 내 식량은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너희가 해외여행 다니고 좋은 옷 사 입을 때 욕먹으면서 모아둔 거야!]

감정싸움은 계속 됐다.

아파트 주민들은 복도에 텐트를 치고 지내면서 용필 가족이 한 눈 팔기를 기다려서 용필 가족도 거실에서 먹고 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불침번을 정해서 번갈아가면서 잘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내가 아들 말 대로 주변에 말할 게 아니었는데!]

뒤늦게 용필 엄마가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들킬 수밖에 없었다.

[베란다에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아놨는데 모포로 덮어놨다고 해도 손님이 찾아오는 이상 누군가 물어봤을 테고 들킬 수밖에 없었어요.]

설마하니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재난 때문에 집에 손님도 초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용필 엄마가 말하지 않았다면 호기심 가득한 손님들 중 누군가 모포를 들춰봤을 테고 어차피 들켰을 것이 분명했다.

[엄마 탓이 아니에요. 울지 마세요.]

[아니야. 그간 아들 저 식량 사는 걸로 구박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반쯤 재미삼아 산거지. 진짜 재난이 닥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나 둘 모으다가 취미가 되서 점점 모으게 된 것이다.

재난 상황을 예측하고 미친 듯이 모은 게 아니었다.

쨍그랑!

[어?]

뭐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용필 가족이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출입구 작은 틈으로 누군가 병을 집어 던져 깨트렸다.

[기름 냄새?]

[그래, 등유다! 집에서 겨울 난방 할 때 쓰고 남은 건데. 당장 입구 열지 않으면 불 질러 버리겠어!]

[그럼 식량도 다 탈 텐데. 아파트 전체가 탈지도 몰라.]

[이러다 굶어 죽겠어. 이러다 죽든 저러다 죽든 같아!]

그렇다고 입구를 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분노한 아파트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게 분명했다.

맞아 죽지 않아도 굶어 죽을 게 분명했다.

용필 가족은 서둘러 기름을 닦는 쪽을 택했다.

[기름은 얼마든지 더 있어!]

화르륵!

출입구 책장이 불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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