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층 - 고대의 골렘 -->
검이라기보다 몽둥이에 가까운 무기가 톨미로스의 머리에 제대로 가격했다.
쾅-!
인간이라면 즉사할 공격이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골렘이었다.
골렘 싸움에서는 압도적인 성능으로 상대를 부수거나 비슷한 성능이라면 관절을 부러뜨려야 했다.
경기에서는 밀어내서 떨어트리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아야야. 조종실에 탄 내 골이 흔들릴 정도의 공격이로군.]
톨미로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통신해왔다.
쾅-!
그때 갑자기 끌려가던 가랑이 거칠게 움직이며 자신을 잡아 끄는 필시 왕국 골렘 하나를 경기장 밖으로 밀어냈다.
“필시 왕국 7기! 지리온 왕국 18기 남았습니다!”
사실상 지리온 왕국은 승원 하나 남고 지현과 가랑은 골렘 다리가 부서져 버렸다.
7대 3이 된 것이다.
[라이온 기사단 두 사람을 도와줘!]
[네!]
시간 끌기는 될 것이다.
승원은 일단 눈앞에 있는 소드 마스터 톨미로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하아앗!]
승원이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10미터 골렘이 휘두르는 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에 톨미로스는 감탄하면서도 그 공격을 막아냈다.
[대단해! 내가 다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공격이라니!]
톨미로스는 알 수 있었다.
만약 이게 골렘을 타지 않은 맨몸 싸움이었다면 이미 자신은 전신이 토막나서 죽었을 것이다.
[미리 듣지 않았다면 제국의 오도르 공작이 지리온 왕국을 돕는다 생각했을 거야. 이제 내가 소드 마스터가 된지 1년 밖에 안됐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소드 마스터인 나를 압도할 만한 분은 그 분밖에 없으니.]
[미리 들었다고?]
대화를 하면서도 승원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톨미로스가 탄 골렘은 전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의 대리인이라고 했나? 그걸 믿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어느 왕국에서 비밀리에 키워진 소드 마스터라고 생각하는데?]
신의 대리인이라는 단어가 적국의 귀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 내부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필시 왕국이 소드 마스터를 키울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리 왕국이 지리온 왕국을 삼키는 걸 눈에 가시로 여기는 제국에서 파견한 건가?]
승원은 무리해서 빨리 이기려고 하다 보니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남은 사람들은 들으세요. 살아남기 보다는 다 같이 떨어지더라도 적의 숫자를 줄이는데 집중하세요.]
[확인.]
저쪽 경기장 끝에서는 필시 왕국 골렘 6기와 지현과 가랑 그리고 15기의 자그마한 필시 왕국의 골렘들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쿠쿵!
라이온 기사단과 드래곤 기사단이 한데 엉켜 경기장 밖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랑과 지현 역시 다리 하나 없이도 있는 힘껏 상대를 밀어 젖혔다.
“필시 왕국 2기! 지리온 왕국 5기 남았습니다!”
“오오오오오!”
흥미진진한 진행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현은 상대편 골렘 3기와 함께 물귀신 작전으로 떨어졌고 라이온 기사단도 거기에 힘을 보내서 12기가 상대 왕국 3기와 함께 떨어졌다.
그것도 사실상 라이온 기사단의 힘이라기보다 가랑의 도움이 컸다.
[가랑! 그 1기 정도는 맡겨둬 되지?]
가랑의 옆에는 아직 라이온 기사단 골렘이 3기가 남았다.
[맡겨 둬!]
다리 하나가 없더라도 일반 기사가 탄 골렘 정도는 가랑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어?]
상대가 힘겨루기를 신청하기에 가랑이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마나석 5개에 자신의 내공까지 더하면 상대가 소드 마스터가 아닌 이상 어렵지 않게 상대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소드 마스터? 아니 그 이상?]
가랑이 밀려나기 시작하자 라이온 기사단 3기가 뒤에서 힘을 보탰지만 무리였다. 질질 밀려나던 가랑은 결국 힘없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가랑! 어떻게 된 거야?]
[마나를 전부 썼는데. 어째서?]
가랑은 머리가 어질어질 할 정도로 마나를 전부 다 써버렸다.
그녀는 현기증 난다는 표정으로 조종석을 비틀거리며 나왔다.
“필시 왕국 2기! 지리온 왕국 1기 남았습니다!”
“오오오오오!”
지리온 왕국의 국왕과 필시 왕국의 국왕 표정이 극과 극을 달렸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표정을 짓던 지리온 왕국의 국왕의 표정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필시 왕국에 소드 마스터가 하나 더 있다고?’
게다가 적들은 승원 팀의 전력을 완벽히 알고 그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왔다.
무수한 연습을 통해 각기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 느껴졌다.
삐빅-!
때마침 내부 전체 통신이 들어왔다.
또 다른 소드 마스터로 의심되는 자가 발신한 것으로 연락을 받는다면 톨미로스와 함께 셋이 대화가 가능할 터 였다.
[넌 누구지?]
과거에 없던 존재였다.
승원은 혹시 또 다른 클라이머는 아닐까 의심했다.
[후후, 내 목소리를 들어도 모르겠나?]
[성기사 하리온?]
목소리를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승원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성기사가 두 국가를 운명 짓는 골렘 전에 참여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승원은 교황의 정치적 참여.
혹은 그의 야망을 떠올렸다.
아니면 필시 왕국에서 돈으로 유혹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네놈이 나한테 한 짓을 벌써 잊었는가?]
[얼굴 한대 때린 거?]
[얼굴을 때려 형 앞에서 망신을 주고 또 국왕 앞에서 내게 망신을 줬지!]
[뭐?]
승원이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마력을 많이 써서 혼미한 게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그가 인생을 걸 정도로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성기서 규칙을 어기고 적국에 가담했다고?]
[후후, 성기사 규칙을 어기긴 했지만 들키진 않았다. 또 엄밀히 따지면 교회는 지리온 왕국의 영토에 있을 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이미 필시 왕국과의 거래를 통해 마법사로 하여금 하리온의 모습을 한 요원이 그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교황은 알고 있는 가?]
[그럴리가. 그 고지식한 양반이.]
승원은 그제야 가랑이 밀려나고 지현이 탄 골렘의 다리가 부서진 이유를 알아차렸다.
[미쳤군. 지금까지 네가 사용한 힘은 네 생명력이었어.]
[네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
하리온은 어려서부터 모든 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부모에게 칭찬 받았고 마을에서 최고 였으며 나중에는 왕국에 소문이 나서 교회에서 그를 데려가 교육 시켰다.
교회에는 여타 왕국에서 내노라하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하리온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기 교황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길 정도로 완벽했던 그는 어렸을 때 교회에 처음 들어와 대련 몇 판 할 때 이외에는 누구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이미 선배 성기사들과의 대련에서 다 이길 정도였다.
살아오며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게 그였다.
[내 평생 지금 것 네놈에게 만큼 모욕을 당한 적이 없다!]
하리온이 골렘을 끌도 달려오기 시작했다.
승원은 이 대화를 외부로 송출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날 죽일 셈이로군’
살아서 나간다면 하리온의 정체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걸 말한 그는 승원을 죽이려 할 게 분명했다.
‘멍청한 녀석. 필시 왕국의 도움을 받았으니 평생 그들에게 이용당하겠군.’
설마하니 그때 그 일로 저 정도로 분노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승원은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과거에 그에게 당한 고문만 생각하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은 게 하리온이었다.
[죽여주마!]
[나야말로 죽여주마!]
의외로 톨미로스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겠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하긴 기사라는 족속은 원래 저렇지.’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들은 결투에 끼어들지 않는다.
골렘 전을 결투라고 할 수 없지만 두 사람관의 원한관계를 알고 있는 이상 싸움이 끝날 때 까지 움직이지 않을 게 확실했다.
‘어차피 내가 이기면 달려 들겠지.’
필시 왕국 국왕은 톨미로스가 물러난 것을 보고 안절부절하고 있었지만 기사라는 족속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웃으며 죽는 존재였기에 국왕의 명이라 해도 자신의 명예에 흠이 간다면 따르지 않았다.
명예에 따르지 않아 사형 당하는 것은 일순간이지만 사라진 명예는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필시 왕국의 국왕은 톨미로스에게 싸우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거니와 현재 골렘전을 하는 세 사람은 외부통신을 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아앗!]
[이야아아아앗!]
골렘의 검과 검이 부딪쳤다.
톨미로스 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생명력을 소비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불필요한 행동이 불필요한 결과를 낳았군.’
하리온에게 모욕을 준 것이 나비효과가 되서 양 왕국간의 운명이 걸린 싸움에 그가 나타났다.
쾅! 쾅! 쾅! 쾅!
굳이 검끼리 부딪치려 하지 않았다.
상대 골렘을 부수려는 듯 서로의 몸을 공격했다.
보통 관절이 제일 약한 부위였기에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마력과 생명력 싸움에서 밀릴지는 몰라도!’
전투 기술에서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승원은 검으로 때리던 중에 틈을 노려 발차기를 했다.
쾅-!
체중을 이동하던 하리온은 갑자기 날아든 발차기에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승원은 그대로 골렘의 조종석을 집중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분명 골이 울릴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에 골렘에 금이 가고 있었으니 이대로 가면 승원의 승리였다.
[우랴아아아아아앗!]
폭발전이 힘이 터져 나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한지 골렘 밖으로 그 기운이 뻗어 나올 정도였다.
[미쳤군.]
승원의 말은 정확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길 정도의 힘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자 생명력을 폭발적으로 사용했고 그 기운이 골렘 밖으로 빠져 나왔다.
관객석에서 보고 있던 교황이나 다른 성기사들도 그 기운을 눈치 채고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경기가 멈춰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고대의 골렘을 수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쪽 전력을 알게 된 이상 경기가 멈추면 필시 왕국은 분명 골렘전이 아닌 병력 싸움으로 전쟁을 몰고 갈 거야.’
그렇게 되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전쟁이 벌어진다.
고대의 골렘을 고쳐서 전쟁에 나간다고 해도 수만 명의 사람을 짓밟아야 할 게 분명했다.
‘여기서 끝낸다.’
성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교황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말이 전달되고 교황이 판단을 내리는데 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실프! 운디네! 노움! 카사!’
정령은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기사가 정령을 쓰는 것은 사례가 없는 것으로 골렘전이 끝나고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다분했다.
‘실프랑 카사는 조종석으로 들어가 공격해! 노움이랑 운디네는 골렘의 움직임을 막아!’
일단 골렘에 탑승한 승원이 쓴 기술이니 말만 잘하면 잘 넘어갈게 분명했다.
결정적으로 그런 사소한 이유는 묻힐 게 분명했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오던 성기사가 왕국간의 운명을 건 싸움에 끼어 든 것 자체가 대륙 전체가 뒤집어질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쿠쿵!
하리온이 탄 골렘이 일어서 발을 내딛는데 노움이 판 구덩이에 발이 빠졌다.
동시에 관절 부분에 운디네가 들어가 움직임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조종석으로 들어간 카사가 불을 피우고 실프가 바람의 칼날을 흩뿌렸다.
[우아아아아아악!]
하리온은 갑작스런 공격에 몸에 무수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외부에서는 승원이 검을 마구 내리치고 있었다.
그는 주먹에 생명력을 가득 모아 주변을 후려쳤다.
펑!
실프가 주변을 돌다가 얻어맞아 역 소환 당했다.
조종실이 좁다보니 양손으로 휘두르는 공격을 피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화르륵!
카사가 조종실에 불을 더 크게 키웠다.
하리온은 피부가 녹아내리면서도 조종실을 열고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랴아아아아아!]
생명력의 폭발.
10년 치는 될 듯한 생명력을 사용해 조종실에 있던 카사를 날려버렸다.
[네놈 죽여주마!]
전신에 화상을 입어 과거의 모습을 잃어버린 하리온의 눈에는 광기만이 가득했다.
그는 관절이 움직이는 것을 방해하는 운디네도 폭발적인 생명력으로 날려버렸다.
[네놈 이제 10년도 못 살겠군.]
승원의 평가는 정확했다.
이제 겨우 20대에 불과한 하리온은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승원 네놈만 죽인다면 기꺼이 웃으며 죽어주마!]
[개소리!]
두 골렘의 난타전이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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