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76화 (76/197)

<-- 8층 - 저주받은 섬 -->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에 가랑을 일행에게 소개했다.

미궁 7층에서 어제 밤 8층에 왔다가 만났다는 설명을 했다.

“안녕하세요. 가랑이라고 합니다.”

가랑은 미궁을 오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다.

이름 정도만 공개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느꼈는지 길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그건 일행도 마찬가지라서 시계방향으로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마쳤다.

“소림과 화산파 분들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문파에는 엄연히 그 수준에 따라 등급이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 이름만 들어도 전 무림인이 알고 있는 문파였다.

정용신공은 삼류무술을 취합해서 만든 무공으로 소림이나 화산에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가랑이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자 그 대상이 된 정환과 지현은 무슨 일이냐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일단 여기 앉아.”

승원이 자신의 옆자리를 권하고 자리에 앉자 직접 먹을 것을 그릇에 챙겨주었다.

한 때 스승이었기에 습관처럼 나온 행동이었는데 그게 사람들이 놀라게 했다.

승원이 식사 중에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현우와 하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에요?”

하영의 말 속에 뼈를 숨기고 물었다.

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제 처음 봤습니다.”

“근데 둘 사이가 무척 살 가워 보이네요?”

“그런가요.”

승원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정환과 지현에게 각각 소림과 화산파 무공을 가르쳐 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 고민에 빠졌다.

오늘 저녁에는 예원에게 악가의 내공을 아영에게 개방의 내공을 전수해 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승원은 그 생각에 머리가 꽉 차서 하영의 말은 그냥 한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하영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7층에서 밥도 사주고 정보도 넘겨주고 재워주려고 까지 했지만 8층에 와서 따로 행동하자는 말에 내심 섭섭했는데 이해는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오피스텔에서 편히 살기 위해 매일 평범한 집주인을 매일 죽였다는 것에서 거부감을 느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을 더 챙겨주는 것에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현우도 마찬가지였는지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체력 단련을 하러 해변으로 나갔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선착순 달리기로 폐활량 단련하는 것을 보면서 가랑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과거 스승에게 무공을 배울 때 했던 방법과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승원 너는 정용신공을 배운 게 맞구나? 수련 방법이 같아.”

“그렇겠지.”

오전에 선착순 달리기로 수련을 시작하는 것은 정용신공의 오랜 수련법 중 하나였다.

‘과거에는 그렇게 높아 보였던 스승님이 겨우 이 정도 경지였구나.’

그 당시 가랑으로써는 승원이 절실히 매달려서 무공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미궁을 같이 오를 정도로 정을 주지 않았다.

승원이 그 정도 실력이 되지 않았던 것도 있고 기본적으로 가랑이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약점이 보여서 덮치긴 했지만 만약 정식으로 붙으면 어떨까.’

정용신공은 그리 대단한 무공이 아니다 보니 익힌 사람이 드물었다.

가랑이 강한 것은 가랑 자체가 강한 것이지 무공 덕분이 아니었다.

아마 다른 무공을 익혔더라면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을 게 분명했다.

“근데 말이야.”

가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저 분들이 왜 네 말에 따라 정용신공의 수련법대로 단련하고 있는 거지?”

“왜? 정용신공 방식대로 가르치면 안 돼? 비밀이려나?”

정용신공 수련법이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널리 알려진 수련 방법을 아주 조금 변형한 것에 불과 했다.

가랑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 대단한 사람들이 왜 승원의 말을 듣고 있냐는 것이었다.

“아니, 내 말은 왜 저 분들이 왜 네 말을 따르는 거야?”

“미궁 1층부터 같이 하기도 했고. 내가 더 강하니까 배우려는 거지.”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마교 인에게 어찌…….”

“너 자꾸 어제부터 마교 마교 하는데 말이야.”

승원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말해봐야 믿지도 않을 테지. 오늘 저녁에 내가 묵는 집에서 똑똑히 보라고.”

“무슨…….”

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있는 정환에게 소리쳤다.

“형! 체력 아직 여유 있잖아요. 더 빨리 달려요!”

가랑은 그런 승원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

섬의 하루가 다 지나갔다.

오전에 달리기 오후에 근육 단련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마치자 가랑은 마을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서브 퀘스트라고 해봐야 승원 일행이 이미 다 하고 있어 자신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다가 떡고물을 받아먹으면 될 듯싶었다.

‘저녁 식사 마치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더니.’

승원은 가랑에게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으니 있다가 따로 부르겠다고 하고 집으로 들어 가버렸다.

그 때문에 가랑은 섬의 지리도 익힐 겸 마을 주변을 돌고 있던 것이다.

‘어?’

그때였다.

진득한 마교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 내공과 위치로 보아 승원이 내공을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수련을 하는 건가?’

가랑은 이미 마을을 빠져 나온 터라 마교의 내공이 느껴진다고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이어 또 다른 내공이 느껴지자 마을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왜 갑자기 악가의 내공이?’

보통 무림인들은 각 문파의 내공에 따라 그 기운이 달랐다.

한번이라도 주변에서 그 기운을 느낀 무림인이라면 나중에 또 느끼게 되었을 때 어느 문파의 내공인지 알 수 있었다.

가랑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내공은 모두 느껴봤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던 것이다.

‘무림인은 그 셋인 줄 알았는데 다른 한 명이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던 건가?’

호기심에 찬 가랑이 훨훨 날 듯이 달려서 어떤 집 앞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정환이 입구에 서서 가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원이가 말하길 내공전수를 시작하면 가랑 씨께서 이곳으로 올 거라고 미리 말해줬습니다.”

“내공전수라고요?”

가랑이 믿겨지지 않는 듯 정환을 바라봤다.

지금 그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지금 제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승원 그 사람이 내공 전수를 하고 있는 게 맞죠?”

“네, 예원이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근데 왜 악가의 기운이 느껴지죠?”

“승원이 악가의 내공을 전수해준다고 했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승원이 그 사람은 정용신공과 마교의 무공을 익혔는데, 어찌…….”

정환은 가랑의 말에서 승원이 각기 다른 무공을 전수해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제 소림 무공도 승원이가 전수해 준 것 입니다만.”

“네?”

가랑이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정환을 바라봤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제 저녁에 받았습니다. 지현이는 화산파 내공을 어제 저녁에 같이 받았고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한 사람이 각기 다른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게 놀라운 이유는 그 기억력 때문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각 문파들은 자신들의 무공을 다른 문파 사람에게 전수하지 않았다.

재능이 없거나 건강을 위해 가볍게 배우러 온 사람에게는 돈을 받고 간단한 초식만 가르쳤지 내공은 절대 가르치지 않았다.

내공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문파의 사람이 되는 것으로 그 비법을 유출할 시 목숨으로 죄 값을 물었다.

이건 모든 문파의 특징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 다양한 무공을 알고 있는 거죠?”

“그건 저도 모르죠.”

정환이 어깨를 으쓱하자 가랑이 닫혀 있는 문을 바라봤다.

가랑이 들어가고 싶은 내색을 비추자 정환이 옆으로 비켜줬다.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도 돼요.”

“그래도 돼요?”

“네, 승원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해놨어요.”

지금 예원은 상의를 벗고 있다.

그 때문에 정환이 집을 나와서 기다리는 것인데 가랑은 여자였기에 상관없는 것이다.

정환이 자리를 비켜주자 가랑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에는 가부좌를 켜고 앉아 있는 승원과 예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지현과 아영이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무슨…….’

가랑은 이 기이한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미궁 8층까지 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봤었는데 걔 중에는 상당수가 자신이 살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가 살던 곳에서 온 사람들이 아닐 거야. 그러니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가랑이 살던 시대는 시대가 시대니 만큼 머리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미궁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을 설명 할 때 지구는 사실 둥글다던 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던 가 다른 차원, 평행세계 이런 어려운 말을 했었는데 어렴풋이나마 알 거 같았다.

‘혹시 그렇다면 나도 상승무공을 배울 수 있는 걸까?’

무림이되 자신이 아는 무림이 아닌 곳.

무공을 공개하고 전수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곳이라면 자신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랑은 열망 가득한 눈빛으로 내공을 전수하느라 무아지경에 빠진 승원을 빤히 바라봤다.

**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마을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고 병자들은 병상에서 일어났다.

승원 일행이 제공해주는 양질의 식사를 꾸준히 하고 위생을 청결히 했기 때문에 천천히 나은 것이다.

정환과 예원 그리고 지현과 아영 모두 스스로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고 간단한 초식까지 배워서 제법 강하게 성장했다.

그건 승원도 마찬가지라서 천마신공의 내공을 익힌 이후 미뤄오던 천마검법이나 보법 등을 수련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랑은 끝끝내 자신도 가르쳐 달라는 말을 하지 못 했는데 그 이유는 염치가 없기도 했지만 현우와 하영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승원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을 보고 말해봐야 같을 거 같아서 묻지 않은 것이다.

‘들어보니 저들은 미궁 1층에서 승원의 목숨을 구해준 이들이라고 했지.’

한 달간 제법 일행들과 많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기에 승원이 저 4명을 각별히 챙겨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현우와 하영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서브 퀘스트가 완료되자마자 미궁 8층을 떠나버렸다.

가랑 역시 자신도 떠나야 하나 싶었지만 상승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미련이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저기…….”

마을 밖을 거닐며 머리를 정리하고 있던 가랑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에 화들짝 놀라 바라봤다.

아무리 상념에 빠져 있다고 해도 누군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는 것을 놓칠 정도로 생각에 잠겨 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라셨다면 미안해요.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상대는 푸른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트리고 있는 늘씬한 미녀였다.

가랑은 바로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정승원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어디 있는 지 아시나요?”

승원이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간이라면 분명 해변가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가랑은 그것을 이 여자에게 알려줘도 될지 의문이었다.

“승원이 어디 있는 지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일로 찾는 건지요?”

“약속을 했는데 도통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서요.”

“무슨 약속이요?”

“제가 거기까지 말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상대는 엘퀘네스였다.

물의 정령왕인 그녀는 마을이 안정화 됐는데도 승원이 동굴을 찾아오지 않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가랑은 상대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승원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 위치 정보를 말해줘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당신의 정체를 모르는 이상 승원의 위치를 말해줄 수 없습니다.”

가랑의 말에 엘퀴네스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렴풋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챈 것 같으면서도 당당하게 물음에 거절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듣지 못 했군요.”

“누구죠?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은 엘퀴네스. 내가 누군지는 승원에게 들으세요. 그리고 전해주세요. 제가 동굴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 말을 끝으로 엘퀴네스가 몸을 돌려 언덕으로 걸어가 버렸다.

가랑은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해 검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체…….’

가랑은 땀으로 축축이 젖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한 번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엘퀴네스를 바라봤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