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층 - 저주받은 섬 -->
“그렇습니다. 네이아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아르미네스님께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승원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말이 되도록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빵과 와인을 꺼내서 촌장에게 건넨 것이다.
“허헉!”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마법사가 무척 희귀한 세계였다.
대륙도 아니고 동 떨어져 있는 섬에 마법사가 없다는 건 당연했다.
“이걸 댁으로 가져가셔서 소중한 분들에게 먹이세요.”
촌장은 네이아가 미쳤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자 얼떨떨해 하면서 빵과 와인을 받았다.
“지, 진정 아르미네스님의 사신이란 말입니까?”
“네.”
“저희는 신앙심을 잃고 신전을 부수기까지 했는데 어찌 아르미네스님은…….”
촌장은 감격한 듯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음식을 내려다 봤다.
승원은 근처에 있던 담요로 그 음식을 덮어주었다.
“곧 마을 사람들 전부 다 배부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촌장님께서 음식을 따로 받은 것을 알면 소동이 일어 날 테니 이렇게 숨겨서 집으로 가져가시지요.”
승원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허공에서 물건이 나타나는 기적을 보여줘서 촌장이 놀라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 선동을 통해 식량을 빼앗으려고 하거나 자연재해를 일으킨 원흉으로 몰아갈 수 있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촌장을 각별히 챙겨주는 것이다.
촌장은 자신만 음식을 받았다는 것에 고마워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돼서 음식을 빼앗길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음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같이 도둑질을 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 생겼다.
승원이 촌장만 챙겨준 것이나 촌장이 자신만 음식을 받은 것은 들키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승원이 빵을 준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냄새가 나지 않아 들킬 일이 없고 자극적인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 탈이 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네이아 님을 따라 병든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갈 겁니다. 식량을 가족들에게 전해주시고 저희가 있는 곳으로 오시지요.”
승원은 마을 회관에 병들어서 죽을 얻어먹으러 오지 못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환과 예원이 말해주긴 했지만 과거의 기억으로 미리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걸어 올 여력도 없어서 정환과 예원이 따로 챙겨줘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네이아의 안내로 마을 회관에 도착한 사람들은 문을 열자 역한 냄새가 확 풍겨오는 것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간호 인력이 없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우욱!”
지현이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을 했다.
옆을 바라보니 입구 옆에 누군가 토한 흔적이 있었는데 승원이 그걸 보자 정환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 아까 밥을 전해주러 왔다가 나랑 예원이가…….”
“오빠 그 이야기를 왜 해!”
네이아나 아영도 마찬가지였다.
냄새가 너무 역해서 안색이 좋지 않았다.
승원은 이들이 낫지 않는 이유가 영양 부족과 더불어 위생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서 창문 열고 환기부터 시키자.”
사람들은 수건으로 마스크를 쓰듯이 얼굴의 코와 입을 가리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갑자기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병자들이 눈을 뜨고 승원 일행을 바라봤다.
“아영아 저 사람이 가장 심각해 보인다. 힐링 좀 해줘.”
“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영양 부족으로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나 폐렴 혹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상태였다.
승원은 밖으로 나가 포인트를 아낌없이 써서 플라스틱 욕조를 수십 개 구입했다.
800포인트나 소모 됐지만 단순히 회관의 병든 사람들만 쓰라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깝지 않았다.
그곳에 운디네에게 부탁해 물을 채우고 카사를 통해 물을 덥혔다.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주변의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못과 망치로 틀을 세우고 담요로 그 위를 덮었다.
“정환이 형은 남자를 씻겨주고 예원이 누나랑 지현이는 사람들 좀 씻겨줘요. 네이아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와서 씻으라고 전해주시고요.”
이 곳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목욕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이 귀한 섬사람이기 때문에 샤워는커녕 물통에 수건을 적셔서 몸을 닦는 게 씻는 전부였다.
씻지 않고 위생이 좋지 않아 작은 감기에 걸려도 쉽게 낫지 않고 면역력이 떨어져 다른 합병증을 얻는 게 일상이었다.
승원은 바람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이용해 마을 회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저녁이 되자 상점 창에서 음식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풀었다.
‘여기서는 포인트를 아까워해서는 안 돼.’
승원은 예전에 이곳에 왔던 것을 회상했다.
그때는 상점 포인트를 소모해서 마을 사람들을 먹이는 것을 아까워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고 퀘스트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포인트를 아끼려고 찔끔찔끔 쓰다가 결과적으로는 더 많이 쓰게 됐다.
포인트를 확 써서 마을 사람들의 기력을 빨리 회복시키는 게 포인트 소모를 줄이는 지름길이었다.
“승원아.”
마을 사람들이 모닥불에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을 멀찍이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정환이 꼬치를 하나 가져와 승원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승원은 그것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정환이 따로 양념장을 구입해서 발라 놓은 것이라 제법 맛이 있었다.
“승원아 근데 이런 식으로 우리가 포인트를 써서 마을 사람들을 먹이는 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게 아닐까?”
“그렇죠. 포인트로 먹이는 건 마을 사람들이 기력을 회복하게 이틀 정도만 더 하면 될 거예요.”
“그 다음은?”
농업을 해야 할 종자까지 다 먹었고 목축을 할 동물도 이미 다 잡아 먹었다.
어업을 해야 회생이 가능한데 바다에 있는 소용돌이는 천재지변에 가까웠다.
승원은 과거에 어렵사리 알아 낸 해답에 관한 힌트를 주기로 했다.
“형 마을 사람들 중에 노인이 너무 적은 것 같지 않아요?”
“음?”
마을에는 촌장과 더불어 노인들이 몇몇 있었지만 전체 숫자에 비하면 너무 적었다.
“아무래도 노인들은 체력이 없으니까 식량난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죽은 걸까?”
“그럴까요?”
승원은 말없이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고기를 먹으며 즐거워 보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형, 고려장이라고 알아요?”
그때 다가오던 지현이 그 말을 듣고 아는 척을 해왔다.
“먹을 게 없을 때 늙은 부모를 산에 가져다 버리는 거?”
“응, 그게 사실은 효를 중시하는 한국에 없는 일본 문화인데 일제 강점기 때 민족 문화 말살정책을 펼치면서 일본이 고려의 문화라고 거짓으로 만들어낸 거지.”
“아, 들어봤어.”
지현이 자신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환은 앞선 대화에서 승원이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 채고 승원을 바라봤다.
“설마?”
“설마가 맞을 거야.”
이 사실은 과거에 이 섬에 왔을 때 승원은 이 섬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이 파헤치자 마을에 있는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 전 이 섬에 왔던 일본인 클라이머들이 퀘스트를 완료 시키려고 편법으로 부모를 버려서 식량난을 해결하는 방법을 마을에 퍼트린 것이다.
같은 층에 와도 퀘스트 내용은 다른 경우가 있어서 가능한 방법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이 메인 퀘스트였을 확률이 높았다.
‘그걸 말할 수는 없으니.’
승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실프가 노인들이 있는 곳을 찾았어요.”
그 말에 정환과 지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 정말이야?”
“네, 한 번 가보죠.”
이미 섬은 저녁이 찾아왔고 달빛도 약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카사를 이용해 횃불을 만들자 주변이 밝아졌다.
예원과 아영도 데리고 산으로 걸음을 옮기자 네이아가 그것을 발견하고 따라 붙었다.
마을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있어서 승원 일행이 움직이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섬이고 바다는 소용돌이 때문에 나갈 수 없어 어딘가로 떠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승원아 그게 사실이야?”
뒤늦게 설명을 들은 예원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승원에게 물었다.
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아영은 병자들을 치료해주며 친해진 네이아를 바라봤다.
“언니도 알고 있었어요?”
“그게…….”
네이아가 말을 잇지 못 했다.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마을에 내려왔다가 노인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고 굳이 캐묻지 않은 것이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진실을 알기 두려웠던 것이다.
아영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승원아 근데 젊은 마을 사람들도 다 죽어가고 있었는데 노인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정환이 걱정하는 건 버려진 노인들의 죽음이었다.
식량이 없어서 버려졌는데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가보죠.”
승원은 노인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척 잘 지내고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이걸 몰라서 메인 퀘스트 해결 하는데 몇 달이나 걸렸는데.’
과거에 승원이 그랬고 현재 일행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메인 퀘스트 소용돌이의 원인을 알아보고 해결하라는 것이 설마하니 버려진 노인들과 연관이 있으리라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여기에요.”
거대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승원은 동굴의 주인을 지금 만나는 것이 괜찮을지 고민에 잠겼다.
지금은 과거에 이곳에 찾아 왔을 때와 달리 어둠의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으며 일행에 카나가 있기 때문이다.
카나도 동굴 안에 있는 동굴 주인의 기운을 느꼈는지 놀란 기색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이런 곳에 이렇게 거대한 동굴이 있을 줄은…….”
네이아는 기본적으로 신전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했다.
마을 인근 산에 이런 커다란 동굴이 있는 줄 상상도 못 한 것이다.
“들어가죠.”
승원은 동굴의 주인이 이미 자신을 찾아 온 것을 눈치 채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일행은 모르고 있지만 무수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데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카나는 입구에 서서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일행이 있어 직접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손 짓 했다.
‘둘 사이는 상극일 테니.’
동굴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은 점점 줄어 들었다.
“이런 곳에 노인들이 버려져서 살아 있다고?”
물은커녕 먹을 것 하나 없는 곳에서 횃불도 없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승원은 계속해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갔을 까 눈앞에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승원은 이곳이 원래 동굴의 막다른 길인 것처럼 보이게 해주는 마법이 위치한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는데.’
과거 이 맘 때에는 마법을 익히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동굴의 주인이 승원 일행이 끝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마법을 풀어 놓은 것이다.
보통 마을 사람들이 부모를 버리러 오면 이곳이 막다른 길인 줄 알고 버리고 갈 것이다.
[안으로 들어오라. 정령의 사랑을 받는 존재여.]
갑자기 사람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사람들이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승원이 긴장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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