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층 - 렙틸리언 -->
머리가 눌리는 고통에 김인홍이 승원의 다리를 붙잡고 사정을 했다.
승원은 다리를 떼고 그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100kg가 넘는 육중한 몸이 한 손에 들어 올려졌다.
“커흑!”
“그간 같은 인간들 등쳐먹고 참 좋았지?”
김인홍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파악이 안 됐다.
매일 같은 하루의 반복 그 안에서 자신만 기억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애 썼지만 방법을 찾지 못 했고 통장에 모아놓은 돈을 펑펑 쓰기 시작했다.
통장에 장가갈 때 쓰려고 모아 놓은 5천만 원이 있었는데 집 사기에는 많이 부족한 돈이었지만 하루에 쓰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비싼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사다보니 점점 대담해졌고 부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다니며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은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너는 렙틸리언이야? 아니면 나처럼 시간의 굴레는 벗어난 거야?”
김인홍의 승원의 손에 매달려 버둥거리며 물었다.
전자였다면 죽은 목숨이지만 후자라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질문은 내가 한다.”
승원이 손을 풀었다.
그러자 김인홍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승원은 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건?”
김인홍이 무슨 뜻이냐는 듯 종이와 펜을 바라봤다.
“거기에 네가 지금 것 만났던 렙틸리언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을 적어.”
“그 말은 너 렙틸리언이 아니고 나처럼…….”
승원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김인홍이 입을 다물었다.
이 녀석은 인간 주제에 렙틸리언인 척 하며 도시에서 같은 인간을 도구처럼 대하는 쓰레기 였기 때문이다.
‘기억이 오래 되서 렙틸리언 출몰지역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녀석이 어떻게 렙틸리언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
렙틸리언은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자신이 아닌 일반 인간들의 통장에 돈이 1억이 넘지 않도록 조작했다.
때문에 연회비가 억이 넘는 시설을 이용하는 건 렙틸리언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김인홍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났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리다보니 그들은 김인홍이 자신과 같은 동족이라 생각한 것이다.
‘렙틸리언도 자기들끼리 겉으로만 봐서는 분간할 수가 없으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렙틸리언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마치 속옷을 모두 벗고 알몸을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말 의심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충류의 눈도 웬만해서는 확인하지 않았다.
승원이야 처음 와서 입구에서 확인한 것이지 김인홍 같은 경우 초대장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확인하지 않았다.
“……다 적었습니다.”
폭력에 겁에 질린 김인홍이 조심스레 종이를 내밀었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조악하게 남아 지도를 그려가며 자주 출몰하는 곳을 그린 것이다.
승원은 그것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그 앞에 내려놨다.
“너무 많이 몰리는 곳 말고 값 비싼 곳 말고 네 지인들이 인간들과 섞여서 즐기는 그런 곳을 적으란 말이야.”
내일 일행과 함께 렙틸리언을 사냥하러 갈 때 렙틸리언이 너무 몰리는 곳은 위험했다.
하나 둘 정도만 들리는 곳을 알아야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친구를 팔수는…….”
“친구?”
순간 승원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승원은 그대로 인홍의 손가락을 하나 잡아 분질렀다.
꺾일 수 없는 각도로 비틀린 손가락에 인홍은 찾아오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입을 틀어막을 필요도 없었다.
밖은 노래 소리로 시끄러워서 룸에서 나는 소리가 밖까지 들릴 리도 없었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고통 때문에 눈물 콧물 흘리는 인홍을 보며 승원이 아이템 창에서 단검을 하나 꺼냈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단검에 인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승원을 바라봤다.
“렙틸리언하고 어울리면서 같은 인간을 도구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친구?”
승원이 잔뜩 화가 난 척 연기했다.
마치 목에 가져다 댄 칼날을 당장이라도 그을 것처럼 보여줬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저랑 같이 어울리던 녀석들이 죽고 저만 살아남으면 다른 녀석들에게 의심을 살 수가 있어서…….”
“그럼 너도 같이 죽여줄까?”
칼날이 목의 두꺼운 지방에 살짝 파고 들었다.
칼에 베이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목을 뒤로 젖히고 있던 인홍은 따끔한 기운과 동시에 피가 목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잘못 했으니 그만…….”
승원은 목에 가져다 댔던 단검을 회수해서 탁자 위에 있던 종이를 탁탁 쳤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펜을 잡아 렙틸리언들이 자주 가는 이동경로를 적기 시작했다.
“핸드폰 줘 봐.”
겁에 질린 인홍은 서둘러 핸드폰을 건넸다.
승원은 사진첩에서 여자와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 사진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사진을 몇 장 넘기자 정상적으로 옷을 입고 남자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
골프를 치다가 셀카를 찍은 거 같았다.
“얘네 들이지?”
“네? 네…….”
잠시 후 종이가 빼곡하게 적혀졌다.
승원은 그 종이를 품에 접어 넣고 문을 가리켰다.
“이만 가지.”
“저도요?”
“그럼 내 얼굴을 본 너를 여기 두고 갈까?”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까…….”
승원이 인홍의 손가락을 다시 잡으려 하자 그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홀에서는 무대 쪽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났는지 관계자들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지…….”
인홍은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비명을 질러 도움을 받아도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하 클럽을 조용히 빠져 나왔고 을씨년스러운 공원을 걸었다.
“어디 가는 거죠? 설마 한적한 곳에 가서 저를 죽이려는 건…….”
“네놈 죽여서 나한테 무슨 득이 있다고.”
승원은 빨리 걸으라고 인홍을 등을 거칠게 밀었다.
약속한 장소인 공원 정문 쪽으로 가자 카나와 함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한명밖에 없었어? 듣기로는…….”
“두 명은 여기 있다가 붙잡힐 거 같다고 도망쳤어.”
“뭐 알아서 하겠지.”
승원이 인홍을 잡으러 온 사이 카나는 경매 상품으로 붙잡힌 여자들을 구출했다.
마왕인 카나가 스스로 나서서 구출한 것은 아니고 승원은 부탁이 있어서 여자들을 구출한 것이었다.
“누구 죽이지는 않았지?”
“응, 부탁한대로 조용히 나왔어.”
마음 같아서는 경매장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싶었다.
무기를 들지 않으면 인간보다 조금 완력이 더 강한 정도였기에 바람의 정령 하나만 풀어도 모두 살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렙틸리언을 동시에 죽이면 도시가 난리날 것이기에 조용히 빠져 나온 것이다.
‘일행도 데리고 왔으면 다 죽이고 바로 경찰하고 군인까지 죽이고 다음 층으로 가면 되지만.’
승원은 호텔에서 답답한 마음에 산책을 나온 것이었는데 설마 하니 이전에 가봤던 렙틸리언들의 경매장이 근처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보다 훨씬 빨리 미궁 7층에 도착했을 텐데, 이 녀석은 이때부터 이 짓거리를 하고 있었군.’
땀을 뻘뻘 흘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인홍은 성노예로 삼으려고 경매장에 참석한 것이다.
과거에는 관찰 스킬이 없었기에 렙틸리언을 죽이다가 만났는데 자신은 인간이라고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해서 정보를 빼내고 미끼로 사용했었다.
“김인홍이라고 했나? 네 집으로 안내 해.”
“네?”
“다시 말해줘?”
“아, 아닙니다!”
김인홍이 서둘러 앞장섰다.
승원은 카나와 그의 뒤를 따르다가 문득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한지유를 바라봤다.
관찰 스킬을 사용해봤는데 인간이었다.
“왜 다른 여자들처럼 도망가지 않았죠?”
한지유는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유추해서 승원이 마치 뱀파이어를 잡는 헌터처럼 이 괴물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나서는 헌터라는 느낌을 받았다.
“저도 한지유라고 해요. 저도 데려가주세요.”
승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곧 기억이 초기화될 텐데 데리고 가봐야 골치만 썩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한지유는 그런 승원의 표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읽었다.
“혹시 그쪽도 기억이 안 지워지나요?”
한지유의 말에 승원과 김인홍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그 반응을 보고 한지유는 두 사람 모두 자신과 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긴 괴물을 죽이는 헌터가 매일 기억이 지워 질리는 없겠지.’
한지유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표했다.
반대 김인홍은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크게 놀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조심히 행동했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늦었다.
그는 승원의 협박에 못 이겨 타워 팰리스로 이동했다.
그간 걸어오면서 대간 사정을 들은 한지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김인홍에게 물었다.
“매일 사람들 기억이 초기화되는데 어떻게 집을 자신의 것으로 했죠?”
“그거야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친구라는 단어를 썼다고 승원의 눈치를 보고는 서둘러 말을 정정했다.
“렙틸리언들에게 부탁해서 이 집을 내 것으로 만들었어.”
“그런 게 가능했군요.”
한지유는 충격을 먹었다.
매일 하루가 반복되는 줄 알았더니 그건 대부분의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일 뿐 인간을 잡아먹는 렙틸리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녀석들의 정체는 뭐죠?”
지유는 승원에게 물었다.
그들을 사냥하니까 무언가 사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도 모릅니다.”
승원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퀘스트 할달량만 채워서 떠날 곳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마찬가지였다.
“우와…….”
김인홍이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지유가 깜짝 놀라 집 안을 둘러봤다.
본인은 성실히 일하며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이 남자는 못 된 짓은 모두 골라서 하더니 대리석으로 된 100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집은 얼마나 해요?”
“몰라. 나도 받은 거라.”
지유는 자신은 존댓말을 하고 인홍은 반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경매장에서 승원에게 끌려온 이유를 알고 있던 지유는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저 사람 좀 때려도 돼요?”
지유는 주먹을 불끈 쥐고 승원을 바라봤다.
“마음대로.”
지유는 가냘 펐지만 눈치 보지 않고 김인홍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김인홍이 밀치려고 하자 승원이 한 마디 했다.
“반격하면 손모가지 잘라 버린다.”
“크헉!”
그 이후는 지유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여자의 주먹이라도 얼굴이나 명치, 성기, 급소를 맞으면 고통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잘못했어! 잘 못 했다고!”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승원은 카나를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이동했다.
“나는 내일 일행을 데리고 여기로 올 테니까 저 두 사람 잘 좀 지키고 있어.”
“응, 아빠.”
카나가 지킨다면 안심이었다.
카나 스스로도 현재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존재감을 숨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홍이나 지유 역시 카나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난 나갔다가 내일 올 테니까 그때 보자고.”
승원이 집을 나서려고 하자 한지유가 당황해서 입구로 달려왔다.
“저 남자와 여자 둘을 두고 어딜 가요?”
지유는 승원이 있기 때문에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다.
승원이 간다면 인홍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무슨 일 있으면 여기 카나한테 부탁해.”
“아니, 그게 무슨…….”
승원이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자 인홍이 주먹을 우드득 거리며 지유에게 다가왔다.
지유는 화들짝 놀라 카나 뒤로 피했다.
“크흐흐! 꼬맹이 뒤로 피한다고 나를 피할 수 있겠어?”
승원이 떠날 줄 몰랐던 인홍이 신이 나서 카나와 지유에게 접근했다.
퍽!
눈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인홍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뒤에 소파가 있지 않았다면 대리석에 머리를 박아 큰 부상을 당할 정도로 수 미터를 날아가 쓰러졌다.
“어?”
지유는 물리법칙을 벗어난 모습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카나와 인홍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