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층 - 렙틸리언 -->
“어? 내가 잘 못 찾아왔나?”
남자는 걸음을 옮겨 문에 달린 호실을 확인했다.
“어, 502호 맞는데…….”
당황한 남자가 문패와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현우는 다급한 표정으로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 뭐야?”
현우는 그대로 남자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그걸 지켜보던 아영이 발을 동동 구르며 승원의 팔을 잡아 당겼다.
“마,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매일 되살아나는 사람이야.”
“하지만…….”
아영이 다급하게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거기에는 현우가 집 주인인 남자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만두세요!”
현우가 아영과 눈을 마주쳤다.
슬퍼하는 그녀의 눈빛과 마주친 현우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털썩
남자가 죽지는 않았지만 기절해서 쓰러졌다.
현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뒤따라 들어오는 승원을 바라봤다.
“이게 여러분의 결정인가요?”
“…….”
승원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틀어 문이 열린 방 안을 바라보니 하영은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는 군요.”
“하영이도 한계를 맞은 거죠. 저도 마찬가지고…….”
현우가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아영은 혹시 그가 칼을 가지고 와서 남자를 죽이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만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서랍에서 꺼낸 밧줄이었다.
“여러분이 살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은 이렇게 묶어 놓는 것으로 대신 할게요.”
현우의 말에 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현우는 고개를 숙여 밧줄을 묶는데 집중했다.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영이 반박하려 하자 승원이 손을 들어 막았다.
굳이 그와 논쟁을 펼쳐 얻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나가서 이야기 하자.”
승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옥상으로 가는 걸음을 옮겼다.
**
미궁 7층의 도시는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였다.
거기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있는 가 하면 돈이 없어 가파른 언덕 위에 다 무너져 가는 판자 집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가장 낡은 집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가 둘이 살고 있었는데 여자 아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빠 나 너무 배고파.”
“학교에서 점심 많이 안 먹었어?”
“먹었는데도 배고파.”
두 아이는 소년소녀가장이었다.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이 다 무너져 가는 판자촌의 월세와 생활비로 빠듯했기 때문에 매일 3끼를 챙겨 먹지 못 하는 날도 있었다.
“기다려 봐. 내가 먹을 것 좀 구해올게.”
13살로 여동생보다 2살 더 많은 김진한은 공부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동생 김하늘은 오빠가 지갑을 들고 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오빠 지갑!”
“어차피 지갑에는 돈이…….”
진한은 지갑에 돈이 없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돈도 없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다고 하면 동생이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른 갔다 올게.”
“응! 오빠!”
2살 차이임에도 동생 하늘이 때 묻지 않게 순수한 것은 오빠인 진한의 덕이 컸다.
혹시나 가난하다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까봐 본인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쓰레기장을 뒤져 다 떨어져 가는 옷을 입을 지언 정 동생에게는 새 것을 사주기 때문이다.
‘어쩌지. 저번에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다가 주인에게 걸려서 몽둥이로 맞을 뻔 했는데.’
그 이후 텃밭에는 CCTV가 생겼다.
저녁에 몰래 가봤더니 움직임까지 감지하는 적외선 카메라인지 진한의 움직임에 맞춰 따라 움직였다.
‘쳇, 취미로 가꾸는 거면서.’
진한은 애꿎은 돌을 발로 찼다.
‘주민 센터에 가서 또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어차피 저녁이라 지금 가봐야 소용도 없지만 낮에 갔어도 마찬가지였다.
주민 센터에 가서 얻을 수 있는 쌀과 라면도 이미 받아 버려서 또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배를 곯아 죽을 정도라면 가서 바닥을 구르며 억지를 부려 받을 수 있었지만 몸이 가난할 지언 정 마음까지 가난하고 싶지 않은 게 진한의 생각이었다.
‘할 수 없나?’
진한이 향한 곳은 언덕 아래의 편의점.
이 시간대에 일하는 남자는 뚱뚱하고 무기력한 남자로 손님이 들어와도 쳐다도 보지 않고 입으로만 인사하며 핸드폰을 보는 남자였다.
들어가서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는 척 하면서 주머니에 음식을 살짝 집어넣고 ‘아, 먹을 만한 게 없네.’라고 중얼 거리며 나가면 그만이었다.
진한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이면서 동생이 좋아할만한 것을 고르려고 음식들을 살폈다.
‘이거면 되겠다.’
초콜릿 바를 2개 골랐다.
동생을 하나 주고 자신이 하나 먹으려는 것이다.
슬쩍 눈동자를 돌려 알바 생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보고 사각지대로 들어가 서둘러 초콜릿 바 2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무척 떨리고 긴장되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게 넣을 수 있었다.
죄책감과 더불어 성공했다는 쾌감도 들었다.
“아, 먹을 만한 게 없네.”
진한은 알바 생이 들으라는 듯 옆을 지나가며 문 밖을 나가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갑자기 알바 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계산대를 나와 진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잠깐.”
어깨를 붙잡혔다.
돼지 같은 남자는 매일 앉아 있어서 몰랐는데 서 있는 것을 보니 키가 180cm가 넘는지 어마어마한 거구였다.
몸무게는 100kg가 넘는 거 같았다.
‘난 죽었다.’
남자가 진한의 주머니를 뒤져 초콜릿 바 2개를 발견했다.
무표정한 얼굴이라 감정을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는 어떻게 될지 눈에 보듯 뻔히 예상됐다.
“그, 그니까 저는…….”
귀싸대기가 날아올 거라 생각했다.
진한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따라 와라.”
남자는 진한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끌려가지 않으려 했지만 성인 남자의 힘은 대단했다.
진한은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며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안으로 데리고 가서 두들겨 패려는 건가?’
필사적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 한다고 때릴 것을 안 때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리 심하게 얻어맞고 경찰에 신고하면 병원비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때였다.
남자는 선반에서 편의점 도시락 3개와 삼각 김밥 5개를 꺼내 진한에게 건넸다.
“이거 2시간 후면 폐기되는 건데 너한테 주마.”
“네?”
진한은 지금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원래 이렇게 주다 걸리면 본사에 크게 혼나는데 뭐 크게 재수 없지 않는 이상 걸리지 않겠지. 다음부터는 12시 넘어서 와라. 네 것을 빼 놓을게.”
남자가 받으라는 듯 도시락과 김밥을 건넸다.
진한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 손을 뻗어 음식들을 받았다.
“저는 훔치다 걸렸는데…….”
언제나 무표정하던 알바 생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여줬다.
“딱 보면 재미삼아 훔치는 지 배고파서 훔치는 지 알 수 있단다. 넌 후자에 속하는 거 같아서 주는 거야. 혹시 재미삼아 훔치는 거였니?”
진한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굽혔던 허리를 폈다.
“자주 와서 알겠지만 나는 평일 저녁에만 일한단다. 주말에는 사장님이 와서 일해. 그러니까 평일 저녁에만 찾아와야 한다. 알겠지?”
“……네.”
진한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와 두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뚱뚱하고 무기력해 보인다며 속으로 욕해오던 자신의 나날이 생각났다.
욕해야 할 건 외모가 떨어지는 알바 생이 아닌 자신의 더러운 속마음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가보렴.”
진한은 서둘러 편의점을 뛰쳐나왔다.
근처 공원에 있는 놀이터에 가서는 음식을 내려놓고 펑펑 울었다.
몸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말자는 말을 매일 같이 되세 겼는데 어느새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잔뜩 가난해져 있던 것이다.
“흐어어엉.”
부끄러웠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봤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달래줄까 아니면 절도를 했다고 따끔하게 혼내줄까?
아마도 부모님은 그 무엇보다 알바 생을 욕하던 자신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그 부분에 대해 꾸짖을 게 틀림없었다.
“저기…….”
갑자기 앞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진한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무척 귀엽게 생긴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니?”
그녀의 뒤에서 다른 여자 2명과 남자 2명이 서 있었다.
다들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녀였다.
진한은 언제부터 그들이 여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울음소리를 다 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큭!”
진한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거 같아서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아! 도시락이랑 김밥!’
도시락이랑 김밥이 생각난 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였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골목 계단으로 아까 놀이터에서 봤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얘! 이거 네 거 아니니?”
여자의 손에 들려 있는건 도시락과 김밥이었다.
진한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다가가서 받았다.
“이거 주시려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예요?”
“응? 으응.”
여자가 베시시 웃었다.
무척 예쁜 누나였다.
“감사합니다.”
진한이 머리 숙여 감사했다.
평상시는 욕할 사람이 가득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진한이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갑자기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잠깐만.”
“네?”
진한이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여자가 쉽사리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난처한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진한의 물음에 여자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얘, 너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
다른 사람이 물어봤다면 부모님하고 같이 산다고 대답했을 거였다.
동생과 단 둘이 산다고 하면 만만하게 보고 해꼬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한은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뇨. 동생이랑 단 둘이 살아요.”
그 말에 여자가 얼굴에 화색이 돌아 뒤를 돌아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진한을 바라본 여자는 자신을 소개했다.
“난 아영이라고 해. 오아영.”
갑작스런 자기소개에 당황했지만 진한은 예의를 차려 대답했다.
“저는 김진한이라고 해요.”
“숙박료를 줄 테니까 혹시 우리 좀 재워주면 안 되니?”
“네?”
“우리가 잘 때가 없어서.”
아영의 말에 진한이 눈을 꿈뻑꿈뻑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돈이 있는데 이런 판자 집에서 재워 달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영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덧붙였다.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숙박업소에 갈 수가 없거든.”
진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영과 그 동료들을 쳐다봤다.
범죄자라면 동생과 같은 지붕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 우리 이상한 사람 아니야. 그렇지?”
아영의 동의를 구한다는 듯 동료들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질문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줄 건데요?”
진한은 자신의 손에 들린 도시락과 김밥을 내려다 봤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보였고 자신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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