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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의 회귀자-49화 (4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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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의 외침에도 승원은 순간 자신의 판단력을 후회하고 있었다.

멀리 떠난 실프가 아니라 운디네나 노움을 사용했으면 화살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젠장, 그때 실프를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실프가 정찰도 하고 공격 능력도 좋았기 때문에 실프만 사용하던 게 버릇이 되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 미친놈은 왜 하늘을 나는 주제에 뒤늦게 나타나서 자살 공격을…….’

승원은 자살 공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자살 공격이 아니었다.

십여 미터 위 상공해서 화살 비를 내리는 공격을 해도 미궁 5층에서 반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공격하고 조금 거리를 둔 곳에 착지하고 숨어서 마력을 회복하면 경쟁자를 빠르게 줄일 수 있었다.

“오빠!”

아영이 다시 한 번 외치자 승원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한호와 경호 둘 다 죽어가고 있었다.

“뭐해? 빨리 치료해!”

“저 둘 중 한명만 살릴 수 있을 거 같다고요!”

아영이 다급한 마음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다.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승원의 눈동자가 흔들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

경호는 목에 화살이 관통당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한호는 등에 수십 발을 맞고 기절해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다.

“제, 제발 한호 좀 살려주세요!”

효진이 눈물 콧물 흘리며 애원했다.

효진과 한호는 미궁에 오기 전부터 애인사이였고 5층까지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헤쳐 나왔다.

이번 층에 와서 미궁을 오르는 것을 포기 하냐 안 하냐로 몇 번 말다툼 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두 사람이 사랑하는 감정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화살비가 떨어지자 생각할 것도 없이 등을 돌려 효진을 감싸 안은 것은 한호였다.

“경호 얘 숨도 못 쉬어!”

“아영아 빨리!”

예원도 지현은 쓰러진 경호의 상태를 보고 울먹였다.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승원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경호부터 치료해!”

서둘러 다가가 경호의 화살을 잘라내고 상처에서 뽑아냈다.

혈맥을 건드렸는지 피가 분수처럼 나왔지만 그 피를 얼굴로 받아내면서도 아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힐링을 사용하는데 집중했다.

“제발 우리 한호 좀 살려주세요!”

효진이 아영에게 손을 뻗자 정환이 그 손목을 잡아 막았다.

아영이 힐링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기다리면 죽는다고요!”

한호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효진이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어?”

순간 경호가 아영의 손목을 잡았다.

고통스러워서 잡은 건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본인은 숨도 제대로 쉬자 못하면서 아영의 손을 끌고 한호에게 잡아 끌었다.

“경호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지현이 화를 냈지만 경호는 힐링이 쏟아져 나오는 아영의 손을 계속해서 한호의 등에 비추게 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환에게 손을 제압당하고 바닥에 얼굴을 박고 울부짖던 효진이 아영의 치료에 거듭 감사인사를 표했다.

그녀에게는 지금 경호가 자신의 목숨을 양보하고 있다는 게 보이지 않았다.

“경호야!”

정환이 화를 내며 아영의 손을 잡은 경호의 손을 풀려고 했지만 승원이 한호에게 다가가 서둘러 등에 박혀 있는 화살을 뽑았다.

화살이 박힌 상태로 힐링이 들어가면 화살촉이 살 안에 있는 상태에서 살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겨, 경호야…….”

예원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경호가 자신은 죽더라도 한호를 살리고 싶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한호의 등에 힐링을 쓰고 있는 아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승원은 묵묵하게 등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집중해. 경호가 결정한 일이야.”

“하지만…….”

아영의 손목을 잡은 경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한호의 치료에 집중해달라는 뜻 같았다.

‘제길.’

승원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3서클 마법까지 익혔지만 마법 중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마법은 없었다.

신성계열 스킬만이 치료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아…….”

아영의 손목을 잡은 경호의 손이 풀어졌다.

과다출혈에 숨을 쉬지 못 한 탓에 쓰러진 것이다.

정환은 빠르게 다가가 맥을 확인했다.

“…….”

정환이 승원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죽었다는 뜻이다.

승원은 파티 창의 숫자가 하나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 이미 알아차렸다.

“어떻게 해…….”

지현과 예원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영은 눈물이 터져 나오면서도 꿋꿋이 한호의 치료에 집중했다.

“……죄송합니다.”

한호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효진은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곧 치료는 끝이 났다.

**

10명을 모두 살려 목적지에 도착해 유니크 스킬을 받겠다는 승원의 당초 계획은 이제 아무려면 상관없어졌다.

그 서브 퀘스트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승원은 충격을 받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순간의 판단 실수로 경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한호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깨어나서 감사 인사와 동시에 사과를 했다.

경호가 자신의 목숨을 양보했다는 이야기를 효진이 해줬기 때문이다.

“왜…….”

지현은 왜 경호가 자신의 목숨을 양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층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원도 팀 내에서 장난꾸러기 였던 막내의 죽음에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정환은 팀 내에서 가장 친한 게 경호였다.

승원은 동생임에도 워낙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 탓에 조심스러운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경호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동안 영훈과 카나는 그 뒤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노움 무덤을…….”

경호의 팔목에는 미궁3층에서 홉 고블린을 잡고 받은 청각을 높여주는 마법 팔찌가 있었지만 그걸 굳이 빼지 않고 사체와 함께 묻어 버렸다.

무덤이 봉긋하게 올라오자 승원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이들에게 큰 정을 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탑을 올랐나? 좀 더 천천히 올랐으면…….’

운디네나 노움으로 막을 수도 있었지만 무술 수련의 경지가 세 단계 위로 올라가면 주변에 마력의 방어막을 칠 수 있을 터였다.

마력 소모는 클 테지만 그깟 화살 따위 막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실드 마법이 있었잖아.’

물론 승원은 1단계 실드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지만 주문을 외우시는 시간이 10초 정도 걸렸다.

애초에 갑자기 나타나 화살 비를 내리는 적을 상대로 실드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었고 승원은 검술에 의존하는 전투 스타일 때문에 마법은 일상생활에서나 드물게 사용했지 전투에 섞어 쓰지 않았다.

무술에 쓰이는 마력의 통로와 마법에 쓰이는 마력의 통로가 달랐기 때문이다.

승원은 그저 자신을 자책하느라 자신에게 불가능했던 것 까지 떠올리며 자신을 채찍질 했다.

“저기, 우리 안 가요?”

영훈의 말에 정환이 그를 노려 놨다.

“저기, 저 멀리 2팀 정도 지나가던데.”

다른 사람들은 경호의 무덤을 보며 슬퍼하느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 먼저 갑니다. 늦게 도착해서 죽고 싶지 않거든요.”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영훈은 뻘쭘함에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는 혼자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경호를 애도하는 것이 멈춘 것은 2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그만 가자.”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승원이었다.

언제까지고 슬퍼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탑을 오르며 죽은 동료는 수도 없이 있었다.

단지 오랜만에 동료가 죽어서 그 충격이 있었던 것이다.

“흑…….”

아영과 지현 그리고 예원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정환은 침통한 표정이었고 한호과 효진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8명의 사람들이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카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덤을 한 번 보더니 일행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산의 정상에 올랐다.

빛의 기둥 앞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근처에 도달하기 전부터 병장기가 부딪치며 폭발음이 여러 차례 들려와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알고 있었다.

승원 일행이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는 피 웅덩이가 가득하고 시체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아아, 왔어요?”

그곳에는 영훈이 두 다리가 잘린 체 고통스러워 하며 승원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그렇게 영훈을 만든 사람은 여자 4명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빛의 기둥을 뒤에 두고 다가오는 사람을 죽이고 있던 것이다.

“이 애 그쪽 파티에서 나왔다고 해서 공격했어요. 죽이려고 했는데 안 죽네요?”

겨울의 말에 승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죽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신들보다 빨리 도착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여자 4명이 앞질러 간 속도에 비해 시체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 이거 우리가 다 죽인 거 아니에요. 시체 9할은 저기 저 바위 뒤에 숨어서 목적지에 다 왔다고 방심하던 사람을 죽이는 녀석들이 있었거든요. 우리한테 죽었지만요.”

영훈은 다리를 간신히 재생시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 중 한명이 승원의 실프처럼 보이지 않는 칼날을 날려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몸이 썰린 것이다.

“이 중에 2팀은 너희가 죽였잖아.”

영훈의 말에 가을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9할은 다른 애들이 죽였다고 했잖아.”

“…….”

영훈은 자신의 단검을 내려다 봤다.

보이지 않는 원거리 공격을 막아내려다가 잘려나가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저 다시 받아주나요?”

영훈이 슬금슬금 승원 일행 쪽으로 다가갔다.

승원은 쳐 다도 보지 않았다.

“거기서 막아선다는 것은 우리와 싸우려는 걸로 봐도 되겠지?”

승원이 투기를 끌어 올렸다.

안 그래도 경호의 죽음으로 기분이 우울했는데 피터지게 싸우고 그 기분을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여름은 두 손을 들었다.

“아뇨. 싸울 생각 없어요. 들어가세요.”

승원이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봤다.

“그쪽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을 막아선 것 뿐. 그쪽은 막지 않습니다.”

“아까 잘도 연기를 했군. 우리한테 바라는 게 뭐지?”

승원은 시체들을 훑어봤다.

워낙 시체가 많아 어떤 시체가 저들이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공격하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글쎄요. 저도 궁금하네요. 겨울아 바라는 게 뭐야?”

여름이 겨울을 바라보며 대답을 미루었다.

“잠깐, 겨울이라고?”

승원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겨울이라 불린 여성을 바라봤다.

과거 미궁을 오를 때 전설 같이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스킬을 1,000개 가지고 수백 명의 클라이머들을 도륙하는 마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름이 겨울이었다.

“나를 알아요?”

겨울이 반문했다.

자신들을 만났던 사람들은 살려 보낸 적이 없어서 소문이 날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너희는 봄, 여름, 가을인가?”

“어라? 어떻게 알았지?”

여름이 당황한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4명의 마녀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광 집단으로 유명세를 탔었다.

미궁 64층에서 클라이머들이 200명도 넘게 모여서 함정을 파고 기습 공격한 덕에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승원은 뒤늦게 탑을 오른 탓에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것이다.

“우린 그쪽과 싸울 생각이 없어요. 탑을 같이 올라가지 않겠어요?”

겨울의 파격 선언에 여름뿐만 아니라 승원도 놀라서 바라봤다.

하지만 대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아니, 넌 여기서 죽어야 돼.”

승원은 검에 검기를 불어넣고 4대 정령을 소환했다.

거기에 시간이 오래 걸려 지금 것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 주문을 낮게 읊조리며 스스로에게 걸기 시작했다.

전문 힐러나 버퍼가 걸어주는 버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천하의 겨울이라면 아직 미궁5층이라 성장 중인 괴물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라?”

승원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낀 사람은 단 3명이었다.

가을, 겨울 그리고 카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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