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층 - 선착순 -->
‘오늘 대체 몇 팀의 클라이머 들을 만나는 건지.’
미궁을 오르는 이들을 클라이머라고 불렀다.
승원은 지금까지 미궁을 오르며 만난 클라이머들 보다 오늘 하루 만난 클라이머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리나라고 합니다.”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해왔다.
여유로운 미소.
그게 자신의 강한 힘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숫자적 우위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승원입니다.”
상대가 소개했으니 승원도 받아줬다.
리나라 소개한 여자는 저 멀리 보이는 빛의 기둥을 손으로 가리켰다.
“목적지도 같은데 같이 가시죠. 사람이 많으면 위험이 더 줄지 않겠어요?”
승원은 얼마 전 죽었던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자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지금 만난 그룹이 딱 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다른 경우도 생각해봐야 했다.
바로 죽은 남자가 나쁜 놈일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가는 게 편합니다.”
승원은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상대는 12명 게다가 여자들이었다.
살인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기에 가능하다면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그건 힘들겠네요. 당신들은 반드시 우리랑 같이 가야해요.”
“왜요?”
리나는 승원이 당황해하는 표정이 나올 것을 예상했지만 그는 당당했다.
“이렇게 하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임시 동맹을 맺고 도착하면 우리가 먼저 들어가고 그 다음에 여러분이 들어가는 겁니다.”
승원은 리나의 일행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12명이 모두 손발을 맞춰오던 일행이 아님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 그런 거였군.’
승원은 자신의 짐작을 확신하고 이야기 했다.
“그 말인 즉, 우리가 합쳐 가다가 또 다른 일행을 만나면 또 합치고 그쪽이 먼저 그 다음이 우리 새로운 그룹이 그 다음이 되겠군요.”
“오, 이해가 빠르네요.”
리나가 활짝 웃었다.
다단계 같은 전법으로 먼저 시작한 사람이 우위를 점하며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다.
뒤늦게 들어오는 그룹은 앞선 그룹의 숫자 때문에 거절하지도 못하고 울며 들어올 판이었다.
“동료들하고 이야기 좀 해봐야 할 거 같군요.”
“네, 그렇지만 오래는 못 기다려줘요. 갈 길이 바쁘잖아요.”
“그러죠.”
일행 모두 대화를 듣고 있었다.
때문에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정환은 여자들을 바라봤다.
전부 다는 아니었지만 몇몇은 강한자만이 보이는 특유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나쁜 제의는 아닌 거 같은데, 어차피 우리는 선두권에 있으니까 만나는 그룹도 한정도 있고 저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서 들어가도 안정권일 거 같은데.”
예원은 반대였다.
“오빠 그건 인원제한이 넉넉하다는 가정 하에 하는 말이잖아요. 만약 같이 도착해서 저 사람들이 먼저 들어갔는데 정원이 다 차면 어떻게 해요?”
지현도 최악의수를 생각했다.
“목적지 앞에서 단체로 칼부림 날 수도 있겠는데?”
“음, 다른 사람들은?”
승원은 아직 대답하지 않은 경호나 한호 그리고 효진을 바라봤다.
경호가 먼저 대답했다.
“형, 근데 지금 저 12명도 이미 저런 식으로 합쳐진 그룹이겠지요?”
“그런 거 같아. 파티 최대 인원이 10명인데다가 그룹 전체가 오랜 기간 유대관계를 쌓아온 거 같은 느낌이 아니야.”
“전 안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러면 아무래도 전투가 벌어지겠죠?”
“글쎄, 어차피 저쪽이나 우리나 숫자는 12명 대 10명으로 비등비등해. 우리가 거절해도 쉽사리 덤벼들지 못 할걸?”
“네? 우리 9명이잖아요.”
승원이 팀을 돌아봤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정환, 경호, 지현, 아영, 예원, 한호, 효진, 영훈, 카나 총 10명이었다.
‘아…….’
카나가 경호 바로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었음에도 그는 카나의 존재를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 그래 9명이나 10명이나. 아무튼 한호 씨랑 효진 씨는?”
“저는 같이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저는 따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한호와 효진이 반대되는 의견을 말해왔다.
“굳이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 없잖아.”
“그보다 아까 그 남자가 저 사람들한테 죽은 건지 그리고 왜 죽인건지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제야 한호가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에 승원을 바라봤다.
“근데 괜히 긁어 부스럼일 수도 있는데.”
“뭐, 일단 물어는 보죠.”
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리나에게 다가갔다.
“혹시 저쪽에 남자 한명 배에 구멍이 뚫려 죽었는데 그쪽 그룹이 죽인 건가요?”
“입에 밧줄 물고 있던 남자요?”
“네? 그렇습니다만…….”
“우리가 한 거 아니네요.”
승원은 황당하다는 듯 리나를 바라봤다.
자신들이 한 일이다 아니면 모르는 일이다 둘 중 하나일 줄 알았지 설마하니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한 일이 아니라면 구해주지 않은 이유는요?”
“위험하잖아요. 다가가서 도와주다가 통나무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네, 알겠습니다.”
승원은 일행에게 돌아갔다.
“그렇다는 군. 저쪽도 인내심이 거의 다다른 거 같으니 빠르게 투표하지. 저 사람들과 같이 가자 손 들고 같이 가기 싫다 손 들지 마.”
정환하고 효진만 손을 들었을 뿐 경호, 지현, 아영, 예원, 한호 모두 손을 들지 않았다.
카나는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알겠어. 말하고 올 테니까 다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그에 지현이 서둘러 승원의 팔목을 잡았다.
“네가 생각하기에 어때? 싸움 날 거 같아?”
“반반?”
“싸울 바에는 그냥 따라가는 게…….”
승원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지현의 손을 부드럽게 풀어냈다.
“먼저 겁먹는 쪽이 지는 거야. 싸우기 싫은 건 저쪽도 마찬가지라는 걸 생각해야 해.”
“……그래.”
승원은 리나에게 다가갔다.
그녀와 동료들은 당연히 승낙할 거 라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승원은 정해진 사실을 통보했다.
“우리 쪽은 따로 가기로 합의 봤습니다.”
“뭐라고요?”
리나가 잘 못 들었다는 듯 승원을 바라보며 이마를 찡그렸다.
“우린 그냥 이대로 따로 가겠다고요.”
리나의 손이 허리춤에 달린 검의 손잡이로 올라갔다.
승원의 기색을 살폈는데 눈이 따라오기만 할 뿐 여유 있는 표정으로 두 손을 늘여 뜨려 놓고 있었다.
‘뭐지?’
협상이 틀어졌으니 일단 리더의 목을 베고 기선 제압을 해서 나머지의 반응을 보고 덤벼들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 나중에 뒤통수 칠 거 같으면 다 죽이고 별다른 유대감을 갖고 있지 않은 사이라면 흡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리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감 스킬이 경고를 해오고 있었다.
이대로 검을 뽑으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스킬 덕분에 목숨을 살린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자신이 무언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상대에게 선택권을 준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상대가 우위를 점하고 선택권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가, 가세요.”
“뭐라고?”
“그냥 가라고요.”
승원은 리나의 겁먹은 표정을 보고 씩 웃으며 등을 돌렸다.
마력을 이용해 살기를 리나 한명에게 보냈을 뿐인데 그 반응이 바로 나타난 것이다.
“언니? 쟤들 그냥 보내게요?”
“언니, 쟤들을 그냥 보내면 우리 그룹에 들어온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동생들은 흡수하지 못한다면 전투라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리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니, 저 남자와는 싸우지 않아.”
리나는 그제야 자신의 등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저녁 내내 이동이 계속 됐다.
횃불을 몇 개나 번갈아가며 갈아 치운지 셀 수도 없었다.
숲은 동이 터서 밝아졌고 한호는 함정을 발견해내는 것이 더 수월해졌다.
“한 시간 이상 함정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이제 없는 거 같군요.”
한호는 허리가 아픈지 일어서서 기지개를 폈다.
바닥에 허리를 바짝 숙이고 함정을 찾느라 허리 디스크가 올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고생했어요. 그래도 너무 방심하지 말고 걸으면서 계속 확인 부탁할게요.”
“네, 물론이죠.”
한호 입장에서 승원은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지만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어느 면에서도 동생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승원이 일행을 이끌기 때문에 더 성숙해 보이는 면이 있었지만 한호는 그에게서 더 특별한 면을 느끼고 있었다.
‘강하고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아.’
수 시간 전 승원의 자리가 자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니 그가 단순히 동생이 아니라 든든한 대장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저 애를 따라간다면…….’
한호는 효진이 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됐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자신보다 먼저 승원의 그런 면을 발견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저, 저기…….”
다들 잔뜩 지친 상태에서 말없이 이동을 하던 중에 아영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볼일 좀…….”
“아, 나도.”
“같이 보자.”
아영의 말에 지현이냐 예원도 같이 가자고 했다.
효진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멀리 가지 마.”
“네.”
말은 그렇게 해도 여자들 성격상 부끄러워서 제법 거리를 벌릴 터였다.
승원은 실프를 보내 여자들을 보호하게 했다.
“카나 이리 와.”
승원은 앉아서 쉬고 있는 남자들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카나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고 잡아 끌었다.
카나는 순순히 따라 왔는데 경호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을 걸어왔다.
“형, 볼일 보러 가면 같이 가요.”
“아니, 근처 좀 둘러보러 가는 거야.”
역시나 경호나 정환, 한호는 옆에 있는 카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승원은 그들과 적당히 거리를 벌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가 돼서야 카나의 손목을 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너 내 말 알아들을 수 있지?”
“응.”
카나는 어느덧 유치원 정도 갈 정도로 커 있었다.
아무런 짐도 없다지만 밤새 이동하는 데 어렵지 않게 따라왔다.
오히려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지운 상태에서 따라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너 정체가 뭐야?”
“나 아빠 딸. 카나.”
카나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넌 세영이 누나가 낳은 자식이야. 아빠는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야.”
카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승원은 이렇게 심문할 기회가 언제 올지 몰랐기에 계속해서 몰아 붙였다.
“마나를 감춘 거 그리고 존재감을 감추는 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할 만한 게 아니야. 너 정체가 대체 뭐야?”
카나는 대답 대신에 손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엄마 위험해.”
“바람의 정령을 보내놨어. 말 돌리지 말고…….”
“땅 속으로 다가 와.”
승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노움을 보냈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설마하니 카나가 느낄 까 싶었다.
‘어?’
커다랗고 빠른 무언가가 여자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분명 땅 밑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노움 공격해!’
승원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여자들이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쉬고 있던 정환, 경호, 한호는 무슨 일인 가 싶어 승원을 바라봤다.
“여자들이 위험해!”
승원이 바람같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아들은 세 사람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저녁에 만났던 여자들? 걔네는 아니야.’
달리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여자들과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여자들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나 반대편에서 승원이 달려오는 것 전부 모르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콰르릉
갑자기 천지가 개벽하듯 땅이 울리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땅 밑에서 올라왔다.
승원은 그것을 보자마자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