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층 - 선착순 -->
라나의 마나서클이 회전하며 마법을 발현하기 직전의 상태가 됐을 때 목에 차가운 칼날이 느껴졌다.
“…….”
승원은 멀찍이 떨어져 검을 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느껴지긴 했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건?”
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나의 목을 압박하고 있는 실프가 만든 바람의 칼날이었다.
“……항복할게요.”
라나는 손에든 지팡이를 떨어트리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마나서클도 회전을 멈추었다.
승원은 그녀가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시도라도 해봤다고 해야 스승님이 화를 내지 않겠죠.”
“…….”
스승님이 올 때까지 붙잡아 두려고 했는데 목에 칼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보냈다고 하면 스승도 화를 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근데 방금 보석을 허공에서 꺼내지 않았어요? 그거 설마 고대 마법인 아 공간 주머니에요?”
“뭐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죠.”
두 사람은 티격태격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로 돌아왔다.
승원은 일행에게 대화가 잘 끝났음을 알렸고 지현은 훌쩍이며 카나를 라나에게 넘겼다.
“난 촌장님하고 카린에게 말하고 올게. 장비 챙기고 있어.”
뜻 밖에 마지막 퀘스트가 바로 완료되자 일행은 바로 떠나기로 했다.
촌장과 카린은 승원이 떠난다는 말에 깜짝 놀라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며칠 더 있다 가시면 안돼요? 은혜도 다 갚지 못 했는데…….”
카린의 말에 촌장도 아쉬워 헀다.
마을의 은인들인데 좋은 음식이라도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고 보내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옆 마을에서 돈이라도 빌려서 축제라도 열게 이틀만이라도 더 있다 가시지요.”
“아닙니다. 정 들면 더 떠나기 어려운 법이시요.”
승원은 상점 창에서 보석을 몇 개 사서 카린에게 쥐어줬다.
그녀가 놀라서 이게 뭐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벼를 수확하는 건 아직 멀었고 야채도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살 게 있어야죠.”
카린 뿐만 아니라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과 같은 신의 대리인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에 승원 일행은 모두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들은 라나의 품에 안긴 카나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지 못 했다.
“그만 가죠.”
승원이 빛의 기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
빛의 기둥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승원은 무언가 떠오른 듯 멈춰 섰다.
“참, 우리 존재를 잘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승원이 라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자질쟁이가 있었거든요.”
“고자질쟁이?”
라나가 말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새하애졌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비밀을 지켜줄까 했는데 당신 입장에서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저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은 싫어하거든요.”
라나의 말에 말로가 반박하지 못 했다.
그러자 마을 분위기가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당장 농기구로 때려죽일 것 같은 흉흉함이 맴돌았다.
“이 놈이!”
말로의 아버지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자신의 아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것임을 직감하고 제일 앞장서서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악! 아버지 아파요!”
“이놈이 감히!”
말로의 아버지는 일반 건장한 남성보다 덩치가 컸다.
그런 그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온힘을 다해 때렸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때려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악! 제발 그만!”
말로는 아버지에게 사정없이 맞아가며 카린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분노를 넘어 경멸의 시선이었다.
“아…….”
말로는 직감했다.
이번 삶에서는 그녀와 결혼은 불가능하리란 것을.
“그럼 이만.”
말로는 이미 마을의 불구대천 원수가 되 버렸다.
승원은 직접 처벌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벅저벅
승원이 빛의 기둥으로 들어가며 사라져버렸다.
라나와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빛의 기둥이 보이지 않았기에 아무 징조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마나의 움직임도 없이 사라져?’
라나는 승원에 이어 다른 일행들도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였다.
“아부!”
자신이 안고 있던 카나가 몸부림치더니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갔다.
라나가 서둘러 붙잡으려 했지만 늦었다.
카나는 빛의 기둥으로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대체…….”
라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한동안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봐야만 했다.
**
[미궁 5층에 진입했습니다.]
[진입 보상 5,000포인트를 드립니다.]
[메인 퀘스트가 생성 됩니다.]
[서브 퀘스트가 생성 됩니다.]
미궁 5층에 진입과 동시에 메시지창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은 숲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 뭐야?”
정환이 당황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성별, 나이, 인종이 모두 달라보였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두 미궁을 오르는 이들로 보였다.
“형! 퀘스트가!”
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서둘러 퀘스트 창을 열었다.
[메인 퀘스트]
□ 빛의 기둥까지 선착순 도착(보상 : 6,000포인트)
설명 : 제한인원 내에 들어오지 못할 시 사망한다. 시작 지점을 벗어나면 아이템 창이 열리지 않으며 미궁 5층을 벗어나기 전까지 상점 창을 사용할 수 없다.
[서브 퀘스트]
□ 파티를 맺어라(보상 : 능력치 상승)
설명 : 스타트 지점에서만 파티를 맺을 수 있다. 최대 인원은 10명. 한 번 맺으면 미궁 5층에서는 죽기 전에 풀 수 없다.
□ 파티 전원 생존하여 도착(보상 : 스킬)
설명 : 도착지까지 파티 내 생존 인원이 많을수록 고 등급 스킬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 한 예원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죽음의 레이스이자 죽음의 게임이었다.
저 멀리 지평선 부근에 위치한 까마득하게 높은 산에 빛의 기둥이 있었다.
“빨, 빨리 달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현이 겁을 집어 먹었다.
선착순이었기 때문에 제한인원 내에 들어가지 못 하면 죽게 된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저기 사람들이…….”
몇몇 사람들이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듯 허공에 손을 가져다 대고 더듬어 보고 있었다.
아직 출발 시간이 되지 않은 것 뿐인데 혹시 출구가 있을까 싶어 더듬어보고 있던 것이다.
“일단 파티부터 맺자.”
승원은 시야에 파티 창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 정환, 경호, 지현, 아영, 예원과 파티를 맺었다.
6명이었다.
경호가 퀘스트 창을 유심히 보다가 마지막 퀘스트를 보고 말했다.
“형, 서브 퀘스트 보니까 10명과 파티를 맺어야 보상이 더 큰 거 같은데요?”
“그래, 봤어.”
시작지점은 말 그대로 시장 통이었다.
미궁 4층에서 소수로 살아남거나 혼자 살아남은 사람은 이 파티 저 파티를 다니며 받아달라고 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 쉴 세 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먹다짐을 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승원아 제한인원이라는 게 몇 명일까? 여기 숲에 보이는 사람만 해도 백 명은 넘어 보이는데.”
정환이 걱정스럽다는 듯 숲의 사람을 세보려고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나무나 풀숲에 가려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최대한 빨리 달려가는 수밖에 없겠죠. 그보다…….”
승원은 과거에 미궁 5층을 떠올리며 중요한 사실을 팀원들에게 이야기 했다.
“메인 퀘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이곳 시작 지점을 벗어나면 이번 층을 벗어나기 까지 상점 창이 열리지 않는 듯 해요.”
“으응, 봤어.”
주변이 워낙 시끄러운 탓에 6명의 사람들이 한데 뭉쳤다.
“그리고 저기 목적지를 봐. 하루이틀 사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야.”
이미 미궁에서 수 없이 걸어와서 다들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걸 알 고 있었다.
“아직 시작지점이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출발하지 못하는 모양이야. 다들 얼른 배낭에 필요한 것들 집어넣어.”
다들 놀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 승원 혼자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들 놀란 가슴이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고민에 빠졌다.
“뭘 채워야 하지? 편의점 도시락?”
예원이 고민에 잠기자 승원은 넌지시 조언을 해줬다.
“여기 온도가 습하고 덥네요.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거 하루만 지나면 상할 거예요. 통조림이나 군용 전투식량 같은 걸로 구입하세요.”
“몇 개나?”
“들고 가볍게 달릴 수 있을 만큼이요. 그리고 배낭에 있던 텐트나 요리식기 같은 거 다 버려요.”
배낭에는 미궁 3층에서 구입했던 프라이팬, 텐트, 모포, 수저포크, 3단 접이식 소형 매트리스와 기타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다.
“버리기는 아까운데…….”
아영이 아쉬워하자 승원은 과거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배낭 메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다보면 배낭은커녕 네 팔도 무겁게 느껴져서 잘라 버리고 싶어질 걸?”
승원이 겁을 주자 아영이 알았다며 서둘러 짐을 빼기 시작했다.
언제 시작 지점이 열릴지 알 수 없으니 다들 초조한 심정이었다.
“저기요.”
갑자기 남녀 5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리더가 누구죠?”
“접니다만.”
승원이 가볍게 손을 들자 대표 격인 남자가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
“일행이 몇 명이에요? 우린 5명인데.”
“우리는 6명입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 남자는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그룹에게 말을 걸기 위해 떠나버렸다.
짐을 싸던 경호는 무척 초조해보였다.
“형, 우리 4명은 어떻게 해요?”
“경호 너 지금 서브 퀘스트가 문제니? 그냥 마음 맞는 우리 6명이서 빨리 달려가서 탈출할 생각을 해야지.”
지현이 경호를 나무랐지만 승원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10명이 가야 돼.”
“응?”
승원은 과거 10명이 시작했다가 4명만 살아남았다.
때문에 일반 스킬을 보상으로 받았지만 나중에 듣기로 10명 모두 살아남은 팀은 유니크 스킬을 받았다고 했다.
‘유니크 스킬은 내가 소드 마스터가 될 때까지 단 3개만 얻을 수 있었어.’
유니크 스킬의 활용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걸 얻을 수 있다면 살인을 해서라도 얻어야 하는 게 유니크 스킬이었다.
“저, 저기 저 좀 파티에 넣어주세요.”
여자 하나가 울먹이며 다가왔다.
승원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딱 보니 겁쟁이에 빼빼 말라서 제대로 달릴 체력도 없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발…….”
승원이 고개를 돌려 배낭을 다시 싸기 시작하자 그녀는 쉽사리 포기하고 다른 그룹에게 애원하러 가 버렸다.
그때 다른 누군가 다가와 승원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부!”
“어?”
승원은 너무 놀라서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그의 어깨를 두드린 건 다름 아닌 카나였다.
“어, 어떻게 네가?”
승원은 과거로 회귀한 이래에 자신이 이렇게 놀란 적이 있나 싶었다.
몬스터와 세영의 혼혈로 태어난 아이가 미궁의 한 층을 올라온 것이다.
“카나야!”
지현은 자신이 싸던 배낭도 내팽겨 치고 카나에게 달려와 끌어안았다.
‘이럴 수가 있나?’
불가능 했다.
미궁 100층을 올랐던 자신의 기억 속에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 했다.
게다가 카나는 3살이 아니라 5살은 되 보였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기에 복장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얼굴을 보고 알아차린 것이지 다시 보니 키가 많이 컸다.
“승원아 카나 랑도 파티!”
지현이 독촉하자 승원은 설마 될까 싶어 파티를 신청했다.
카나는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승낙 버튼을 눌렀다.
‘저 녀석 순진한 척 하면서 승낙을 눌렀어?’
본인의 메시지 창은 상대가 볼 수 없지만 분명 카나는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무언가를 눈으로 훑어보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승원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대체…….’
그때였다.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열렸다!”
“달려!”
“밀지 말라고!”
누군가 이 상황을 본다면 두말하지 않고 ‘지옥’이라 말 할 것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달려가며 소동이 일어났다.
“파티! 누가 파티 좀!”
아직 파티를 맺지 못 한 사람들은 출발하지 못 했다.
투명한 벽은 사라졌지만 빛이 나는 노란 선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스타트 라인이었다.
저길 넘어가면 아이템 창과 상점 창을 열 수 없게 된다.
파티도 신청할 수 없게 됐다.
“우, 우리도 빨리 출발해야!”
“아니 파티부터!”
승원은 가방을 싸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부족한 파티원에 이어 카나까지 나타났다.
‘젠장!’
할 수 없었다.
서둘러 전투식량을 구매해서 배낭에 쑤셔 넣고 끈으로 묶었다.
“형! 빨리 출발해야!”
“배낭 지키고 있어! 4명 구해올게.”
승원은 아직 출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직 출발 못 한 인원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저기 당신!”
마음이 급해지니 존댓말도 나오지 않았다.
승원의 목소리를 들은 남녀커플이 고개를 돌렸다.
“저희요?”
“2명이죠?”
“네? 네!”
둘은 승원이 파티 원을 구한다는 걸 알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승원은 그들이 강력한 파티원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서 출발해야 했기에 파티원에 넣어 주기로 했다.
파티에 들어온 두 사람은 얼싸안고 좋아했다.
‘카나가 들어와서 7명에 저 커플이 들어왔으니 9명 이제 남은 한 명은…….’
그때 한 소년이 보였다.
혼자였는데 그대로 출발하려고 하는지 막 스타트 라인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거기! 너!”
승원의 목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돌려 승원을 바라봤다.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얼굴.
상황에 맞지 않게 묘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 이상해보였지만 지금 상황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우리랑 파티 할래?”
파티 신청을 하자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승원은 저 소년이 방금 마나를 끌어 올리려던 것을 눈치 챘다.
‘뭐야 대체?’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스타트 라인에 사람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저 멀리 달려가며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파티에 들어온 커플이 일행에게 다가가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자기소개는 이따 해가지면 하고 지금은 다들 달려!”
승원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너나할 거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