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36화 (36/197)

<-- 4층 - 신화 -->

승원은 다가오는 마법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잠겼다.

혼자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정찰을 오는 것이거나 확신을 가지고 오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아니면 본인 능력에 자신이 있는 걸지도.’

승원은 마법 3서클이었다.

상대의 수준은 4서클내지 5서클 정도로 보였는데 고 등급 마법사 앞에서 저 등급 마법사가 그 수준을 숨길 수는 없었다.

마법이였다면 그랬다.

‘마나의 기운을 숨기자.’

마법 서클이 생기면 폐에서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뱉듯 자연스럽게 마나가 흘러 들어갔다가 나간다.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막아버렸다.

마법적인 숨김이 아니다보니 마법으로도 승원의 마법 서클 존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응?’

그때 지현의 품에 안겨있던 카나가 승원과 같이 암흑의 마나를 감쪽같이 숨겨버렸다.

깜짝 놀라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는 승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거야?’

승원이 걷다말고 서서 아이를 보고 있자 촌장과 카린이 멈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가시죠.”

마을 수로 개통식이었기 때문에 승원과 촌장 그리고 카린 뿐만 아니라 아이를 안은 지현과 예원 그리고 아영과 더불어 마을 여자들이 모두 따라 나왔다.

남자들은 이미 논밭에 가 있었다.

“실프 가서 준비 다 됐으면 시작하라고 전해 줘.”

실프는 목소리도 전달할 수 있었다.

아까 물레방아 공사 현장에서 3시간 전에 출발할 때 2시간 정도면 완성 될 거라고 했으니 지금쯤 다 만들어 놓고 쉬고 있을 터 였다.

“촌장님. 저기 누가 말을 타고 오는데요?”

마을 남자 하나가 이방인을 발견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승원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척하다가 이제야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봤다.

후드 망토를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말을 타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을로 통하는 길을 따라 오다가 마을 사람 전부가 논밭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음? 못 보던 사람인데…….”

촌장은 상대가 누군지 가늠이 되지 않는 듯 유심히 바라봤다.

키젤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을 그들의 조상이 개척한 땅이다 보니 인근 마을과도 거리가 있었고 도시가 있는 영주 성에서는 더더욱 거리가 있었다.

보통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안면이 있는 경우였다.

‘이전에 이 마을에 있을 때 외지인을 만난 기억이 없었는데.’

승원은 과거와 현재가 일치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강해.’

그때는 지금의 10분의 1의 마력에 4대 정령술을 쓸 수 있기만 했을 뿐 지금처럼 초인적인 육체에 검기를 사용하고 마법 3서클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실프가 수로에 물을 흘려보내라고 신호를 주러 갈 테니 10분 정도만 지나면 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메인 퀘스트가 완료되고 미궁 5층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여차하면 죽이고…….’

물레방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쪽에 있는 마을 남자들도 이쪽으로 올 것이다.

승원의 감각 범위 내에 침입한 사람은 말을 타고 오는 저자가 유일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멈춰서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봤다.

“응?”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말 위에서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려서 마치 당장이라도 떨어져 내릴 거 같았다.

타고 있는 말도 마찬가지로 체력이 다 했는지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저, 저기 물 좀…….”

마을 사람들 앞에 도착한 마법사는 말에서 떨어지듯 내려오며 물을 애원했다.

후드 망토 안으로 보이는 얼굴은 무척 수척해보이는 어린 여자로 입술이 쩍쩍 말라 있었다.

“카린 가서 물을 퍼 오거라.”

“네!”

촌장의 지시에 카린이 서둘러 마을로 뛰어 들어가 우물가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 왔다.

마법사는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정신없이 물을 마시더니 바가지에 있던 물이 곧 동이 났다.

“조금만 더…….”

카린이 두 번이나 마을을 오고가며 물을 퍼오고 나서야 상대는 정신을 차린 듯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카트렌 성에서부터 5일 전에 출발했는데 목적지가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물을 더 많이 챙겨서 출발했을 거예요.”

5일 전이라면 카나가 태어난 시기와 일치했다.

승원은 분명 이 마법사가 어둠의 마나를 느끼고 찾아온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허, 카트렌 성이라면 영주님이 살고 계신 곳이 아닙니까?”

촌장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워했다.

상대는 마법사들이 입는 특유의 문양이 들어간 후드 망토를 쓰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말을 타고 있는 것 하며 자세히 보니 마법 지팡이도 들고 있었다.

“혹시 카트렌 영주님의 마법사이신가요?”

라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을 사람들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왕실이나 귀족에게 소속 된 마법사는 준 귀족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 예의 차릴 거 없습니다. 저도 사실 평민 출신이거든요.”

라나는 과한 예의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고아였던 라나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차린 어떤 마법사에 의해 어린 나이에 마탑에 들어가 10년을 수련했다.

기억하는 인생의 대부분이 공부였던 터라 준 귀족이 됐다지만 평민들이 자신에게 귀족 대우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헌데 마법사님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촌장이 조심스레 라나의 의중을 묻자 그녀는 남은 물을 말에게 주며 대답했다.

“이 근방에 마법 연구에 필요한 약초가 있다 하여 왔습니다.”

“마법 연구에 쓰일 약초요?”

키젤 마을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촌장은 언 듯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일반인은 봐도 잘 모를 거예요.”

라나는 어둠의 마나를 느끼고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을 알아듣지도 못하거니와 혹시나 이들이 흑마법사와 한 패거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라나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평범한 마을 사람이었다.

보통 흑마법사는 동굴을 파고 함정을 설치해서 던전을 만들어 그 안에 틀어박혀 마법을 연구했다.

흑마법 연구하는 것을 외부에 들킬 경우 백마법사와 더불어 성기사들이 들이닥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흑마법은 대부분 마왕이나 마족의 힘을 빌려 사용되는 마법으로 더 강력한 힘을 사용하기 위해 동물이나 인간을 실험재료로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혹시 마을에 별 다른 일은 없었는지요?”

“별 다른 일이라 하면 어떤…….”

“뭐 사람이 실종 됐다거나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일이요.”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시선처리를 하지 못하고 승원을 바라봤다.

마을 중앙에 수백 년 전부터 있던 비석에 새겨져 있던 신의 대리인이 나타난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촌장은 완벽하게 시선처리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신의 대리인이라는 존재가 밝혀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략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키젤 마을은 워낙 작다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제가 아는 한은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라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분명 이 근방에서 어둠의 마나가 발산되고 있었는데 그 힘이 점점 적어지더니 어느 순간 단숨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 같이 어디를 가고 있는 거죠?”

“아, 마을 수로가 완성 되서 그걸 보러 가는 겁니다.”

수로라고 해서 땅을 좀 파서 물줄기가 흐르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던 라나는 텅 빈 마을을 좀 보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지평선 부근부터 마을 근처 논까지 쭉 이어진 거대한 목조 수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건?”

왜 이제야 저런 거대한 시설을 발견했는지 모를 정도로 목조 수로의 위용은 대단했다.

1시간 거리가 이어지다보니 수로의 길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완공되는 목조 수로입니다.”

때마침 강에서부터 흘러 들어오는 물이 이곳까지 당도하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쩍쩍 말라 있던 건조한 논에 물이 흘러들어오는 걸 본 마을 사람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이 얼싸안고 좋아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가뭄이 계속 돼서 한해 농사지어 한해 먹고 사는 키젤 마을 사람들은 보름 전만 해도 마을을 버리고 떠나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걸 마을 사람들이 만든 건가요?”

“네, 그렇지요.”

라나는 마을을 바라봤다.

집이 20채 정도 있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 저런 대규모 공사가 가능할리 없었다.

2만 여명이 있는 카트렌 성에서도 쉽사리 만들지 못할 것 같은 규모였다.

“수로 건설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죠?”

라나의 말에 촌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을 주저했다.

승원은 어색해지기 전에 스스로 나섰다.

“제가 만들자고 했습니다.”

라나는 승원을 바라봤다.

갑옷은 모두 집 안에 벗어 놓고 있었고 무기는 아이템 창에 있었다.

옷도 수일간 수로를 건설하며 헤지고 땀에 젖어서 마을 사람의 옷을 빌려 입은 터라 위화감은 없었다.

햇빛을 많이 받아 구리 빛 피부가 되었기에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과 구별되지도 않았다.

“저걸 짓는데 얼마나 걸린 거죠?”

“글쎄요. 정확한 날을 세어보지 않아 얼마나 걸렸다고 말하기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굉장히 오래 걸렸지요.”

마을 사람들도 눈치가 있는지라 승원의 대답을 듣고도 모른 척 했다.

라나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달이나요?”

“겨울이 끝나고 바로 시작했습니다.”

“왜요?”

“왜라고요?”

승원은 그런 질문이 나올 줄 몰랐다는 듯 살짝 당황했다.

“옆 마을이 기존 수로를 뺏어 갔는데 영주님께 항의해도 옆 마을 편만 들어주기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죽을 둥 살 둥 마을 전원이 수로 건설에 힘을 쏟은 것이지요.”

“아…….”

라나는 엄연히 영주 측 사람이었다.

마법연구에 빠져 이런 일은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만 약초를 구하러.”

라나는 말을 끌고 황급히 떠나버렸다.

마을 반대편에 있는 산 쪽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동안 가만히 있던 지현이 카나를 안고 다가와 눈치를 살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도 모르겠다.”

승원은 메인 퀘스트가 완료된 것을 확인했다.

이제 마을 안에 있는 빛의 기둥으로 가면 미궁 5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그보다 마지막 퀘스트가 문제야.”

승원은 마을의 가난을 없애주는 마지막 퀘스트를 농작물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서 깨려고 했다.

하지만 굳이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 말고도 마을의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작전 회의 좀 하자.”

마침 정환과 경호도 돌아오고 있을 터였다.

승원은 앞으로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됐지만 집에 모인 여섯 사람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승원이 마법사가 나타난 이유가 말도 안 되게 빨리 지은 목조 수로를 수상히 여겨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형, 마을 사람들을 가난하게 벗어나게 해주는 거면 상점 창에서 금이나 보석 같은 거 구입해서 쥐어주면 안돼요?”

경호의 말에 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과거 최아람과 승원이 바보라서 수개월간 수확을 기다려서 마지막 퀘스트를 완료한 게 아니다.

이미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금이나 보석을 줘보기도 하고 이 세계의 화폐를 확인하고 상점 창에서 구입해서 주기도 해봤다.

마을이 가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시기 질투심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마을에서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사람까지 똑같이 나눠준다고 불평을 했고 수준 별로 나눠주면 또 그거대로 불만을 표출했다.

세 번째 신화는 마을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지만 그건 요약한 것이고 비석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마을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세부적인 요구사항이었다.

“아까 촌장님과 세 번째 신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는데…….”

승원은 과거에 비석 내용을 분석한 것을 마치 촌장에게 방금 전에 들은 것처럼 각색해서 이야기 해 줬다.

그제야 일행은 마지막 퀘스트의 내용은 이해한 듯 싶었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방향으로 가난을 해결해주라는 거네?”

정환의 말에 승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두가 행복해할만한 방향으로요.”

“어렵네.”

아영이 의견을 하나 제시했다.

“마을에 소밖에 없던데 돼지나 염소, 닭 같은 걸 키우게 하는 건 어떨까요?”

“상점 창에서 생명은 팔지 않아. 그럼 이 마을을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면 안돼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과거에도 비슷한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그때는 팀에서 정한 규율 때문에 그렇게 해보지 않았다.

바로 세계관을 확장하지 말자는 규칙 이었다.

빛의 기둥을 볼 있는 건 미궁을 오르는 사람뿐이다.

기둥에서 멀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 갔다가 길을 잃으면 큰일이었다.

혹은 괜히 위험한 일에 얽혀서 혹을 떼려다 혹을 달게 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과거에는 키젤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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