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층 - 고블린 -->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승원은 주변에 쌓여있는 돌을 보고 혀를 찼다.
분명 이강현 일행은 용병 길드나 술집에서 어설프게 들은 정보로 돌 더미를 보고 고블린 숫자를 지레짐작 했을 것이다.
그건 지능이 맞은 일반 고블린들이나 먹히는 것으로 인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주술사가 있는 동굴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게 돌 더미였다.
“우욱! 냄새!”
경호가 동굴 입구에 다가갔다가 코를 부여잡았다.
습한 건 둘째 치고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없는 퀘퀘한 냄새가 흘러 나왔다.
“배변, 시체, 땀, 음식 냄새가 섞인 거 같네.”
승원은 일행을 돌아봤다.
“아까 말한 것처럼 굳이 들어갈 필요 없어. 밖에서 연기 피우고 기다리면 알아서 쏟아져 나올 걸? 그때 하나씩 죽이면 돼.”
그럼에도 일행은 그렇게 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연기를 피울 경우 안에 감금되어 있는 이세연과 강수영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선택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제 그 여자애 둘이 너희 여자들 험담했어.”
“응? 뭐라고?”
지현이 관심을 보여 왔다.
“너희 외모 관리하는 거 같다고 욕하더라고. 시기심이 있던 애들 같던데.”
구하러 가지 않는 선택을 하더라도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도움을 줬다.
“눈썹문신하고 속눈썹 붙인 거 때문에 그런 가?”
지현은 별달리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개인을 콕 집어 욕한 것도 아니고 여자들 사이에서 그 정도 험담은 험담 측에도 끼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험담했다고 해서 그들이 죽게 연기를 피우자고 선택할 리 없었다.
다들 하나 같이 마음이 약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승원을 데리고 다닌 사람들이었다.
“구하러 가요.”
아영의 말에 승원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수결로 하죠. 일단 말하자면 동굴이 좁다보니 일렬로 들어가다가 기습당하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지켜주지 못 할 수도 있어요.”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정환과 경호는 두 말할 거 없이 반대했다.
“들어가지 말자.”
“저도 안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두 사람이 불쌍하긴 하지만 내 목숨이 더 중요해요.”
들어 가자에 1표 들어가지 말자에 2표가 나왔다.
지현과 예원 그리고 승원이 남았다.
“승원이 너는?”
지현은 승원의 생각을 궁금해 했다.
“난 가장 마지막에 투표할게.”
지현이 생각에 잠겼을 때 예원은 결정을 했다.
아영의 옆으로 가서 섰다.
“난 구하러 가자는 쪽에 한 표 낼게.”
승원은 굳이 이유는 묻지 않기로 했다.
다들 심사숙고해서 어렵게 결정한 만큼 묻는 게 예의가 아닐 거 같았다.
그 다음으로 지현이 결국 결정했다.
“구하러 가지 말자.”
지현은 서둘러 사족을 덧 붙였다.
“험담을 한 건 중요하지 않아 그보다 우리 중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싫어. 피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고 싶어.”
이로써 구하러 가자 2표 구하러 가지 말자 3표였다.
승원이 구하러 가자고 해도 3대3으로 재투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승원은 구하러 가지 말자에 한 표를 던졌다.
“나도 구하러 가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아.”
아영은 안타깝다는 듯 동굴 안을 바라봤다.
“오빠가 아까처럼 실프로 다 죽이면 안 돼요?”
“죽여도 어차피 시체 가지러 들어가야 해. 그리고 이강현 그룹이 고블린과 싸우다가 잡혔다고 보기 어려워. 내 생각에는 동굴에 설치 된 함정 같은 거에 걸렸을 거야.”
어제 그 당당한 태도를 보건데 일행 중 2명 이상이 스킬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홉 고블린이건 주술사건 어차피 고블린이었고 동굴에서는 숫자가 많다고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승원이 보기에 그들이 잡힌 결정적인 이유는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어요.”
아영도 납득했고 예원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사항에 반발하지 않았다.
일행은 주변을 돌며 나뭇가지를 구해왔고 마른 장작이 아니다보니 카사로 불을 피우자 곧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실프에서 동굴 안으로 연기를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키아악!”
“끼엑!”
동굴 안 가까운 곳에서 비명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무래도 입구 가까이에 있던 고블린부터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나온다!”
고블린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연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가 보이지 않았지만 발걸음 소리와 기침 소리를 듣고 정환이 검을 휘둘렀다.
퍽-!
목이 잘리며 첫 고블린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뒤이어 나오는 고블린들은 그걸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뛰쳐나왔다.
준비하고 있던 예원이 창으로 찔러 심장을 꿰뚫었고 그 뒤를 이어 나오는 고블린은 지현이 머리를 찔러 죽였다.
“어? 거기 지나간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했지만 고블린이 빠져 나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경호는 일행의 공격을 운 좋게 피해서 달아나는 고블린의 등을 노리고 화살을 날렸다.
핑-!
“키엑!”
털썩
여기서 문제가 벌어졌다.
동굴이 생각보다 컸는지 고블린이 계속해서 나왔다.
“키아아아아!”
“키에엑!”
“키에에에!”
할 수 없이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던 승원도 가세해서 고블린을 잡기 시작했다.
도망치려고 빠져나가는 고블린을 베어 넘기던 승원은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건?”
저 멀리 하늘 높이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연기가 저기서 왜?”
가만 생각해보니 저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토끼 굴처럼 고블린 동굴의 입구가 여러 개가 있을 가능성이었다.
“이런.”
저쪽으로도 상당수의 고블린이 빠져 나온 것으로 보였다.
저쪽으로 달려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 이쪽에 있는 고블린부터 확실히 해치워야 했다.
‘실프 가서 얼마나 빠져 나왔는지 확인 해.’
동굴을 빠져 나오는 고블린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연기가 가득한 동굴을 빠져 나오느라 눈뿐만 아니라 기관지까지 아픈 상태에서 공격을 당해 부상까지 당하니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녀석은 없었다.
“으앗! 예원 누나 거기 뒤에!”
난전이 벌어졌다.
경호는 예원 뒤로 접근하는 고블린을 보며 경고했다.
서둘러 뒤로 돌아 고블린의 심장을 꿰뚫은 예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호 땡큐!”
예원은 나머지 고블린들을 공격하며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정환과 지현은 입구에서 계속 고블린을 베어 넘기고 있었고 경호와 승원은 도망치는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어어? 아영아 너!”
고블린 하나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아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땅 밑으로 구덩이가 생기더니 고블린이 빨려 들어갔다.
땅의 정령 노움이 아영을 지키고 있었다.
‘하긴.’
승원이 아영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내버려둘 리 없었다.
“응?”
쿵쿵 거리는 진동소리가 느껴졌다.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점점 그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크아아아아!”
연기를 뚫고 나온 고블린은 일반 고블린 보다 2개 정도 신체가 컸다.
홉 고블린으로 성인 남성 정도의 키에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승원아 이거 내가 잡아도 되냐?”
홉 고블린 서브 퀘스트는 마법 물품을 줬다.
승원이 노리는 거 같아 물어본 것이다.
“네, 형이 잡아요!”
승원은 도망치는 녀석들을 일일이 검으로 베어 죽이는 것을 그만두고 운디네와 카사를 불러냈다.
‘도망가는 녀석들만 죽여.’
두 정령이 나타나 달아나는 고블린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승원은 가만히 서서 정환과 홉 고블린의 전투를 지켜봤다.
“핫!”
정환이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어깨부터 심장까지 단칼에 내려찍으려고 반동을 이용해 검에 무게를 실었다.
캉-!
홉 고블린은 일반 고블린과 달리 팔뚝에 두꺼운 강철판을 대고 있어 장검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이런!”
그대로 간격을 좁혀 들어온 홉 고블린이 오른손에 들린 방망이를 휘둘렀다.
정환은 서둘러 방패를 들어 막았다.
텅-!
“큭!”
공격을 한번 씩 주고받았지만 근본적으로 몬스터들은 근육 밀도는 인간보다 높았다.
방패로 막아낸 손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견디며 오른손의 장검으로 홉 고블린의 빈틈을 노려 공격했다.
스걱!
‘제길, 얕았다.’
옆구리를 베었다.
홉 고블린은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며 그대로 검을 들고 있는 정환의 팔의 팔꿈치를 노리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대로 맞는다면 팔이 부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언 스킨!”
순간 정환의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캉-!
생각지도 못하게 정환의 부드러운 맨살이 강철처럼 변하자 방망이를 쥐고 있던 홉 고블린이 손바닥이 찢어지며 무기를 놓쳤다.
정환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우거의 힘!”
홉 고블린이 이어질 공격에 대비해 서둘러 강철판을 덧댄 팔을 들어 올리며 상단을 방어하자 정환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대로 중단에 검을 휘둘러서 옆구리를 베어 넘겼다.
“크아아아아아!”
그 공격에 홉 고블린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비명을 지르던 녀석은 몇 번 몸을 허우적거리더니 곧 움직임을 멈췄다.
“에이, 스킬 쓸 때 기술명 말하지 말라니까.”
승원의 타박에 정환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어?”
갑자기 승원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정찰을 보냈던 실프가 다른 입구 방향에서 역 소환 당한 것이다.
모습을 숨기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바람의 정령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주술사 밖에 없었다.
‘끽해야 1서클 마법사일 고블린 주술사가 실프를 역 소환 했다고?’
아무리 하급 정령이라고 해도 바람의 정령이었다.
3서클 정도에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하고 광역기를 날려야 잡을 수 있을 터 였다.
‘다른 존재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고블린으로 짐작되는 미세한 생명력의 마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12.’
승원은 동굴에서 나오는 고블린을 모두 잡고 쉬고 있던 일행에게 소리쳤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서 전투대형 취해요. 고블린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뭐? 지금 다 죽인 거 아니야?”
주저앉아 거친 호흡을 뱉어내며 땀방울을 떨어트리던 지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 봐! 동굴 입구가 한 개가 아니었어.”
그제야 지현은 저쪽 언덕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다.
정환과 경호 그리고 지현과 예원이 승원과 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왔다.”
언덕 위에서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법을 더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마나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 주술사가 보였다.
“네놈들이 동굴에 연기를 집어넣은 놈들인가?”
승원의 눈은 고블린 주술사가 아니라 그 양 옆에 서있는 홉고블린에게로 갔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구타를 당하고 몹쓸 짓을 당했는지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발가벗겨져 있는 이세연과 강수영이었다.
‘제길.’
승원의 입맛이 썼다.
자신이 어제 그렇게 보낸 탓에 저렇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상한데. 느껴지는 마나는 분명 1서클인데.’
마나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러려면 상대보다 마나 서클이 더 높아야 했다.
승원에게 마나를 숨기려면 3서클 이상이 된다는 소리였다.
‘아니면…….’
고블린 주술사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눈이 갔다.
지팡이 끝에는 값비싼 보석이 달려 있었다.
‘값비싼 무기를 인간에게 빼앗았을 경우.’
가끔가다가 얼토당토않게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간들이 있다.
약하고 강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밟으면 떨어지는 함정이라던가 화살이 날아오는 함정 혹은 잠 들었을 때 기습을 당해 죽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면 독이든 버섯을 잘 못 먹고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마법이 담겨 있는 무기를 몬스터가 전리품으로 챙겨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확실해.’
수정구가 달린 지팡이는 그 색깔로 등급을 매길 수 있었는데 아영이 들고 있는 것과는 그 영롱한 색의 수준이 달랐다.
게다가 고 등급 지팡이의 경우 시동어만 외쳐도 주변 마나를 빨아들여 마법이 발동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슨 마법을 사용하는 거지?’
그걸 알아야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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