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28화 (28/197)

<-- 3층 - 고블린 -->

승원은 단호하게 나갈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죠. 짐을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짐이라고요?”

이강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자신은 미궁을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검술이라는 스킬이 있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을 쓰러트려 왔기 때문이다.

안상훈은 에너지 볼트라는 마법을 쓸 줄 알았고 강수영은 슬립(slip)이라는 상대를 미끄러지게 만드는 마법을 사용했다.

아무 능력도 없는 김세호의 경우 자신의 처지를 알고 누구보다 발품을 팔며 정보를 수집하고 잔심부름을 하며 짐꾼 역할을 자처했다.

이세연의 경우 요리와 설거지 그리고 청소와 빨래를 맡아했다.

누구하나 민폐 끼칠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인가요?”

이강현이 정환과 경호 그리고 세 여자를 바라봤다.

정환이 먼저 대답했다.

“전 솔직히 한국인들을 만나서 반갑고 같이 하면 즐거울 거 같습니다.”

정환의 말에 이강현이 그것 보라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정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승원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지현도 합세했다.

“승원이 말대로 해서 잘 못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전부 승원이를 믿어요. 그렇게 우리를 설득하려고 할 필요 없어요.”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많은 사람이 함께 다니면 더 강해지는 건 당연한 거…….”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단호해서 더 이상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거 같았다.

같은 편인 세연과 수영도 상대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말할 것 없다고 가자고 이야기 했다.

“알겠습니다. 상대가 싫다는 데 계속 설득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요.”

이강현은 여기서 더 설득하려고 들면 자신의 이미지만 깎아져 내린다고 생각했다.

혹시 나중에 또 인연이 될 줄 몰랐기 때문에 깔끔하게 헤어져 여지를 주기로 했다.

“고기 얻어먹은 값으로 물통을 두고 가죠.”

이강현이 짐꾼 역할을 하는 세호에게 눈짓을 했고 그는 배낭에서 2리터짜리 물통을 꺼내 내려놨다.

원래 이렇게 장거리 이동할 때 가장 귀한 것이 물이었다.

무겁고 부피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강현은 선심 쓰듯 물을 준 것인데 승원 일행은 그걸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받았다.

“네, 뭐 감사합니다.”

이강현은 양해를 구하고 불을 빌려 횃불을 만들어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경호가 물통을 보고 웃었다.

“우린 형이 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무거운 물통 안가지고 다니는데 쟤들은 불쌍하네요.”

김세호의 배낭에는 물통이 가득 들려서 그가 가방을 들어올릴 때 힘들어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근데 승원아 왜 거절한 거야?”

가만히 있던 예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요.”

승원은 몇 가지 말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었지만 과거 미궁을 꼭대기까지 오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감각적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일행에서 누가 리더고 누가 동료이며 부하인지를 눈치로 알게 된다는 것인데 저 그룹은 비정상적인 느낌이 있었다.

‘후각이 너무 발달해서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게 됐네.’

남자와 여자가 잠자리를 가지고 씻지 않으면 몸에서 그 냄새가 남는다.

다들 땀 흘리고 바람이 간간히 부는 숲에 있어서 그걸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승원밖에 없었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세연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나머지 남자 세 명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같았다.

남자 셋이 이세연과 잠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세연이 아무 능력도 없거나 아니면 약점이라도 잡힌 거겠지.’

그런 경우는 흔했다.

스킬이 있는 사람은 전투를 담당하고 스킬이 없는 사람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다른 걸 제공했다.

또 이강현, 안상훈, 강수영의 무기와 방어구만 특별히 좋아보였다.

미궁 3층까지 올라오며 받은 포인트로 구입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좋았다.

그 말인 즉, 나머지 두 명의 포인트까지 사용해서 자신들의 장비를 맞췄다는 거였다.

‘저런 비정상적인 그룹은 금방 망하기 마련이지.’

승원은 숲 저 멀리 희미해져가는 불빛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

이강현 그룹은 승원 일행과 거리를 벌리자마자 바로 흉을 보기 시작했다.

첫 스타트는 강수영 이었다.

“쟤네 되게 웃기지 않아? 같은 한국인끼리 힘을 합칠 생각을 해야지 이기적이게 자신들 생각만 하고.”

안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전부 스킬이 없는 걸로 보였나? 리더 왜 그건 말하지 않았어?”

“스킬을 말이야?”

안상훈이 30살이고 이강현이 29살이었지만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냈다.

이강현이 빠른 년생이라 대학교 학번이 같았기 때문이다.

“어, 스킬 보여주면 질질 싸면서 같은 편하자고 매달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사람들 만나봐서 알잖아.”

이강현 그룹은 미궁 1층 이후에도 한국인은 아니었지만 같은 세계 사람들을 몇 번 만났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로 스킬이 없거나 있어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어서 들러붙어 도움만 받으려고 했다.

심지어 포인트를 다 써서 음식 좀 사달라고 조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쟤네들한테 먼저 스킬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나도 은근히 먼저 말하도록 유도해 봤는데 말 안하더라고. 저쪽도 조심하는 거겠지.”

“이제껏 살아남은 거 보면 저쪽도 스킬 있는 애들 몇 명 있을 거야.”

“2층에서 서브 퀘스트를 깼다면 없다가도 생겼겠지.”

안상훈은 문득 세 명의 여자들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예뻐서 그대로 보내기 너무 아쉬웠다.

“그냥 이대로 포기하는 거야?”

안상훈이 이강현에 귀에 속삭였다.

거리낌 없이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수영 때문이었다.

우유부단하고 거절 못하는 성격의 이세연은 이미 남자들의 성노리개가 된지 오래였지만 한 성격하는 강수영의 경우 스킬이 너무 유용해서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 중에 상대를 미끄러지게 하는 기술은 무척 유용해서 그 덕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모가 떨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포기? 내 사전에 포기란 배추 셀 때만 쓰는 단어야.”

“흐흐 역시 이강현.”

두 사람이 키득 거리자 그걸 불편하게 바라보는 세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세호와 이세연 그리고 강수영이었다.

‘쓰레기들.’

김세호와 이세연은 서로 연인이었다.

그럼에도 이강현과 안상훈은 이세연을 건드렸다.

김세호가 반발했지만 이세연이 가만히 있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살아남기 위해 버티자고 한 것이다.

강수영도 그걸 알면서 그들이 필요해서 묵인했다.

“응?”

동굴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강수영이었다.

풀숲에 가려 미처 못보고 지나칠 뻔 했는데 사람도 충분할 정도의 동굴이 있었다.

“여기 봐봐.”

강수영의 말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이강현은 용병 길드에서 돈을 주고 구입한 임무용지를 펼쳐봤다.

고블린들은 동굴에 자신들만 알도록 표시를 하는 게 있었는데 그걸 용병들도 알고 있었다.

“여기 봐봐. 입구에 이렇게 작은 돌을 쌓아 탑을 만드는 것은 고블린들만의 특유의 문화라고 했어.”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고블린은 도구도 사용할 줄 알았다.

무기를 만들 정도의 지능은 없어 보통은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로 공격하지만 인간을 죽이고 전리품을 얻은 경우 단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에 몇 마리나 있는 걸까요?”

“여기 탑을 보면 10마리가 안 되는 거 같아.”

통상적으로 돌탑의 개수는 고블린의 숫자와 같았다.

다른 고블린들에게 우리는 이 정도 숫자가 있으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럼 낙승이네?”

안상훈이 안심을 했다.

용병 길드에서 듣기로 고블린 한 마리는 성인 남성이 어렵지 않게 싸워 이길 수준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스킬을 가진 사람이 셋이나 있으니 쉽게 이기리라 생각한 것이다.

“빨리 죽이고 돌아가는 길에 아까 걔들한테 자랑하자. 그리고 도시로 돌아가서 다시 기회를 보는 거야. 고블린 잡다가 몇 명 죽기라도 하면 그때는 우리한테 제발 받아달라고 할 걸?”

이강현은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고 결말을 내버렸다.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첫 째는 고블린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둘째는 고블린이 야행성이라 밤에 민첩해진다는 것. 셋째는 이강현 일행이 손발을 맞춘 것 보다 고블린들이 손발을 맞춘 기간이 더 길다는 것이다.

이강현 일행은 지금껏 약한 상대만 만나왔고 때문에 어렵지 않게 여기까지 도달했다.

때문에 승원 일행처럼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오랜 기간 체력을 단련하고 전투 시 역할을 전담하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다.

“빨리 가서 해치우자.”

이강현이 보무도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뒤를 이어 안상훈과 다른 일행도 따라 들어갔다.

**

다음 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난 지현이 텐트에서 나와 기지개를 켰다.

마지막 불침번을 서며 모닥불을 지키고 있던 승원이 그녀를 보고 웃었다.

“아주 푹 잤나보네? 눈곱 많이 꼈다.”

“뭐, 뭐? 여자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지현이 당황해서 서둘러 눈곱을 떼려고 하자 승원이 운디네를 불러냈다.

“세수해. 세수.”

“아흠, 고마워.”

마나 연공법으로 마력이 많이 늘어난 승원은 카사까지 불러내 물을 따뜻하게 해주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다른 이들은 배낭에 물통을 가득 메고 다녀도 마실 물도 부족한 게 현실인데 승원 일행은 세수를 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샤워까지 할 수 있었다.

“으 새벽 공기는 너무 쌀쌀하네.”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는 지현은 몸을 조금 떨며 승원의 옆으로 다가와 앉아 모닥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었다.

“아직 30분은 더 잘 수 있는데 왜 일어났어?”

승원의 물음에 지현은 그를 쳐다보지 않고 타오르는 모닥불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여관 침대에서 자던 게 습관이 됐나 봐.”

“너무 편했다는 거네?”

승원의 장난에 지현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도적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깊게 잠들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어.”

지현은 트라우마가 남았다는 듯 이야기 했지만 승원 입장에서는 미궁을 오르는 이라면 기습공격에 대비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침번이 있지만 불침번이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수도 있고 방심해서 잠이 들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지현이 모닥불에 땔감을 넣으며 말했다.

미궁을 오르는 이라면 누구나 다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할만한 질문이었다.

이건 승원 역시 알고 싶었고 미궁을 꼭대기까지 올랐어도 답을 찾지 못 한 질문이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

“100층까지 올라가면?”

지현은 미궁0층에서 미궁에 대해 설명해주던 관리자를 떠올렸다.

100층까지 있는 탑의 꼭대기까지 오르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건 아닐 걸.”

“응?”

승원의 말에 지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100층까지 올라가봤는데 별 거 없더라고.”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승원을 바라보는 지현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그게 뭐야!”

웃기다는 듯 손으로 승원의 둥을 두드리는 지현은 한참을 웃고서야 웃음을 멈췄다.

“가끔 보면 넌 진짜 미궁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온 거 같다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니까.”

“네가 저녁에 기절하듯 잠 들었을 때 나는 도서관이랑 술집을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니까.”

“오전에 크로스핏 오후에 전투 훈련하고 저녁에 나돌아 다니는 네가 신기한 거야.”

해가 저물 며 전투 훈련이 끝나면 지현뿐만 아니라 정환과 경호 그리고 아영과 예원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태릉선수촌 선수들처럼 강도 높게 이어지는 훈련에 다들 기절하듯 잠드는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발버둥 쳐야지.”

승원은 실제 저녁에 도서관이나 술집에 가지 않았다.

이미 과거에 습득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근처 다른 여관에 작은 방을 구해서 거기서 마나 연공법을 수행했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서둘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다.

“자!”

갑자기 지현이 손을 내밀었다.

승원은 무슨뜻이냐는 듯 그 손을 바라봤다.

“악수하자고.”

“왜?”

“같이 열심히 발버둥쳐서 살아남자고.”

“……그래.”

승원은 지현의 손을 마주잡았다.

불길을 쫴서 그런지 유난히 따뜻한 손은 무척 부드러웠다.

“음?”

지현을 잡은 손 그대로 승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숲 저 멀리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승원은 알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여러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왜 그래?”

지현이 승원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이 오고 있어.”

“응? 안 보이는데?”

“난보여. 그러니까 얼른 가서 조용히 다른 사람들 깨워.”

지현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로 뛰어 들어갔다.

승원은 실프를 소환했다.

‘실프 정찰을 다녀 와.’

승현 입장에서 고블린 따위 수백 마리가 온다한들 땀 한 방울 흘리기 전에 모두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피 냄새가 짙어. 그리고 어떻게 알고 이쪽방향으로 오는 거지?’

이미 해가 떠서 숲은 밝았다.

모닥불은 보고 찾아올 만큼 밝게 빛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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