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층 - 식인종 -->
승원은 눈부신 빛이 가라앉자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초록빛 가득한 나뭇잎과 파란 하늘이었다.
[상점 창이 활성화 됩니다.]
[미궁 1층에 진입하며 보상금 1,000포인트를 받았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눈 앞에 떠올랐지만, 승원은 지금 그런 걸 신경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제길, 그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욕설이 절로 나왔다.
100층에 도달해 한 층만 더 올라가면 해방될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동료들과 함께 몰살당한 것이다.
'근데 나는 왜 죽지 않고 살아난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괴물의 강함이 아니었다.
죽고 나니 탑에 처음 들어온 때로 돌아온 것이다.
0층에서 관리자를 만나 튜토리얼을 받았지만 관리자라는 것은 컴퓨터처럼 저장 된 메시지만 반복해서 뱉어내기 때문에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근데 지금 문제는....'
의욕이 가득했지만 중대한 실수를 했다.
튜토리얼 층은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서 과거의 힘을 되찾기 위해 무리한 게 몸에 문제가 됐다.
미궁 저층에서 간신히 배운 삼류 무술을 버리고 고층에 올라가서 뒤늦게 알게 된 최강의 무공이라 불리는 천마신공을 익히려던 게 화근이 됐다.
이론과 현실은 달라서 익히긴 익혔지만 몸에 치명적인 근육통이 찾아온 것이다.
'정령술이 그대로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주변을 둘러봤다. 지구에 있을 때는 중국의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탓에 보기 힘들었던 푸른 하늘이 이곳에서는 당연히 되는 공기가 청정한 세계였다.
'음?'
어디선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어? 저기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네요. 저 사람한테 물어보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더니 조심스레 승원에게 다가왔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승원은 거기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이봐요.”
승원에게 한 여자가 다가 와 말을 걸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리더쉽이 있던 여자로 과거 미궁 1층에서 사람들을 규합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던 여자였다.
“저요?”
승원은 일부로 어리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궁에 처음 온 거 같은 사람들 연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귀한 사실을 말해봐야 짐 덩어리만 늘어날 테니까.’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눈에 보였다.
자세히 설명해달라며 몇 시간을 질문을 할 것이고 자신을 이용하려 들 게 분명했다.
빨리 힘을 쌓아서 과거의 힘을 넘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을 많이 갖고 강력한 동료를 손에 넣어야 했다.
여기 있는 이들이 그런 자들은 아니었다.
“당신은 뭐 아는 거 있어요?”
기억났다.
이 여성의 이름은 최아람이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탑에 왔을 때도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던 거 같다.
“집에 있다가 눈을 떠보니 숲이었고 탑의 관리자라는 마네킹 같이 생긴 녀석을 만나서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과거와 똑같은 답변은 아닐 테지만 무난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최아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다들 똑같은 상황이네요.”
최아람의 말에 아까부터 계속 걸걸한 욕설을 내뱉는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손가락질 했다.
“이거 몰래 카메라지? 당장 그만두고 나오지 못 해?”
분명 최동호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조직 폭력배로 활동했던 남자로 주변에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처음 미궁에 들어와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남자이기도 했다.
‘저 녀석 분명 2층에서 여자를 성폭행하고 동료들에게 살해당했지 아마.’
최아람하고 최동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미궁 초기에 같이 팀을 이루고 탑을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탑 저층에서 짧게 함께 했을 뿐이었다.
‘어디 보자.’
승원은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둘러봤다.
다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중앙에 선 최아람과 최동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더쉽 있는 두 사람이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당장 두 사람도 아직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다들 모여 봐요.”
최아람의 말에 사람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 들었다.
“정보를 모아보죠.”
그녀는 자신이 탑의 0층에서 관리자를 만나 대화를 나눴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냈다.
어떤 질문을 했고 관리자가 어떤 답변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관리자는 질문에 답변해주기는 했는데 로봇처럼 정해진 말만 뱉어냈거든요. 가진 바 능력을 사용해라.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라. 빛의 기둥이 있는 곳으로 가면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요.”
최아람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궁 0층이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어서 저 멀리 1층으로 향하는 빛의 기둥이 한 눈에 잘 들어왔다면 이곳 미궁 1층은 나무 밀도가 빽빽하고 나뭇잎이 풍성하다보니 하늘이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 미궁 1층에 진입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럼 이곳 어딘가 에도 2층으로 향하는 빛의 기둥이 있을 거라고 봐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감탄 했다는 듯 ‘오오!’하는 말을 내뱉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히 깨달을 수 있는 논리인데 다들 패닉에 빠져 있다 보니 냉정하게 정신을 유지하고 생각했던 사람은 최아람이 유일했던 것이다.
‘나도 이때 꿈일 거라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잠에서 깨려고 했으니, 가만 보면 최아람이 인재는 인재야. 얘는 나중에 어떻게 됐더라?’
탑을 100층 까지 10년간 오르며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층에서 있었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자극적인 상황이 너무 많았던지라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던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근데요.”
한 남자애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교복을 입고 안경을 쓴 소심해 보이는 인상의 학생이었다.
“왜 그러니?”
최아람이 발언권을 주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는 스무 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부담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다른 분들도 정보창 스킬창 아이템창 입으로 말하면 나타나나요?”
“응? 으응.”
최아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사람들이 그제야 그 능력을 깨닫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정보창’이라고 중얼거리며 눈앞에 화면을 띄웠다.
그 메시지 창은 본인에게만 보였다.
“분명 이 능력을 받을 때 게임 시스템이 생성 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진짜 이 능력치 창을 보면 마치 우리가 게임 캐릭터가 된 거 같아요.”
몇몇 사람들이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아.’라고 말하며 맞장구 쳤다.
최아람은 이 소심한 남학생을 보며 눈을 빛냈다.
“너 게임 많이 해봤니?”
최아람의 질문에 남학생이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게임 엄청 좋아해서 안 해본 게임이 거의 없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수줍음 가득하던 표정의 학생의 눈치 초롱초롱 빛났다.
최아람은 그런 그를 속으로 한심하게 생각할지 언정 그 속마음을 조금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창들 어떻게 이용하는 건지 알 수 있겠니?”
“네, 제가 사실 아까부터 구석에서 계속 이것저것 해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요.”
학생은 신이 나서 아이템 창에서 물건을 빼내는 방법과 포인트로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승원 역시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정보]
내구력(HP): 50 마력(MP): 10
완력(str): 10 민첩성(dex): 10 체력(con): 10
[스킬]
물의 정령LV.1 불의 정령LV.1 땅의 정령LV.1 바람의 정령LV.1
[아이템]
단검, 장검, 나무 활, 나무 화살30개, 창, 도끼, 방패
[상점창]
허공에서 단검이나 장검을 빼내고 포인트로 상점에서 물을 한 병 구입해서 눈앞에 나타나게 하자 놀라는 사람 신기해하는 사람 신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 등.
각기 다른 반응들이 터져 나오며 일대가 시끌벅적 해졌다.
그 사이 유일하게 그룹에서 거리를 두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주무르는 남자가 있었다. 승원이었다.
‘제길, 근육통 때문에 몸이 말을 안 들어.’
한 번에 힘을 되찾으려고 욕심을 부린 부작용이었다.
‘곧 있으면 사람들이 상황파악하고 2층으로 가려고 할 텐데.’
일어나서 걸어보려고 해도 통증이 심해 거북이 기어가듯 쩔뚝거릴 수밖에 없었다.
‘몸 상태는 보아하니 3일에서 7일 정도만 지나면 격통은 사라질 거 같은데.’
당장이 문제였다.
잘 걷지도 못하는 자신을 사람들이 데리고 가려고 할 리 없기 때문이다.
‘1,000포인트면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사람들 다 떠나보내고 혼자 이 숲에 남아 1,000포인트를 모두 식량을 구입하는데 쓴다면 5일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쯤 몸이 다 나아질 걸로 예상됐다.
‘하지만 좀 있으면 나타날 텐데…….’
승원은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아이템 창에서 물건을 꺼내 휘둘러보고 상점 창에서 물건을 구입해 신기하다는 듯 만져보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미궁 0층에서 튜토리얼 층이다보니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 곳에서 원래 힘을 되찾으려고 시간을 보내며 기본 지급받은 물 6병과 빵 12개를 다 먹은 탓에 무척 배가 고팠다.
‘이제 상점창을 이용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승원은 상점창에서 포인트를 50포인트를 소비해 빵과 물을 사 먹었다.
물은 운디네를 통해 충분히 수급할 수 있지만 당장은 정령술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다들 나를 우러러 보며 굉장하다고 떠 받들어 주는 걸 좋아했지만 결국 다 나한테 기대고 부탁하고 이용하려 들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스무 명의 사람들의 아이템 창의 물건들과 1층에 진입하며 받은 1,000포인트는 다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창의 능력과 스킬 창의 능력은 각기 다르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 중에 승원처럼 특별한 스킬을 보유한 사람은 10명 정도.
스킬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특정조건을 이루어서 생기겠지만 지금 당장은 없다.
그리고 미궁 저층에서 스킬이 없다는 것은 곧 생존 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죽기 쉽다는 것과 같았다.
“오! 이것 봐요!”
한 남자가 손앞에 투명한 방패를 만들어 냈다.
마법 스킬로 ‘실드 LV.1’이었다.
“오오!”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실드를 바라봤다.
곧이어 한 여성은 손바닥 위에 불덩이를 만들어 냈고 어떤 남자는 일반인이 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달릴 수 있었다.
‘파이어 볼 LV.1’이나 ‘윈드워크 LV.1’였다.
‘역시 이 그룹에는 쓸 만한 기술을 가진 녀석은 없네.’
여기서 최강의 능력은 뭐니뭐니 해도 승원이 가진 4대 정령술이었다.
하나만 가져도 대단한 정령술을 4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 파이어볼 스킬을 구사한 여성은 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불덩이를 만들어 던지는 것 밖에 없는데 불의 정령술은 불의 정령을 소환해 자신의 뜻대로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본인이 가진 스킬을 말해 봐요.”
최아람이 사람들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2층으로 향하기 전에 전력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는 본인의 기술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 했다.
아직 1층이라 지구의 때를 벗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쪽분은 스킬이 있나요?”
스무 명의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 스킬을 파악하던 최아람이 마지막으로 승원에게 다가왔다.
승원이 그룹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조심스레 묻는 것은 절반 이상의 사람들에게 스킬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윈드커터 LV.1 이라는 게 있네요.”
“한 번 보여줄 수 있나요?”
승원은 실프를 소환해 바람의 칼날을 날리는 것을 보여줬다.
일부로 능력을 숨긴 것은 물의 정령을 소환하면 자신의 포인트를 아끼기 위해 목마를 때 물을 달라고 할 것이고 불의 정령을 소환하면 식사 때나 추울 때 불을 피워달라고 할 것이며 땅의 정령을 소환하면 숙박 때 마다 화장실 구덩이나 간이 집을 지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정령술을 발휘한다는 것은 정신력을 소모해서 사용할 때 마다 머리가 피곤해졌다.
마력 수치가 아직 10이라는 제한이 있어 흥청망청 쓸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공개하면 자신의 능력에 모든 사람들이 기대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과거에 경험 댔던 것이기 때문이다.
‘윈드 커터는 싸울 때 이외에는 스킬을 쓸 일이 없으니까.’
예상대로 투명한 바람의 칼날로 근처 나무에 충격을 주는 것을 보여주자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미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으음, 누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주변 좀 봐주면 안될까요?”
최아람이 사람들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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