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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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해변에는 대부호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물론 경치가 좋을수록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은 상류층 출신답게, 또한 군수업체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는 정치인답게 멋들어진 저택을 별장으로 쓰고 있었다.
절벽 끄트머리 사방으로 바다가 보이는 완벽한 위치에 그의 저택이 세워져 있었다.
이만한 오션뷰를 매일 본다면 세계의 어느 5성급 호텔도 시시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단순히 경치만 좋은 게 아니다.
경호와 보안에도 최적의 장소다.
저택의 3면이 절벽 위 하늘과 맞닿아 있어 평지에서 올라오는 출입구만 지키면 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감히 침입할 엄두도 내기 힘들어 보였다.
과거로 따지면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마이크 부통령은 미국 최고의 사설 경호업체를 고용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저택을 지키는 상근 경호원만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무장한 특수부대 출신 베테랑 경호원 20명이면 터프하기로 유명한 미국 경찰도 백기를 들 것이다.
최치우는 바로 그곳을 뚫어내기 위해 혼자 마이애미로 왔다.
아프리카를 평정한 최강의 무장단체 헤라클래스 대원들을 부르지 않았다.
대장인 리키 한 명만 불러도 천군만마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마이애미 공항에서 해변까지 운전기사도 쓰지 않고 직접 차를 몰았다.
최치우의 행적이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의 자금력과 정보력, 인맥을 동원하면 신분을 세탁하는 건 일도 아니다.
덕분에 최치우가 지금 마이애미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5명도 안 될 것이다.
그는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보법을 쓰며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의 저택으로 올라갔다.
경공을 펼치지 않고 적당히 보법만 밟아도 절벽 끝 저택까지 오르막길을 순식간에 주파할 수 있었다.
미국은 원래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물어진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도 관광지를 제외하면 마찬가지다.
마이애미 해변이라고 해도 저택밖에 없는 절벽 위로 올라가는 길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오르막을 거스른 최치우는 저택의 대문 앞에 우뚝 섰다.
100m 앞에 세상을 우습게 보듯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문이 보였다.
굳게 닫힌 철문 뒤로는 각종 CCTV와 보안장치, 그리고 최정예 경호원들이 야간 경비를 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게 끝난다.”
최치우는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현대에 환생해 가장 치열하게 싸운 상대가 네오메이슨이다.
세계의 판도를 쥐고 흔드는 네오메이슨과 맞서 싸우며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갈 길을 분명히 찾았다.
강한 적이 있었기에 그만큼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싸움도 이제 끝이다.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은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의 저택에 비밀 자료가 있다고 확신했다.
만약 저택 지하에 론 폴 박사의 연구실이 있다면 그보다 확실한 물증은 없다.
최치우는 혈혈단신으로 마이크 부통령의 저택을 통째로 집어삼킬 작정이었다.
대문을 부수고, 경호원들과 육탄전을 벌이며 씨름할 필요도 없다.
예전의 최치우와 지금의 최치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우라노스와 누쿠크, 물과 대지의 정령왕이 인장으로 변해 최치우의 심장에 박혀 있다.
마법으로는 8서클의 벽을 깨트리며 대마도사 클래스에 도달했고, 무공은 공명정대한 금강나한권과 패도적인 아랑권으로 극의를 맛봤다.
현대의 지구가 아닌 그 어느 차원의 누구와 붙어도 대적할 상대가 없다.
최치우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존재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처억-
그가 어둠 속에서 양손을 펼쳤다.
캐스팅을 준비하는데 심장에서 파장이 울렸다.
우라노스와 누쿠크의 인장이 자연 에너지인 마나를 무한에 가깝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똑같은 8서클 마법이라도 정령왕의 인장을 두 개나 가진 최치우가 펼치면 위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스 퀘이크-!”
6서클 마법 미니 퀘이크만 해도 지축을 흔들며 균형을 파괴한다.
그런데 미니 퀘이크의 모태가 되는 8서클 마법이 원형 그대로 캐스팅됐다.
처음으로 펼쳐진 어스 퀘이크의 위력은 어둠 속 평화롭던 대저택을 찢어놓았다.
쿠우우웅-!
절벽 아래에서부터 묵직한 파동이 올라왔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다.
지금쯤 저택 안에서 잠들어있던 사람들, 그리고 야간 순찰을 돌던 경호원들은 땅이 흔들리는 걸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쩌어어어억!
콰쾅-! 콰콰콰콰쾅-!
대저택을 받치는 단단한 지반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건물 기둥이 무너지고, 지붕이 쏟아져 내리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의 요새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다.
이 모든 현상을 일으킨 최치우는 대문에서 떨어진 곳에 묵묵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아직 멀었어.”
징벌의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최치우는 마이크 부통령의 저택을 뼛속까지 탈탈 털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저항의 의지를 1%도 남겨놓지 않고 완전히 짓밟을 것이다.
그런 다음 폭군처럼 느긋하게 전리품을 취하면 된다.
“헬 파이어-!”
이번에도 8서클 마법이 캐스팅됐다.
6서클의 인페르노만 해도 광활한 대지를 불태우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8서클 헬 파이어는 이름 그대로 지옥에서 빌려온 불꽃다웠다.
파파파팍!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번쩍였다.
절대 요란한 광채는 아니었다.
푸르고 짙은 불꽃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저택을 불살랐다.
어스 퀘이크의 지진으로 뼈대가 폭삭 주저앉은 저택이 지옥의 불꽃에 휩싸였다.
특수부대 출신의 베테랑 경호부대도 무용지물이다.
최신식 보안장치와 안전 유지 장치도 8서클 마법 앞에서는 장난감이었다.
전자 기기는 어스 퀘이크가 펼쳐졌을 때부터 먹통이 됐다.
8서클 마법이 펼쳐지며 생기는 마나의 파동은 전자파의 흐름을 끊어놓을 정도로 강력하다.
구조 요청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저벅저벅.
한쪽에서는 지옥도가 펼쳐졌지만, 최치우는 굉장히 평온하게 걸음을 옮겼다.
타다닷-
그때 저택 대문 가까이에 상주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지진보다, 불꽃보다 더 무서운 사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윈드 스피어.”
슈슉- 투투툭!
바람의 창이 쏘아져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경호원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순수한 바람으로 만들어진 창이기에 부검을 해봤자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최치우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적에게 어설픈 자비를 베푸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싸움을 시작했으면 마지막 뿌리까지 철저하게 짓밟는 게 최치우의 방식이었다.
몇 번 경험해 보니 잔인하게 끝을 봐야만 최소한의 피해로 싸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화르륵- 화르르르륵-!
최치우는 무너진 대문을 지나쳐 마이크 부통령의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지진과 화재로 엉망이 됐지만 최치우는 앞마당에 산책을 나온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이렇게 쉽게 태워 버릴 수는 없지.”
최치우는 잘못된 권력에 빌붙어 호의호식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을 대저택과 함께 역사에서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대저택 지하에 있다고 알려진 론 폴 박사의 연구실을 찾아야 한다.
네오메이슨 하이 서클과 관련된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을 론 폴 박사도 생포하는 편이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날뛰는 지옥의 불꽃, 헬 파이어를 식혀야 될 것 같았다.
“블리자드!”
대지의 정령왕 누쿠크를 쓰러트리는 데 일조했던 8서클 마법이 펼쳐졌다.
최치우는 불과 몇 분 사이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8서클 마법을 3번 연속 캐스팅했다.
그것도 대지, 화염, 빙결까지 각각 다른 속성의 마법이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아슬란 대륙의 마법사들이 알면 기겁을 할 것이다.
최치우는 8서클을 돌파하며 대마도사 클래스가 됐지만, 9서클의 현자 클래스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촤좌악-
쩌저저저적!
도저히 잡을 수 없어 보이던 지옥의 불꽃이 거짓말처럼 얼어붙었다.
블리자드의 한기는 흉측하게 파괴된 대저택을 그대로 꽁꽁 얼렸다.
순식간에 얼음왕국을 만든 최치우는 지하 공간이 있을 법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구실에서 물증을 찾고, 론 폴 박사까지 확보하면 다시 헬 파이어를 캐스팅해 블리자드의 얼음을 녹일 것이다.
네오메이슨의 마지막 보루인 마이크 부통령의 대저택이 잿더미로 변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믿기 힘든 소식이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페인스가 네오메이슨의 수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마이애미 저택이 알 수 없는 자연재해로 무너졌고, 비밀 연구실에서 다량의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날이 밝고 뒤늦게 출동한 구조대와 경찰은 불타 버린 저택 지하에서 엄청난 대량 살상무기를 확보했다.
연구실에서는 무기만 남겨진 게 아니었다.
론 폴 박사가 의식을 잃고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대저택의 유일한 생존자는 다름 아닌 론 폴 박사였다.
그는 현장에서 구조됐고, 곧바로 다시 체포됐다.
최치우는 론 폴 박사의 연구실에서 카피한 증거를 알렉산드로 총장에게 보냈다.
네오메이슨의 하이 서클이 누구인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을 비롯해 그동안 저지른 악행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었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감당하기 힘든 증거를 언론에 넘겼다.
UN는 이러나 저러나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의 패기 넘치는 기자들은 물불 안 가리고 특종을 기사로 내보낼 수 있다.
전 세계가 네오메이슨의 실체 앞에서 충격을 받았다.
북미정상회담으로 지지율이 한껏 오른 미국 대통령도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정치적 노선은 정반대지만, 어쨌든 자신이 임명한 부통령이 네오메이슨의 수괴였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여의도 펜트하우스에서 유은서를 품에 안고 네오메이슨 하이 서클 멤버들이 줄줄이 연행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휴가를 내고 서울로 온 유은서는 최치우의 숙적들이 모조리 제거됐다는 사실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뻐했다.
“울지마, 이제 시작인데.”
“시작?”
최치우의 말에 유은서가 눈을 크게 떴다.
마침내 네오메이슨이라는 거대한 악의 뿌리를 들어냈는데 또 시작이라니.
최치우는 명실공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장 인기 있는, 가장 돈이 많은,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안주할 생각 따위는 아예 없어 보였다.
대체 최치우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통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꽈악-
최치우는 유은서를 더욱 세게 껴안으며 말했다.
“힘이 아닌 평화로, 핵 대신 소울 스톤으로… 이 세상을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지. 북한에 발전소를 지어주긴 하지만, 김정은 같은 독재자를 적당히 길들일 필요도 있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잖아.”
“그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들으면 놀랄 텐데.”
“괜찮아, 말해줘.”
“내가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생각하니까,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거야. 황당하지?”
“아니, 하나도 안 황당해. 최치우다워.”
최치우와 유은서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칼과 총으로, 핵무기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군주들은 잊을만 하면 튀어나왔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최치우는 그들과 다르게 평화와 대체에너지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며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
자기 손으로 구시대의 질서를 무너트린 최치우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바야흐로 세상은 최치우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