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37화 (237/243)

# 237

<슬레이어>

최치우는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를 어떻게 만났는지 회상했다.

자신이 먼저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공교롭게도 물의 정령을 여러 번 소멸시켰고, 우라노스가 하급 정령 운딘을 통해 경고를 보냈다.

결국 우라노스는 독도 인근의 해역에 출몰했고, 최치우도 피하지 않고 미쳐 버린 동해 한복판에 뛰어들며 목숨을 걸었다.

가까스로 우라노스를 소멸시킨 최치우는 소울 스톤 대신 정령왕의 인장을 얻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라노스의 인장이 심장에 새겨진 것이다.

남아 있는 최상급 물의 정령들 중에서 다음 세대의 정령왕이 나오려면 최소 수십 년이 걸린다.

그때까지 감히 최치우를 대적할 물의 정령은 없을 것이다.

우라노스의 인장은 최치우가 마법을 무한에 가깝게 쓰도록 넘치는 자연 에너지를 공급해 줬다.

동시에 정령들을 부르고, 굴복시킬 수 있는 권능을 선사했다.

특히 물의 정령이라면 최치우 앞에서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마음만 먹으면 물의 정령들을 불러내 소울 스톤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올림푸스 전용기는 수재(水災)가 난 지역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물의 정령을 찾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최치우는 나드갈의 소울 스톤을 북한에 쓰려고 했었다.

나드갈은 최상급 대지의 정령이다.

최치우는 최상급 소울 스톤이 뿜어내는 에너지 정도는 되어야 김정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전력 수급이 극도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평양과 개성 정도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의 케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최상급 소울 스톤의 압도적인 에너지로 신세계를 보여준다. 그다음부터는 내 장기판의 졸이 될 수밖에 없어.’

최치우의 생각은 대담했다.

미치광이 지도자로 불리는 김정은 위원장을 자신이 두는 장기판의 졸로 삼을 작정이었다.

소울 스톤 발전소는 짓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진이 발전소에 들러 에너지 추출 시스템을 체크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소울 스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최치우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소울 스톤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최치우뿐이다.

소울 스톤 발전소를 세우는 순간, 그 지역은 최치우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국가다.

소울 스톤 발전소를 봉쇄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연구하려고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미한 시도일 뿐이다.

최치우와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아니면 절대 소울 스톤 발전소를 유지시킬 수 없다.

미국이나 독일의 최고 과학자들도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최치우는 마음만 먹으면 은밀히 북한에 잠입해 소울 스톤을 찾아올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한참 초월한 그의 능력이면 혼자서 김정은을 암살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최상급 소울 스톤으로 발전소를 짓고, 거기서 나온 에너지의 혜택을 보기 시작하면 북한은 최치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지의 소울 스톤이 필요하다.’

최치우는 바로 그런 이유로 물의 정령이 아닌 대지의 정령을 찾아 나섰다.

첫 번째 이유는 명확했다.

인격을 지닌 최상급 물의 정령들은 절대 최치우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라노스의 인장으로 근처의 정령들을 불러낼 수 있지만, 기껏 나타난 정령이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곤란해진다.

인격이 없는 하급, 중급, 상급 정령들은 최치우의 도발에 반응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최상급 정령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치우가 정령왕 우라노스를 비롯해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까지 소멸시킨 사실이 널리 퍼졌을 것이다.

특히 정령왕이 사라지면 같은 속성 정령들은 영향을 받아 힘이 약해진다.

물의 정령왕이 공석이 된 지금, 최상급 물의 정령들은 최치우를 피하기 바쁠 것 같았다.

반면 대지의 정령은 다르다.

여전히 대지의 정령왕이 건재하기 때문에 기운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최치우는 최상급 대지의 정령 나드갈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나드갈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최상급 정령들은 각기 다른 인격의 개별적인 존재다.

비록 이름과 형체는 똑같고, 권능도 비슷하지만 인격이 다른 것이다.

아마 최치우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드갈도 있을 것 같았다.

최치우가 대지의 정령을 찾아 나선 또 다른 이유는 실용성 때문이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대지의 소울 스톤을 개발하는 데 노하우를 쌓아왔다.

노하임의 소울 스톤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케냐에 보내게 됐다.

나드갈의 소울 스톤이 파괴된 것은 쓰디쓴 약이었다.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집중적으로 연구한 대지의 소울 스톤을 가져다주면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았다.

이후로는 적어도 대지의 소울 스톤을 개발하는 일만큼은 자신감을 품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다.’

최치우가 주먹을 꽉 주며 각오를 다졌다.

싱가폴에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사이 최상급 소울 스톤을 확보하고, 에너지 추출에도 성공해야 한다.

김도현 교수는 새로운 대지의 소울 스톤만 있으면 곧장 실험이 가능하게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최치우가 먹이를 물어주는 어미 새처럼 소울 스톤을 갖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슈우우우우-

최치우를 태운 올림푸스 전용기는 빠른 속도로 구름을 가르고 있었다.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다.

서울에서 고작 2시간 거리, 일본 간사이 지방의 중심지 오사카였다.

최치우는 한국인들에게도 여행지로 너무나 익숙한 오사카에 최상급 대지의 정령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얼마 전 일본 전역을 공포로 물들인 오사카 대지진이 확신의 근거다.

그만한 자연재해에 정령이 개입하지 않았을 리 없다.

‘어쩌면… 또 다른 정령왕을 보게 될지도.’

대지의 정령왕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대지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지의 정령왕이 환태평양 지진대의 핵심인 일본에 주로 머무른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딱 맞는다.

‘소울 스톤을 얻는 게 목적이니까……. 앞길을 막으면 정령왕이든 뭐든 쓰러트릴 수밖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지만 물의 정령왕을 소멸시켰기 때문일까.

최치우는 자연계의 절대자인 정령왕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과연 일본에서 어떤 대지의 정령을 만나게 될지, 최치우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

최치우는 아슬란 대륙에서 대마도사를 넘어 현자 클래스의 벽을 깨트린 최초의 마법사였다.

현자 제로딘은 마법의 완성자라는 이름으로 아슬란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러나 현재 제로딘도 9서클 마법을 마음껏 캐스팅할 수는 없었다.

한 번에 소모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8서클이나 7서클 마법을 쉬지 않고 연달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9서클 마법을 쓰는 현자 클래스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대의 지구에서 최치우는 7서클 마법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

오히려 현자 제로딘으로 살아갈 때보다 7서클을 마음껏 캐스팅하기는 더 수월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현대의 지구는 아슬란 대륙보다 마나가 적은 차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무공과 마법을 함께 익힌 적은 처음이었고, 덕분에 마법이 무공을 또 무공이 마법을 자극하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그리고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의 인장이 심장에 박힌 후 마나 수급이 무한에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그때 이후로 7서클이나 6서클 마법을 연달아 펼치는 게 가능해졌다.

덕분에 마법의 숙련도는 가파르게 늘었다.

운동이든 공부든 많이 하는 게 최고다.

죽어라 많이 하는 사람이 재능까지 지녔다면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마법은 마나의 한계 때문에 많이 펼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최치우는 우라노스의 인장으로 마나의 한계를 뛰어넘고, 무한정 마법을 캐스팅하며 수련하게 된 것이다.

최치우는 곧 8서클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일본에서 8서클의 벽을 깨트리고 대마도사 클래스에 도달하게 될지 모른다.

심장에는 정령왕의 인장, 오른손에는 극강의 무공, 그리고 왼손에는 대마도사 클래스의 마법을 갖춘 삼위일체의 절대자.

최치우는 다른 어느 차원에서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력의 영향이 가장 적은 현대의 지구에서 정점에 다다르는 셈이다.

파직- 파지직-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오직 최치우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가 울렸다.

최치우의 몸이 주위의 마나와 공명해 스파크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사카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1주일 전 발생한 대지진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았다.

무너진 건물들, 떨어진 간판, 기울어진 전봇대.

내진설계에 철저한 일본이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만약 같은 규모의 지진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진을 맞이하는 일본인의 태도도 놀라웠다.

후쿠시마 쓰나미의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엄청난 대지진이 오사카라는 대도시를 덮쳤고, 여진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일본인들은 비교적 침착한 표정이었다.

언제 다시 2차, 3차 대지진이 덮칠지 모르는데 패닉에 빠진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속으로는 극도의 불안에 떨지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자연재해에 단련이 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독특한 국민성 때문인지 몰라도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빚을 갚아주게 되는 건가.’

최치우는 재밌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오사카 부근에서 최상급 대지의 정령, 또는 대지의 정령왕을 소멸시키면 일본의 지진도 잦아들 것이다.

당연히 환태평양 지진대의 영향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정령들이 기세를 부리며 지진을 더욱 자주, 강하게 부채질하는 현상은 사라진다.

그것만 해도 일본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은혜를 베푸는 셈이다.

사실 일본이 우리 역사에 저지른 죗값을 떠올리면 굳이 도움을 주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와 올림푸스를 위해 소울 스톤이 필요했다.

게다가 최치우는 도쿄대학에서 특급 비밀 파일을 빼돌리며 올림푸스의 기틀을 다졌다.

자연스레 그때의 빚을 갚아준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이놈은… 도심 한복판에 있군.’

한참 걸어가던 최치우가 멈춰 섰다.

오사카 중심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이다.

대지진의 영향으로 가게는 전부 문을 닫았고, 인적도 드물었다.

엉망진창이 된 골목에서 정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최치우는 평소처럼 대지와 반대되는 속성의 마법을 펼치지 않았다.

우라노스의 인장을 받아들인 이상 굳이 다른 속성 마법으로 정령을 자극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오오오오-!

정신을 집중하고, 자연에 떠도는 마나를 심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러자 심장에 새겨진 우라노스의 인장이 힘을 발휘했다.

파아아아아!

무형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정령왕의 부름이다.

우라노스의 권능이 주위의 정령들로 하여금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 것이다.

쿠구구궁-

파스슥, 푸스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최치우의 왼쪽에서 작은 싱크홀이 생겨났고, 오른쪽 건물더미에서는 뭔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둘이다!’

최상급 대지의 정령 나드갈이 동시에 나타났다.

흙과 바위로 만들어진 재규어 두 마리가 좌우에서 최치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격을 지닌 최상급 정령을 한자리에서 동시에 만난 것은 처음이다.

[따라와라, 인간.]

왼쪽의 나드갈이 먼저 의지를 전했다.

“나를 기다렸군.”

최치우는 짙은 호승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나드갈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도 최치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두 마리의 나드갈이 인도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저 싸우기 편한 장소로 가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정령이 인간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대지의 정령왕.’

최치우는 대지의 정령왕이 자신을 부른다고 느꼈다.

그게 아니면 최상급 정령이 두 마리나 나와서 안내할 이유가 없다.

판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최치우는 대지의 정령왕과 함께 최소 두 마리의 최상급 정령을 상대하게 됐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최치우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패배하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피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올림푸스의 단초를 제공해 준 일본에서 다시 한번 운명이 격변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