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35화 (235/243)

# 235

<어둠을 빛으로>

북한은 어둠의 땅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정치범으로 내몰려 수용소에 갇혀 있고, 수십만 명이 극빈층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북한 정부는 평양과 개성의 모습을 외부에 공개하며 자신들도 잘사는 정상국가라 주장한다.

하지만 평양이나 개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층이라는 뜻이다.

두 도시가 아닌 북한 시골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최근 강력한 대북 제재로 전력 수급이 어려워지며 평양에서조차 밤에 전등을 켜는 게 어려워졌다.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정치적 배경이 되어준 평양 시민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김정은의 권력은 종이호랑이처럼 약해질지 모른다.

백두혈통이라는 상징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현실 정치는 냉정한 법이다.

북한도 조금 특수할 뿐, 예외는 없다.

민심이 집단적으로 등을 돌리면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군부가 들고 일어설 수 있고,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노동당 정치 엘리트들이 실권을 잡으려 들지 모른다.

이제는 김정은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벼랑 끝에 몰렸다는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끝까지 핵을 지키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도박에 모든 것을 걸지, 아니면 핵을 포기하면서 북미 수교를 통해 개방과 경제발전으로 노선을 변경할 것인지.

물론 어느 하나 쉬운 선택은 아니다.

핵을 고집하면 대북 제재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고, 끝내 미국이 나서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대대적인 전면전이 아닌 정밀 폭격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어차피 미국은 김정은만 제거하면 북한 정부를 장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핵화와 개혁 개방이 쉬운 선택인 것도 아니었다.

돈은 양면성을 지닌 위험한 물질이다.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경제 발전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불러왔다.

개혁 개방의 급물살은 정부에서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만약 잘 먹고 잘살게 된 북한 주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된다면, 아무리 3대에 걸친 세뇌 작업을 해놓았어도 독재 정권 유지를 장담할 수 없다.

아랍의 봄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옆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만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도 민주주의라는 열망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과연 북한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결국 핵을 선택하든 경제를 선택하든 김정은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3대에 걸쳐 세습과 독재가 이뤄졌다는 것부터 비정상이었다.

영원한 독재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인정하기 싫어도 지금부터 그 이후를,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처억-

김정은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마주 앉은 남자를 쳐다봤다.

고작 26살의 나이.

어린 지도자라고 불리는 자신보다 몇 살은 더 어린데 이미 세계를 좌우하는 남자.

개인 자산만 수십조 원이 넘는다고 알려졌고, 한 번의 결정으로 수백 조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맨.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의 대통령과 UN 사무총장을 1 : 1로 만나는 정치력, 100m 달리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육체 능력, 그리고 드넓은 지구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인기까지.

모든 걸 가졌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남자, 그는 바로 최치우였다.

최치우는 평양의 조선노동당 본관에 혼자 들어와 있었다.

다시 한번 김정은과 독대를 하게 된 것이다.

지난 만남은 평양 특사단 방북 일정을 소화하며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사전 조율부터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진행됐다.

최치우는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고, 김정은은 그를 만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오.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남조선 대통령이 아니라 최치우 동무가 들고 오고, 아니 그렇소?”

친서를 읽고 침묵을 지키던 김정은이 입을 열었다.

최치우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피차 시간낭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만남에서 확인했다.

최치우는 김정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해봐야 대한민국 대통령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꼴밖에 안 된다.

괜히 무의미한 대화로 말실수를 남길 필요는 없다.

그보다 본질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게 낫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북한의 중심지에서 최치우는 누구도 하지 못할 말을 꺼냈다.

“위원장께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알고 싶습니다. 핵입니까, 경제입니까?”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김정은에게 이런 식으로 답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령 북한의 2인자로 거론되는 김영철이나 황병서, 최룡해라 하더라도 즉결 심판을 당할 것이다.

최치우는 방금 북한 최고존엄에 대한 신성모독을 한 셈이었다.

꽈악-

아니나 다를까, 김정은이 살이 붙은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눈썹이 불쾌함으로 꿈틀거리는 것도 보였다.

집무실 곳곳에 숨어있는 비밀 경호원들은 김정은의 말 한 마디면 잽싸게 튀어나와 기관총을 갈길 것이다.

물론 최치우는 북한의 비밀 경호원 따위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들의 위치와 병력을 다 파악했고, 마음만 먹으면 조선노동당 본관을 혼자서 불태울 자신도 있었다.

남들은 모르지만 지금 목숨이 위험한 쪽은 최치우가 아닌 김정은이다.

최치우는 금강나한권과 아랑권을 대성하고, 7서클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

그가 김정은을 죽이고 북한을 안전하게 탈출하는 확률이 결코 낮지만은 않을 것이다.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선택하면 그다음은 뭐가 될 것 같소?”

김정은은 최치우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덧붙였다.

길길이 날뛰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미치광이라는 김정은의 캐릭터는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었다.

실제 미치광이라면 북한이라는 나라를 통치할 수 없다.

군부의 노괴들을 다스린 것은 김정은에게 그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김정은의 고민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안 솔직할 것은 또 뭐요. 내래 최 동무를 아오지에 보내갔어, 총살을 시키갔어? 마음 툭 놓고 말해보라우.”

김정은도 최치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치우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 친서를 받아왔다.

미국과 북한,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혹시 최치우가 잘못되면 북한은 미국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가지 옵션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에서 김정은이 스스로 귀중한 선택지를 자를 리 없다.

최치우는 김정은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독한 대답을 쏟아냈다.

“핵을 선택해도, 경제를 선택해도 위원장의 미래를 100% 보장받기는 어렵습니다.”

“…….”

최치우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김정은도 계산을 마쳤을 것이다.

감언이설로는 잠시 잠깐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완전한 설득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핵을 선택하면 어두운 미래가 펼쳐질 확률이 100%입니다. 핵 보유국의 환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최치우가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철저한 보안 검사를 마쳤기에 총이나 흉기를 꺼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어깨를 움찔했다.

365일 24시간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삼천궁녀 대신 기쁨조를 거느린 북한의 황제이지만, 매일 암살 위협에 노출된 신세다.

최치우는 어쩔 수 없는 비웃음을 참으며 사진 한 장을 건넸다.

“CIA에서 받은 사진입니다.”

권총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파괴력을 담은 사진이었다.

“여, 여기는… 특각 아니오?”

오죽하면 김정은이 말을 더듬었다.

특각은 북한 지도자들의 비밀 별장이다.

북한 전역에 여러 특각에 세워져 있지만, 정확한 위치와 구조는 베일에 싸여 있다.

김정은도 머리를 식힐 때 자주 찾는 특각이 있었다.

CIA의 사진은 바로 그 특각을 찍은 것이었다.

스텔스 정찰기가 북한 영공으로 침입해 레이더 사진을 찍고 돌아간 것이다.

만약 정찰기 말고 폭격기가 들어와 특각에 폭탄을 투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정은의 얼굴에서 유전이 터진 듯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미국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쾅-!

김정은이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육중한 체중이 실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최치우는 집무실 안팎의 비밀 경호원들이 동요하는 기척을 느꼈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았다.

탁자를 치고 위세를 과시하는 것은 김정은이 코너에 몰렸다는 뜻이다.

여유는 강자의 특권이다.

반면 초조함과 불안함은 약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동물만 봐도 맹수는 함부로 짖지 않는다.

뜻밖의 사진을 보고 패닉에 빠진 김정은은 마음 깊이 동요하고 있었다.

“미국의 역도패당들이 무력으로 위협한다면, 우리도 완성된 핵 무력을 쓰갔어!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쓸 수 있단 말이오!”

“아직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치우는 차분하도 담담한 어조로 김정은을 진정시켰다.

놀라지도 않았고, 맞받아치며 같이 흥분하지도 않았다.

마치 선생님이 어린 학생을 다독이는 듯한 태도였다.

한바탕 씩씩거린 김정은이 숨을 헐떡이며 최치우를 바라봤다.

뿔테 안경 너머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표현은 저렇게 거칠게 해도 살아날 방법을 알려달라는 마음의 외침이 들렸다.

“핵을 선택하면 어두운 미래가 펼쳐질 확률이 100%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를 선택하면… 어두운 미래가 펼쳐질지, 아니면 밝은 미래가 펼쳐질지 위원장께서 하기 나름입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오?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면 나라가 뒤집히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갔소?”

“베트남은 어떻습니까? 베트남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북한의 혈맹인 중국을 보면 되지 않습니까?”

“고것은…….”

김정은의 말문이 막혔다.

극소수이기는 해도 개혁 개방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며 일당독재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싱가폴도 있습니다. 리콴유는 26년 동안 집권하며 경제발전을 이뤘고, 그의 장남인 리셴륭이 총리가 된 다음에도 90세가 다 되도록 선임장관으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죽어서까지 국부로 추앙받고 있죠. 리콴유의 길을 걸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자신이 없으십니까?”

“리콴유의 길… 싱가폴…….”

“다른 길은 없습니다. 경제를 선택해야 밝은 미래를 여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길 겁니다.”

“허나 우리 군부의 생각은 또 달라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오.”

“소울 스톤 발전소가 들어서 전력 문제를 해결한다면 주민들이 열렬히 환영할 것이고, 군부의 경강펴들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겠죠.”

김정은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만큼 소울 스톤 발전소가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가만두고 보갔어? 비핵화 검증이 다 끝나야 제재를 풀라고 들 거이 불 보듯 뻔한 사실이고, 중국도 별 힘을 못 쓰지 않소.”

“미국 대통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면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을 즉시 허가해 줄 겁니다.”

“고거이 정말이오?”

“사실입니다. 진실 여부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직접 확인하시죠.”

“조미수뇌회담을 가져라?”

“그게 순서 아닙니까?”

“고렇지, 고거야 고렇지.”

김정은이 두꺼운 목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치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김정은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다.

3대 세습의 독재자가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김정은의 역할이 조금 더 필요하다.

미치광이로 불리는 김정은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최치우는 세계 역사를 다시 쓰는 주역이 됐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도 최치우의 손으로 성사시키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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