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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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평화전쟁이 벌어지고,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이 의미심장한 연설을 마치며 많은 게 달라졌다.
그 이전까지 네오메이슨이란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주요 국가의 정상 중에서도 네오메이슨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네오메이슨에 대해 들어봤어도 단순히 금융계의 거물들이 뭉친 결사대로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이 연설에서 언급한 세력, 반군을 지원하고 생화학무기까지 전달한 주체가 바로 네오메이슨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알렉산드로 총장은 공식적으로 네오메이슨을 언급하지 않았다.
섣불리 이름을 밝힐 경우 괜한 혼란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UN 내부의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UN은 작은 지구나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모인 곳이다.
그만큼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게… 네오메이슨인가 뭔가는 금융계의 기득권 집단이라며. 근데 뭐가 아쉬워서 반군을 키우고 생화학무기를 사준 거야?”
“생각해봐. 아프리카 여기저기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생화학무기도 터지면 난리가 나겠지?”
“그렇지. 지금처럼 하루 만에 진압이 될 리는 없으니까.”
“그럼 결국 미국이랑 다른 나라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고, 그래도 한번 불이 붙은 내전은 쉽게 못 잡을 거고. 군수업체만 대박 나는 거잖아.”
“아-! 그래서?”
“듣기로는 군수업체 주식을 대량으로 샀다던데. 실질적으로 인수한 곳도 있고.”
“진짜 무섭다. 돈 때문에 그런 일을 꾸밀 수 있다니…….”
“평화전쟁이 아니었다면 계획대로 됐겠지?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돈은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무진장 벌고.”
“생각할수록 평화전쟁은 대단한 거네.”
“그럼. UN 역사상 최고의 성과로 기록될 거 같아.”
“하긴, UN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잖아.”
“저번에 대규모로 직원들이 잘린 것도 네오메이슨이랑 연관된 사람들이었대.”
“정말?”
“정말!”
UN 본부 곳곳에서 직원들이 모이면 저마다 정보를 나누고 소문을 전파했다.
제법 많은 이야기를 듣는 간부급 직원 사이에서는 최치우의 이름도 나왔다.
“이번에 아프리카 평화전쟁말인데……. 올림푸스가 설계하고 실행까지 함께했다는군.”
“치우 초이? 또 그 사람이야?”
“그러게 말이네. 사무총장이랑 가까운 사이라는 건 다 알려졌지 않나.”
“평화전쟁까지… 이 정도면 보이지 않는 손 아닌가?”
“아니지,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는 손이지. 결국 진실은 알려지니까 말이네.”
“그것도 그래.”
“그 치우 초이의 여자 친구가 본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해.”
“설마!”
“사실이야. 국제 금융 감시 위원회 소속의 한국인 여자라고 들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 UN도 올림푸스가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신임 사무총장이 치우 초이에게 단단히 의지하는 거 같기는 하던데. 네오메이슨? 그 실체를 파헤치는 특수기구도 올림푸스와 비밀리에 상의하면서 만든다는군.”
“세계를 움직이는 한국인이라… 기분이 묘해.”
“그렇지? 낯선 현상이긴 해.”
회사로 따지면 임원에 해당하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 목소리를 낮췄다.
그럴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누가 들으면 곤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올림푸스의 최치우가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을 움직였고, 평화전쟁과 이후의 네오메이슨 색출 작업까지 주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회를 잡은 최치우는 칼을 확실하게 뽑았다.
유은서가 납치당했을 때는 UN 내부의 네오메이슨을 숙청하는 데 그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네오메이슨의 본진을 향해 진격할 것이다.
그들이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이라는 미친 짓을 추진하다 걸렸기 때문에 명분은 충분하다.
미국 정부도 UN의 조사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과 네오메이슨과 손을 잡고 아프리카 반군을 지원했다는 오해를 살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알렉산드로 총장과 최치우는 백악관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빠져나갈 틈이 없는 외통수였다.
백악관에서 특수기구 창설을 인정하는 도장을 찍으면 네오메이슨의 입지는 벼랑 끝으로 몰리는 셈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 순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
백악관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대통령 집무실은 마치 폭풍의 눈 같았다.
감히 미국 대통령을 근처에 두고 소란을 피울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악관 안은 고요하고 잠잠했다.
하지만 집무실을 중심으로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물론 물리적인 폭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백악관 직원들, 나아가 미국 연방 정부와 각종 기관을 뒤집어놓을 법안에 대통령이 서명하기 직전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인을 하면 엄청난 권한을 가진 특수기구가 창립될 것이다.
UN이 주도해서 만들 특수기구는 한시적으로 FBI와 CIA를 지휘할 수 있다.
목적은 오직 하나다.
아프리카의 반군들을 키우고 생화학무기를 지원한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UN은 평화전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압도적인 여론과 명분을 무기 삼아 막대한 권한의 특수기구 창설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수기구는 미국 정부마저 성역 없이 조사할 게 분명했다.
백악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인을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와 여론의 비난이 미국 정부를 향하게 된다.
가뜩이나 범람하고 있는 음모론에 불을 붙여주는 격이다.
“사인을 하겠습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대통령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왜 UN에 조사를 일임해야 합니까?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은 여론을 빌미로 억지를 부리는 것뿐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주장을 꺼냈다.
수행비서와 경호원마저 모두 물린 집무실에는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이크 부통령은 침중한 얼굴로 대통령을 설득하려 애썼다.
“이대로 위대한 미국 정부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훼손하시겠습니까?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악용될 전례를 만들지 마십시오.”
“무작정 시간을 끌다간 더 큰 대미지를 입을 겁니다. 중간 선거가 3개월 뒤라는 걸 모르십니까!”
답답함을 느낀 대통령이 언성을 높였다.
세계 최강대국을 자부하는 미국의 2인자,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도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죽일까?’
네오메이슨을 이끄는 최고위층 하이 서클의 멤버인 마이크 부통령은 잠깐 깊은 갈등을 했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완전한 1 대 1 미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24시간 미국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면 이 순간밖에 없다.
‘아니, 아니지. 내가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 더 위험해진다.’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은 짧은 고민을 접었다.
네오메이슨의 첨단 무기를 사용하면 이 자리에서 곧바로 대통령을 죽일 수 있다.
문제는 뒷감당이다.
비밀경호국은 마이크 부통령을 1순위 용의자로 올려놓을 것이고, CIA와 FBI의 정예들이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네오메이슨과의 연결 고리가 드러날지 모른다.
원래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생각이다.
그럼에도 마이크 부통령이 짧게나마 미국 대통령 암살을 고민한 것은 그만큼 평정심이 흔들렸다는 증거다.
네오메이슨은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단 하루의 평화전쟁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로인해 네오메이슨이 입은 타격과 손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수백 년 넘게 세상을 알게 모르게 지배했다는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사실 금전적인 피해는 만회할 수 있고, 자존심도 회복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네오메이슨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결과다.
금융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나누며 세계 곳곳에서 음모를 꾸며왔던 네오메이슨이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그간의 악행은 물론이고, 비열한 방식의 담합과 자본 약탈이 알려지면 하이 서클 멤버들의 사회적 지위는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제껏 네오메이슨을 이렇게까지 궁지로 몬 사람은 최치우밖에 없었다.
스슥- 스스슥-
마이크 부통령은 대통령이 친필로 사인하는 모습을 쳐다봤다.
“이것으로 미국 정부는 UN의 특수기구 창설에 동의를 표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의자를 뒤로 돌렸다.
마이크 부통령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깨물었다.
‘올림푸스… 최치우…….’
하지만 분노해도 어쩔 수 없다.
새로운 시대를 부르는 역사의 강렬한 흐름은 이미 바뀌었다.
마이크 부통령을 비롯한 네오메이슨도 가만히 물러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저력을 우습게 볼 수 없다.
그러나 대세가 기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
“백악관에서 서명을 했습니다.”
“내부 반발이 극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군요.”
“대표님이 미리 작업을 해둔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총장님의 노력 덕분이죠.”
알렉산드로 총장과 최치우는 국제전화로 덕담을 나눴다.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통화 내용은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대표님과 상의한 그대로 추진하겠습니다.”
“궂은 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일, 내게 맡겨주어 거듭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알렉산드로 총장의 말투는 극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평화전쟁을 준비하고 실행하며 최치우의 진면목을 어느 정도 엿봤기 때문이다.
최치우가 나서지 않았다면 UN 최대의 업적으로 손꼽히는 평화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모든 공을 알렉산드로 총장에게 돌렸다.
물론 암암리에 최치우가 핵심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지만, 공명심을 버리고 영광의 자리를 양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 벌고 싶고, 아무리 유명해도 더 칭송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순간의 명예를 쌓는 대신 먼 미래를 내다봤다.
UN과 알렉산드로 총장이 주역이 되어야만 네오메이슨을 추적하는 특수기수를 창설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미 차고 넘치는 명예쯤은 집착하지 않고 양보할 수 있었다.
최치우의 목표는 네오메이슨을 모조리 불태우는 것이다.
단순히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네오메이슨처럼 기득권을 꽉 쥐고 있는 과거의 권력이 사라지면 올림푸스와 같은 새로운 미래 세력이 거침없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인류를 위해서도, 올림푸스를 위해서도 네오메이슨은 공존할 수 없는 적이다.
최치우는 특수기구를 어떻게 구성할지 알렉산드로 총장과 미리 계획을 세워 놓았다.
CIA와 FBI의 수사권까지 지휘할 수 있는 만큼 속전속결로 성과를 내는 최강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네오메이슨의 몸통은 꼬리를 자리고 숨어들 것이다.
일단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네오메이슨은 방대한 조직이다.
사람들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돈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전 세계에 투자한 자금과 지분을 회수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세상 무엇보다 돈을 신봉하는 네오메이슨이 천문학적인 자산을 포기할 리 없다.
“내분이 일어나겠지. 탐욕의 끝은 언제나 배신이니까.”
최치우는 네오메이슨이 UN 특수기구의 추적을 피해 숨는 과정에서 배신자들이 나올 거라 확신했다.
잘 나갈 때는 똘똘 뭉쳐도 위기에 처하면 금방 무너지는 게 이익집단의 본색이다.
네오메이슨은 종교적 광신도들의 모임을 닮았지만, 동시에 극단적으로 이익을 추구한다.
이번 기회에 그들의 추악한 본모습이 연달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빨리 결단을 내렸으니 백악관에 상을 줘야지.”
최치우가 사뭇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읊조렸다.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백악관의 주인도 최치우가 그리는 그림 속 등장인물이다.
최치우의 보폭은 점점 넓어져 지구가 좁을 지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