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31화 (231/243)

# 231

<신세기>

새로운 세상은 거저 열리지 않는다.

구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 시대가 도래할 때는 언제나 피바람이 불었다.

인류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산업화는 식민지 전쟁을 낳았다.

민주화 역시 핏빛 투쟁 위에 세워진 역사다.

시기와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희생 없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없다.

아프리카 대륙도 마찬가지다.

길고 긴 암흑의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피값을 치러야 한다.

최치우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며 아프리카에 새로운 시대를 불러오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 세대의 격전지는 아프리카가 될 것이고, 그 대륙의 운명을 개척해 준 영웅이 곧 인류의 영웅으로 남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동양 문명이 서양을 압도했었다.

서양은 산업혁명 이전까지 미개한 문명에 속했다.

잉카 제국을 침략한 스페인도 악랄함과 전투력만 앞섰을 뿐, 농경 기술을 비롯한 여러 문화는 한참 뒤처졌다.

원래부터 서양의 백인들이 인류 역사를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팽창 이후 세계의 중심이 서양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이후 세계의 중심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제이차세계대전이 기점이 됐고, 같은 서양이지만 구대륙 유럽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권력이 넘어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 질서가 영원하리란 보장이 없다.

최치우는 한쪽으로 쏠린 무게 추를 옮기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중심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올림푸스가 될 것이다.

또한 올림푸스가 마음껏 활개 치며 성장할 무대는 다름 아닌 아프리카 대륙이다.

지금 흘리는 피는 빛나는 미래를 열기 위한 대가이다.

퍽! 퍼퍽-!

최치우의 주먹이 순식간에 두 명의 안면을 함몰시켰다.

총을 든 반군들이 아무리 많아도 속수무책이었다.

건물 지하로 진입한 최치우는 벌써 20명 가까운 무장 병력을 죽이거나 쓰러트렸다.

허리춤에 찬 권총은 쓰지도 않았다.

금강나한권과 아랑권이면 충분했다.

이제 최치우의 눈앞에는 르완다 반군의 우두머리와 소수의 병력들, 그리고 새하얀 실험복을 입은 과학자 몇 명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모든 동작을 멈추면 목숨은 살려주지. 하지만 움직이면…….”

최치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마 안 남은 반군들이 움직였다.

이미 수많은 동료가 죽어 나가는 꼴을 봤어도 개의치 않았다.

르완다 반군의 우두머리를 호위하는 병력은 마약과 세뇌에 찌든 광전사였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오직 우두머리를 지키기 위한 인간병기인 셈이다.

“윈드 스피어-!”

최치우는 낌새를 느끼자마자 캐스팅을 마쳤다.

슈우우우욱-

콰아악!

일직선으로 곧게 날아간 바람의 창이 반군 병력의 가슴을 꿰뚫었다.

간발의 차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이었다.

하지만 모두를 막을 순 없었다.

투다다다다다다!

최치우를 향해 다른 병력이 기관총을 난사했다.

뒤가 막힌 좁은 공간, 최치우가 아니라면 온몸이 벌집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몸을 바닥에 붙였다.

마치 그림자가 꺼지듯 총알보다 빠르게 움직인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총구가 바닥을 겨누기 전, 윈드 스피어를 생성하며 로켓처럼 몸을 튕겨냈다.

“윈드 스피어!”

다시 생성된 바람의 창은 무차별적으로 쏘아지는 총알을 막는 역할이었다.

그러는 사이 한껏 도약한 최치우의 몸은 어느새 기관총을 잡은 병력 앞에 다다랐다.

빠바바박-!

최치우의 길쭉한 다리가 반원을 그렸다.

선풍각으로 한 번에 총을 든 반군 여럿을 쓸어버린 것이다.

마치 볼링에서 스트라이크가 나오듯 최치우의 다리가 지나가는 궤적에 걸린 병력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냥 발차기가 아니다.

내공이 실린 최치우의 다리는 쇠몽둥이보다 단단했고, 엄청난 속도가 더해져 맞는 사람의 뼈와 장기를 부숴 버린다.

“후! 말 좀 듣자.”

최치우는 가볍게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까닥였다.

이것으로 르완다 반군의 우두머리를 호위하던 병력을 완전히 정리했다.

우두머리 한 사람과 과학자들밖에 남지 않았다.

실험복을 입은 과학자들은 한참 전부터 얼어붙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서 기적을 펼치며 반군들을 쓸어버리는 최치우에게 대항할 배포가 없었다.

반면 르완다 반군을 일으킨 우두머리는 까만 피부보다 더 어두운 눈빛으로 최치우를 노려봤다.

“홧 두유 원트!”

아프리카식 발음으로 질문을 하는 목소리는 걸걸하고 탁했다.

최치우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순히 원하는 대답을 해줄 리 없었다.

“마두페 두르. 네오메이슨의 지원을 받아 르완다 국경에서 반군을 창설했고, 신규 반군 연합을 구성함. 마약을 이용해 병사들을 세뇌했으며 생화학무기를 보유. 이만하면 즉결 처분이지만, UN에서 증언하고 평생 감옥에서 썩어라.”

최치우는 유창한 영어로 마두페 두르의 앞날을 예언하듯 말해줬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절망에 빠진 마두페는 눈이 뒤집어졌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크아아아아-!”

입에 거품을 문 마두페가 품에서 수류탄 두 개를 꺼냈다.

밀폐된 지하에서 수류탄을 터트리면 다 죽는다.

마두페 두르도 죽을 수밖에 없다.

최후의 순간, 자살 폭탄 테러로 최치우라도 죽이고 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당해줄 최치우가 아니었다.

“플래쉬!”

7서클 마법 플래쉬가 발동됐다.

캐스팅과 동시에 공간이 뒤틀렸다.

사람의 눈은 물론이고, 그 어떤 감각으로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쉭-

타악!

“이걸 찾는 건가?”

최치우는 두 손을 들어 수류탄을 보여줬다.

미친 듯이 달려들며 수류탄을 던지려던 마두페 두르는 입을 떡 벌렸다.

눈앞에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흑백의 대비가 선명한 마두페의 손은 텅 비어 있었다.

불과 1초, 아니 0.1초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최치우는 찰나의 순간을 갖고 놀며 7서클 마법 플래쉬로 수류탄을 옮겨왔다.

단거리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플래쉬의 응용법은 무궁무진하다.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와 싸울 때도 플래쉬로 미쓰릴 필드를 이동시켜 역전의 실마리를 잡았었다.

마두페에게서 수류탄을 뺏는 건 그에 비해 훨씬 간단한 일이었다.

“미련하긴.”

최후의 발악을 가뿐하게 비웃은 최치우가 바닥을 박찼다.

눈 깜짝할 사이 마두페에게 근접해 무릎으로 명치를 가격했다.

그냥 맞아도 아픈 니킥에 급소를 가격당한 마두페는 침을 질질 흘리며 철퍼덕 엎어졌다.

“끄… 끄흐으으…….”

옹골찬 야심을 품고 네오메이슨의 지원을 받았던 반군 우두머리가 쓰러졌다.

바깥에서도 상황이 정리됐을 것 같았다.

최치우는 실험복을 입은 과학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사연으로 여기서 생화학무기를 만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죗값은 치르고 봅시다.”

과학자들 역시 중요한 증인이다.

국제사회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는 생화학무기가 어떻게 르완다까지 흘러들어 왔는지,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이로써 최치우는 평화전쟁의 명분을 확보했다.

동시다발적 선제공격으로 피를 봤다는 비난을 막아낼 완벽한 증거를 얻었다.

만약 헤라클래스와 UN 평화유지군이 나서지 않았다면 반군 연합이 생화학무기를 썼을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최치우는 자신의 두 손에 들린 수류탄을 쳐다봤다.

수류탄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운명을 양손으로 떠받친 느낌이었다.

“됐다, 이제.”

안도 섞인 최치우의 혼잣말이 짧고 굵은 전쟁의 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우리는 르완다 반군의 창설자, 마두페 두르를 생포했습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믿기 힘든 증언을 자백했습니다. 외부의 지원을 받아 반군 세력을 키우고, 생화학무기까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마약으로 소년병을 길들이는 극악한 범죄가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UN 대회의실을 울리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전 세계 각국의 대표단은 다들 심각한 얼굴이었다.

특히 알렉산드로 총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몇몇 대표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만약 UN 평화유지군이 아프리카 내부의 조력자들과 함께 기습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하루라도 늦어 르완다에서 생화학무기가 사용됐다면 그 혼란은 누가 책임지고 수습할 수 있습니까?”

장내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누구도 감히 먼저 나서서 입을 열기 힘든 분위기였다.

사무총장의 독선과 절차 무시를 탓하기 어렵다.

섣불리 알렉산드로 총장을 공격했다간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게 뻔하다.

벌써부터 세계 유수의 언론은 아프리카 반군 토벌 작전을 평화전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으킨 단 하루의 전쟁.

언제 영화로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기세를 몰아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우리 UN이 할 일은 누가, 왜 아프리카의 반군들을 지원했는지 밝혀내는 것입니다. 6개의 반군 세력을 육성하고, 생화학무기까지 들여보낸 책임을 정확하게 찾아 묻는 것, 그 일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연설이 끝났다.

잠시 압도당했던 청중은 조금 늦게 박수 세례를 터트렸다.

짝짝짝짝짝짝-!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몇몇 사람들도 박수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거스를 수 없는 물줄기가 만들어졌다.

이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연설에서 네오메이슨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그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본질은 사라지고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음모론을 양산할 것이다.

문제는 말보다 행동이다.

네오메이슨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확히 누가 아프리카 반군에 개입했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받아 UN 내부에 특별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면서 CIA나 FBI의 협조도 받을 수 있다.

이것 역시 최치우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네오메이슨이 아무리 로비를 해도… 이 흐름을 막을 순 없다.’

회의실 뒤편에서 팔짱을 끼고 연설을 지켜본 최치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드로 총장의 연설은 흠 잡을 데 없었다.

전 세계의 국민들은 외부 세력이 아프리카 반군들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물론 전쟁 자체를 무조건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UN 평화유지군은 단 하루만에 6개 반군의 거점을 박살내며 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사람들이 전쟁 피로감을 느끼며 뉴스에 시달릴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다.

단 하루의 평화전쟁을 위해 최치우는 치밀하게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다.

UN을 포섭했고, 이스라엘로 날아가 모사드까지 아군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는 적어도 당분간 반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근현대 이후 아프리카 역사상 처음으로 내전 걱정 없이 경제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최치우의 신념과 열정, 끈기와 확신이 검은 대륙에 새로운 시대를 선물했다.

올림푸스는 아프리카의 새 시대를 함께 누리며, 또한 구시대의 악마들을 청산해 나갈 것 같았다.

‘뿌리까지 뽑는다, 네오메이슨.’

최치우는 뚜벅뚜벅 정도를 걷다 보니 어느덧 네오메이슨의 뿌리에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그 실체를 똑똑히 볼 날이 머지않았다.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이라는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좌절된 네오메이슨도 이제는 크나큰 위기감을 느낄 게 분명했다.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싸움이 물 위로 드러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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