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28화 (228/243)

# 228

***

올림푸스의 전용기가 남아공에 도착했다.

최치우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소울 스톤 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하고,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의 지도자를 만났다.

최근 2달 사이 최치우가 독대한 사람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UN의 알렉산드로 사무총장, 독일의 메르켈 총리,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제국 대통령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글로벌 리더다.

그러나 26살에 불과한 최치우가 모두를 아우르며 연결 고리를 만들어냈다.

아프리카와 뉴욕, 독일과 평양, 서울을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오가며 퍼즐을 맞췄다.

덕분에 네오메이슨보다 한발 앞서 전쟁을 일으킬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천 명 가까이 덩치를 키운 헤라클래스는 언제든 출동할 태세였다.

케냐와 남아공에 절반씩 상주하고 있는 병력은 최치우의 명령만 떨어지길 기다렸다.

다들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용병이다.

특히 엄청난 고액의 실전 수당을 원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걸려 있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에게 생사가 오가는 실전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두둑한 수당을 챙기고, 무시 못 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리키부터 정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의 영향을 받는 대원들도 당연히 정상일 리 없었다.

헤라클래스의 광적인 전투력에는 못 미치지만, UN 평화유지군도 착실히 규모를 불렸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직권을 최대한 활용해 전투 병력을 대폭 늘렸다.

나중에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질타를 받겠지만, 눈앞의 승부에 올인한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방패막이 돼 주기로 했다.

결과가 좋으면 상임이사국도 알렉산드로 총장을 어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곧 벌어질 전쟁에 UN 사무총장의 운명도 함께 달린 셈이다.

“한국군의 협조는 어때?”

전용기에서 내린 최치우는 마중을 나온 이시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데없이 한국군의 동향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이시환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표님.”

“차질 없이?”

“국방부에서 전달받은 그대로입니다.”

“오케이. 보고는 여기까지.”

최치우가 공식적인 보고를 모두 접수했다.

그제야 이시환은 편하게 말을 놓았다.

“D-Day를 당기려고?”

“고민하고 있어. 일단 상황을 좀 보고, 가볼 데도 있으니까.”

“가볼 데?”

“부족한 2%를 채워줄 곳을 찾았어. 어렵겠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최치우가 아리송한 이야기를 했다.

헤라클래스와 UN 평화유지군, 그리고 아프리카 곳곳에 파병을 나온 한국군으로 작전을 수행할 계획이었다.

물론 한국군은 지원병력이다.

정제국 대통령은 알렉산드로 총장처럼 직권으로 전투 병력을 늘릴 수 없다.

그러나 한국 파병군이 후방 지원부대를 맡아주면 든든한 힘이 된다.

유사시 보급과 치료, 민간인 보호 등 국지전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뒤를 맡아준 만큼 헤라클래스와 UN 평화유지군은 전투에만 집중하면 된다.

최치우는 정제국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그 대가로 아프리카의 파병 부대의 적극적인 지원을 따낸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준비면 충분하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전력이다.

6개의 반군 연합이 얼마나 강할지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된다지만, 그래도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치우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지우고 싶었다.

만에 하나 반군 연합이 기습을 막아내고 특유의 게릴라전에 돌입하면 전쟁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네오메이슨이 미군을 움직여 아프리카에 개입할 명분을 줄지도 모른다.

또 승리라고 해서 다 같은 승리는 아니다.

압도적인 승리와 상처뿐인 승리는 천지차이다.

아군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치우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로 갈 계획이야?”

“오늘은 남아공에 있는 헤라클래스를 점검하고, 내일 다시 이동할까 해. 전용기 대신 일반 여객기로.”

“보안 때문이지?”

“응, 최종 목적지는…….”

최치우가 말끝을 흐리자 이시환이 애타는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최치우의 행보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시환도 남아공본부장으로 올림푸스의 주요 임원이다.

그렇지만 최치우의 결정을 미리 알 수는 없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에서 최치우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1인자다.

임원들과 상의를 하지 않고 중요한 결단을 내려도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이제껏 최치우의 파격적인 선택 덕분에 지금의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라지 마,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이시환은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나 화들짝 놀란 것은 분명했다.

금방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최치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시점에 이스라엘은 무슨 일로 가는 거야?”

“아까 말했잖아. 부족한 2%를 채워줄 곳이라고.”

“이스라엘이? 중동 문제로도 정신이 없을 텐데.”

이시환의 지적은 정확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 위치한 나라다.

미국의 강력한 우방인 동시에 중동을 화약고로 만든 주요 원인 국가 중 하나다.

엄청난 군사력과 경제력, 정보력, 거기에 국제사회에서의 로비 능력까지 갖췄지만 이스라엘이 아프리카에 개입할 확률은 낮아 보였다.

하지만 최치우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부는 남아공, 중부는 케냐가 우리 거점이지. 그럼 아프리카 북부는?”

“현재로선 UN 평화유지군을 믿어야…….”

“이스라엘은 아프리카 북부와 가까워. 이집트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어차피 군대의 직접적인 개입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 모사드가 나서면 아프리카 북부의 반군을 평정하는 게 훨씬 쉬워질 수도 있어.”

모사드는 악명 높은 이스라엘의 특수 정보기관이다.

러시아의 첩보 능력이 약해진 이후 미국의 CIA, 영국의 MI6와 함께 세계 3대 정보기관으로 불린다.

최치우는 이스라엘을 설득해 모사드의 힘을 빌릴 작정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언제나 한계를 깨부수며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시환도 왠지 최치우라면 모사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기적을 현실로 만들고,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는 남자.

최치우의 시선이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동의 화약고에서 아프리카를 위한 칼 한 자루를 빌릴 수 있을까.

미지의 D-Day를 앞두고 시간은 점점 빨리 흐르고 있었다.

***

남아공에서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무장 상태를 점검한 최치우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원래 D-Day로 예정해 둔 10월 10일이 되려면 아직 2주 넘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른다.

이시환의 보고에 의하면 반군 연합이 기존의 게릴라 부대를 흡수하는데 열을 올리는 중이다.

대륙 각지에 퍼진 6개의 신규 반군이 세력을 규합하고, 완벽한 전력을 확보하기 전에 먼저 기습해야 한다.

최치우는 더블텐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D-Day를 바꾸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UN의 알렉산드로 총장과 사전 합의를 마쳤기 때문이다.

헤라클래스는 철저하게 최치우와 리키의 명령을 따르는 사설 무장단체다.

하지만 UN 평화유지군은 다르다.

나름의 지휘 체계와 절차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사무총장이라고 해도 말 한마디로 손바닥 뒤집듯 출동 일자를 바꾸기 어렵다.

그러나 최치우는 자잘한 데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평화유지군을 움직이는 건 어디까지나 알렉산드로 총장의 몫이다.

본인의 직함을 걸고 어떻게든 수를 낼 것이다.

그것조차 못할 사람이라면 함께 전쟁을 치를 자격이 없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이스라엘의 중심지, 텔아비브에 도착한 최치우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전용기 대신 여객기를 탔고, 텔아비브에서도 휘황찬란한 리무진이 아닌 일반 택시를 이용했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동 패턴을 자주 바꾸는 게 좋다.

매번 여객기만 이용하는 것도, 그렇다고 매번 전용기만 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카멜레온처럼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사람이 돼야 수많은 눈을 따돌릴 수 있다.

최치우는 이미 국제사회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됐다.

조금만 방심해도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뒤를 밟을지 모른다.

그나마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운신의 폭이 자유로운 편이다.

유럽의 정보기관 스파이들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마음대로 활개 치지 못한다.

딩동- 딩동-

텔아비브의 으슥한 뒷골목에 도착한 최치우가 초인종을 눌렀다.

여느 가정집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주택이었다.

“מי אתה(미 아타)?”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인터폰을 통해 히브리어가 울렸다.

누구세요, 라는 뜻의 단순한 질문이다.

그러나 최치우의 대답은 무척 특이했다.

“옐레드 쉘 코카브.”

낯선 발음이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최치우는 방금 자신을 ‘별의 아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히브리어로 옐레드는 아이, 코카브는 별을 뜻한다.

어쨌거나 보통 사람이라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자신을 별의 아이라 소개할 리 없다.

당연히 무시하거나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화를 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끼이이익!

닫혀 있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최치우의 이상한 대답을 듣고 안에서 문을 열어준 것이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

최치우는 당황하지 않고 문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모사드의 안전 가옥 중 하나다.

세계 3개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 내부에도 수많은 안전 가옥을 두고 있다.

안전 가옥 자체는 최치우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과거 한국에서도 유영조 전 대통령을 국정원 안가에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샬롬, 프레지던트 초이.”

주택의 대문 안으로는 아주 작은 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그곳에 새하얀 랍비 복장을 한 남자가 서서 최치우를 반겼다.

“샬롬, 반갑습니다.”

최치우는 유대교의 랍비 방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척이라도 해주는 게 예의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전통 의상을 입은 남자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최치우는 그를 따라 모사드의 안전 가옥 깊숙이 들어섰다.

현관부터 복도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치우의 예리한 감각을 속일 순 없다.

‘외부 저격수 5명, 안가 내부에 3명, 지하에 4명, 그리고 주인공까지. 참 많이도 준비했다.’

안전 가옥을 지키는 무장 병력만 무려 12명이었다.

저격수들은 외부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고, 안가 내부와 지하에도 7명이 대기 중이다.

조금만 수상한 기색을 보여도 전후좌우와 발밑에서 즉시 7명이 튀어나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격수들의 빨간색 조준 레이저가 온몸을 수놓을 게 뻔했다.

모사드의 안방인 텔아비브에서 이만한 병력이 움직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원인은 국제사회에서 최치우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다.

12명의 무장 병력은 최치우를 견제하는 동시에 호위하는 역할도 맡았다.

만약 제3자의 테러가 발생하면 그들은 목숨 걸고 최치우를 지킬 것이다.

최치우처럼 저명한 인물이 이스라엘에서 사고를 당하면 모사드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둘째 원인은 역시 모사드의 VIP를 지키기 위해서다.

안전 가옥의 가장 깊은 방에서 홀로 최치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12명의 모사드 정예 요원을 대동할 정도로 그의 신분이 높다는 뜻이었다.

달칵-

“야훼의 축복이 있기를.”

최치우를 안내한 랍비 복장의 사내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감히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듯 경건한 태도였다.

최치우는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젊다?’

모사드의 VIP를 발견한 최치우가 눈을 크게 떴다.

예상보다 너무 젊은 사람이 몸에 딱 붙는 정장을 빼입고 앉아있었다.

더구나 남자도 아닌 여자였다.

마치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 정장을 입었지만, 얼굴과 몸매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것이었다.

모사드의 VIP가 이렇게 젊다는 것도, 관능적인 여자라는 것도 놀라웠다.

“아프리카에서 전쟁을 일으킬 거라구요?”

그녀는 인사를 생략한 채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최치우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헤라클래스와 UN 평화유지군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사실은 극비이기 때문이다.

모사드와 접촉하면서도 절대 언급한 적 없었다.

“과연, 모사드의 명성이 진짜인가 봅니다.”

최치우는 표정을 풀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어떻게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어차피 모사드가 같은 편이 되어주면 모두 상관없는 문제다.

최치우의 반응이 의외였을까.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가워요. 모사드의 제2국장, 라파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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