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27화 (227/243)

# 227

<전쟁과 평화>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 가장 비겁한 평화가 낫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면 대한민국과 북한의 상황이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대량 살상 무기를 갖춘 현대 국가끼리 전쟁을 시작하면 양 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핵이 있으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결과가 주어질 것이다.

핵무기 앞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

일단 북한의 김정은이 핵 발사 버튼을 누르면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당연히 전쟁에서는 한미 연합군이 승리할 터, 그러나 잿더미가 된 서울을 무슨 수로 복구한단 말인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속으로 가장 기뻐할 국가는 인접한 중국과 일본이다.

실제로 패전국 일본은 625 전쟁 덕분에 경기를 회복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대한민국도 베트남 전쟁 덕을 톡톡히 봤다.

네오메이슨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도 막대한 반사이익을 누리기 위해서다.

최치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혼자 평양에 잠입해 김정은을 사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도 고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김정은과 협상의 여지가 있음을 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소울 스톤 발전소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아직 섣부른 예측이지만, 중국이나 싱가폴식 모델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북한은 지도에서 사라질 거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아프리카는 상황이 다르지.”

최치우는 대형 화면에 띄운 아프리카 지도를 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한반도와 아프리카는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단순히 대한민국이 최치우의 조국이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고, 미국과 중국도 자동으로 개입하게 된다.

반면 최치우가 아프리카에서 일으키려는 전쟁은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도 아니다.

진짜 전쟁, 진짜 혼란을 초래하려는 네오메이슨의 거점을 타격하는 것뿐이다.

탁- 탁- 탁-!

최치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형 화면을 손으로 짚었다.

그의 손길을 받은 자리에는 새로운 반군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네오메이슨의 지원을 받아 수면 아래에서 덩치를 키운 반군들의 거점이다.

최치우는 신규 반군의 거점을 파악하기 위해 수백억 원의 돈을 아낌없이 지출했다.

어나니머스를 비롯해 세계 최고의 정보집단에게 거액의 선금과 상여금을 투자한 건 기본이다.

영국 최고, 아니 유럽 최고인 MI6에게도 거액의 예산을 우회 지원하며 정보를 의뢰했다.

MI6는 영국 정부와 왕실을 위해 존재하는 정보기관이지만, 때로는 외부의 의뢰도 받아들인다.

물론 아무나 돈만 많이 준다고 MI6와 거래를 시작할 수는 없다.

최치우는 라이프치히 테러 사건을 해결하며 MI6와 신뢰를 쌓았다.

게다가 얼굴이 명함일 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지녔고, 수십조의 개인자산을 보유한 거물이다.

그런 최치우가 직접 부탁했기 때문에 MI6도 기꺼이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정제국 대통령이 나서도 MI6를 움직일 수는 없다.

국제사회에서 최치우의 영향력은 이미 대한민국 대통령을 넘어서고도 남았다.

“D-Day는…….”

지도를 살펴본 최치우가 달력으로 눈을 돌렸다.

10월 10일.

완전한 숫자 10이 겹치는 날, UN 평화유지군과 헤라클래스가 아프리카 각지의 반군 거점을 덮칠 것이다.

“더블 텐.”

UN과 올림푸스 최고 수뇌부들은 더블 텐 작전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을 정했다.

더블 텐까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그사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케냐에 건립할 세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 부지도 결정해야 한다.

최치우는 누구보다 바쁘게 시간을 쪼개어 쓰며 전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10월 10일은 최치우에게도, 인류 역사에서도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 같았다.

***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판문점 남측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2,000명이 넘는 기자단이 모여들었다.

한국 기자 1,000명, 외국 기자 1,000명.

엄청난 규모의 취재진을 맞이하기 위해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2주 내내 밤을 새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9월이 됐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더웠다.

그리고 마침내 판문점 북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이 국경선을 넘었다.

“와아아-!”

짝짝짝짝짝!

기자실은 물론, 생중계로 화면을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쳤다.

국민들이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전쟁과 핵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실마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제국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김정은과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최종담판은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력에 따라 북미회담 성사가 결정된다.

최치우가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처럼, 이제는 정제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단독 회담, 오찬과 산책, 두 번째 확대 회담, 그리고 저녁 만찬으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정제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며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명시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처음으로 비핵화를 입에 올리고 약속한 것이다.

물론 북한의 약속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

이제껏 수도 없이 속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선언은 한반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미국은 북한의 핵 기술이 완성되기 전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제국 대통령이 유능하다는 건 내가 잘 아니까, 북미정상회담까진 무난하게 연결하겠지. 문제는 그다음이지만… 직접 만나본 김정은도 마냥 미치광이는 아니었어. 이번에 협상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최치우는 여의도 펜트하우스에서 TV를 통해 두 정상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역사적인 장면이지만 담담했다.

바로 자신이 직접 저 장면을 연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으로 최치우를 꼽았다.

평양 특사단으로 방북해 김정은과 독대를 한 최치우가 결정적인 카드를 내밀었고, 그로 인해 김정은이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널리 퍼졌다.

올림푸스 홍보 팀에도 진위 여부를 묻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기자들의 추측이 대부분 맞는 말이기에 확인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홍보 팀에게 무응답으로 일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이지만, 남북정상회담의 공로를 정제국 대통령에게 돌린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올림푸스가 나서서 자화자찬하지 않아도 세상은 최치우의 공을 인정하고 있다.

원래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최치우는 더 이상 본인을 높이는 말을 꺼낼 이유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알아서 그의 움직임을 해석하고, 언제나 최상의 찬사를 보내준다.

고작 26살의 나이에 초월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평화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정작 당사자인 최치우는 스스로 만든 역사적인 회담에 연연하지 않았다.

남북, 그리고 북미의 평화는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가능하면 2년 안에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고, 북한 전역의 천연자원을 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바심을 내고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평양에 다녀오고 1달도 안 되어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당분간 김정은을 다루는 트랙은 정제국 대통령에게 맡겨두면 될 것 같았다.

최치우는 평화 대신 전쟁이라는 악역으로 눈을 돌릴 차례였다.

“한 달 남았군.”

그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처럼 낮고 묵직하게 울렸다.

전쟁과 평화, 평화와 전쟁.

동전의 양면 같은 역사의 중심에서 최치우가 움직이고 있었다.

***

우우웅- 우우우웅-

깊은 밤,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인데 최치우의 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눈을 뜬 최치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뻗었다.

아무리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잊는다지만, 그에게도 충분한 수면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단잠을 방해받는 것보다 불쾌한 일은 또 없다.

하지만 폰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한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남아공본부장 이시환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이시환은 한국 시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중요한 컨퍼런스 콜을 걸 때도 항상 한국 시간을 배려한다.

그런 이시환이 야심한 새벽에 남아공에서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형, 무슨 일 터졌어?”

최치우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치우야…. 아니, 대표님.”

전화기 너머 이시환이 호칭을 정정했다.

둘도 없는 대학 선후배 사이가 아닌 공적인 업무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뭔데 그래. 말해봐.”

“바로 보고해야 할 상황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연합체를 형성한 신규 반군들이 기존의 게릴라 반군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것들이 판을 키우는군.”

최치우가 침대에서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도저히 누워서 받을 보고가 아니었다.

네오메이슨의 지원을 받는 신규 반군은 모두 6개.

이들은 이례적으로 연합을 형성해 동시다발적 내전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게릴라와 반군에게도 손을 뻗친 것이다.

잘못하면 10개 이상의 반군이 같은 날, 같은 시각 발호할지 모른다.

10월 10일을 D-Day로 잡은 최치우는 촉각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더블텐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겠는데. 이상 징후의 정도는 어느 정도지?”

“다행히 우리가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걸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레이더에 잡힌 반군들의 거점에는 변동이 없지만, 대신 멀리 떨어진 반군들끼리 사람을 보내며 연락을 주고받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최치우는 대번에 감을 잡았다.

만약 올림푸스의 의도를 눈치챘다면 신규 반군들은 거점을 옮겼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반군들끼리 접촉이 늘어났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네오메이슨이 직접 키운 6개의 반군 연합을 포함해 다른 세력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압도적인 물량 공세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들려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둘째는 네오메이슨의 때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반군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네오메이슨의 음모가 수면 위로 드러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무조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해.”

최치우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함께 절박함까지 담겨져 있었다.

만에 하나 네오메이슨과 반군들이 먼저 칼을 뽑으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때 가서 헤라클래스와 UN이 나서봤자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내전을 빌미로 미군이 개입하며 모든 게 어그러질 수 있다.

네오메이슨이 준비를 마치기 직전, 기습적으로 일망타진하는 것만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정 정리해서 이틀 안에 남아공으로 갈게. 리키한테도 말해두고, 준비해줘.”

“그럼 더블텐의 D-Day는……?”

“앞당겨야지. 날짜는 미정, UN이랑은 내가 직접 협의할 테니 걱정하지 마.”

최치우의 입에서 D-Day를 당긴다는 말이 나왔다.

10월 10일까지 손 놓고 기다릴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칼을 뽑아 검은 대륙을 노리는 음모의 싹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이시환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차질 없게 준비하겠습니다, 대표님.”

“곧 봅시다, 이시환 본부장.”

전화를 끊은 최치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에 환생에서 가장 많은 피를 보게 될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영혼에 각인된 전투 본능이 꿈틀거리는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니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전쟁이다.”

최치우는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눈을 빛냈다.

지금은 흔들릴 때가 아니다.

전장의 사신, 멸망의 인도자 치우의 진가가 아프리카에서 발휘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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