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25화 (225/243)

# 225

<위험한 거래>

파격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6인의 평양 특사단이라고 불리지만, 핵심은 정부에서 나온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이다.

물론 최치우와 이지용, 두 사람의 경제인 대표단이 지니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 대표단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다.

하지만 북한 고위급 당국자와의 회담에서 경제인 대표가 정부 대표를 허수아비로 만든 경우는 없었다.

경제인이 북한 문제에 나서봐야 손해만 보기 십상이다.

그런데 최치우는 과감하고 대담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며 김영철을 휘어잡았다.

평화가 정착되면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지어줄 수 있다는 말에 북한의 2인자 김영철은 상기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곧장 자리를 비우고 밖으로 나간 것도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 같았다.

북한에서 김영철의 보고를 받는 상급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바로 3대 세습의 주인공인 김정은이다.

김영철은 김정은에게 직통 전화를 걸어 방금 벌어진 일을 설명할 것이다.

최근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 개발이다.

완성 단계에 이른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를 개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런 김정은에게 올림푸스의 투자와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자존심을 높이며 배짱을 부릴 대상이 아니었다.

‘반드시 미끼를 물게 돼 있다.’

최치우는 여유만만했다.

그가 보여준 카드는 조커였다.

카드 게임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압살하는 치트키가 조커다.

상대가 종잡을 수 없는 김정은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소울 스톤 발전소를 카드로 내밀면 미국 대통령도 1 : 1 미팅 일정을 잡을 것이다.

경제 발전과 자원 개발이 시급한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승부수를 던진 최치우는 김영철이 돌아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돌발 상황에 갈피를 잃은 북한 고위급 당국자들은 애써 침착한 얼굴을 지켰다.

하지만 최치우의 급부상으로 존재감을 잃은 정부 대표단 두 명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 비서실장은 불쾌함을 참지 못했다.

국정원장이 말리려 했지만, 고개를 돌려 최치우를 향해 핀잔을 쏟아냈다.

“최 대표님, 정부와 상의 없이 그런 말을 즉흥적으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회담장이지만, 북한 당국자들이 함께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치우를 비판한 것이다.

안 그래도 어색하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특히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인 대표단은 더욱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나마 연륜이 깊은 조영필은 괜찮다.

그러나 아직 어린 에릭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인기 아이돌 가수라고 해도 차원이 다른 압박을 느낄 것이다.

수십만 명이 환호하는 무대와 달리 이 자리에선 누구도 에릭을 우대하지 않는다.

늘 에릭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매니저도 회담장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에릭은 안절부절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하고 있었다.

“비서실장님,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때 최치우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뜻밖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것 같았다.

덕분에 에릭도 손가락을 그만 떨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치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6인의 특사단 모두 각자의 분야를 대표해서 평양에 온 것 아닙니까? 저는 경제인 대표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가급적 정부 대표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비서실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국정원장도 아까보다 더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에릭은 다시 손가락을 떨며 얼어붙은 공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신 이지용 부회장은 남들 몰래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경제인들은 매번 정치인들에게 이용을 당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을 서고, 각종 명목으로 세금이 아닌 준조세를 상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업도 잘못한 게 있고, 정치 권력의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1원 한 장 벌어보지 못한 정치인들이 기업인에게 이래라저래라 갑질을 심하게 할 때가 잦다.

최치우는 한국 정부의 2인자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대통령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최치우의 기개는 평양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비서실장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국정원장의 실권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두 사람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 보복이 의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치우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모든 건 결과로 말하면 된다.’

비서실장에게 겁을 먹을 정도라면 올림푸스를 헛 키운 셈이다.

최치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 왔다.

평양에서 던진 승부수로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건지면 게임 끝이다.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론에 밀려 감히 시비를 못 걸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철컥-

그때 마침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김영철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1인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돌아온 북한의 2인자가 최치우를 지목했다.

“경애하는 우리 최고 지도자 동지께서 최 동무를 만나겠다고 하시네.”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장내를 휩쓸었다.

오직 최치우 혼자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은 당황해서 갈피를 못 잡는 얼굴이었다.

평양 특사단의 성패는 김정은을 만나는 것에 달려 있다.

김정은을 직접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는 게 대통령 비서실장의 가장 큰 임무였다.

그러나 김정은이 워낙 변덕이 심한 스타일이라 특사단을 만날지 미지수였다.

그런데 최치우가 성벽 같은 북한 지도층의 경계심을 와르르 무너트린 것이다.

국가적 관점에서 최치우와 김정은의 독대는 잘된 일이다.

다만 특사단의 모든 공로가 최치우에게 돌아가게 됐으니 정부 대표단은 벌레 씹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시죠.”

자리에서 일어난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김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은 여기서 계속 회담을 하면 좋갔소. 북남의 교류를 위해 전력으로 힘을 써주시라오.”

의례적인 인사말을 남긴 김영철이 최치우와 함께 회담장 밖으로 나갔다.

고위급 회담은 한순간에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진짜 게임은 최치우와 김정은, 두 사람 사이에서 열리게 될 것이다.

평양의 시계가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개 속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

최치우는 회담장이 위치한 건물을 벗어나 차를 타고 이동했다.

덕분에 평양 시내의 낯선 광경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커다란 구형 벤츠의 뒷자리에 앉아 평양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지.’

평양은 북한에서 선택받은 계층만 거주할 수 있는 특수 구역이다.

그렇기에 평양의 모습만 보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판단하면 안 된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모습, 같은 피를 지닌 사람이라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이들 역시 경제 발전을, 인권을, 그리고 보다 많은 자유를 원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독재 정치에 억눌려 있지만, 자유를 원하는 것은 본능이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어김없이 민주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먹고살 만해지면 자유와 인권을 찾는 게 유구한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증명된 인간의 본성이었다.

‘북한의 자유를 위해서는 경제를 발전시키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지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벗어날 수 없으니까.’

정치적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 혹은 전쟁을 일으켜 독재 정권을 밀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제 개발과 자본주의 문화 확산으로 북한을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키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의 맛을 알아버린 북한 주민들은 두 번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올림푸스가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고, 북한 전역의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자본주의 물결이 퍼질 것 같았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막으려고 노력을 해도 돈이 돌고 도는 것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최치우는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다.

단순히 올림푸스가 북한이라는 미개척지를 개발해 돈을 버는 게 끝이 아니다.

개혁 개방의 물결로 3대 세습 독재 정권을 천천히 무너트리는 것.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앞당기는 발판이 되려는 것이다.

“최 동무, 내래 한 가지 당부를 해도 되갔습네까?”

구형 벤츠가 멈추자 김영철이 고개를 돌렸다.

나이로 따지면 김영철은 최치우의 작은 할아버지 연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어린 최치우에게 나름 예우를 갖추고 있었다.

최치우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갖췄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말씀하시죠.”

“우리 최고 지도자 동지께서는 화통하신 성품을 지니셨다우. 좋은 것과 싫은 것이 확실하다는 뜻 아니갔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김영철의 당부는 간단했다.

김정은 앞에서 심기를 거스를 언행을 삼가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피차 똑같은 입장이라는 말로 당부를 일축했다.

말 한 마디로 총살을 시키고, 멀쩡한 사람을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는 북한 지도자를 만나는 데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김영철도 최치우의 패기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는 더 이상의 조언을 삼가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최치우도 차에서 내려 김영철 옆에 나란히 섰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위대한 조선노동당 본관이라우.”

김영철의 설명을 들은 최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에서 보던 장소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조선노동당 본관에는 다름 아닌 김정은의 집무실이 들어서 있다.

최치우는 대한민국 국민 중 최초로 김정은을 직접 만나는 사람이 됐다.

처척- 척!

김영철을 알아본 병사들이 줄 지어 거수경례를 올렸다.

바로 옆에서 함께 걷는 최치우도 사열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실감이 나는군.’

북한 군인들의 경례 때문일까.

베일에 싸인 김정은을 만난다는 게 실감이 났다.

최치우는 긴장을 하는 대신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승부와 거래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상대가 핵무기 하나로 전 세계와 끝장 승부를 벌이는 김정은이라 해도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젊은 영웅과 북한의 젊은 독재자.

두 사람의 만남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을 것 같았다.

***

드디어 만났다.

최치우는 먼저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본 김정은의 모습은 화면보다 더 우스꽝스러웠다.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뚱뚱한 몸매에 촌스러운 작업복, 그리고 사다리꼴 모양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김일성을 벤치마킹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웃음이 나올 뻔했다.

게다가 김정은의 목소리도 생각보다 얇고 가늘어서 더 위험했다.

인사를 나누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면 대번에 분위기가 싸늘해졌을 것이다.

다행히 위기를 넘긴 최치우는 김정은과 마주 앉아 숨을 골랐다.

어차피 신변잡기나 안부 따위는 서로 관심이 없다.

“김영철 부위원장 말로는 소울 스톤 발전소, 고것을 우리 공화국에 지을 수도 있다……. 고렇게 들었소.”

“맞습니다. 올림푸스는 소울 스톤 발전소를 비롯해 북한의 자원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우리 자원이야 중국도 러시아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 아니오.”

“전 세계가 원하는 소울 스톤 발전소가 북한에 들어선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겁니다. 대신 올림푸스가 일정한 자원의 개발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거래의 윤곽은 나왔다.

올림푸스와 북한이 서로 줄 수 있는 게 명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차다.

대북제재가 풀리기 전에 독자적으로 투자를 진행할 수는 없다.

최치우는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김정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누구나 아는, 하지만 누구도 꺼내지 못하는 말을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그다음 순서로 미국과 정상회담까지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핵을 포기하면 모든 게 간단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공화국의 안전이 보장 되갔소?”

“이대로 굶어 죽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승부를 걸 때입니다.”

“뭐라고 했소?”

뿔테 안경 너머 김정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최치우가 북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총살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자신이 뱉은 말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강하게 나갔다.

“같이 승부를 겁시다. 적어도 북한에서 배고파 죽는 사람은 없도록, 전기가 모자라는 곳은 없도록 올림푸스가 나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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