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20화 (220/243)

#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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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태양은 화산의 용암처럼 대지를 뜨겁게 녹이고 있었다.

언제 추운 겨울이었냐는 듯 사람들은 무더위를 원망하기 바빴다.

그러나 여름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여름은 휴가의 계절이다.

올림푸스 직원들도 대부분 여름휴가 스케줄을 짜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설립 초창기부터 업계 최고 대우를 고집했다.

여러 사업에 성공하고, 세계를 이끄는 글로벌 대기업이 됐어도 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경영자들은 비용 절감이라는 미션을 맞이하게 된다.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하는 게 당장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에 새로 합류한 임원들 중에는 경영과 회계 전문가도 있다.

그들 역시 약간의 비용 절감으로 올림푸스의 순이익을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최치우의 선택은 단호했다.

그는 직원들의 대우를 조금이라도 낮추고 싶지 않았다.

그럴 여력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올림푸스는 창사 이후 멈추지 않고 성장을 이어가는 추세다.

설령 다른 기업에 비해 직원 대우가 과도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올림푸스의 비교 대상은 다른 회사가 아니다.

최치우는 비용 절감을 말하는 임원에게 딱 잘라서 말했다.

“올림푸스는 이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직원들에게도 온 세상이 부러워할 대우를 해주는 게 당연합니다.”

CEO의 철옹성 같은 의지 앞에서는 아무리 경영 전문가라 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세금을 비롯해 R&D 투자 등 다양한 부분에서 돈이 새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직원 처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덕분에 올림푸스 직원들은 올해도 어느 기업보다 두둑한 휴가비를 받게 됐다.

휴가 기간도 예전보다 넉넉하게 주어졌다.

인원이 늘어나며 서로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림푸스가 마냥 편하기만 한 직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청년들이 가장 가고 싶은 꿈의 직장이며 선망의 대상이지만, 업무 강도는 살벌하기로 유명하다.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은 가차 없이 낙오된다.

올림푸스는 한 명의 폭탄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고생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치열한 업무 환경이 조성된 만큼, 세상을 바꾼다는 보람과 함께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다.

“사무실 분위기가 밝아진 것 같군요.”

대표실 밖으로 걸어 나온 최치우가 말했다.

그의 옆에 선 임동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철이라 그런 것도 있고, 사옥을 이전한다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 돈 것 같습니다.”

“소문이 참 빠릅니다.”

“어느 임원이 소문을 흘렸는지 알아봐도 되겠습니까?”

“됐어요. 큰 비밀도 아니고, 뭘 그렇게까지.”

최치우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임동혁은 요즘 들어 부쩍 임원들의 군기를 잡고 있었다.

총무 이사 백승수, 홍보 이사 김지연처럼 내부 승진을 한 임원들이 있지만 외부 영입도 적지 않았다.

외국인 임원도 꽤 섞여 있으니 자칫 잘못하면 단단하던 올림푸스의 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부사장에 임명된 임동혁이 책임감을 느끼고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더구나 최치우가 해외 일정으로 여의도 본사를 비우는 일이 잦아지며 사실상 임동혁이 국내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과거 재계의 망나니라 불렸던 임동혁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올림푸스를 이끌었다.

올림푸스는 시가총액 기준 국내 재계 서열 2위의 기업이다.

임동혁의 모기업인 한영 그룹을 추월한 지 오래다.

그렇기에 올림푸스의 2인자라면 그만한 자격을 끊임없이 증명할 필요가 있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원래부터 타고난 촉과 승부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자신을 담아낼 그릇을 찾지 못해 방황했을 뿐, 올림푸스에서 각성한 모습이 이제는 제법 잘 어울렸다.

매번 구박을 퍼붓는 사이지만 최치우도 임동혁에게 의지를 하고 있다.

그가 없으면 지금처럼 마음 편히 여의도 본사를 비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다.

“부사장님, 같이 갑시다.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야죠.”

“네, 대표님.”

최치우는 사옥 이전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을 작정이었다.

벌써 여러 차례 국토부와 의견을 주고받았다.

기존의 빌딩을 매입하면 일이 편하겠지만, 올림푸스의 신규 사옥은 주춧돌부터 직접 세우고 싶었다.

최치우와 임동혁.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면 대한민국에서 못 할 일이 없다.

아무래도 오늘 올림푸스는 새로운 영토를 접수하게 될 것 같았다.

***

최치우가 사옥을 짓기 위해 내건 조건은 까다로운 편이었다.

우선 서울 시내여야만 한다.

직원들을 경기도로 출퇴근 시키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이나 여의도, 광화문 일대는 이미 과포화 상태로 빌딩을 새로 지을 땅이 없다.

도심 중심에 들어가려면 기존의 빌딩을 매입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돌리면 무섭게 성장하는 신규 산업 단지가 손짓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도심보다는 신규 산업 단지가 낫다.

직원들이 사옥 가까이 집을 구하기도 편리할 것이다.

그렇게 결정된 지역이 바로 마곡지구다.

마곡지구는 서울 강서구 일대에 대규모로 조성된 산업 단지 및 주거 단지다.

최치우는 국토부의 협조를 받아 뒤늦게 마곡지구의 알짜 부지를 매입했다.

공식적으로 올림푸스의 신사옥 부지가 확정된 것이다.

“대표님 지시 사항이기에 빠르게 추진을 했습니다만, 왜 마곡인지 궁금합니다.”

계약에서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길, 임동혁이 솔직한 속내를 오픈했다.

아마 비슷한 의문을 품는 올림푸스 직원들도 꽤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마곡을 강남이나 여의도에 비교할 수는 없죠. 분당이나 판교, 하다못해 과천이나 광명보다 못한 지역이라 판단할 수도 있고.”

“사옥이 완공되려면 몇 년이 걸리겠지만, 여의도를 벗어나게 된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까 신경이 쓰입니다.”

“서울 동부는 꽉 찬 보름달 같습니다. 강남, 송파, 분당과 판교, 그 뒤로 강동과 하남까지. 달이 차면 기우는 게 자연의 이치죠.”

“그런…….”

“반면 서부는 넓게 봐서 인천까지 인구가 훨씬 많은데도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 돼 왔죠. 머지않은 미래에 서울 서부의 개발이 불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동산에도 관심이 있으신 줄 몰랐습니다.”

“딱히 관심은 없어요. 우리가 부동산으로 돈 벌 회사는 아니니까. 그냥 흐름이 보이는 겁니다.”

최치우는 만류귀종(萬流歸宗)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한 분야에서 정점에 이르면 다른 분야의 원리도 깨닫게 된다는 불가(佛家)의 격언이다.

주로 무림에서 쓰는 말이지만, 현대에서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온갖 위협을 돌파하며 세상을 바꾸는 최치우에게 부동산 개발의 흐름을 읽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리고 마곡은 김포공항과 밀접하고, 인천공항 접근성도 좋습니다. 해외 출장이 많은 우리 입장에선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대표님은 한 번에 몇 가지 생각을 하는지 참 신기합니다.”

임동혁이 혀를 내둘렀다.

지난 몇 년 동안 최치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임동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최치우는 불과 얼마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남아공본부 및 헤라클래스를 점검하고, 케냐 정부와 어마어마한 투자 협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적응할 시간도 필요 없다는 듯 한국의 현안을 척척 해결하고 있었다.

태평양처럼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임동혁도 평생 최치우 같은 괴물은 처음 봤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마요. 부담스럽게.”

“갑자기 든 생각인데, 대표님이 아들을 낳으면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아들은 무슨 아들입니까.”

“유은서 씨와 결혼하실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부사장님부터 결혼하고 말합시다. 안 그래도 한영 그룹의 임 회장님이 하나뿐인 아들 노총각 될까 봐 걱정이 크다던데.”

“우리 영감도 참…….”

두 사람의 짧은 설전은 이번에도 임동혁이 구박을 받으며 끝났다.

그러나 둘 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올림푸스가 마곡지구에 사옥을 건설한다.

뉴스가 알려지자마자 마곡의 땅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최치우와 올림푸스의 브랜드 가치는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만들 정도였다.

최치우는 사옥 부지 외에도 마곡의 새 아파트를 수십 채 계약해 놓았다.

사옥이 완공되면 근처의 아파트를 직원들의 숙소로 제공할 계획이었다.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투자를 했는데 땅값이 미친 듯 오르며 본의 아니게 대박이 났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최치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개인 자산만 수십조 원이 넘고, 어차피 부동산으로 이익을 보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올림푸스 신사옥 뉴스를 뒤로한 채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독일 라이프치히다.

작년에 첫 삽을 뜬 두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라이프치히 발전소는 예상치 못한 테러 사건에 휘말렸었다.

그렇기에 준공 예정일이 가을로 밀렸었다.

하지만 독일 정부와 올림푸스의 협력이 탄탄하게 이뤄졌고, 라이프치히 시청에서도 두 발 벗고 나서 일정을 앞당겼다.

테러 현장에 세워진 추모비가 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일까.

결국 7월 말 준공식을 열게 됐다.

테러가 발생하기 전, 원래의 일정대로 공사를 완료한 것이다.

최치우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투자 협약을 발표하고 1달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또 다시 전 세계의 기자들을 불러 모으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최치우가 가는 곳마다 화제의 중심이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광명, 라이프치히, 나이로비, 그리고 다음은…….”

최치우는 전용기에 앉아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읊조렸다.

광명과 라이프치히의 발전소는 무사히 준공되어 대체에너지의 역사를 새로 썼다.

나이로비에 들어설 세 번째 발전소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다.

최치우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서 에너지 추출에 성공한 상급 대지의 정령 노하임의 소울 스톤을 나이로비에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하나의 카드가 더 남아 있다.

최상급 대지의 정령 나드갈의 소울 스톤도 성공적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김도현 교수는 소울 스톤 개발 노하우를 착실하게 쌓아왔다.

게다가 대지 속성의 소울 스톤으로 에너지 추출에 성공한 경험이 생겼다.

같은 방법을 이용하면 나드갈의 소울 스톤에서도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아프리카 반군 연합을 박살 내고, 네오메이슨의 인구 말살 정책을 막아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최치우는 알렉산드로 UN 사무총장과 함께 은밀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메르켈 총리를 만나면 독일 정부의 도움도 요청할 것이다.

한 템포 빠르게 아프리카 반군 연합을 일망타진하고, 네오메이슨의 전쟁과 인구 말살 음모를 저지해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가 중요하다고 해서 거기에만 온 정신을 뺏길 수는 없다.

“나드갈의 소울 스톤, 네 번째 발전소는 평양에 지으면 좋겠군.”

대한민국과 총구를 겨누고 있는 북한의 수도, 평양.

최치우는 소울 스톤을 무기로 평양까지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프리카와 유럽뿐 아니라 백척간두 한반도의 운명도 최치우로 인해 격렬하게 요동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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