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18화 (218/243)

# 218

***

최치우의 해법은 단순하고 과격했다.

하지만 그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동시다발적 타격으로 신규 반군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6개의 신규 반군은 기존의 게릴라 부대와 특성이 다르다.

외부의 지원을 받았고, 규모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으며 서로 연합하고 있다.

원래 존재하던 게릴라 반군들만 해도 골칫덩이였다.

그런데 더 큰 암 덩어리가 남몰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방치할 수도, 하나씩 각개격파할 수도 없는 종양이다.

만약 모잠비크 국경의 반군을 먼저 공격하면 나머지 5개 세력은 다시 지하로 숨어들 게 뻔하다.

그래서 최치우는 속전속결로 일망타진하는 방법을 주장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정규군을 운용하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다.

게다가 국경선 또한 첨예한 문제다.

모잠비크의 반군들이 국경선을 넘어 말라위에 숨으면 어떻게 될까.

기껏 출동한 모잠비크 군대는 말라위 국경을 넘기 어렵다.

자칫하면 국경 침범과 내정 간섭으로 분쟁에 휘말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반군을 소탕하려다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UN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케냐의 움바투 대통령보다 알렉산드로 총장의 결단이 중요하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최치우의 스위트룸에서 조셉과 1대1로 대화를 나눴다.

양해를 구하고 단독으로 조셉을 심문한 것이다.

1시간 가까이 자리를 비워준 최치우는 움바투 대통령과 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알고 있겠지만, 케냐 혼자서 나서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오.”

“UN이 교통정리를 해야 케냐도 나설 수 있겠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설령 평화유지군이 지휘권을 발동해도… 우리 군대를 어디까지 보낼 수 있을지…….”

움바투 대통령의 의도는 쉽게 읽혔다.

어떻게든 골치 아픈 문제에서 한발 빼고 싶은 것이다.

최치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움바투 대통령의 커다란 눈동자를 마주봤다.

노려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치우의 시선을 받은 움바투 대통령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지만, 최치우는 격이 다른 인물이다.

내공을 발산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존재감으로 움바투 대통령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올림푸스가 케냐에 투자를 결정한 이유, 심지어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도 검토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 그거야 우리가 아프리카 중부의 중심 국가로 발전 가능성이 높고…….”

“어디든 올림푸스가 작정하고 발전소를 세우면 금방 성장하지 않을까요?”

최치우는 겸손을 떨지 않았다.

근거 있는 자신감을 뽐냈다.

올림푸스는 이미 남아공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케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투자 개발을 성공시킬 자신이 넘쳤다.

할 말을 잃은 움바투 대통령이 먼 하늘만 쳐다봤다.

하지만 최치우는 좋게 좋게 마무리하지 않았다.

“올림푸스는 아프리카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케냐로 진출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케냐 역시 아프리카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위험한 반군 세력을 소탕하는데 협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아프리카 중부의 큰형님 노릇을 할 자격이 생길 겁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만약 케냐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올림푸스 역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다.

최치우는 은연중 그 점을 드러냈다.

투자 협약을 맺었지만,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은 확정하지 않았다.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하는 발전소가 빠지면 아무래도 김이 샐 수밖에 없다.

움바투 대통령은 발전소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반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다행히 완전히 말귀를 못 알아먹는 인물은 아니었다.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린 움바투 대통령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흠. 당연히 케냐도 아프리카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소.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여러 현실적 문제들이 우려가 되었을 뿐이오.”

“현실적 문제는 제가, 그리고 UN에서 해결하겠습니다.”

최치우의 말에서 꺾을 수 없는 의지가 느껴졌다.

움바투 대통령은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음모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단순한 반군의 준동이 두려운 게 아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반군이 봉기하고, 내전과 학살이 자행되는 것은 1단계다.

네오메이슨은 아프리카의 혼란을 명분 삼아 반군 진압을 위해 대량 살상 무기를 가동시킬 것이다.

그러나 무기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

고의적 실수로 대량 살상 무기가 아프리카를 무차별 타격하게 되면 3차대전에 버금가는 재앙이 시작된다.

결국 아프리카의 인구는 말살되고, 전쟁을 통해 네오메이슨이 관여한 군수업체와 금융회사는 엄청난 호황을 누릴 것이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그릴수록 암울한 미래가 펼쳐졌다.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최치우의 고민이 깊어지는 찰나, 알렉산드로 총장이 나타났다.

조셉과 독대를 마치고 스위트룸 밖으로 나온 것이다.

“대표님, 시간을 더 내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죠.”

최치우와 알렉산드로 총장은 길고 긴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았다.

아프리카, 아니 세계의 운명을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부담감이 최치우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자리에서 일어선 최치우는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웃는 것은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미션 앞에서 갑자기 호승심이 솟구쳤다.

적이 강할수록 더 뜨겁게 불타는 것이 최치우의 영혼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 상대가 개인이 아닌 실체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거대한 세력일 뿐.

온몸으로 부딪쳐 이겨내야 하는 것은 똑같다.

최치우는 알렉산드로 총장과 함께 자리를 옮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후의 승자는 나다, 네오메이슨.’

이제껏 네오메이슨의 급소에 어퍼컷을 후려쳤던 것처럼 아프리카에서도 승리할 것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최치우의 투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움바투 대통령은 환영 만찬이 열리는 장소로 돌아갔다.

오늘은 케냐 정부에게 있어 역사적인 날이다.

전례 없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았고, 그 파트너가 다름 아닌 올림푸스였다.

확정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도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었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유치하고 싶어 안달이 난 소울 스톤 발전소가 케냐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이로비까지 날아온 기자들은 질문할 게 산더미 같을 것이다.

누군가는 책임지고 대답을 해줘야 한다.

따라서 최치우와 알렉산드로 총장은 몰라도 움바투 대통령은 환영 만찬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었다.

어차피 움바투 대통령이 있어도 진지한 논의에 큰 도움은 안 된다.

환영 만찬에서 기쁨에 취해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는 역할이 그에게 더 잘 어울렸다.

우선 UN과 올림푸스가 입장을 정리하는 게 급하다.

그러고 난 다음 움바투 대통령에게 협조를 구할 것이다.

아프리카 중부의 큰형님으로 여겨지는 움바투 대통령의 정치력은 그때 비로소 빛을 발할 것 같았다.

“어떤 것 같습니까?”

최치우가 침묵을 깼다.

둘만 남은 알렉산드로 총장과 최치우 사이에 한동안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었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대표님이 생포한 조셉이라는 반군의 말에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정황도 상당히 자세하고…….”

“조셉이 굳이 없는 말을 지어낼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반군들의 연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오히려 알렉산드로 총장이 최치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계 정부라 불리는 UN의 수장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이와 경륜으로 따지면 최치우는 알렉산드로 총장의 막내 아들뻘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결단을 내리고 리더십을 발휘할 사람은 최치우밖에 없다.

UN 사무총장마저 최치우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총장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얼마 정도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까?”

“아직 반군들이 수면 아래에서 덩치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마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더 준비를 하고 싶겠죠.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알렉산드로 총장은 말없이 최치우를 쳐다봤다.

어떤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됐다.

그러나 최치우의 입을 통해 확인을 받고 싶은 눈치였다.

“준비를 마친 반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을 일으키면 모든 게 늦습니다. 외부의 지원을 받고, 연합을 결성한 반군들은 빠른 속도로 기존의 게릴라를 흡수할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세계 3차대전에 버금가는 대규모 내전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북부의 이집트와 모로코에서, 중부의 케냐에서, 남부의 모잠비크와 남아공에서 동시에 내전이 발생하면 대륙 전체가 마비되는 겁니다. 과연 몇십만, 아니 몇백만 명이 죽을까요?”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합니다.”

UN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도 맞서 싸우는 철혈의 총장 알렉산드로가 몸서리를 쳤다.

그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몇백만 명이 죽을지 모르는 대규모 내전과 학살의 전조가 발견됐다.

소름 끼치지 않는다면 비정상이다.

최치우는 다시 한번 유일한 해결책을 힘주어 말했다.

“반군들이 준비를 끝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해야 합니다. 일망타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아프리카 각국의 정부가 협조를 할지, 그리고 국경지대에 자리 잡은 반군들을 누구의 관할로 공격할지…. 이 모든 게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수백만의 목숨이 사라지고, 아프리카 대륙이 난장판이 되는 걸 기다리고 있을 순 없습니다.”

“UN의 비공개 안보리에서 의제로 올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 지루한 절차를 기다리다간 타이밍을 놓치고 말 겁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편을 먹고 미국을 견제하느라 안보리에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린 적이 있기는 합니까?”

최치우가 정곡을 찔렀다.

UN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질타한 것이다.

알렉산드로 총장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독립성을 강조하는 사무총장이 됐지만, 그 역시 안보리의 모순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모잠비크를 제외한 나머지 5개의 신규 반군이 어디에 있는지, 필요한 정보는 올림푸스에서 수집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돈을 쏟아부으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뀌는 법이죠. 그리고 이런 시기를 위해 헤라클래스를 키워왔으니까.”

최치우는 분명한 청사진을 내놓았다.

올림푸스의 자금력으로 정보를 사들이고, 헤라클래스를 움직여 반군의 동향을 파악하면 된다.

중요한 정보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최치우가 우연히 모잠비크의 자동차 딜러 필리페를 만나 단서를 찾은 것처럼 말이다.

“총장님은 안보리에 의제를 올리지 말고, UN 평화유지군의 전투 병력 증강을 관철해 주십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3개월 안에 평화유지군의 전투병을 두 배 이상 늘려야 됩니다.”

“그런 방법이-!”

비로소 알렉산드로 총장도 최치우의 생각을 이해했다.

절차를 지키는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시간만 질질 끌린다.

최치우는 UN 안보리의 승인 따위를 기다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올림푸스와 헤라클래스가 선봉에 서고, 덩치를 키운 UN 평화유지군이 아프리카 각국 정부군과 협력해 마무리를 맡는다.

일단 신규 반군을 일시에 쓸어버린 다음 국제사회에 설명하는 게 낫다.

허락을 받는 것보다 용서를 받는 게 쉽다는 말이 있다.

최치우도 일단 사고부터 치고 보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치려는 사고는 아프리카 대륙과 세계를 구하는 일이다.

“내가 책임지고 그리 하리다.”

알렉산드로 총장이 결심을 굳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며 세기의 비밀 작전이 개시됐다.

최치우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그게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 현시대에 맞이한 최고의 축복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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