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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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는 자동차 딜러 필리페 덕분에 반군의 근거지를 알게 됐다.
정확한 좌표를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출몰 지역만으로 충분했다.
치안 공백 상태인 위험한 국경을 SUV 한 대로 지나가면 반군의 레이더에 잡힐 수밖에 없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모잠비크와 말라위 국경에서 한창 세를 불리고 있는 반군의 영역이다.
제정신이라면 무턱대고 이곳을 통과하지 않는다.
비교적 안전한 이동 루트가 따로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치우는 누구보다 맑은 정신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실수가 아닌 의도다.
반군들이 최치우의 지프차를 발견하는 순간, 그들은 함정에 빠질 것이다.
홈그라운드의 이점 따위는 무의미하다.
호랑이는 혼자서 하이에나의 소굴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최치우는 자신을 미끼로 함정을 판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잠비크의 반군들은 미끼를 덥썩 물 가능성이 높다.
외롭게 사막을 가로지르는 SUV에 사신(死神)이 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저 멋모르고 낭만에 취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호구로 볼 것 같았다.
두두두두두두두-
‘왔다.’
핸들을 잡은 최치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서 몇 대의 차량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최치우의 예리한 감각은 시야보다 더 멀리 뻗어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미세한 소리와 진동, 공기의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쉬익-
최치우는 일부러 발에서 힘을 뺐다.
속도를 살짝 늦추고, 어디선가 달려오는 반군들이 자신의 SUV를 포착하기 쉽게 도와주는 것이다.
게릴라 반군들은 언제나 돈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네오메이슨의 지원을 받아 주머니가 풍족하다고 해도 아프리카 반군 특유의 물질만능주의는 그대로일 터.
보기 드문 최고급 SUV는 탐스러운 먹잇감으로 여겨질 게 분명하다.
타타타타타타!
거친 엔진 소리가 한층 가까이서 들렸다.
반군들이 타고 다니는 뚜껑 열린 군용 트럭이 최치우의 시야에 잡혔다.
“트럭 3대, 병력은 15명 정도? 제법이군.”
얼핏 보기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병력이다.
그러나 고작 SUV 한 대를 나포하기 위해 세 대의 군용 트럭이 출동한 것이다.
선발대로 15명을 보낼 정도면 본대의 병력은 최소 100명 이상, 어쩌면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른다.
그만하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만만치 않은 규모다.
모잠비크와 말라위 국경에 자리 잡은 반군은 소리 소문 없이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만약 나드갈과 싸우며 지프차가 부서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모잠비크에 들러 SUV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최치우도 절대 몰랐을 일이다.
전혀 주목하지 않은 지역에서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조짐이 보였다.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최치우는 다짐을 굳히며 군용 트럭이 자신을 포위하길 기다렸다.
게릴라 반군들의 수법은 낯설지 않았다.
최치우는 헤라클래스와 함께 아프리카 반군들의 특성을 연구해왔다.
‘전방에 좌우로 두 대, 그리고 후방에 한 대.’
군용 트럭은 최치우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SUV의 앞길을 두 대가 막아섰고, 도주를 차단하기 위해 나머지 한 대는 뒤를 지켰다.
보통 사람은 외딴 사막 지대에서 군용 트럭 세 대에 포위당하면 얼어붙을 것이다.
패닉에 빠지는 게 당연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그는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철컥-!
전방의 군용 트럭 두 대에서 건장한 흑인들이 내렸다.
AK 소총으로 무장한 반군들이다.
그들은 커다란 눈알을 사납게 부라리며 총구를 겨눴다.
당장 내리지 않으면 총을 난사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해 보였다.
최치우는 망설임 없이 운전석 문을 열었다.
당연히 반군들의 위협에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고, 이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싶었다.
털썩.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최치우는 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는 무장하지 않았고,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며 반군들을 안심시켰다.
“잉글리쉬?”
그때였다.
선두에서 총구를 겨눈 반군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놀랍게도 정확한 발음의 영어가 튀어나왔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졸지에 납치를 당하게 생긴 동양인 여행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판을 뒤집을 수 있지만,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역할 놀이를 하는 셈이다.
“아이 캔 스픽 잉글리쉬.”
최치우가 유창한 액센트로 영어를 구사했다.
그러면서 잔뜩 긴장한 척 위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먼저 영어로 말을 건 반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지?”
“한국.”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최치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반군의 까만 얼굴 사이로 새하얀 이가 보였다.
한국, 그것도 남한 사람이라는 말에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납치했을 때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
“와하하하하하!”
영어를 쓰는 반군이 뭐라 뭐라 말을 걸자 동료들이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몸값 비싼 남한 사람을 건졌다고 자기들끼리 축하하는 눈치였다.
반군들은 더 이상 최치우를 경계하지 않았다.
총구를 겨눌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대한민국에서 온 얼치기 부자 여행자, 그게 최치우를 바라보는 반군들의 시선이다.
게다가 15 대 1의 수적 우위는 방심을 유도하기 안성맞춤이다.
총이 없이 맨몸으로 붙어도 15명이 1명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다.
긴장이 풀렸는지 후방을 막아 세운 군용 트럭에서도 반군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몇 명은 최치우의 SUV를 뒤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불쌍한 먹잇감인 최치우에게 다가서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건질 게 없군.’
가만히 있으면 반군들이 최치우의 몸을 거칠게 포박할 것 같았다.
조금 더 분위기를 맞춰주려던 최치우는 이내 마음을 돌렸다.
영어를 쓰는 반군이 있지만,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폭하고 성급한 반군들의 본성이 여지없이 발휘되기 직전, 최치우는 조용히 캐스팅을 마쳤다.
“미니 퀘이크.”
조용히 주문을 읊조렸지만 그 위력은 결코 잠잠하지 않았다.
무려 6서클의 지진 마법이 난데없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쿠콰아아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땅이 쩌억 갈라졌다.
무방비 상태로 서 있던 반군들은 혼비백산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으어어어?”
“아아악-!”
아가리를 쫙 벌린 땅에 잡아먹힌 반군들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조차 곧 멀어지게 느껴졌다.
어두컴컴한 땅 밑으로 떨어져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운 좋게 살아남은 반군들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그들은 목숨 같은 AK 소총도 내팽개쳤다.
갑작스러운 신의 분노 앞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 중에는 영어를 쓰는 반군도 포함돼 있었다.
미니 퀘이크 한 방으로 10명의 반군을 순식간에 정리한 최치우가 입을 열었다.
“다섯 명 남았군. 너무 많다.”
최치우와 그의 SUV가 위치한 땅만 멀쩡했다.
그를 중심으로 사방은 벼락을 맞은 듯 뒤집어졌다.
담담하게 사형선고를 내린 최치우는 바람의 창을 불러 일으켰다.
“윈드 스피어!”
허공에 떠오른 새하얀 윈드 스피어가 우박처럼 내리꽂혔다.
푸푹- 푸푸푹!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반군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윈드 스피어에 심장이 꿰뚫려 즉사했다.
최치우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게릴라 반군들은 살인, 강간, 방화, 약탈을 주 업으로 삼는다.
마을 전체를 몰살시키고 유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설픈 동정심으로 살려주면 다른 희생자를 양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으어… 어흐으흑…….”
기세등등하게 출동했다가 유일한 생존자가 된 반군 청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귀신을 봐도 지금처럼 무섭진 않을 것이다.
최치우는 바짝 엎드린 그의 어깨를 발로 툭 걷어찼다.
“정신 차려. 너라도 살아야지.”
“흐윽- 흐으윽-.”
영어를 할 줄 아는 반군 청년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가까스로 들었다.
이렇게 보면 세상 순박해 보인다.
그러나 최치우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최치우가 평범한 여행자였다면 이들에게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로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최치우는 무심하게 질문을 던졌다.
“묻는 말에 대답하면 살려준다. 절대 두 번 묻지 않는다. 난 아쉬울 게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네 이름은?”
“조셉, 조셉입니다!”
“그래. 지금부터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조셉.”
최치우가 조셉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처럼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머리를 굴릴 정도로 담이 커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낼지 모른다.
그럼 나드갈과 싸우고 모잠비크로 경로를 변경한 게 전화위복이 되는 것이다.
최치우는 기대감을 품고 질문들을 던졌다.
아무도 없는 열사의 땅에서 방금 세상을 떠난 14명을 뒤로한 채 심문이 시작됐다.
정신을 차린 조셉도 목숨을 건지려고 열심히 대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무엇보다 자기 목숨이 제일 소중한 법이다.
조셉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는 인물은 아니었다.
최치우는 심문을 이어가며 때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또 때로는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부우우우웅-
모잠비크에서 구입한 SUV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험한 지형도 무난하게 헤쳐 나가는 걸 보면 일시불로 결제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 최치우는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핸들을 붙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조셉이었다.
모잠비크와 말라위 국경의 게릴라 반군 조셉이 최치우의 운전병으로 전직한 것이다.
최치우는 그를 사로잡아 심문했고, 새롭게 준동하는 반군 세력의 정보를 얻었다.
예상대로 외부에서 자금과 무기가 수혈되고 있었다.
문제는 모잠비크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과거의 반군들이 다시 모여 덩치를 키우는 중이었다.
그들은 정부군과 UN 평화유지군에 각개격파당했던 과거를 거울삼아 연합체를 결성했다.
게릴라 반군끼리 소통하며 폭넓게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른 부족에게 배타적인 아프리카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반군 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배후가 주축이 돼 연합체 결성을 성사시켰다.
조셉은 영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고급 정보들을 꽤 많이 알았다.
최치우는 그를 데려갈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혼자서 모잠비크 반군 본거지로 쳐들어가 전부 소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야 겨우 하나의 반군 세력을 지워 버리는 것뿐이다.
최치우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거대한 음모에 맞서고 있었다.
일망타진을 위해서는 확실한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조셉을 증인으로 삼아 협조를 얻어내고, 한꺼번에 아프리카 대륙에 암세포처럼 퍼진 반군들의 연합을 깨부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조직하고 지원한 배후, 네오메이슨의 연결고리도 찾아내는 게 최종 미션이다.
“지름길로 가고 있지?”
“네! 빨리 가고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조셉은 군기가 바짝 든 상태였다.
그는 최치우가 자연재해를 일으켜 14명의 동료들을 집어삼키는 걸 목격했다.
덕분에 도저히 딴생각을 품을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공포가 각인됐다.
오죽하면 에어컨을 틀어도 식은땀을 흘리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혔다.
역사적인 발표를 하게 될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