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15화 (215/243)

# 215

<조짐>

남아공에서 출발한 최치우는 짐바브웨 국경 인근의 사막에서 나드갈과 싸웠다.

원래 계획은 차를 타고 잠비아와 탄자니아를 지나쳐 케냐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물론 비교적 안전한 도로 대신 게릴라 반군들이 지배하는 위험천만한 땅을 탐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프차가 망가진 탓에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드갈과 부딪친 사막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모잠비크에 위치하고 있다.

최치우는 본의 아니게 잠비아 대신 모잠비크에 들리게 됐다.

모잠비크에서 지프차를 구하고, 말라위를 거쳐 탄자니아와 케냐로 향하는 루트를 새로 짰다.

예정에 없던 동선을 타게 됐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소울 스톤을 얻는다는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다.

그것도 보통 소울 스톤이 아니다.

최상급 대지의 정령을 소멸시켰다.

이제 올림푸스는 대지 속성을 지닌 상급 소울 스톤과 최상급 소울 스톤을 보유하게 됐다.

실험 과정에서 하나가 깨져도 다른 옵션이 생긴 것이다.

이만하면 케냐 정부에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겠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경공을 써서 모잠비크 국경을 넘은 최치우는 후련한 얼굴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품 안의 소울 스톤이 든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에서 치안이 좋은 나라에 속한다.

치열했던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은 1992년에 끝났다.

이후 몇 번의 폭동과 위기가 있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넘어갔다.

AK 소총이 그려진 살벌한 국기(國旗)에 비하면 무척 평화로운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2위 규모의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경제도 성장하게 됐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의 조용한 강자인 셈이다.

그렇기에 국경 도시에서 지프차를 새로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아주 상태 좋은 차량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 동네에서 게릴라 반군을 만나진 못하겠지만… 너무 욕심낼 필요는 없겠지.”

원래 루트대로 잠비아 국경을 넘었다면 게릴라 반군들과 마주칠 확률이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말라위나 탄자니아의 위험 지대에서 게릴라 반군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다들 게릴라의 습격을 무서워하는데 최치우는 오히려 타겟이 되기만 바라고 있었다.

“이쯤에선 천천히 움직여야겠군.”

최치우는 더 이상 경공을 펼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어디서 사람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조금 답답해도 천천히 움직이며 낯선 도시에 스며드는 게 중요하다.

모잠비크의 국경 도시에는 가뜩이나 동양인이 드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고 입소문이 퍼져 나갈 게 분명했다.

빨리 새 차를 구입해서 떠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

“$&@)…….”

곧이어 인적이 나타났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최치우의 귀를 간지럽혔다.

아니나 다를까.

모잠비크 사람들은 국경 지대에서 보기 드문 동양인의 등장에 놀란 눈치였다.

대놓고 최치우를 쳐다보는 사람도 꽤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올림푸스의 CEO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최치우는 전 세계적 유명인사가 됐지만, 아프리카 국경 도시까지 명성이 퍼지진 않았다.

“더 유명해지려 노력해야겠는데.”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농담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모잠비크의 국경 도시는 화려하지 않아도 제법 안정돼 보였다.

여느 대도시처럼 고층 빌딩은 찾아볼 수 없지만 현대식 건물이 드문드문 세워져 있었다.

전통 가옥과 현대식 건물의 조화는 색다른 광경을 선사했다.

최치우는 어림짐작으로 길을 찾았다.

굳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자동차 대리점은 현대식 건물이 밀집된 지역에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역시.”

이윽고 목표물을 찾아낸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차를 구입하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전 처음 와보는 나라지만 자동차를 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무한의 한도를 자랑하는 블랙 카드는 지구 어디에서든 다 통하는 프리 패스다.

일시불로 자동차 값을 지불하면 모잠비크 딜러의 눈이 휘둥그레 커질 것이다.

최치우는 어깨를 활짝 펴고 자동차 대리점 문을 열었다.

그렇게 또 다른 인연의 물꼬가 트이고 있었다.

***

30분.

최치우가 대리점에서 튼튼한 SUV 한 대를 구입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동차 한 대를 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

길게는 몇 달에서 몇 년 동안 끙끙거리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는 주택 다음 가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치우 같은 사람에게 자동차는 자산이 아니다.

언제든 사서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한국에서 롤스로이스 레이스를 타고 다니는 최치우는 전용 차고를 만들고도 남을 재력을 갖췄다.

그가 원한다면 한국, 미국, 남아공 각 지역에 차고를 만들어 매일 다른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최치우가 소유한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150조 원에 육박하고, 개인 자산만 수십조에 이른다.

그렇기에 SUV를 사는데 30분이나 걸린 게 도리어 의외인 상황이었다.

당연히 가격을 따지느라 시간을 쓴 것은 아니다.

거친 사막 지형을 가로지를 수 있는 튼튼한 차인지, 이런저런 하자는 없는지 점검하느라 30분이 흐른 것이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자동차 대금을 일시불로 지급한 최치우는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덕분에 별다른 문제 없이 나이로비까지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한편 최치우보다 더 만족한 얼굴을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30분만에 가장 비싼 SUV 한 대를 팔아치운 대리점의 딜러 필리페다.

아직 앳된 기색이 가시지 않은 딜러 필리페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요?”

최치우는 필리페의 표정을 지켜보다 질문을 던졌다.

영업 사원 입장에서 차를 파는 데 성공하면 기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 필리페가 신기해 보였다.

질문을 받은 필리페는 큰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요즘 차 팔기 아주 어려워요, 너무 힘들어요.”

어색한 영어지만 단어 사용은 정확하다.

사실 필리페는 모잠비크에서 나름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

어느 나라나 국경과 가까운 도시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자동차 대리점에 앉아서 일할 수 있는 딜러는 선택받은 소수의 직업이었다.

최치우는 문득 모잠비크의 실정이 궁금해졌다.

국경 도시에서 필리페처럼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을 또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30분만에 일시불로 SUV를 구입한 VIP 고객이 된 김에 호기심을 해결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에서 치안이나 경제가 나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습니까?”

“달라졌어요. 경기 안 좋아요. 치안 나빠지고 있어요. 그리고…….”

필리페가 어두운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불과 1분 전까지 차를 팔아 기뻐하던 순박한 청년이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로 변했다.

최치우는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정에 없던 모잠비크에서 뜻밖의 단서를 찾을지 모른다.

그는 기대감을 억누르며 필리페에게 재차 말을 걸었다.

“쉽게 말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군요.”

“그게… 확실한 게 아니라서…….”

“필리페, 알다시피 난 이방인입니다. 여기서 산 SUV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날 겁니다.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는 뜻이죠.”

최치우는 조곤조곤 차분한 말투로 필리페를 설득했다.

억지로 윽박지르는 건 하수의 수법이다.

거센 비바람보다 따뜻한 햇살이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데 더 효율적이다.

“그럼 어디서 저한테 들었다고는 하지 않기로 약속해 주세요.”

“약속합니다.”

최치우가 필리페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작은 계기 하나를 만들어 줬을 뿐이다.

그러자 목소리를 한껏 낮춘 필리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내전이 끝난 지도 25년이 넘었어요.”

“그렇죠. 92년 반군과 정부군이 평화협정에 사인을 했으니까.”

“그리고 반군들은 선거에서 패배한 후 정부에 협조하거나 조용히 사라졌어요. 저도 교과서에서 배웠어요.”

필리페는 서른이 안 된 청년이다.

아마 최치우와 비슷한 또래일 것 같았다.

그에게 반군은 머나먼 역사 속 전래동화나 다름없었다.

사춘기 이후로는 상당히 안정된 정치 제도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필리페 같은 청년이 다시 반군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바로 다음 말에서 나왔다.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국경 너머 반군의 기지가 생겼고, 그곳으로 가면 집과 차, 여자를 받을 수 있다고…….”

“그 소문을 믿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자고 일어나면 옆동네 누가 사라졌다는 말이 들리고, 이제는 나라에서 국경 감시 부대 인원을 늘린다는 말도 있어요.”

“정부군이 나설 정도면 심각한 상황인데.”

“정치인들은 20년 넘게 바뀌지 않고, 그런데 사는 건 점점 힘들어지고……. 그래서 위험한 소문에 혹하는 거 같아요.”

필리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최치우는 그의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었다.

네오메이슨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의 실마리 같았기 때문이다.

모잠비크처럼 평화로운 나라에서 내전이 다시 일어나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다른 국가의 반군들도 영향을 받아 정부군과 더 격렬하게 싸울지 모른다.

한 번 전쟁의 불이 붙으면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수 없다.

자칫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쓸릴 수 있다.

“그런데 필리페. 지난 20년 넘게 조용하던 반군 세력이 무슨 돈이 있어서 집과 차, 여자를 제공한다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헛소문 같기도 한데 목격자들도 있고, 진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계속 도는 걸 보면…….”

필리페는 진심으로 조국의 현실을 걱정하고 있었다.

최치우도 짚이는 바가 없지 않았다.

‘네오메이슨이 자금을 지원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의도적으로 반군을 키우는 걸까?’

단서를 찾았으니 확인을 해봐야 한다.

최치우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가면 모잠비크 반군에 합류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났죠?”

“왜 그러세요? 돈도 많으신 분이!”

필리페가 화들짝 놀랐다.

최고급 SUV를 일시불로 구매한 최치우가 국경 너머 반군에 관심을 보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군에 의탁하려는 게 아닙니다. 진짜 실체가 있는 소문인지 궁금해서 그래요.”

“어차피 떠도는 소문이니까… 여기서 북쪽으로 국경을 넘어가면 말라위가 나오는데 그쪽은 치안 상태가…… 어휴, 말도 못 해요.”

“모잠비크와 말라위의 국경 어딘가에 반군 세력이 있다는 말이죠?”

“일단 국경선을 넘어가면 반군들이 접근한다고 들었어요. 같은 편이 되면 데려가고, 아니면 죽여 버리고.”

“고마워요, 필리페. 좋은 차를 팔아준 것도,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조심해서 안전한 길로만 다니세요. 꼭이에요.”

최치우는 새로 산 SUV와 함께 나왔다.

필리페는 염려가 되는지 최치우가 SUV를 몰고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최치우는 룸미러로 필리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짧게 스치는 인연이지만 오래 기억이 날 것 같았다.

만약 모잠비크와 말라위 국경에서 반군들을 만나고, 네오메이슨이 연관된 단서를 얻게 되면 필리페는 먼 훗날 아프리카 인류 말살 정책을 막아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가볼까? 모잠비크 청년들을 꼬시는 반군들에게.”

최치우의 혼잣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는 모잠비크에 싹트고 있는 내전의 씨앗을 UN보다 먼저 알아냈다.

남아공에서 나이로비로 가는 여정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길이 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