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14화 (214/243)

# 214

***

쐐애애액-

한 다발의 윈드 스피어가 나드갈을 향해 쏘아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최치우는 대지의 정령이 싫어하는 바람 속성 마법을 연달아 펼쳤다.

콰콰쾅!

그러나 나드갈은 쉽게 당하지 않았다.

인격을 갖춘 최상급 정령은 여타의 정령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다.

하나 하나가 정령왕에 필적하는 권능을 지녔다.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를 소멸시킨 최치우라 해도 마냥 자신할 수 없는 싸움이다.

상급 대지의 정령 노하임만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재규어의 형상을 닮은 나드갈은 노하임보다 훨씬 사납고 지능적이었다.

최치우가 연거푸 쏟아낸 윈드 스피어를 모조리 피하거나 막아냈다.

그리고 이제 나드갈의 반격이 시작됐다.

[우라노스의 인장, 내가 뺏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심장에 우라노스의 인장이 박혔다는 것도, 그 인장을 뺏을 수 있다는 것도 최치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가하게 물어볼 틈이 없다.

나드갈을 쓰러트려 귀하디 귀한 최상급 정령의 소울 스톤을 확보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게다가 싸움이 시작된 이상 정신이 팔리면 죽을지도 모른다.

파파파팍-!

최치우의 발밑에서 송곳 같은 흙기둥이 솟구쳤다.

흙으로 만든 기둥이지만 강철보다 단단하고 날카롭다.

그 위에 가만히 서 있으면 온몸이 통째로 관통당해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타앗!

최치우는 갈라지기 직전의 땅을 박차며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나드갈의 흙기둥은 끈질기게 최치우를 쫓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개의 흙기둥이 치솟았고, 그 길이는 무려 50m를 넘어섰다.

최치우도 계속해서 경공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한 걸음만 삐끗해도 흙기둥에 꿰뚫린 신세가 되고 만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강하다!’

최치우는 나드갈의 권능에 감탄했다.

50m가 넘도록 흙기둥을 세우는 권능은 확실히 상급 정령 노하임과 달랐다.

이대로 뒷걸음질만 칠 수는 없다.

팟!

최치우의 몸이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다.

아프리카의 말라붙은 사막 지형은 대지의 정령에게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허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치우는 대지의 권능이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공중에서 숨을 돌렸다.

콰아아아악-

하지만 나드갈은 영악했다.

최치우가 착지할 지점에 거대한 씽크홀을 만들었다.

원래부터 대지의 정령은 꽤가 많기로 유명하다.

기껏 점프해서 시간을 벌었지만 언제까지 하늘에 떠 있을 수는 없다.

땅에 떨어지면 나드갈이 만든 씽크홀에 빠지고 말 것 같았다.

일단 씽크홀에 들어서면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후우욱!

정점을 찍은 최치우의 몸이 중력에 의해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는 빠른 속도다.

최치우는 입을 쩍 벌린 씽크홀을 향해 6서클 마법을 캐스팅했다.

“프로즌-!”

쩌적- 쩌저저적-!

빙결 마법 프로즌이 광범위하게 펼쳐졌다.

시커먼 싱크홀 내부가 순식간에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으로 가득 찼다.

쿠웅!

최치우는 자신이 만든 얼음 위에 착지했다.

나드갈의 거대한 씽크홀 내부를 얼음으로 메워 버린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식한 마법 구현이다.

똑같은 6서클 마법이라도 누가 어떻게 펼치냐에 따라 위력은 천지차이다.

최상급 정령의 권능을 무위로 돌린 최치우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반면 나드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최치우를 멍하게 쳐다봤다.

황갈색 바윗덩이로 만들어진 재규어 한 마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 광경이 만화처럼 느껴졌다.

[우라노스의 인장을 거저 얻은 게 아니란 말이지.]

최치우는 나드갈의 탄식을 곧바로 받아쳤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어.”

[정녕 끝을 볼 작정이냐?]

“방금까지 죽일 기세로 덤빈 게 누구더라.”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쯤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나?]

나드갈이 자세를 바짝 낮춘 채 최치우의 의사를 물었다.

전투가 벌어졌는데 최상급 정령이 먼저 휴전을 언급한 것이다.

최치우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그는 긴장을 풀지 않고 반문했다.

“최상급 정령답지 않군. 상급 정령인 노하임도 소멸을 각오하고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는데.”

[그거야 노하임은 인장을 알아볼 능력이 없으니……!]

“인장? 아까부터 말하는 우라노스의 인장이 대체 뭐지?”

[알려주면 내 영역에서 물러날 텐가?]

급기야 나드갈은 협상을 시도했다.

최치우는 정령들의 대적으로 악명이 자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강한 최상급 정령이 한 수 접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나드갈이 언급한 우라노스의 인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최치우는 궁금증을 참기 어려웠지만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지. 난 소울 스톤이 필요하고, 아프리카의 사막화를 앞당기는 정령들을 최대한 많이 소멸시킬 생각이다.”

[크르르르- 기어코 끝까지!]

협상은 결렬됐다.

몸통과 똑같은 황갈색인 나드갈의 송곳니가 툭 튀어나왔다.

최치우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마법과 무공의 조화로 승부를 볼 작정이다.

우라노스에게 썼던 미쓰릴 필드는 조금 아껴도 될 것 같았다.

나드갈을 얕봤기 때문은 아니다.

과거보다 더 성장한 자기 자신의 강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권왕의 아랑권, 그리고 프로즌과 윈드 스피어를 한 번에.’

최치우가 본능적으로 최강의 카드를 선택했다.

듣기만 해도 살벌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다.

무림에서 가장 패도적인 무공인 아랑권, 거기에 6서클 프로즌과 5서클 윈드 스피어를 곁들인다.

나드갈이 어떤 권능을 발휘해도 깨트릴 자신이 있었다.

쿠콰콰쾅-!

송곳니를 드러낸 나드갈이 최치우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왔다.

황갈색 재규어의 질주는 지진을 동반했다.

지반이 쩍쩍 갈라지며 바윗덩이를 땅 위로 토해내고 있었다.

머지않아 커다란 바윗덩이들이 일제히 최치우를 노리고 날아갈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지만, 최치우는 나드갈을 향해 정면으로 마주 달렸다.

그의 등 뒤로 수십 개의 윈드 스피어가 형성됐고, 차디찬 얼음이 나드갈의 바윗덩이를 얼리고 있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

꽝!

짧고 굵은 굉음이 터졌다.

지구 멸망의 날처럼 요란하게 흔들리던 대지가 잠잠해졌다.

미사일처럼 쏟아진 바람의 창도, 거대한 바위를 붙잡은 얼음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단 한 사람.

정권을 곧게 뻗고 있는 최치우밖에 없었다.

일자로 곧게 펴진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엄청난 힘을 단번에 쏟아내고, 또 막대한 충격을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쉰 최치우는 당장 대자로 드러누워 쉬고 싶었다.

하지만 한 줄기 뜨거운 희열이 그를 지탱했다.

그의 주먹 안에 황갈색 보석이 들어와 있었다.

최치우는 나이로비로 가는 길에서 최상급 대지의 정령 나드갈의 소울 스톤을 얻었다.

이것만으로 기나긴 여정의 목표를 절반 이상 달성한 셈이다.

“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격렬한 싸움을 끝내서일까.

괜히 심장에서 저릿저릿한 자극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라노스의 인장이 박혀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드갈을 소멸시키는 바람에 비밀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최치우는 나드갈의 소울 스톤을 품 안에 갈무리하고 걸음을 옮겼다.

다시 나이로비를 향해 지도에 없는 길로 행군할 차례였다.

***

심장 부근이 찌릿찌릿한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나드갈의 소울 스톤을 품에 넣은 이후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더욱 뚜렷해졌다.

기분 나쁜 통증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심장이, 또는 심장 안의 뭔가가 자신을 봐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정령왕 우라노스는 소울 스톤을 남기지 않아서 이상했는데… 그 대신 인장이라는 무형의 유산을 남긴 걸까? 대체 그 인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치우가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었다.

아슬란 대륙에서 그는 현자 클래스를 마스터한 최고의 마법사였다.

하지만 마법사와 정령사는 같은 부류가 아니다.

물론 정령에 대한 지식도 풍부한 편이지만, 모든 비밀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슬란 대륙에서 정령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환생해 정령왕까지 잡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처억-

최치우가 오른손으로 심장 부근을 가볍게 마사지했다.

그런다고 찌릿찌릿한 느낌이 사라질 리 없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나드갈이 말한 것처럼 우라노스의 인장이 심장에 박혔다면 언젠가 드러날 게 분명하다.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우라노스를 소멸시킨 전리품이 최치우의 몸 안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소울 스톤보다 더 귀중한 것, 게다가 정령왕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가치는 최치우마저 놀라게 만들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건 어쩐다…….”

생각을 정리한 최치우가 혀를 찼다.

지프차가 흉측하게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지프차를 세우고 나드갈을 불러냈다.

하지만 나드갈의 권능은 예상보다 강력했고, 소규모 지진과 흙기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남아공에서부터 함께 달려온 지프차는 장난감 모형처럼 찌그러졌다.

지프차를 향해 다가간 최치우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로비까지 뛰어갈 수도 없고.”

경공을 펼치면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

무림 고수들은 몇날 며칠 내내 경공을 펼쳐 북경에서 남경까지 단기간에 주파하곤 했다.

마음만 먹으면 최치우도 못 할 게 없다.

금강나한권과 아랑권을 수련하며 한층 중후하고 날카로워진 내공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인적이 없는 지역에서는 얼마든지 경공을 펼치며 달려갈 수 있다.

하지만 나이로비가 가까워질수록, 국경지대와 도시를 거칠수록 사람들 눈에 띌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시선을 피해 제한적으로 경공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새로 차를 구해서 달리는 게 낫다.

최치우는 부서진 지프차 안에서 지도와 GPS, 통신 장비를 꺼냈다.

배낭을 비롯해 짐을 챙겨 왔지만 당장 꼭 필요 없는 건 버리고 가야 했다.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 경공으로 반나절이면 되겠다.’

계산을 마친 최치우가 땅을 박찼다.

그의 계산법은 상식을 파괴하고 있었다.

경공을 써서 반나절이면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도시다.

도로 사정이 안 좋은 아프리카에서 자동차로 꼬박 하루 이상 달려야 할 거리였다.

최치우는 그곳에서 새 지프차를 구해 여정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순순히 지프차만 구하고 나올 수 있을지, 뜻밖의 모험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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