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13화 (213/243)

# 213

<길을 열다>

남아공에서 케냐 나이로비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것도 철도가 아닌 자가용을 이용하면 온갖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육로 이동을 고집했다.

어떤 지형도 통과할 수 있는 튼튼한 지프차도 구입해 버렸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소울 스톤을 하나 더 얻기 위해서였다.

최치우는 상급 대지의 정령 노하임을 소멸시키고 김도현 교수에게 소울 스톤을 전달했다.

그렇지만 에너지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소울 스톤이 산산조각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보다 확실하게 케냐에 발전소를 지으려면 더 많은 소울 스톤이 필요하다.

하나뿐인 방법은 무척 간단했다.

김도현 교수와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안심하고 소울 스톤 몇 개쯤은 날려 먹어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소울 스톤 한 개의 가치가 수천억 이상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에너지를 추출하지 못하면 소울 스톤은 예쁜 보석일 뿐이다.

최치우는 남아공에서 나이로비까지 지도에 없는 길을 돌파할 작정이었다.

일부러 위험한 장소, 극한의 자연환경이 펼쳐진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령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도에 없는 길을 달리다 보면 정령도 정령이지만 게릴라 반군들과 부딪칠 확률도 올라갈 터.

그것 역시 최치우가 바라는 바였다.

헤라클래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최치우도 한 손 거들려는 것이다.

우연히 충돌한 게릴라 군대를 박살 내고, 그들 사이에 떠도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다.

남들에겐 나이로비까지 지프차로 이동하는 게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최치우 입장에선 놓치기 싫은 기회였다.

여정을 떠날 준비를 마친 그는 미적거리지 않았다.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세계 여행자처럼 지프차 시동을 걸었다.

트렁크에는 침낭과 비상식량이 잔뜩 들어 있었고, 뒷자리에는 커다란 배낭과 전자 장비가 전부였다.

이거면 충분하다.

1주일이 넘는 터프한 여행의 준비물치고는 상당히 단촐해 보였다.

하지만 최치우는 걱정하지 않았다.

필요한 게 생기면 중간에 구입할 수 있다.

경로를 틀어 도시로 진입하면 어디에든 대형 마트가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도 사람 사는 곳이다.

몇몇 국가의 주요 도시는 선진국 부럽지않게 발달했다.

다만 여전히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땅이 광활할 뿐, 아프리카 전체를 낙후된 대륙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은서야, 나 이제 출발해.”

-1주일 정도 걸린다고 그랬지?

“아마. 늦어도 열흘 안에는 나이로비에 도착할 계획이야.”

-열흘……. 중간에 여건이 되면 꼭 연락해 줘. 문자라도, 알겠지?

“당연하지. 약속할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무사할 거 믿지만 조심 또 조심하기로 약속해.

“곧 나이로비에서 멋지게 카메라 세례를 받을 테니까, 그러고 뉴욕에서 다시 만나자.”

-응, 나도 잘 있을게.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백 이사, 그러니까 승수 선배한테 전화해. 24시간 연결될 테니까.”

최치우는 여정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유은서와 통화를 했다.

새삼스럽지만 현대 기술의 발전은 놀랍다.

남아공 국경지대에서 뉴욕에 있는 유은서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나이로비로 가는 길에서도 통신이 터지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현안도 온라인에 접속해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최치우가 열흘쯤 완전히 자리를 비워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올림푸스의 임원진은 임동혁 부사장을 중심으로 제역할을 다 하고 있다.

브라이언이 이끄는 퓨처 모터스도 임시 주총 이후 더욱 탄력을 받으며 전진하는 중이다.

두 회사에서 최치우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지만, 이제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최치우가 원했던 것처럼 마음 놓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소울 스톤을 수집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해도 문제없는 날이 왔다.

이렇게 되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최치우는 감회가 남다른 듯 유리창 너머 하늘을 올려다봤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 저 편을 향해 마음껏 달려도 된다.

그래도 최치우의 사람들이 든든히 뒤를 받쳐줄 것이다.

비록 동행 없이 나이로비까지 험로를 돌파할 작정이지만, 그는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모든 직원들이 함께 싸우고 있었다.

부우우웅-

최치우가 액셀을 밟자 지프차가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그보다 더 거친 길을 향해 새까만 지프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과연 나이로비까지 가는 동안 어떤 사건이 최치우를 기다리고 있을지, 사막의 모래바람만 미래를 예측하는 듯 거세게 불어닥칠 따름이었다.

***

최치우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고 있지만, 목적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열흘 안에는 나이로비에 도착해야만 한다.

케냐의 움바투 대통령과 대규모 투자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일정은 확고부동하게 정해졌다.

만약 최치우가 나타나지 않으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셈이다.

물론 UN까지 암묵적으로 승인한 초대형 투자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다.

그래도 올림푸스와 케냐 정부의 신뢰에 시작부터 금이 갈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석권하려는 올림푸스 입장에서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정령을 못 찾더라도 늦지 않게 여정을 끝내는 게 더 중요하다.

부와아아앙- 끼익!

한참을 말없이 달리던 최치우가 지프차를 세웠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을 돌아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모래언덕이 넘실거리는 황금빛 사막은 아니지만, 바짝 마른 주황색 땅이 끝도 없이 펼쳐진 지형이었다.

사실 이런 지형이 진짜 사막에 가깝다.

TV에 자주 나오는 모래 사막보다 마른 걸레처럼 물기 없이 바싹 말라붙은 사막이 더 흔하다.

털썩!

차에서 내린 최치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 부근에서 정령의 기운이 느껴졌었다.

최치우가 미리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이곳은 최근 사막화가 유독 심각하게 진행되는 지역이다.

그런데 막상 차를 몰고 중심부에 도착하니 정령의 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최소 상급, 아마 최상급의 기운이었는데…….’

최치우는 상급 대지의 정령 노하임을 소멸시킨 전력이 있다.

그렇기에 대지의 정령이 내뿜는 기운에도 익숙해졌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열사의 대지에서 느껴진 기운은 분명 노하임 이상이었다.

“억지로 불러내는 수밖에.”

마음을 먹은 최치우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반대 속성의 마법을 펼치면 정령은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본능에 이끌리듯 반대 속성 마법을 깨트리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물의 정령을 부르기 위해서는 불 속성 마법, 반대로 불의 정령을 찾으려면 얼음 속성 마법이 제격이다.

대지의 정령은 바람 속성 마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거센 바람은 대지를 구성하는 흙과 바위를 휩쓸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령들은 나름대로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걸 사명이자 본능으로 여긴다.

최치우는 바로 그 점을 노려 정령을 찾아내고 소멸시키는 유일무이한 정령 헌터였다.

“윈드 스피어-!”

5서클의 바람 속성 마법이 허공에 구현됐다.

단단한 바위마저 꿰뚫을 수 있는 바람의 창이다.

최치우는 윈드 스피어를 하나만 만들어내지 않았다.

상급, 또는 그 이상의 정령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으로 대지의 균형을 무너트려야 한다.

“윈드 스피어!”

연달아 주문이 캐스팅됐다.

그러자 바람의 창 수십 개가 최치우를 둘러쌌다.

새하한 바람의 창에 감싸인 최치우가 숨을 고르고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슈우우우욱-!

그 순간, 허공에 정렬한 바람의 창이 일제히 땅을 향해 내리꽂혔다.

이윽고 폭탄이 터진 것처럼 굉음이 울렸다.

콰콰콰쾅!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었다.

지축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말라 비틀어져 단단해진 땅이 보기 흉한 몰골로 부서지고 깨졌다.

최치우는 윈드 스피어를 다발로 쏟아 부어 대지의 균형을 깨트렸다.

“이래도 안 나온다?”

여전히 정령은 반응이 없었다.

최치우가 괜히 헛수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지프차를 세우기 전까지만 해도 정령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급격한 사막화를 일으킨 정령이 숨어버린 것이다.

“누가 이기나 보자. 어차피 엉망으로 사막화가 된 땅인데… 완전히 뒤엎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결심을 굳힌 최치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금 윈드 스피어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윈드 스피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스케일이 커졌다.

공중에 떠오른 윈드 스피어가 수십 개를 넘어 족히 100개는 될 것 같았다.

5서클 마법을 한 번에 100개나 구현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최치우가 7서클의 경지에 완전히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8서클 대마도사 클래스에 도달할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었다.

‘간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최치우가 손바닥을 펼치려 했다.

100여개의 윈드 스피어가 쏟아지면 주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마음을 관통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그만, 그만하면 충분해!]

짜증 섞인 외침이었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지는 울림은 분명 정령의 음성이다.

최치우는 허공에 만든 윈드 스피어를 다시 마나로 돌려보냈다.

“나드갈.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최치우의 눈앞에 바위로 만들어진 재규어가 나타났다.

원래 재규어는 피부가 검은 동물이다.

하지만 나드갈은 황갈색 바위로 신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근육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울룩불룩 튀어나온 바윗덩이는 무척 사납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역시 최치우의 감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최상급 대지의 정령 나드갈이 사막화를 가속시킨 주범이었다.

나드갈은 인격을 지닌 최상급 정령답게 사람처럼 의지를 전했다.

[내 영역에서 시비 걸지 마라, 인간.]

나드갈은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최치우와 부딪치길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최치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이야. 왜 잠시 동안 기운을 숨기고 사라져 있었지?”

[우라노스의 인장을 가진 인간과 싸우지 말라는 소문을 들었다.]

“우라노스의 인장?”

[아직 모르나? 자기 심장에 박혀 있는 인장을? 하여간 인간은 미개한 족속이니.]

나드갈이 이죽거리며 최치우의 신경을 긁었다.

그러나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최치우가 가까스로 소멸시킨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의 인장이 심장에 박혀 있다는 뜻이다.

과연 그게 무엇인지, 소멸되고도 소울 스톤이 나오지 않았던 우라노스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내 소문이 아프리카까지 퍼졌을 줄은 몰랐군.”

[왕이 서거했으니……. 어찌됐든 나는 너와 싸움을 원치 않는다.]

“그건 좀 어렵겠어. 소울 스톤이 많이 필요해져서. 그리고 아프리카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빌어먹을 사막화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잖아?”

쿠웅-

나드갈이 앞발을 들어 땅을 내리찍었다.

[자존심을 굽혀줬거늘!]

“그건 그쪽 사정이고.”

최치우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케냐의 발전소 건립을 위해선 소울 스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게다가 나드갈은 급격한 사막화를 일으킨 주범이다.

만약 대지의 정령들을 족족 소멸시킨다면, 혹은 대지의 정령왕을 쓰러트릴 수 있다면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화 속도는 한층 진정될 것이다.

[크르르르!]

나드갈이 진짜 재규어처럼 낮은 울음을 흘렸다.

문답무용.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꽈아앙-!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풀풀 피어나는 붉은 땅에서 최치우와 나드갈이 충돌했다.

둘 중 하나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존재가 사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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