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12화 (212/243)

# 212

***

최치우와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더 이상 서로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뒤늦게 합류한 미국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최치우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전설을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레드 엑스 섬멸전을 함께했던 1기 대원들이 최치우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전해줬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누구도 최치우의 활약을 믿지 않았다.

세계적인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가 직접 게릴라 반군 소탕 작전에 참여했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베테랑 용병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한 지휘를 하고, 가장 위험한 전장에서 적들을 사살했다니.

헐리웃 영화 주인공도 이렇게 설정하면 지나치다고 욕을 먹는다.

그런데 거짓말이라고 계속 우기기도 난감했다.

레드 엑스를 몰살시키며 아프리카의 공포로 떠오른 헤라클래스 1기 대원들이 하나같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괜한 거짓말로 최치우를 미화시킬 이유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최치우의 피지컬은 올림픽에서 증명이 됐다.

동양인 최초로 100m 달리기 금메달과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결국 2기 대원들도 최치우의 혁혁한 전공을 믿게 됐고, 리키의 태도가 쐐기를 박았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보기에 리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반사신경과 근력, 그리고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날고기는 용병 출신 대원들을 찍 소리도 못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미국 특수부대 출신이라 거들먹거리던 대원들도 리키와 1 : 1 시뮬레이션을 한 다음 순한 양이 됐다.

1 : 1이 아니라 1 : 5까지 넉넉하게 커버하는 리키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측정 불가였다.

그런 리키가 최치우를 사부님으로 모시며 깍듯하게 대한다.

겉으로는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최치우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것 같았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돈 앞에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다.

돈이 많다고 고개를 숙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최치우가 단순히 헤라클래스의 스폰서에 불과하다면 리키와 1기 대원들의 자세는 훨씬 뻣뻣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리키의 절대적 존경을 받는 사부이자 1기 대원들의 은인이었다.

최치우는 헤라클래스 대원들로부터 꾸며낼 수 없는 진심어린 리스펙트를 받았다.

특수부대 출신의 2기 대원들도 최치우를 어려워하며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을 1000명 가까이 늘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여러분이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의 팀원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리더가 되는 것이죠. 그럴 준비가 됐습니까?”

최치우가 사막 저편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을 맞으며 육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마이크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내공을 쓰지 않아도 아랫배의 힘으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맞은편에 도열한 200여 명의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위 어 레디!”

준비가 됐다는 말에 최치우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헤라클래스는 자유로운 전투 부대다.

그렇지만 대원들의 몸에서 풍기는 서슬 퍼런 군기는 가짜가 아니었다.

언제든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사막의 정예부대.

최치우가 원하는 그림대로 헤라클래스는 잘 벼려진 칼이 됐다.

역시 가장 큰 공은 리키가 세웠다.

한국에 비해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대원들을 담금질한 결과였다.

“어때요, 사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리키는 뿌듯한 얼굴로 최치우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가 자신감을 보이는 게 이해가 됐다.

눈앞의 헤라클래스 200명과 함께라면 악명 높은 게릴라 반군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레드 엑스 때처럼 굳이 최치우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어느 정도 희생은 있겠지만, 헤라클래스의 전투력은 정규 군대를 압살하고도 남는다.

아프리카처럼 정규 군대의 무장 상태가 낙후된 곳에서 헤라클래스는 더더욱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펜타곤에서 공수한 최신 무기를 쓰고, 군기와 훈련 상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전투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헤라클래스 200명이면 아프리카의 정규군 1,000명 이상과 붙어도 패배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서. 당장 병력이 5배로 늘어나면 예상 못 한 문제도 발생할 겁니다.”

“그렇다고 미룰 수는 없잖아요, 얼롸잇?”

“그거야 그렇지.”

최치우와 리키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둘은 긴말이 필요한 사이가 아니다.

눈빛만 봐도 대강 뜻이 통한다.

한국과 남아공, 비행기로 20시간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각별할 수밖에 없다.

최치우가 사대금강권의 초식을 리키에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무공을 전수하는 것, 그리고 차원이 다른 격투 기술을 배우는 것은 엄청난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우정이나 친분과는 격이 다른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해산! 자리로-!”

리키가 목청을 높였다.

그의 목소리 역시 최치우보다 작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서있던 헤라클래스 대원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다들 언제 군기가 들었냐는 듯 슬렁슬렁 자기 자리로 복귀했다.

헤라클래스는 군대와 달리 평상시엔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대신 훈련이나 전투 상황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리키가 판단했을 때 기준 미달이면 바로 짐을 싸서 돌려보낸다.

대원 한 명, 한 명에게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사설 무장단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대원들도 돈값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데 사부, 갑자기 800명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습니다.”

막사 안으로 들어온 리키가 입을 열었다.

둘의 이야기를 엿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치우는 마음 편히 속에 담긴 생각을 꺼냈다.

“2기 대원들처럼 펜타곤의 도움을 받을까 생각했는데 방향을 틀었습니다.”

“왜요?”

“헤라클래스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주둔하는 미군과 대립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심상치 않은 말이었다.

최치우는 농담을 한 게 아니다.

진지한 표정을 읽은 리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부가 그런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시간이 걸려도 직접 뽑는 게 맞아요.”

“우선 기존 대원들의 인맥을 적극 활용합시다. 다들 용병 생활을 오래 한 베테랑들이니 추천할 친구들이 있겠죠.”

“특히 1기 대원들 위주로 추천을 받을게요, 사부.”

“1,000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어중이떠중이로 머릿수 채우는 거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죠?”

“오브 코올스. 사부 스타일을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유 노우?”

리키의 천역덕스러운 제스처가 최치우를 웃게 만들었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게 리키의 강점이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계속했다.

“올해가 벌써 절반 가까이 지나갔습니다. 남은 반년 동안 헤라클래스가 꼭 수행해야 할 미션들이 있어요.”

“미션? 실전입니까?”

“실전입니다.”

리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최치우의 입에서 무척 어려운 명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긴장감이 드는 한편 동시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이날을 위해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전투력을 갈고 닦은 것이다.

“첫 번째 미션은 헤라클래스의 병력을 늘린다. 최선의 정예를 선발하되 올해 안에 1000명을 육박하는 군단으로 헤라클래스의 덩치를 키우는 겁니다.”

“얼라잇. 수시로 보고할게요.”

“두 번째 미션, 병력의 절반을 케냐로 이동시키고 주둔지를 만든다.”

“중부로…….”

리키도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곧장 이해를 했다.

올림푸스의 수뇌부 사이에서는 케냐로 진출이 새롭지 않은 이슈였다.

진짜 어려운 미션은 지금부터다.

“세 번째, 남아공과 케냐 국경의 게릴라와 반군들을 선제공격할 겁니다. 가능한 많은 거점을 파괴하고, 국경 주위를 완전히 쓸어버리도록.”

“우리가 먼저? 그러니까 광산이나 우리 부대를 공격하지 않아도 어택을 할까요?”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레드 엑스를 몰살시킨 것처럼 강하게 나갑시다. 게릴라 반군들의 거점과 무장 상태 등 필요한 정보는 내가 구해서 줄게요.”

최치우의 결단으로 해커 집단인 어나니머스는 대몫을 맞이하게 됐다.

게릴라 반군들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면 올림푸스는 기꺼이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정보료를 지불할 것이다.

“사부, 우리가 먼저 반군들을 공격하면… 그들이 연합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어요.”

리키가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했다.

헤라클래스는 남아공본부와 광산을 지키려고 창설됐다.

그렇기에 선제공격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게릴라 반군을 소탕하는 것은 정규 군대나 UN 평화유지군의 임무다.

자칫 흩어진 반군들을 잘못 건드리면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다.

리키의 염려처럼 게릴라 세력이 연합군으로 모여 대항할지 모른다.

괜히 적을 키우고,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명령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우리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궁금해요.”

리키가 눈을 빛냈다.

최치우는 그를 바라보며 아프리카에서 꿈꾸는 원대한 이상의 한 조각을 알려줬다.

“남아공과 케냐, 아프리카 남부와 중부의 중심지에서 엄청난 투자로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킬 겁니다. 단순히 광산을 개발해서 현금을 확보하는 건 너무 작은 목표가 됐습니다.”

“그래서 게릴라와 반군들을 미리 정리하려는 것입니까?”

“투자 확대와 생산성 증가를 위해선 국경의 치안을 안정시키는 게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미션이 더 있죠.”

“라스트 미션?”

“흩어진 게릴라 반군들을 공격하면서 정보를 모아줘요. 뒤에서 게릴라를 규합하는 세력이 있는지, 또 그들의 군수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미션입니다.”

“정보 수집, 알겠습니다. 그럼 레드 엑스처럼 다 죽이면 안 되겠네요.”

“전투 현장에서의 판단은 전적으로 맡길게요.”

“오케이, 돈 워리! 4개의 미션 모두 성공해서 사부에게 보답할 테니까.”

리키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어느 하나 쉬운 미션이 없었다.

최치우가 헤라클래스에게 너무 가혹한 미션을 준 것 같았다.

병력을 늘리는 와중에 선제공격도 하고, 정보도 얻어내고, 커버해야 할 지역도 늘어났다.

그야말로 1석 4조의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불만을 토로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리키는 최치우를 굳게 믿었다.

이만하면 무한 신뢰라는 말을 써도 될 것 같았다.

“사부가 가는 길, 가장 앞에서 내가 열겠습니다.”

영어 발음이 섞인 리키의 어설픈 말투가 천군만마처럼 든든했다.

최치우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케냐까지 갈 수 있겠군요.”

“케냐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가요?”

“전용기는 나이로비로 보내고, 난 중간에 들릴 곳이 있어서 차로 갈 겁니다.”

“여기서 케냐까지… 육로는 위험해요. 물론 사부한테 위험하진 않겠지만.”

리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남아공에서 케냐까지는 무척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리키는 최치우가 상식 밖으로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그래도 육로로 이동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괜찮습니다. 가는 길에 게릴라나 반군들을 만나면 환영할 일이고.”

“하하, 사부가 타고 가는 차를 공격하면 다 죽을 텐데.”

리키는 꽤나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최치우는 굳이 육로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정령의 흔적을 쫓아 소울 스톤을 하나 더 확보하고 나이로비에 도착하려는 것이다.

그래야만 김도현 교수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케냐에 소울 스톤 발전소를 짓고 말겠어.’

결심을 굳힌 최치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려운 대화를 끝낸 리키와 최치우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남아공을 넘어 케냐까지 쭉 연결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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