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백년지대계>
비밀스럽게 이뤄진 삼자대면은 예정보다 훨씬 늦게 끝났다.
저녁이 지나도록 세 사람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최치우가 네오메이슨에 대해 알아낸 정보는 피상적이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네오메이슨과 대적해 온 사람이 바로 최치우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네오메이슨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계기가 생기기 전까지 앞장서서 네오메이슨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네오메이슨은 최대한 수면 아래에서 움직였다.
눈에 띄는 순간 전 세계의 표적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계의 지도자들은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고 네오메이슨을 방치했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그들을 이용할 정도였다.
그렇게 네오메이슨은 몸집을 키우며 기생충처럼 자라났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결국 숙주를 잡아먹을 만큼 강력하게 변했지만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최치우와 올림푸스가 네오메이슨을 잡는 유일무이한 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로우 서클, 미드 서클, 하이 서클의 존재.
네오메이슨이 돈을 빨아들이는 방법.
결정적으로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까지.
최치우가 어렵게 얻은 정보는 알렉산드로 총장과 움바투 대통령의 마음을 흔들었다.
골치 아픈 짐을 떠안은 셈이지만, 알고도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다.
세 사람은 네오메이슨을 막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길게 볼 것도 없다.
아프리카에서 전쟁이나 학살, 전염병으로 인구가 말살되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네오메이슨은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다.
아프리카 인구를 말살시키며 전쟁으로 호황을 누리려고 아주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
어쩌면 100년에 가까운 계획일지 모른다.
지구의 인구가 포화 상태에 이르고, 선진국의 경제 성장이 멈추는 것은 100년 전에도 예측할 수 있는 문제였다.
여러 국가와 기업들은 타개책을 찾으려 고민하는 중이다.
네오메이슨처럼 아프리카 대륙을 희생양으로 삼는 위험한 발상을 하지 않을 뿐.
‘한발 앞서지 못하면… 막을 수 없다.’
최치우는 맨해튼의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삼자대면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올림푸스와 케냐 정부, 그리고 UN이 함께 대책을 세운다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네오메이슨의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이 아프리카 인구 말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림수를 준비했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게릴라 반군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진 않아. 분명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과 연계하고 있겠지.’
최치우는 큰 틀에서 네오메이슨의 전략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마치 네오메이슨 하이 서클의 멤버가 된 것처럼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만약 네오메이슨이라면 어떻게 전쟁을 일으킬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막는 방법도 나올 것이다.
“차근차근,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까.”
최치우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각오를 다졌다.
그래도 1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멀리 왔다.
네오메이슨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고, 든든한 우군도 늘어났다.
지금 당장 조바심을 내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네오메이슨이 인구 말살 정책을 실행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올림푸스의 영향력을 최대한 높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최치우는 스위트룸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많이 늦었네. 힘들었지?”
UN 본부에서 퇴근하고 먼저 도착한 유은서의 목소리가 최치우를 반겨줬다.
그녀 덕분에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지구는 광대한 행성이다.
최치우가 살았던 어느 차원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70억 인구를 수용할 만큼 자원이 풍부하고, 땅과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다.
현대 인류의 과학은 우주의 신비를 밝힐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기에 태양계, 은하계 너머 무한한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우주와 지구를 비교하기 쉽다.
물론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먼지 같은 행성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차원 중에서 손꼽히는 크기인 것은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증명할 수 없지만, 직접 8개의 다른 차원을 경험한 최치우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가 아무리 넓어도 최치우의 종횡무진을 막기 힘들다.
최치우는 올림푸스 전용기와 함께 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불과 며칠 전까지 뉴욕에 머무르며 역사적인 삼자대면을 성사시킨 그는 다시 열사의 땅 아프리카로 날아왔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MOU를 체결하기 위해서다.
움바투 대통령도 비슷한 동선으로 케냐에 귀국했다.
세상은 곧 올림푸스의 아프리카 중부 진출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남아공에서 탄탄한 기반을 쌓으며 현지에 적응한 올림푸스는 케냐와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이미 실무진에서 조율은 끝났고, 최치우와 움바투 대통령도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했다.
남은 것은 깜짝 발표와 공식적인 사인밖에 없다.
유은서를 뉴욕에 남겨두고 아프리카로 온 최치우는 먼저 남아공을 찾았다.
나이로비에서 사인을 하기 전, 아프리카 1차 전진기지인 남아공을 한 번 더 챙기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 정부의 주요 인물들과 미팅이 예정돼 있다.
이시환이 일을 잘해놨지만, 남아공 정부에서 올림푸스의 케냐 진출을 섭섭하게 생각할 여지가 크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독점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회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기왕이면 올림푸스가 남아공에 투자를 확대하길 바라는 게 당연한 심정일 것이다.
최치우는 남아공 당국자들을 만나 혹시 모를 서운한 마음을 풀어줄 작정이었다.
케냐를 얻기 위해 남아공을 잃을 수는 없다.
최치우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포섭할 계획이었다.
그 원대한 야망을 이루려면 아프리카 남부의 맹주인 남아공이 꼭 필요하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바쁘신데 이렇게 또 시간을…….”
자리에서 일어나 최치우를 맞이한 사람은 남아공의 재무부장관이다.
남아공 국정을 이끄는 실세가 직접 최치우를 반겨주고 있었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최치우는 세계 어디를 가도 정상급 국빈 대우를 받은 VIP가 됐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광산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남아공 정부에 잘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올림푸스 남아공 본부가 내는 세금이 어마어마해졌다.
더구나 남아공 본부에서 일으킨 투자와 고용이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게 됐다.
남아공 정부에서 올림푸스를 붙잡으려고 애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관님.”
최치우는 미소 띤 얼굴로 재무부장관과 악수를 나눴다.
케냐에서는 움바투 대통령이 직접 굵직한 업무를 챙긴다.
그에 비해 남아공에서는 재무부장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은 허울 좋은 명예직이고, 재무부장관이 1인자라는 말이 나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남아공의 복잡한 정치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상대가 대통령이든 재무부장관이든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에서 추진하는 일만 잘 통과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소문에 의하면 최치우와 악수를 나눈 재무부장관이 다음 남아공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제껏 마사투 장관에게 공을 들인 올림푸스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시나리오다.
“사실 이시환 본부장과 자주 만나지만, 그래도 대표님 얼굴을 보니 또 다른 기분입니다.”
마사투 장관이 뼈 있는 말을 했다.
이왕이면 올림푸스의 최고 책임자인 최치우를 자주 보고 싶다는 뜻이다.
최치우도 마사투 장관의 기분을 맞춰줬다.
“남아공은 올림푸스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장관님께서 질리도록 더 많이 방문하겠습니다.”
“내가 진짜 질리는지 아닌지 한번 지켜봅시다, 허허허!”
최치우의 농담에 분위기가 금방 풀렸다.
사실 마사투 장관도 예전과 달리 최치우를 한껏 예우하고 있었다.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는 거만한 태도로 유명하다.
올림푸스가 처음 남아공에 진출할 때는 최치우를 한참 어린 아랫사람처럼 내려다봤었다.
그러나 상황이 180도 달라지고, 최치우의 위상은 UN 사무총장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졌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만난 최치우를 대하는 마사투 장관의 언행은 한층 조심스러웠다.
고작 몇 년 사이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시가총액이 100조 원을 넘어 150조에 육박하고 있으니 마사투 장관도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세등등한 정권 실세라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
최치우는 이미 한 나라를 뒤덮는 뿌리 깊은 거목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올림푸스에서 소울 스톤 발전소를……. 호사가들의 입방정일 뿐이겠지요?”
마사투 장관이 은근슬쩍 본론을 꺼냈다.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다.
극비를 유지하기 위해 힘썼지만, 벌써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최치우는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마사투 장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솔직히 다른 투자는 우리가 뭐라 할 처지가 못 됩니다. 올림푸스가 남아공 회사도 아니고… 아쉽기는 해도 영역을 확장한다는데 박수를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울 스톤 발전소를 아프리카에 짓는다면 응당 남아공이 돼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장관님.”
최치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마사투 장관도 움찔하고 놀랐다.
항의를 하면서 최치우의 심기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본 것이다.
“예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남아공과 올림푸스는 이제 친구가 됐다고.”
“광산 개발권을 넘기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사투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치우는 그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올림푸스는 지금도, 미래에도 남아공의 친구일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나 더라는 말씀은…….”
“아프리카 대륙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최치우의 목소리에 담긴 묵직한 기운이 마사투 장관을 두드렸다.
마사투 장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풍채 좋은, 아니 뚱뚱한 몸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아프리카 대륙이 잘 살아야 남아공 경제도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아프리카의 대표 국가인 남아공의 발언권도 훨씬 강해질 겁니다. 아직 소울 스톤 발전소 건립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만, 올림푸스가 케냐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아프리카를 살리고 남아공을 살리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마사투 장관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은 최치우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삶으로 증명해온 업적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자본금 0원에서 시작해 150조 원을 넘보는 글로벌 기업을 이룩한 장본인이 자신있게 내뱉는 말이다.
마사투 장관은 26살의 청년이 내뿜는 순수한 기백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최치우는 단 한 움큼의 내공도 운용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감 하나로 남아공의 실세 지도자를 녹다운 시킨 것이다.
“남아공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겠습니다. 광산 개발에서 얻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교육에 투자하려 합니다.”
최치우는 적절하게 당근도 내밀었다.
사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울 스톤 발전소를 케냐에 지을 것이다.
그로인한 불만을 막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하다.
“대표님, 우리는 올림푸스와 친구라는 말만 믿고 가겠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함께 쓰고 싶습니다.”
최치우가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마사투 장관이 얼른 두툼한 손으로 최치우의 하얀 손을 맞잡았다.
간단하게 마사투 장관을 구워삶은 최치우의 남아공 일정은 아직 남아있다.
그는 내일 해가 뜨자마자 헤라클래스 기지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헤라클래스는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전투 부대로 변신할 것이다.
UN 사무총장에게 정식으로 인가를 받아냈다.
아프리카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한 네오메이슨의 100년 계획.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미래의 희망찬 100년을 건설하려는 올림푸스의 계획이 정면으로 맞붙을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