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08화 (208/243)

# 208

***

에릭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최치우의 본능이 몸보다 한발 앞서 반응했다.

로보티컬 칩은 자폭 버튼의 신호를 받고 즉시 폭발했다.

하지만 아주 약간, 시계로도 잴 수 없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0.01초 정도 될까.

하지만 최치우의 본능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낚아챘다.

단전에 잠든 내공은 자동으로 호신강기(護身罡氣)를 일으켰다.

호신강기는 순수한 내공을 발산해 방패막을 형성하는 절정의 경지다.

무림에서도 절대고수의 반열에 들어선 극소수만 호신강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

우웅!

폭발과 거의 동시에 호신강기가 최치우를 감쌌다.

그러나 완벽할 순 없었다.

최치우의 의지와 생각으로 발생시킨 게 아니라 무의식적 보호 본능으로 호신강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파파파파팍-!

요란한 폭발음이 울리고, 에릭 한센의 무릎에서 튀어나온 총탄이 최치우의 전신을 때렸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온몸이 벌집이 돼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호신강기로 몸을 지켰다.

투두두두두두-

대부분의 총탄은 최치우의 몸 위로 얇게 생성된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대신 사방으로 튕겨지며 작은 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물론 최치우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코앞에서 폭발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미처 호신강기가 생성되지 못한 곳은 총탄에 꿰뚫리고 말았다.

왼쪽 허벅지에 두 발, 오른쪽 종아리 한 발, 그리고 양 옆구리에 각각 한 발씩.

모두 다섯 발의 총탄이 최치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급소는 피했지만 그의 옷은 붉은 피로 흠뻑 젖었다.

“에릭 한센!”

최치우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사자후를 터트리며 염라대왕처럼 눈을 무섭게 치떴다.

그러나 에릭 한센의 몰골은 이미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로보티컬 칩을 폭발시킨 대가는 혹독했다.

에릭의 두 다리, 정확히 말하면 무릎 아래가 복구할 수 없이 절단돼버렸다.

로보티컬 칩이 터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론 폴 박사의 경고대로 에릭은 두 다리를 잃으며 최치우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최치우는 피범벅이 됐어도 우뚝 서서 압도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반면 바닥에 쓰러진 에릭은 다리를 잃은 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끙끙거렸다.

에릭 한센의 절망은 최치우 때문에 끝없이 깊어졌다.

이렇게 해도 최치우를 죽이는데 실패한 것이다.

무슨 수를 써도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인간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흐어어… 흐으으으…….”

에릭은 어린 아이처럼 서럽게 울고 있었다.

눈물 콧물을 짜내며 펑펑 우는 모습은 월 스트릿의 천재답지 않았다.

단순히 육체의 고통 때문에 이만큼 망가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게 끝났고, 더 이상 되돌릴 길이 없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 다시 선을 넘었군.”

최치우는 에릭을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일말의 자비도, 동정심도 베풀 가치가 없다.

조금 있으면 폭발음에 놀란 사람들이 방 안으로 달려올 것이다.

한껏 추해진 에릭 한센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너에게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다.”

최치우는 결단을 내렸다.

네오메이슨의 속사정이 궁금했지만, 정보가 아쉬워 에릭 한센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서 자폭 테러까지 당한 마당이다.

이제는 정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지옥으로 가라.”

“흐어어어-!”

죽음을 직감한 에릭이 두 팔을 휘저으며 절규했다.

최치우는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인페르노.”

6서클 화염 마법이 에릭 한센의 몸에서 타올랐다.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이 에릭의 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인페르노는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고, 일말의 미련마저 모조리 태워 버릴 것이다.

콰앙-!

“대표님!”

“방금 폭탄 터지는 소리가!”

그때 비로소 브라이언과 퓨처 모터스 직원들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난데없는 폭발에 다들 놀라 얼어붙었던 것이다.

겨우 이성을 찾고 문을 연 사람들은 귀신을 본 듯 창백해졌다.

최치우는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었고, 그 너머 에릭 한센으로 보이는 사람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하는 중이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비록 임시 주주총회에서 극단적 대립이 있었지만, 이런 결과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 대표님…….”

오죽하면 침착한 브라이언이 말을 더듬거릴 정도였다.

최치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퓨처 모터스의 임시 주총에 참여한 투자자들도 목격자가 됐다.

이럴수록 빠르고 정확하게 수습을 해야 한다.

“911, 그리고 경찰도 같이 불러주세요. 주총 결과에 불만을 품은 에릭 한센이 자살 폭탄 테러를 시도했습니다.”

“……!”

다들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피와 불꽃이 뒤섞인 장면을 보고 있지만 막상 최치우에게 설명을 들으니 더 놀라웠다.

그나마 브라이언이 정신줄을 붙잡고 폰을 꺼냈다.

“여기 지금 불이 나고 있어요! 그리고 피를 흘리는 사람도……. 당장 엠뷸런스, 엠뷸런스!”

거대한 혼란이 파티장을 덮쳤다.

파티의 끝을 비극으로 장식한 최치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투자자들에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최치우가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거물 투자자들이 최치우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마냥 나쁜 일이 아니다.

앞으로 주주들을 통제하고 컨트롤하는 게 한결 수월해질 수도 있다.

인간은 존경보다 공포에 더 취약한 존재다.

에릭 한센이라는 페이지를 접은 최치우는 존경과 공포를 아우르는 제왕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피와 불꽃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최치우의 대관식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재료였다.

***

충격적인 뉴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월 스트릿에서 두각을 나타낸 한센 가문의 대표 에릭 한센, 그가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키고 사망한 것이다.

테러의 대상은 다름 아닌 최치우였다.

범행 동기는 명확했다.

그동안 비즈니스 영역에서 마찰이 잦았고, 퓨처 모터스 주총에서 대립한 게 결정적 원인이었다.

테러에 실패한 에릭 한센은 폭발에 휩쓸려 죽었고, 피해자인 최치우는 찰과상 및 관통상을 입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사건이었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은 천재 두 명의 싸움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소재다.

게다가 결말까지 자극적이었다.

에릭의 죽음으로 한센 가문은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를 하며 사들인 퓨처 모터스 지분은 에릭의 여동생 델피 한센에게 상속됐고, 그녀는 지분을 매각해 현금화시킨 다음 잠적했다.

최치우는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치료에 집중했다.

사실 치료를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허벅지 관통상은 꽤 심각했으나 최치우의 회복력은 인간답지 않았다.

짐승, 아니 괴물처럼 자가 회복하는 모습을 의사들에게 보여주기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주총과 자폭 테러라는 굵직한 사건이 있었던 봄이 지나고, 사람들의 들끓는 관심이 조금 잦아들 무렵.

최치우는 다시 수면 위로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몰래 뉴욕에 머무른 그는 자주 이용하는 호텔 스위트룸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났네?”

최치우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침대 옆 화장대에는 유은서가 앉아서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

함께 밤을 보내고 먼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남자 친구 왔다고 지각하면 안 되잖아.”

“역시 프로의 향기가 난다.”

최치우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부터 UN 본부로 출근하는 유은서와 달리 최치우의 일정은 여유로웠다.

뉴욕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모처럼 가지는 여유였다.

주총에서 퓨처 모터스 경영권을 방어하고, 에릭 한센이라는 숙적까지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일까.

최치우는 지난 한 달 가까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100m 달리기든 마라톤이든 결승선을 넘은 다음에는 반드시 숨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달릴 수 있다.

4월부터 5월까지는 최치우가 숨을 고르는 기간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수만은 없었다.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비즈니스 전반을 체크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맹렬히 질주하면서 전후좌우를 다 살펴봐야 한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에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비즈니스에 있어 현상 유지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발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현재에 안주하면 알게 모르게 뒤처진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유은서가 최치우에게 선물받은 티파니 귀걸이를 하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최치우는 이불을 걷히고 침대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오늘? 케냐 대통령이랑 알렉산드로 총장.”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내용은 어마어마했다.

케냐의 대통령과 UN 사무총장을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 지구에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최치우에겐 일상적인 미팅이었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최치우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쳐다만 보던 천외천의 세계에 당당히 진입했다.

마침내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의 CEO와 비슷한 위치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됐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오히려 다른 거물들이 최치우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는 날이 온 것이다.

“총장님 뵙기로 했어?”

“응. 그런데 본부에서는 아니고, 호텔에서.”

“하긴, 비공개 미팅이면 그럴 수밖에 없겠네. 난 또 본부로 오면 얼굴 한번 더 보려고 했잖아.”

“밤 새 보고도 모자라?”

최치우가 미소를 지으며 유은서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확실히 20살 시절 연애를 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훨씬 깊은 사이가 된 것 같았다.

“나 지각하면 책임질 거야?”

“책임져야지.”

“안 돼, 나중에. 일찍 올게.”

유은서가 최치우를 다독이고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영웅으로 군림하는 최치우도 한 여자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됐다.

“잘 갔다 와.”

“너도 얼른 준비해.”

“그래야지.”

최치우는 짧은 키스로 유은서를 배웅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늦으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UN 사무총장과 케냐 대통령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역사적인 삼자대면이 되겠군.”

드넓은 스위트룸에 혼자 남은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유은서에게 장난을 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과 눈빛이 나왔다.

최치우가 이중인격자인 게 아니다.

휴식과 일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꽤 오래 공 들인 여명 작전의 대미를 장식할지 모른다.

삼자대면 결과에 따라 아프리카 중부의 핵심 국가인 케냐에도 올림푸스 깃발이 꽂힐 것 같았다.

샤워실로 들어가는 최치우의 걸음걸이에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왔다.

잠행을 끝내고 수면 위로 튀어올라 용솟음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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