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02화 (202/243)

# 202

***

최치우의 아프리카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정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많이 받았다.

특히 새롭게 UN 사무총장이 된 알렉산드로 마커스가 네오메이슨이 아니란 걸 확인한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알렉산드로 총장은 유은서가 만든 네오메이슨 리스트를 무척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UN 내부에 다른 뜻을 품은 스파이들이 뿌리를 내렸고, 불법적인 금융 거래를 돕고 있다.

중립적이고 깨끗한 UN을 위해 미국 정부와도 맞서 싸운 알렉산드로 총장은 이런 사태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UN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UN은 허수아비가 아니냐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만약 안에서부터 썩어 빠진 UN을 바로잡지 못하면 세계정부라는 자부심은 비아냥으로 바뀔 것 같았다.

최치우는 UN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방식을 선택했다.

미국 정부를 통했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 페인스 부통령이 미국 정부의 실세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

최치우는 마이크 부통령이 네오메이슨이란 사실을 모르지만, UN이라는 중립적인 기관에 리스트를 넘긴 게 탁월한 결정이었다.

UN에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하면 미국 부통령도 힘을 쓰기 어렵다.

UN이 미국의 영향을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독립적인 국제기구다.

게다가 알렉산드로 총장은 반전 행보를 거듭한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 부통령이 어설프게 회유나 협박을 시도했다간 어마어마한 스캔들이 터질 것이다.

최치우는 뜨거운 폭탄을 알렉산드로 총장에게 넘겼다.

그 폭탄을 언제 어떻게 터트릴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물론 알렉산드로 총장이 대충 폭탄을 숨기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케냐에서 만난 그는 네오메이슨 리스트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듣고 진심으로 분노했었다.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

UN이 강대국과 네오메이슨의 놀이터가 됐다는 사실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북유럽 출신의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가 화를 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상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최치우는 한국에서 머지않아 벌어질 빅 이벤트를 기다리며 차근차근 포석을 놓았다.

알렉산드로 총장이 UN 개혁을 위해 숨을 고르는 동안 놀고 있을 순 없다.

여명 작전은 한국과 뉴욕, 아프리카에서 어둠을 밝히는 원대한 비전이다.

최치우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먼저 여러 일을 추진하기 위해 모교인 S대를 찾았다.

모교에서 최치우가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김도현 교수가 아닌 공대 학과장이었다.

“학과장님, 이제 제가 휴학을 할 수 있는 기간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거야 얼마든지 학교에서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최 대표님.”

올해 초 새롭게 부임한 학과장은 최치우를 어려워했다.

원래 졸업을 안 하고 장기 휴학하는 학생은 대학의 골칫덩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완전히 달랐다.

그가 S대 공대와 에너지자원공학과에 투자한 돈은 액수를 따지기 힘들 정도다.

공학관 건물이 반짝반짝 빛나게 리모델링된 것은 모두 올림푸스 덕분이었다.

게다가 최치우는 매년 거액의 장학금을 쾌척한다.

김도현 교수와 함께 미래 에너지 탐사대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단체도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최치우는 S대 공대 역사상 최고의 자랑이었다.

소울 스톤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마땅한 분야가 없어서 상을 주지 못했다는 후문이 돌 지경이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이력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 학생을 붙잡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

“특혜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자퇴를 해도 저는 영원히 S대 에너지자원공학과 학생입니다, 학과장님.”

“그래도…….”

“올림푸스에서 학교에 지원하는 금액과 장학금은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아니, 매년 늘릴 계획입니다.”

“총장님도 그렇고 학생들도 많이 서운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한 번만 더 고민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나이 지긋한 학과장이 학부 휴학생 최치우에게 통 사정을 하고 있었다.

최치우도 학과장의 입장을 이해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최치우가 자퇴를 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최치우는 학과장을 달래듯 천천히 말했다.

마치 교수와 학생 입장이 뒤바뀐 것처럼 보였다.

“자퇴 결정은 번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학교에서 원하는 것들은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명예 졸업장을 받고 학기에 한 번 정도 특강을 해주는 건 어떠십니까?”

학과장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사회적인 명사가 되면 명예 졸업장을 발부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나 학부 1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졸업생이 자퇴를 하자마자 명예 졸업장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무리수를 두면서 최치우를 S대 공대 사람으로 단단히 붙잡고 싶은 학교의 입장이 느껴졌다.

학과장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미 최치우가 학교를 떠날 때를 가정하고 총장과 논의를 마친 것 같았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조금 넘게 학교를 다닌 게 전부지만, 모교에 대한 애정은 무척 깊었다.

S대에서 김도현 교수를 비롯해 이시환과 백승수, 그리고 유은서를 만났기 때문이다.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최치우의 첫 번째 둥지였다.

단순히 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7번의 환생, 8개의 차원을 통틀어 처음으로 발견한 홈그라운드가 바로 S대 에너지자원공학과였다.

“학과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명예 졸업장 수여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아울러 이후 특강도 일정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추진하겠습니다.”

“네, 저희 비서 팀에 최대한 학교 측 일정을 배려하라고 지시를 해놓겠습니다.”

“총장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최치우는 미소를 짓고 학과장과 악수를 나눴다.

이런 식의 정치적인 이벤트도 중요하다.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일이지만, 최치우는 자신이 쓰고 있는 왕관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았다.

화려한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그 무게도 견뎌야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모교의 일이기에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최치우는 자퇴를 하려다 졸지에 명예 졸업생이 됐다.

뿐만 아니라 유명 교수들처럼 학생들에게 특강도 해주기로 약속했다.

보나마나 최치우의 특강은 대강의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공대를 넘어 S대 최고의 인기 특강이 될 것 같았다.

“그럼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학과장님.”

“다음에는 총장님과 같이 식사라도…….”

“그래야죠.”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학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최치우를 배웅했다.

그가 오버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최치우는 말 한 마디로 S대 학과장을 바꿀 수 있는 거물이 됐다.

마음만 먹으면 총장도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

정제국 대통령을 청와대에 보낸 일등공신이 최치우라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비밀이었다.

한참 어린 최치우 앞에서 절절매는 학과장의 태도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짐을 떠안았지만, 어쨌든 숙제 하나는 해결했다.’

학생 신분을 벗어던진 최치우는 가벼운 마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모교의 후배들은 최치우를 알아보고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최치우가 나타나면 최대한 편하게 모른 척 하는 게 S대의 불문율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멋모르는 신입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몰래 사진을 찍는 학생들도 있지만 이만하면 양반이다.

다른 학교에 최치우가 나타나면 복도가 마비돼서 걷기도 힘들 게 분명하다.

최치우는 후배들의 배려를 느끼며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학과장실을 나온 그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연구실로 향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김도현 교수와 나눌 예정이었다.

아프리카 중부에 깃발을 꽂을 여명 작전, 그 핵심은 역시 소울 스톤이다.

최치우는 황량한 아프리카를 바꿔 놓을 계획을 세웠다.

똑똑-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심장 박동이 같은 리듬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

“케냐에 소울 스톤 발전소를 세우기로 결정을 내린 건가요?”

김도현 교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굳이 작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 연구실은 방음과 보안에 있어 완벽을 추구했다.

수많은 교수들이 이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김도현 교수의 집무실에서 나눈 대화가 새어나갈 염려는 없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낮춘 건 워낙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발전소는 대한민국 광명, 그리고 두 번째 발전소는 독일 라이프치히에 지어지고 있다.

전 세계는 세 번째 소울 스톤 발전소가 어디에 세워질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소울 스톤 발전소 유치 여부에 따라 친환경 에너지 발전량 증가는 물론이고, 특정 국가의 에너지 산업 방향성이 크게 바뀐다.

한국이 대체 에너지 시대로 달려가는 첫걸음을 뗐고, 독일이 유럽에서 깃발을 올렸다.

그 대가로 올림푸스는 막대한 이권을 보장받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퓨처 모터스가 전기차 보조금을 받도록 법까지 바꿨다.

소울 스톤을 눈독 들이는 국가도 많고,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할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프리카 케냐라니.

케냐는 아프리카 중부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다.

하지만 유럽과 북미, 그리고 아시아의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인프라부터 재정까지 열악하다.

비교를 하는 것조차 무리인 상황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나 중국, 또는 인도에 세 번째 발전소가 들어설 거라고 예상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김도현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우 군이 어떤 의중으로 케냐를 선택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김도현 교수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최치우와 그는 서로 숨길 게 없는 사이다.

“당장은 케냐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겁니다.”

“만약 미국이나 중국에 발전소를 짓는다면… 올림푸스의 시가총액은 또 한 번 가파르게 치솟을 거예요, 치우 군.”

“현실적으로는 그게 맞겠죠. 하지만 교수님, 올림푸스는 미래를 여는 기업 아닙니까.”

최치우가 진지한 얼굴로 김도현 교수를 빤히 쳐다봤다.

이미 세 번째 발전소를 위한 소울 스톤은 확보된 상태다.

콜로라도의 카이오와 그랜드 파크에서 소멸시킨 상급 대지의 정령 노하임.

최치우는 아프리카 출장을 떠나기 전 노하임의 소울 스톤을 김도현 교수에게 전달했었다.

연구 과정에서 소울 스톤이 파괴될 가능성도 있지만, 김도현 교수는 연이은 성공으로 노하우를 쌓았다.

노하임의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게 되면 곧장 세 번째 발전소를 지을 수 있다.

“아프리카는 개발이 시급한 대륙입니다. 그리나 남아공과 케냐 같은 중심 국가는 무분별한 난개발의 부작용을 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60년대, 70년대와 비교해도 정도가 지나칩니다. 천혜의 자연을 지닌 원시 대륙이 공장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그건… 후발 주자인 개발도상국의 숙명이지요. 브라질도, 인도도 피해갈 수 없는.”

“소울 스톤 발전소가 들어서면 그 숙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전소 하나로는…….”

김도현 교수가 우려의 뜻을 접지 않았다.

소울 스톤 발전소는 대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지만, 국가 단위를 커버하지는 못한다.

하물며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최치우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아프리카에는 상징이 필요합니다. 소울 스톤 발전소는 그들도 환경을 보존하며 개발할 수 있다는 걸 알리는 상징이 될 겁니다. 그로 인해 케냐뿐 아니라 남아공, 나이지리아, 가나와 같은 국가들도 자극을 받고, 아프리카에 투자를 하는 외국 자본의 고민도 깊어지겠죠.”

“치우 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조금 알겠네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지요? 미국과 중국을 마다하고 케냐에 발전소를 지어서 올림푸스의 가치를 그만큼 끌어 올릴 수 있나요?”

김도현 교수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최치우는 올림푸스라는 글로벌 기업의 오너이자 CEO다.

아무리 거창한 대의를 앞세워도 올림푸스의 이익을 외면할 수는 없다.

씨익-

그 순간, 최치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현실적인 대안도 준비했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더 큰 그림, 더 먼 미래를 봐주세요.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고, 인구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구 절벽이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아프리카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입니다. 중국이 아프리카 투자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치우는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위안화를 미친 듯이 뿌려대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에게, 또는 미국의 금융 자본에게 저만한 기회의 땅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남아공의 광산, 케냐의 발전소를 기점으로 올림푸스가 아프리카의 산업과 정치 그리고 군사력까지 차근차근 장악하는 겁니다.”

최치우는 당장의 수익을 능가하는 미래의 가능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그가 마음먹고 꿈을 풀어내면 당해낼 사람이 없다.

김도현 교수는 살짝 처진 안경을 콧대 위로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치우는 5년, 10년이 아닌 미래의 역사를 점치고 있었다.

다가올 인류 전체의 위기 앞에서 아프리카는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며 영향력을 늘리는 것, 그게 바로 여명 작전의 핵심이다.

웬만한 수재라고 해도 감히 상상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사고와 결단력이었다.

“치우 군이 가져온 새로운 소울 스톤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도록… 그저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교수님만 믿겠습니다. 늘 그렇듯이.”

최치우는 김도현 교수가 노하임의 소울 스톤을 성공적으로 다룰 거라 믿었다.

성공을 가정하고 이시환이 케냐의 장관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알렉산드로 사무총장의 UN 정상화 작업도 시작될 것 같았다.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불러오는 최치우의 여명이 지구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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