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98화 (198/243)

# 198

***

최치우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콜로라도에서 얻은 상급 대지의 정령, 노하임의 소울 스톤도 그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탔다.

뉴욕에서 출발해 인천으로 날아가는 올림푸스 전용기에 탑승한 것은 최치우와 소울 스톤뿐만이 아니었다.

산신령 허철후와 그 제자가 된 박우식, 그리고 유은서도 올림푸스 전용기의 손님이 됐다.

전용기에 처음 탄 박우식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헤벌쭉 했다.

평생 전용기에 한 번도 못 타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박우식은 최치우 덕분에 뉴욕도 와보고, 허철후라는 스승도 만나게 됐다.

하필 최치우가 7서클 마법 그래비티를 연습하던 순간, 한강대교에서 뛰어내린 게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이래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박우식은 한강대교에서 최치우를 만나며 7개의 운을 모두 썼는지 모른다.

이제 부족한 3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우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신기해? 앞으로 자주 탈 수 있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앗, 대표님. 죄송합니다. 얌전히 있겠습니다!”

최치우가 농담으로 핀잔을 줬다.

하지만 박우식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전용기 구석구석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허철후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고 녀석 최 대표 말이라면 꼼짝을 못 하네.”

“어르신 말씀도 잘 들을 겁니다. 쓸 만한 재목으로 키워주세요.”

“아무렴, 여부가 있겠나. 내 책임지고 우리나라 제일의, 아니 세계에서 으뜸가는 한의사로 만들어놓음세.”

다른 사람도 아닌 산신령 허철후의 약속이다.

허철후는 약초를 다루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제자가 되면 평범한 한의사들은 모두 발아래에 둘 수 있다.

올림푸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수능 공부를 하는 박우식은 기연에 기연을 겹쳐 만난 셈이다.

최치우를 만난 게 인생 최대의 기연이라면, 뉴욕으로 같이 와서 허철후의 제자가 된 것은 두 번째 기연이다.

보통 사람은 한 번도 겪기 힘든 기연을 연거푸 얻었으니 최치우 말이라면 깜빡 죽는 게 당연했다.

“어때? 좀 괜찮아?”

박우식을 진정시킨 최치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자리에는 유은서가 앉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한국으로 갈 수 있어서 고마워.”

“아직 장거리 비행은 무리 아닐까 걱정이 된다.”

“자리가 너무 넓어서 비행기를 탔는지도 모르겠는걸. 정말 편해.”

유은서는 UN에 제법 긴 휴가를 신청했다.

특수한 상황에 처했기에 UN에서도 휴가를 수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뉴욕에 계속 머무를 예정이었지만, 납치로 인한 트라우마를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 잠깐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편 국제 금융 감시 위원회의 총괄 간사 캐서린 아다만스는 해고를 당했다.

구체적인 물증은 나오지 않았지만, 펜타곤이 정치력을 발휘했다.

최치우는 캐서린이 네오메이슨이라고 확신했다.

캐서린 말고도 더 많은 네오메이슨이 UN에 암약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들을 차근차근 잘라내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유은서는 한국에서 건강을 추스르며 최치우를 도울 예정이었다.

우선 직접 만든 보고서 자료를 분석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이후 다시 UN으로 돌아가면 내부의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색출하는 역할도 맡게 될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납치 사건에 휘말린 유은서는 최치우의 파트너로 부상했다.

최치우는 복잡한 마음으로 유은서를 바라봤다.

‘독일에서 시작된 네오메이슨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데 은서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혹시 유은서가 또 다른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뉴욕의 병실에서 여전한 마음을 확인했다.

단지 지나간 대학생 시절의 추억이 아닌, 나이가 들며 더 깊어진 마음이다.

그렇기에 네오메이슨과의 전쟁에 유은서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나치게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래, 은서 스스로 나서서 만들어낸 보고서니까. 내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은서의 꿈과 열정을 막을 순 없어. 걱정할 시간에 은서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면 된다.’

최치우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표정이 저절로 부드러워졌다.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을까.

옆자리에 앉은 유은서가 최치우의 팔짱을 끼고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이러고 있어도 되지?”

“당연하지. 떨어지지 마.”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

허철후와 박우식, 그리고 전용기의 승무원들은 눈치껏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새로운 소울 스톤을 포함한 목표를 달성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최치우는 소중한 사람을 되찾았다.

어렵게 연결된 인연의 끈을 다시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지이잉- 철커덕!

부자연스러운 기계음이 울렸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거슬리는 소리다.

하지만 에릭 한센은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상을 다 잃었다 다시 가진 기분이 이러할까.

무릎 뼈가 박살 난 그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할 위기에 처했었다.

어려운 재활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평생 불구로 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마이크 페인스 미국 부통령이 동아줄을 내려줬다.

네오메이슨에서 개발한 최신형 로보티컬 칩을 이식해 준 것이다.

대신 마이크 부통령이 원한 요구 조건은 하나였다.

한센 가문의 전부를 걸고 최치우를 쓰러트려야 한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에릭과 그의 가문은 처절하게 버림받을 것이다.

“최치우-!”

에릭은 두 다리로 우뚝 섰다.

비록 무릎에서는 기계음이 웅웅거리지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소음 장치를 달면 기계음도 줄어들 것이다.

짝짝짝짝짝!

그때 누군가 박수를 치며 에릭에게 다가왔다.

에릭은 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냉혈한 에릭 한센이 활짝 웃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상대가 로보티컬 칩을 이식해 준 박사라면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해 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론 폴 박사, 이거 정말 대단합니다.”

“핫핫핫! 테스트 단계였는데 다른 분도 아니고 한센 가문의 주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콧수염을 도드라지게 기른 론 폴 박사의 눈빛은 사뭇 음흉해 보였다.

하지만 다시 걷게 됐다는 기쁨에 빠진 에릭은 론 폴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무릎과 다리만 내려 보고 있을 뿐이었다.

“로보티컬 칩에는 몇 가지 기능이 더 있습니다.”

“기능?”

에릭이 흥미를 보였다.

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자신의 콧수염을 매만졌다.

“우선 근력. 보통 성인 남성의 근력이 1이라면, 로보티컬 칩은 10의 근력을 발휘하게 만들어 줍니다.”

“10배나 말입니까?”

“테스트를 해보죠.”

삑-

론 폴 박사가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트 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치지직!

그러자 에릭의 무릎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났다.

“어디 보자……. 마땅히 시험할 게 없으니 제자리에서 점프를 해보세요.”

에릭은 방금 전까지 병상에 누워 있던 사람이다.

멀쩡히 걷게 된 것도 놀라운데 론은 점프를 권유했다.

잠깐 망설이던 에릭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뛰었다.

부웅-!

거짓말 같았다.

에릭의 몸이 2m, 아니 3m 가까이 솟아오른 것이다.

쿵!

공중에 높이 떠올랐다 착지한 에릭 한센은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전력을 다해 점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핫핫핫핫! 이제 좀 실감이 되지요?”

“이거 정말…….”

“알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하지만 여기서 놀라면 섭섭합니다.”

에릭의 넋 나간 얼굴을 본 론 폴 박사는 한껏 고무됐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다른 기능을 소개했다.

“아시아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 말이라면 들어본 적 있지요.”

“최후의 순간, 반드시 죽이고 싶은 적이 있다면 두 다리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론의 질문을 받은 에릭이 눈을 빛냈다.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살기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최치우에게 일생일대의 고통과 굴욕을 맛봤기에 이판사판 가릴 게 없었다.

“론 폴 박사,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됐습니다.”

“핫핫, 그거 좋군요. 이 버튼을 누르면 로보티컬 칩이 폭발하며 전방 3m, 혹은 그 이상이 초토화될 겁니다.”

“자살 폭탄이란 말입니까?”

“자살은 아니지요. 두 다리가 날아갈 뿐, 물론 죽는 것과 비슷한 통증을 느끼겠지만. 대신 전방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여 버릴 수 있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으십니까?”

“만족스럽지요. 만족스럽고말고요.”

에릭 한센과 론 폴이 서로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면… 괴물 같은 최치우, 그놈도 죽일 수 있다.’

에릭은 최후의 무기를 쓸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난번처럼 최치우와 가까이 서 있는 순간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로보티컬 칩을 폭발시킬 것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하지요.”

“론 폴 박사, 펜타곤이 감당할 수 없는 천재였다고 들었는데 역시 명성대로 대단한 실력입니다.”

“아닙니다, 핫핫핫. 로보티컬 칩이야 애들 장난입니다.”

“듣기로는 1억, 아니 10억의 인구를 몰살시킬 수 있는 걸 개발한다고…….”

에릭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그러자 론 폴 박사가 가면을 바꿔 쓴 것처럼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실없이 웃으며 에릭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칩을 이식했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추가 업데이트는 우리 연구소의 다른 박사들이 실행할 겁니다.”

론 폴 박사가 찬바람을 풀풀 풍기며 등을 돌렸다.

에릭 한센은 멀어지는 론 폴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두고 보자. 최치우와 올림푸스만 추락시키고, 네오메이슨의 하이 서클로 들어갈 테니까. 그때는 네가 개발하는 모든 걸 나도 알게 되겠지.’

네오메이슨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비밀을 품은 조직이었다.

금융계의 거물로 세계를 좌우하는 에릭 한센 역시 모르는 게 있다.

어쨌거나 로보티컬 칩을 이식한 에릭은 본격적으로 복수를 준비할 태세였다.

***

최치우는 유은서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네오메이슨의 꼬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으로 함께 돌아온 유은서를 비롯해 임동혁, 백승수, 그리고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성과였다.

독일에서 매각된 자산을 최종적으로 흡수한 미국 기업과 연구 단체 리스트가 나왔다.

그 리스트가 바로 네오메이슨이 노출한 꼬리이자 몸통의 일부다.

최치우는 금융 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해당 기업과 연구 단체에 적용할 수 있는 혐의까지 정리했다.

국제 금융 거래법 위반, 탈세, 자금 세탁 등 적용 가능 한 혐의가 무더기였다.

만약 미국 법원과 정부가 혐의를 사실로 인정하면 리스트의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즉 네오메이슨의 자금 창구가 꽁꽁 얼어붙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치우는 UN을 통해 네오메이슨 리스트를 터트릴 생각이었다.

물론 UN 내부에서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격하게 반발하는 이들은 분명 네오메이슨 소속일 확률이 높다.

UN의 권위를 빌려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덤으로 UN 내부의 네오메이슨까지 색출할 수 있다.

판단을 내린 그는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

“UN 사무총장을 만나야겠어.”

최치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임동혁을 놀라게 만들었다.

웬만한 재벌 오너들, 거물 정치인과 끈이 있는 임동혁이지만 UN 사무총장은 레벨이 다르다.

그러나 머지않아 최치우는 UN 사무총장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릭 한센이 복수를 준비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최치우도 네오메이슨에게 치명타를 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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