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94화 (194/243)

# 194

“그러고 보니… 저 철문을 열어야 나갈 수 있군.”

목적을 완수한 최치우는 굳게 닫힌 철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릭은 지독한 통증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의식을 잃었다.

철문을 여는 장치를 찾거나 내선 전화로 바깥의 비서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최치우는 훨씬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후우우욱-!

무지막지한 기운이 최치우의 오른손 정권에 실렸다.

굳이 금강나한권 최종 비기 중 하나인 천보일권을 펼칠 필요는 없었다.

그랬다간 철문이 종잇장처럼 찢어질 것이다.

강한 충격과 진동으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 충분하다.

최치우는 주저하지 않고 철문으로 달려가 주먹을 뻗었다.

아무런 무공 초식도 쓰지 않고, 그저 내공으로 휩싸인 맨주먹을 철문에 때려 넣었을 뿐이다.

쿠우우우웅-!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거대한 종을 친 것 같은 파장이 깊게 울렸다.

‘과유불급.’

최치우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팔을 거뒀다.

마음 같아선 철문 따위 얼마든지 부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소문 날 일을 더 만들 이유가 없었다.

이미 그들의 주인 에릭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잉- 지이이잉-

최치우의 정권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철문이 아까보다 버벅거리며 좌우로 열렸다.

철문 너머에는 에릭의 여비서들과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곧이어 여자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고, 경호원들은 권총을 꺼내 최치우를 겨눴다.

“꺄아아아-!”

“아아악!”

척! 처척!

최치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여자 비서들의 비명을 비웃는 게 아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 에릭을 확인하고, 곧장 권총을 빼든 경호원들의 대응이 제법 빨랐기 때문이다.

비록 에릭과는 악연으로 얽혔지만, 그의 휘하에 있는 경호원들은 진짜 프로다웠다.

그러나 달라질 것은 없다.

최치우는 경호원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를 쳐다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너희 주인을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영원히 두 다리를 못 쓸지 몰라.”

“겨,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과연 이곳에 경찰을 부르는 걸 에릭이 용납했을까?”

최치우의 반문에 경호원들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은 한센 가문의 사업 내역과 기밀이 보관된 비밀 창고나 마찬가지다.

에릭의 허락을 받지 않은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그렇기에 빌딩 최고층을 에릭 혼자서 다 쓰는 것이다.

최치우는 더욱 짙게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여기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나? 원한다면 나중에 언제든 신고해도 좋다. 올림푸스의 최치우가 에릭 한센을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세상에 알리면서.”

말을 마친 최치우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경호원들이 계속 총구를 겨누고 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많았다.

어차피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설령 총을 쏴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최치우는 총알을 피하거나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대신 두 눈으로 최치우의 능력을 확인한 경호원과 비서들을 모두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벅저벅.

최치우는 석상처럼 얼어붙은 경호원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다행히 누구도 총을 쏘지 않았다.

경호원들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그들은 최치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멍하게 지켜봤다.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 911을 부르지도 않았다.

그사이 최치우에게 짓밟힌 에릭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갖고 놀던 천재 금융인의 모습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비참했다.

에릭에게 추락의 공포를 각인시킨 최치우는 유유히 한센 빌딩을 빠져나왔다.

***

한센 빌딩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돌아온 최치우는 유은서의 곁을 지켰다.

그녀는 UN에 정식으로 휴가를 냈고, 문제의 자료는 최치우에게 전달했다.

최치우는 유은서가 밤낮없이 매달려 만든 자료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

‘에릭이 직접 나서서 은서를 납치할 이유가 있었군.’

자료를 본 최치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독일에서 출발한 자금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거쳐 버진 아일랜드로 들어갔고, 최종 목적지는 미국이었다.

일련의 흐름을 추적하면 에릭 한센와 네오메이슨의 아킬레스건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서야, 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어.”

“정말?”

“이 자료는… 어쩌면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상사는 이걸 보고도 중요하지 않다고 핀잔만 줬어.”

“그 상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캐서린이야. 우리 위원회의 총괄 간사.”

“다른 사람에게 자료를 보여준 적 있어?”

“아니……. 함부로 보여줄 수 있는 보고서가 아니라서 캐서린에게만 말했었어.”

“그리고 난 다음 납치를 당했고.”

최치우가 사뭇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에릭 한센은 유은서와 최치우의 관계를 미리 알고 납치한 게 아니었다.

납치 이후 펜타곤의 개입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뒤늦게 유은서가 최치우의 연인이었음을 파악한 것이다.

“은서야.”

“응…….”

“아무래도 캐서린이라는 사람이 의심스럽다.”

“…….”

유은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자료 때문에 납치를 당한 것이라면, 유일하게 보고를 받은 캐서린이 연결 고리일 수밖에 없다.

네오메이슨은 독일 정부에도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UN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오히려 세계 정부인 UN에 자기 사람들을 심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캐서린, 그 여자는 네오메이슨이다.’

최치우는 결론을 내렸다.

그게 아니고선 유은서의 납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우선 캐서린을 시작으로 UN 내부의 네오메이슨을 줄줄이 엮어내야 한다.

동시에 유은서의 자료를 바탕으로 거액의 돈세탁과 탈세 증거를 확보하면 월척이다.

‘독일에서 자금 세탁이 시작됐어. 꽤 급했군, 네오메이슨.’

최치우는 네오메이슨이 독일에서 자금을 빼돌린 이유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라이프치히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최치우가 독일의 교통부장관 보좌관 마르코 슈테겐을 잡으며 네오메이슨을 대부분 소탕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기반을 잃은 네오메이슨은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철혈의 총리 메르켈이 칼을 빼든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독일의 금융 자산 현금, 그리고 부동산까지 동결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부랴부랴 자산을 매각하고, 돈을 북유럽과 버진 아일랜드로 돌려 세탁한 것이다.

유은서는 그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일을 해냈다.

최치우는 단순히 네오메이슨의 돈세탁과 탈세만 잡아낼 생각이 없었다.

돈세탁 흐름을 추적해 누가 네오메이슨에 협조하는지, 또 어떤 기업이 네오메이슨 소속인지 실체를 밝힐 계획이다.

베일에 쌓인 네오메이슨의 진면목을 알아낼 수 있는 비밀 지도를 유은서가 그린 셈이었다.

“많이 위험했지만, 진짜 고생했어. 덕분에 올림푸스에도, UN에도 큰 힘이 될 것 같아.”

최치우는 진심으로 유은서를 격려했다.

그러자 병상에 누워 있던 그녀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푸릇푸릇한 스무살, 최치우와 유은서가 처음 만난 MT 버스 안에서 보여줬던 그 미소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유은서도 한층 성숙한 여인이 됐지만 특유의 맑고 밝은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그녀는 최치우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치우야, 난 이제 어떡하는 게 좋을까?”

“우선 푹 쉬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 UN으로 복귀하는 것도 큰 문제 없을 거야.”

최치우는 유은서가 복귀하기 전에 캐서린을 비롯한 UN 내부의 네오메이슨을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아울러 유은서에 대한 비밀 경호도 따로 준비할 예정이다.

이왕 부탁한 김에 펜타곤의 힘을 더 빌리면 된다.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지금쯤 나는…….”

“고마울 거 없어.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유은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최치우도 막상 말을 해놓고 약간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렸다.

위기를 함께 겪으면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잠시 끊어졌던 두 사람의 인연이 뉴욕에서 다시 연결된 것 같았다.

***

최치우는 미국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은서의 메시지를 받고 급히 전용기를 탔지만, 원래부터 미국 출장은 예정된 스케줄이었다.

다만 유은서의 납치 사건을 해결하고, 에릭 한센을 징벌하느라 원래 일정은 뒤로 밀렸다.

그동안 한국에서 산신령 허철후와 박우식이 날아왔다.

최치우는 유은서의 병간호를 허철후에게 맡겼다.

허철후는 호령독삼으로 최치우를 만독불침에 이르게 만들어준 기인이다.

그가 직접 유은서를 진맥하고, 체질에 맞는 보약을 지으면 납치를 당하기 전보다 더 튼튼해질 것이다.

견학을 위해 따라온 박우식도 의젓했다.

자살하려고 한강대교에서 뛰어내렸던 때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허철후의 수발을 들며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애쓰는 게 기특해 보였다.

최치우는 두 사람에게 유은서를 부탁하고 다른 스케줄을 소화했다.

먼저 잭 앤더슨과 만나 협의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펜타곤의 도움을 받았으니 입을 씻을 수는 없다.

안 그래도 펜타곤은 동해에서 이상 기후를 해결한 것에 관심을 보였었다.

최치우는 잭 앤더슨과 대화를 끝내면 콜로라도로 이동할 것이다.

콜라라도에서 대지의 정령을 소멸시키고, 소울 스톤을 얻어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선 유은서의 자료를 이용해 네오메이슨의 약점을 파헤치면 된다.

하나씩 차근차근 파고들면 조만간 엄청난 성과를 손에 쥘 것 같았다.

“에릭 한센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화제입니다.”

최치우의 맞은편에 앉은 잭 앤더슨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는 오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CNN 뉴스를 언급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양쪽 무릎뼈가 골절됐다는 발표… 이걸 믿어야 합니까?”

“믿고 안 믿고는 펜타곤의 자유입니다.”

“대표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알아도 변하는 것은 없겠죠. 한센 가문에서 스스로 은폐한 사실이니까.”

최치우는 노련했다.

그의 예상대로 한센 가문, 그리고 네오메이슨은 일을 조용히 묻으려 했다.

올림푸스의 최치우에게 무릎뼈가 박살 났다는 사실을 외부로 알릴 수 없는 것이다.

“올림푸스와 한센 가문의 충돌에 펜타곤이 개입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내용은 알아야 상부에 보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은서가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에릭 한센이 납치를 했고, 하필 내가 나서면서 일이 이렇게 커진 겁니다.”

“그 UN의 직원이 민감한 내용을 알아냈단 말입니까?”

“원한다면 펜타곤과 자료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도움을 받기도 했고.”

최치우의 말을 들은 잭 앤더슨이 눈을 빛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총보다 강력한 무기다.

한센 가문의 수장 에릭이 직접 나서 납치를 할 정도의 정보라면 펜타곤도 탐을 낼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잭의 태도를 보고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대신 이 자료를 에릭 한센에게 넘긴 배신자를 UN에서 제거해 주면 좋겠군요. 펜타곤의 영향력으로.”

“그게 누구입니까?”

“캐서린 아다만스. 국제 금융 감시 위원회의 총괄 간사입니다.”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틱-

최치우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탁자 위에 던지듯 올려 놓았다.

유은서의 자료가 담긴 카피본이다.

에릭은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USB를 갈무리했다.

“우리도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동해에서…….”

“그 이야기는 다음에. 내가 또 펜타곤의 도움을 받게 되면 다시 합시다.”

최치우는 계산을 정확하게 했다.

그가 단호하게 철벽을 치자 잭도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최근 미쓰릴 필드를 테스트 용도로 썼습니다. 하나 더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미쓰릴 필드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펜타곤과 처음 계약을 할 때 최치우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부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펜타곤에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는 거부(巨富)로 성장했다.

“특별히 하나 더 챙겨보겠습니다.”

잭이 생색을 냈다.

어떻게든 최치우에게 빚을 지우려는 것이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고마웠습니다, 잭.”

펜타곤과의 협의도 무난하게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폭군의 면모를 보여준 최치우의 시선은 벌써 콜로라도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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