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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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는 기진맥진했지만 무사히 헤엄을 쳐 구조선으로 돌아왔다.
물에 홀딱 젖은 그는 갑판에 대자로 드러누워 웃음을 터트렸다.
일생일대의 강적,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를 이겼기 때문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결자해지(結者解之)에 성공했다.
당분간, 어쩌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물의 정령왕은 공석일 것이다.
그사이 최치우는 더 많은 소울 스톤을 확보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더불어 자신감도 생겼다.
훗날 불의 정령왕, 대지의 정령왕, 바람의 정령왕을 만나도 당당하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공, 마법, 그리고 과학…….”
최치우는 우라노스와 싸우며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실전에서 7서클 마법을 사용했고, 미쓰릴 단검을 들고 권왕의 아랑권도 펼쳤다.
특히 미쓰릴 필드로 우라노스의 권능을 봉인시킨 게 백미였다.
7서클 마법 플래시로 미쓰릴 필드를 발동시키고, 이후 3분이 지날 때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전력을 쏟아부은 건 다시 생각해도 기막힌 신의 한 수였다.
“진짜 잘 싸웠다. 그리고 진짜 재밌게 싸웠어.”
최치우는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멈추지 못했다.
100% 목숨을 걸고 싸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전투에서 짜릿하게 승리하는 쾌감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쿵쿵!
숨을 고르고 일어선 최치우가 지하 객실 입구를 두드렸다.
지하실에서 최치우만 기다리는 선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줄 차례다.
스으윽-
입구의 문이 열리고, 선원들이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올라왔다.
“대표님! 어, 어떻게 됐습니까?”
“창밖을 보세요. 날씨가 어떤가요?”
“와아!”
나이 지긋한 베테랑 선원이 어린아이처럼 환호성을 내질렀다.
뒤이어 지하 객실에서 올라온 다른 선원들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누구는 만세를 불렀고, 또 누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선원들에겐 최치우를 기다리는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잘못하면 구조선도 풍랑에 휩쓸릴까 염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치우가 돌아왔고, 배를 뒤집은 파도와 바람은 감쪽같이 잠잠해졌다.
기대했던 최상의 결과가 현실이 됐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덕분에 시추 기계에 고립된 연구원들……. 너무 늦지 않게 구하게 됐습니다.”
조타수인 선원이 최치우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선원과 연구원들은 울릉도, 독도에서 동고동락하며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배가 뒤집혀 사고가 났을 때도, 시추 기계에 스무 명 넘는 연구원이 고립됐을 때도 선원들은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안타까워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무작정 폭풍우 몰아치는 해역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최치우는 한 줄기 희망이었고,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사실 선원들은 구조선을 이끌고 독도 인근까지 나오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최치우가 대단하고, 올림푸스가 전설적인 회사라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한껏 맑게 개인 날씨가 증명해 주고 있다.
기적을 일으킨 최치우는 선원들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파도도 없는데 시추 기계로 가죠. 가장 먼저 도착해서 기쁜 소식을 알리고, 연구원들을 데려오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안 그래도 다들 많이 불안해하고 있을 터인데……. 울릉도의 정 단장님께 신호를 보내고 시추 기계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저는 조금만 더 쉴게요.”
“그런데 대표님, 미처 말씀을 못 드렸는데 바다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젖어 있으십니다.”
“이건… 파도가 많이 쳐서. 괜찮습니다.”
최치우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작정하고 의심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러나 혼자서 미친 풍랑을 잠재운 최치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최치우는 끊이지 않는 선원들의 찬사를 들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대, 대표님. 여기 커피라도 좀 드세요.”
곧이어 막내 선원이 따뜻한 믹스 커피를 끓여 최치우에게 건네줬다.
머뭇거리던 그는 최치우가 커피를 받아 들자 고개를 푹 숙였다.
“영광입니다!”
“영광은요. 내가 고맙죠. 커피 잘 마시겠습니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어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평소엔 믹스 커피 대신 진한 원두커피를 선호한다.
하지만 지금은 달달한 믹스 커피가 생명수처럼 느껴졌다.
우라노스와 싸우며 쌓인 피로가 쫙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전리품보다 더 값지다, 이 커피 한 잔.’
최치우의 얼굴 위로 뿌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기상 이변마저 잠재운 영웅 최치우를 태운 구조선이 독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고비를 넘어선 독도 프로젝트에 서광이 내려앉을 것 같은 날이었다.
***
최치우는 마치 개선장군이 된 것 같았다.
시추 기계에 고립된 연구원들을 태우고 울릉도 선착장에 배를 세우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야아아-!”
“진짜 왔다, 진짜 돌아왔어!”
“최치우! 최치우! 최치우! 최치우!”
해저 가스 사업단 직원들, 그리고 수많은 울릉도 주민들이 애타게 구조선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최치우가 연구원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슈퍼 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정기석 단장은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글썽거리며 최치우에게 달려왔다.
“대표님,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르겠십니다. 우리 사업단 전원이 대표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겠십니다.”
“아닙니다, 단장님. 먼저 사고를 당한 12명의 연구원들을 구하지 못해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그건…….”
정기석 단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연재해를 뚫고 고립된 연구원들을 구한 것은 크나큰 성과다.
하지만 앞서 배가 뒤집히며 실종된 12명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치우는 한참 어른인 정기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건넸다.
헤아리기 힘든 인파가 최치우의 이름을 연호하며 영웅의 귀환을 반기는 와중에도 그는 우선순위를 잊지 않았다.
인기에 도취 되어 우쭐거릴 단계는 한참 전에 지났다.
개선장군으로 돌아와서 정기석부터 위로하는 최치우의 그릇이 새삼 끝없이 크게 느껴졌다.
최치우의 속 깊은 마음 씀씀이는 정기석과 가스 사업단 직원들의 진심 어린 존경을 사기 충분했다.
연구원들을 구하며 자연을 이겨낸 최치우는 또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될 것 같았다.
***
최치우는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펜타곤의 천재 연구원, 잭 앤더슨이 한국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건 것이다.
“실례인 것은 알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든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최치우는 가볍게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사실 잭 앤더슨과 최치우는 사적으로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러나 서로를 무시할 수 없는 관계였다.
펜타곤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잭 앤더슨이 없었다면 미쓰릴 필드도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올림푸스와 펜타곤은 미쓰릴이라는 절대 금속을 매개로 연결돼 있다.
펜타곤의 위상은 워싱턴에서도 독보적이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필요할 때마다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남아공의 헤라클래스에 미국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펜타곤 덕분이었다.
펜타곤은 미쓰릴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미쓰릴 필드 역시 계속해서 개량하는 중이다.
최치우는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와 싸우며 미쓰릴 필드의 성능을 톡톡히 체험했다.
성능이 개선된 미쓰릴 필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펜타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펜타곤도 최치우와의 끈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최치우는 미쓰릴을 제공하며 펜타곤의 비밀을 꽤 많이 알아버렸다.
게다가 그는 언제든 미쓰릴처럼 신비로운 물질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다.
펜타곤이 공을 들여 관리할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관계.
그것이 바로 올림푸스와 펜타곤의 사이를 정의하는 말이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이상 기후를 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올림푸스에서 실험 중인 기술을 사용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소문이 참 빠르군요.”
“CNN과 NBC가 올림푸스 소식이라면 미국 대통령 뉴스보다 더 빨리 보도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그건 기분 좋은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실험 중인 기술로 동해의 이상 기후를 해결한 건 사실입니다.”
최치우는 잭 앤더슨을 속였다.
정령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소울 스톤의 비밀까지 구구절절 밝혀야 한다.
어차피 말을 해도 미친놈 소리나 들을 뿐이다.
‘미쓰릴을 경험한 펜타곤이라면… 정령의 존재도 믿을 수 있지만.’
최치우는 잠깐 든 생각을 금방 지워 버렸다.
펜타곤이 정령의 존재를 믿으면 그것대로 문제가 심각해진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 기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군사 기술은 아닌데, 펜타곤이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상 기후나 자연 재해 때문에 군사 작전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올림푸스의 기술이 효과적이라면 펜타곤에서 사고 싶습니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최치우는 이미 펜타곤과 미쓰릴로 거래를 트며 신뢰를 쌓았다.
그런데 이상 기후를 해결하는 기술은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다.
기술로 풍랑을 잠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실험을 하는 중이고, 위험성도 높습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을 뿐……. 펜타곤과 논의하기엔 이른 단계입니다.”
“미쓰릴 케이스처럼 우리의 기술력으로 연구를 진척시킬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가격과 조건은 얼마든지 맞추겠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조만간 미국에 들어갈 테니 다시 이야기하죠.”
최치우가 사뭇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잭 앤더슨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못했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펜타곤 소속의 천재 연구원도 최치우의 심기를 함부로 거스를 수는 없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오너이자 CEO라는 무게감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이제는 미국 국방부 장관도 최치우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몇 년 동안 비약적으로 높아진 최치우의 위상은 측정이 어려울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최치우가 잭 앤더슨의 전화를 직접 받아주는 것도 친절을 베푼 셈이었다.
공식적인 신분으로는 연구원인 잭과 일일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물론 잭은 막후에서 펜타곤의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실세이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미국에 오시면 찾아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결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봅시다, 잭.”
최치우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펜타곤이 자신의 행보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뭔가 수를 내야겠군.”
최치우가 혼잣말을 읊조리는 그때, 잭 앤더슨은 펜타곤에서 부하 연구원의 보고를 받았다.
“인공위성 데이터는 분석이 끝났나?”
“사진과 영상 모두 불투명합니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너무 짙게 형성되어…….”
“고작 안개 때문에 우리 위성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잭 앤더슨이 차갑게 이죽거렸다.
펜타곤 내부에서 그는 냉혈한으로 악명이 높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기에 평범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질책을 받은 부하 연구원은 고개를 숙였다.
“안개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의 해역에서 측정을 방해하는 강력한 전자파가 형성됐습니다.”
“위성을 무력화시키는 전자파라……. 대체 올림푸스는 동해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잭 앤더슨이 한 손으로 볼펜을 돌렸다.
잠시 머리를 굴린 잭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오늘 이후 휴민트를 포함한 모든 자원을 가동해 올림푸스의 최 대표를 감시하도록. 그가 가진 능력이 어쩌면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펜타곤의 천재이자 실세 잭 앤더슨이 최치우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최치우를 중심으로 수면 아래에서 세계의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