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87화 (187/243)

# 187

<삼위일체>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차원을 통틀어 최치우가 유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를 대적하긴 힘들었다.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8서클 마법을 펼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지금으로선 무리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패배를,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일 순 없다.

최치우는 무공과 마법의 조화에 한 가지 힘을 덧씌웠다.

바로 과학이다.

현대는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다.

기계 문명이 인류를 지배하던 차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과학이 발전했다.

특히 펜타곤에서 만든 미쓰릴 필드는 과학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쓰릴이라는 특수 물질이 현대 과학을 만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물론 오작동도 자주 일어나고, 적용 시간과 범위도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3분 동안 현대식 무기를 비롯한 모든 인위적인 힘을 억제하고, 함부로 힘을 쓸 경우 반발력으로 폭발시키는 어마어마한 성능을 지녔다.

무공과 마법, 거기에 과학의 정수를 더하면 정령왕도 빈틈을 보일 것이다.

물론 순진하게 미쓰릴 필드를 던지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게 뻔하다.

우라노스가 파도를 일으켜 미쓰릴 필드를 막을 게 분명했다.

미쓰릴 필드의 역장이 성능을 발휘하려면 정확히 우라노스 앞에서 터져야 한다.

“이거나 처먹어!”

최치우가 기합을 지르며 미쓰릴 필드를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우라노스는 바닷물을 일으켜 거대한 장벽을 만들었다.

설령 최치우가 직접 달려들어도 파도의 벽을 뚫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방법이 있었다.

이런 순간을 위해 최치우는 7서클 마법을 갈고닦았다.

“플래시-!”

시공(時空)을 다스리는 마법의 권능이 발현됐다.

최치우의 손에서 떠나간 미쓰릴 필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츠팟!

완전히 사라진 미쓰릴 필드는 우라노스가 세운 파도의 벽 뒤에서 다시 나타났다.

아무리 물의 정령왕이라 해도 순간 이동을 미리 대비할 수는 없다.

우우우웅-

미쓰릴 필드가 우라노스의 코앞에서 터지며 역장이 발동됐다.

지금부터 3분 동안 우라노스가 위치한 100㎡의 공간은 미쓰릴 필드의 지배를 받는다.

‘됐다!’

최치우는 미쓰릴 필드가 불량이 아닌 걸 확인하고 속으로 쾌재를 터트렸다.

물론 우라노스는 자신의 눈앞에서 터진 작은 캡슐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불쾌한 기분을 느낄 따름이었다.

[어디서 하찮은 수를 쓰느냐!]

우라노스가 분노를 토해내며 파도의 벽을 없앴다.

그리곤 입을 쩌억 벌리고 물대포를 쏘아내려 했다.

조금 전 최치우의 내장을 뒤흔들었던 엄청난 파괴력의 물대포다.

고오오오오!

하지만 우라노스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역장이 우라노스의 권능을 빨아들였다.

그가 입을 벌렸지만, 물대포가 아니라 물 한 방울도 뿜어져 나오지 않은 것이다.

[……!]

우라노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물의 정령왕이 당황한 게 보였다.

곧이어 미쓰릴 필드는 무한의 반발력이 무엇인지 증명했다.

콰콰콰콱!

우라노스가 쏘려던 물대포, 그 이상의 기운이 압축되어 폭탄처럼 터졌다.

퍼펑! 퍼퍼펑!

우라노스는 갑작스러운 폭발을 정통으로 맞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무방비 상태였다.

이번에는 우라노스도 꽤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쓰릴 필드의 작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장난을 친 것인가, 인간!]

“과연 장난일까? 이제 시작인데.”

최치우는 물 위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바다라고 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진 않는다.

물을 땅처럼 밟고 다니는 수상비(水上飛)는 무림 고수의 전제 조건이다.

‘남은 시간은 2분 50초. 이 안에 끝을 내야 한다.’

최치우는 미쓰릴 필드의 역장에 갇힌 우라노스에게 달려갔다.

역장이 사라지면 우라노스의 권능을 맨몸으로 상대해야 한다.

그 전에 승부를 가르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감히-!]

우라노스는 분노한 듯 재차 사자후를 터트렸다.

게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정령왕의 권능을 이용하려 했다.

츠츠츠츠츳!

다가오는 최치우를 막기 위해 파도의 벽을 일으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면 위로 솟구치려던 파도가 잠시 움찔거릴 뿐, 잠잠해졌다.

대신 애꿎은 반발력이 폭발하며 우라노스의 몸통을 두드렸다.

퍼어어엉-!

반발력에 휩쓸린 우라노스는 몸을 꼬았다.

이제껏 꿈쩍도 안 하던 거대한 물뱀이 조금씩 틈을 보이고 있었다.

“제대로…….”

최치우는 어느새 우라노스 가까이 다다랐다.

그가 한 번 더 바닷물을 박차고 높이 튀어올랐다.

“붙어보자!”

공중에서 유려하게 회전한 최치우의 주먹이 우라노스의 콧등을 내리쳤다.

콰앙!

우라노스의 커다란 머리가 바닷물 아래로 처박혔다.

금강나한권의 중후한 내력, 아랑권의 패도적인 초식이 어우러진 최치우의 주먹은 산을 무너트릴만 했다.

그는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를 바닷물에 처박은 최초의 인간이 됐다.

[이노오옴!]

다시 머리를 꺼내든 우라노스가 입을 벌렸다.

우라노스도 정령왕의 권능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랐다.

그렇기에 물대포를 쏘아내진 않았다.

다만 쩍 벌린 입으로 최치우를 삼키려 했다.

파악!

우라노스보다 최치우가 한발 빨랐다.

후웅-

푸른 이빨이 우수수 돋힌 우라노스의 입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최치우는 이미 하늘 높이 떠올랐다.

정령왕의 권능을 쓸 수만 있다면 바닷물로 만들어진 밧줄이 최치우를 꽁꽁 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라노스는 섣불리 권능을 휘두르지 못했다.

그랬다간 반발력이 터져 자신만 다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슈우욱-

최치우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마치 천상에서 지상, 아니 수상으로 강림하는 천사를 연상시켰다.

푸우욱!

이번에는 주먹이 아니다.

최치우의 미쓰릴 단검이 우라노스의 몸통을 찔렀다.

[인간-! 인간이 감히-!]

우라노스가 절규하는 게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확실히 맨손보다 미쓰릴 단검이 효과가 있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정령과 절대 금속 미쓰릴은 상극 중에서도 최상극이다.

쿠궁!

푸화아악-

우라노스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꿈틀거렸다.

그럴 때마다 수면이 움푹 파이며 물방울이 미친 듯이 튀었다.

최치우는 우라노스의 몸통에 미쓰릴 단검을 꽂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1분 30초!’

미쓰릴 필드의 역장은 1분 30초 뒤에 사라진다.

최치우가 노리는 순간은 바로 그때였다.

우라노스는 언제 역장이 사라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가만히 놔두면 공기가 바뀐 걸 눈치를 채겠지만, 최치우처럼 완벽한 타이밍을 잴 수는 없다.

쿠웅! 쿠쿠쿵-!

우라노스가 최치우를 떼어내기 위해 몸통을 흔들고, 꼬리를 튕겼다.

그러나 최치우는 이를 악물고 미쓰릴 단검을 붙잡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도 권능을 상실하면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무서운 존재지만, 순수한 육체 능력으로는 최치우도 밀릴 게 없다.

[떨어져라, 하찮은 것!]

우라노스의 분노가 느껴졌다.

이제 인간이라는 호칭도 생략하고, 최치우를 하찮은 것이라 표현했다.

물의 정령들을 다스리는 왕의 품위마저 저버린 것이다.

꽈앙!

최치우는 말 대신 주먹으로 대답했다.

왼손으로 미쓰릴 단점을 잡고, 오른손으로 우라노스의 등을 때린 것이다.

당연히 평범한 주먹질은 아니다.

최치우의 정권에는 아랑권의 흉폭한 기운이 잔뜩 담겨 있었다.

푸른색 돌덩이 같던 우라노스의 몸통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동시에 우라노스가 또 한 번 몸을 흔들며 괴로워했다.

“아프지? 너도 아픔을 느끼나?”

[어찌하여 인간 따위가!]

“너희 정령들의 장난질에 인간들은 힘없이 목숨을 잃는다. 그러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말했잖아? 천적 하나쯤 있는 게 당연한 거라고.”

최치우의 조롱이 우라노스의 심금을 후벼팠다.

하지만 우라노스에게도 최치우를 떨어트릴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푸슈우욱-!

우라노스가 머리를 바다 밑으로 집어넣었다.

이윽고 길고 굵은 몸통부터 꼬리까지 바다 깊이 잠겼다.

덩달아 우라노스의 등에 단검을 꽂고 붙어있는 최치우도 바다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잔머리를 쓰는군.’

최치우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물속에서 무한정 버틸 수는 없다.

‘시간은… 내 편이다.’

최치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우라노스는 어두컴컴한 동해의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결국 숨을 참지 못한 최치우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최치우가 등에서 떨어지는 순간, 우라노스는 캄캄한 바다에서 입을 벌려 그를 집어삼킬 작정이었다.

권능 따위 필요도 없다.

깊은 바다에서 이무기를 닮은 물뱀이 인간 하나를 잡아먹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최치우는 웃고 있었다.

‘바로 지금!’

미쓰릴 필드의 발동 시간이 끝났다.

우라노스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역장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순간, 최치우는 주저 없이 7서클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래비티-!’

미증유의 중력이 우라노스의 몸통을 덮쳤다.

아주 짧은 찰나지만, 지구의 중력이 일부분 붕괴됐다.

우라노스는 온몸이 짓이겨지는 고통을 느끼며 어두운 바닷속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인가아아아안!]

최치우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일이 없다는 각오로 마법을 퍼부었다.

‘인페르노! 인페르노! 윈드 스피어!’

6서클의 힘이 실린 화염이 깊은 바다에서 피어났다.

불꽃이 타올라 우라노스의 살을 지글지글 태워 먹었다.

그렇게 약해진 부분에 바람의 창이 파고들었다.

최치우는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푸욱-

등에 꽂았던 미쓰릴 단검을 뽑고, 물살을 거슬러 우라노스의 머리 위로 다가갔다.

‘맹아일격(猛牙一擊)!’

치명타를 입혀 목숨을 빼앗는 아랑권의 살초가 펼쳐졌다.

미쓰릴 단검이 주먹을 대신해 맹아일격의 초식을 구현해 냈다.

콰드드드득!

뭔가 부서지고 찢어지는 감각이 손끝에 느껴졌다.

미쓰릴 단검과 최치우의 팔뚝이 우라노스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파앗-!

섬광이 터졌다.

어두운 해저를 밝히는 새하얀 빛이 최치우의 눈을 멀게 할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구궁!

저 아래 심연 너머 바다의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엄청난 에너지가 사방으로 튀며 바닷속에서 폭포와 같은 물길이 거꾸로 일어났다.

모든 힘을 쏟아낸 최치우는 역류에 실려 수면 위로 튕겨 올라왔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물에 몸을 맡긴 최치우는 주위 환경이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강풍이 멈췄고, 성난 바다는 파도 없이 잠잠해졌고, 하늘은 맑았다.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가 소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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