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86화 (186/243)

# 186

***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다.

최치우를 태운 구조선은 비교적 잔잔한 물살을 가르고 독도 근처까지 진입했다.

그런데 유독 특정 지역에만 미친 듯이 파도가 치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확연하게 보인다.

한참 떨어진 바다에서 해일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풍랑이 일고 있었다.

구조선과 구조 헬기가 사고 해역에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만한 파도와 바람속으로 들어가면 2차 사고만 일어날 뿐이다.

“배를 멈춰주세요.”

최치우가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 그래도 선원들은 전방에 펼쳐진 미친 광경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면 구조선이 풍랑에 휩쓸릴지 모른다.

최치우의 지시 덕분에 선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배가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자동 유지 장치를 켜고, 모두 지하 객실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말씀이십니까?”

구조선의 베테랑 조타수가 질문을 던졌다.

최치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상 기후를 다스리는 올림푸스의 장치는 미완성 단계입니다. 장치가 가동되는 현장을 보면 시력 손상을 입을지 모릅니다.”

“아… 알겠습니다. 자동 유지 장치만 실행하고 다 같이 지하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최치우는 선원들에게 겁을 줬다.

그래야 괜한 호기심 때문에 바깥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잔뜩 긴장한 선원들을 돌아보며 한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그럴 일 없겠지만, 만약 1시간이 지나도 제가 여러분을 부르지 않는다면……. 그때는 지하에서 나와 울릉도로 돌아가세요.”

“1시간이요?”

“네. 장치가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기를 기도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최치우의 이야기를 들은 선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들 인생에서 가장 긴 1시간이 될 것 같았다.

최치우는 선원들이 자동 유지 장치를 켜고, 지하 객실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쿵-!

지하 객실 안에서 문이 닫혔다.

유지 장치를 켰기 때문에 구조선은 물살에 밀리지 않고 이곳에서 1시간을 버틸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의 전장은 평온한 바다가 아니다.

그는 저 멀리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있는 사고 해역으로 몸을 던질 작정이었다.

“정령왕…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최치우는 갑판으로 나오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마치 시야 건너편의 바다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생성된 것 같았다.

풍랑이 치는 해역만 벗어나면 동해는 거짓말처럼 잠잠하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해역 때문에 배가 뒤집히고, 독도의 시추 기계에 연구원들이 고립된 것이다.

“자연의 수호자라는 정령이 이딴 식으로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도 된다는 말이지?”

최치우는 전의를 불태우며 두꺼운 겉옷과 신발을 벗었다.

청바지에 셔츠, 그리고 맨발이면 충분하다.

바지 주머니에는 미쓰릴로 만든 단검과 펜타곤의 필드 2개가 들어 있다.

겨울 바다의 추위는 살을 파고들지만 최치우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단전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내공이 몸을 덥혀주기 때문이다.

저체온증은 최치우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푸화악-!

최치우가 겁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동해는 그에게 낯선 장소가 아니다.

벌써 몇 년 전이지만, 최치우는 동해의 끝을 모르는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마나를 다루는 스킬이 엄청나게 향상됐다.

물의 정령왕이 날고기는 존재라도 동해는 최치우에게 엄마 품속이나 다름없었다.

파도가 넘실거린다고 해서 무조건 정령왕의 홈그라운드는 아닌 셈이다.

촤악- 촤아악!

최치우는 물살을 가르며 파도가 몰아치는 사고 해역으로 나아갔다.

수영의 전설 펠프스도 바다에서 최치우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한계를 넘은 단단한 육체와 화산 같은 내공, 그리고 친숙한 마나가 있기에 최치우는 오히려 육지에서보다 더 빠른 속도로 헤엄쳤다.

그는 사고 해역까지 힘들게 전진 할 생각이 없었다.

구조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게 목표다.

그다음 물과 반대되는 속성의 마법을 펼치면 정령왕이 알아서 나타날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하군.’

최치우는 구조선에서 한참을 떨어진 걸 확인했다.

이 정도 거리면 정령왕을 불러내 싸움을 펼쳐도 구조선이 여파에 휘말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주문을 캐스팅했다.

“인페르노-!”

헬파이어의 파괴력을 물려받은 6서클 화염 마법, 인페르노가 독도 인근 해역에서 펼쳐졌다.

캐스팅이 끝나자마자 강철도 녹이는 불꽃이 타올랐다.

최치우가 만들어낸 화염의 정수는 차가운 바닷물에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넘실거리는 물결을 증발시키며 열기를 토해냈다.

‘따뜻하다.’

최치우는 주위의 수온이 순식간에 오르는 걸 느꼈다.

겨울 바다가 온수풀로 변했다.

인페르노는 6서클 마법답게 바다 한가운데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쿠우우우웅-!

그때였다.

바다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파가 감지됐다.

동시에 파도가 거세지며 인페르노의 불꽃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최치우도 수면 위로 얼굴만 내놓은 채 균형을 유지했다.

태산을 움직이는 내공이 없었다면 진즉 파도에 쓸려 익사했을 것이다.

‘온다-!’

이만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바다에서 펼쳐진 화염 속성 마법에 물의 정령왕이 곧장 반응한 것이다.

최치우는 온몸의 피가 짜릿하게 도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정령왕은 그가 환생하며 살아본 모든 차원을 통틀어 가장 강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숨길 수 없는 호승심이 일어나 정신을 지배했다.

강한 상대와 목숨 걸고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을 즐겼던 치우.

첫 번째 차원인 링스 월드를 초토화시켰던 멸망의 인도자로서 본능이 깨어난 것이다.

화아아아악!

최치우의 눈앞에서 파도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물의 정령왕은 높은 파도를 일으켜 사각형의 방벽을 만들었다.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듯 파도로 링을 만든 것이다.

[정령의 대적!]

정령왕의 의지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린다.

절규에 가까운 사자후가 최치우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최치우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록 고개만 물 위로 내밀고 있지만,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기백이 동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에 화답하는 것일까.

해수면 위로 뭔가 나타나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바닷물로 만들어진 푸른색 뱀이 최치우를 노려봤다.

몸통의 굵기는 1m가 넘고, 길이는 몇 미터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동자마저 푸른색으로 빛나는 뱀.

그가 바로 독도의 바다를 뒤집어 놓은 물의 정령왕이다.

“물의 정령왕?”

[인간, 어찌하여 정령의 대적이 되었는가?]

묵직한 질문이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최치우는 단전의 내공을 남김없이 쥐어짜 전신으로 보내며 대답했다.

“소울 스톤이 필요하다. 정령들이 자연에 장난을 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게 그 힘을 쓸 수 있으니까.”

[장난?]

“산불을 키우고, 지하수를 틀어막고, 물난리를 일으키고, 바로 지금처럼!”

[그것은 장난이 아니다. 자연계의 균형을 수호하기 위한 정령의 본능이다!]

“그 본능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용납할 수가 없어. 그리고…….”

최치우는 일촉즉발의 사태임을 직감했다.

언제라도 말이 끊기고 전투가 시작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무공과 마법을 당장 펼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생명에겐 천적이 있지.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정령들을 다스리는 정령술사도 없고, 천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 같은 천적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건방진 인간이여. 우라노스의 이름으로 너를 징벌하겠노라.]

물의 정령왕,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이름은 우라노스였다.

최치우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천공의 신이 우라노스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하늘과 바다는 하나로 통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일까.

물의 정령왕 우라노스는 그리스 신화 속 절대자처럼 막강한 권능을 휘두를 것 같았다.

“소멸의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지.”

최치우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차가운 바닷물, 거칠게 넘실거리는 파도가 점점 편안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죽으면… 정말 끝일지 모른다.’

어차피 죽어도 다른 차원에서 환생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신의 대리인 아바타는 분명한 경고를 남겼다.

만약 이번 차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최치우의 영혼은 영원히 소멸할지 모른다.

최치우도 다른 평범한 인간들처럼 소멸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짜릿함이 앞선다.

강한 상대를 만날수록 흥분하는 것도 불치병이다.

콰아앙-!

이제 시작이다.

우라노스는 뱀의 형상을 했지만, 용(龍)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길고 커다란 꼬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니 마치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난 것 같았다.

쿵!

우라노스의 꼬리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최치우를 덮쳤다.

방금까지 최치우가 고개를 내밀고 있던 자리가 와장창 부서졌다.

겉보기엔 우라노스의 꼬리 한 방으로 싸움이 끝난 것 같았다.

우라노스가 파도를 일으켜 사각형 방벽을 만든 수고가 무색했다.

푸확-!

그때 물줄기가 치솟으며 바다에서 뭔가 솟구쳐 올랐다.

우라노스의 공격을 버틴 최치우가 수면을 박차고 높이 떠오른 것이다.

“윈드 스피어!”

바람의 창이 생성됐다.

한 개가 아니다.

허공에 뜬 최치우의 좌우로 10개가 넘는 바람의 창이 만들어졌다.

슈슈슈슈슉!

비록 5서클 마법이지만 윈드 스피어는 손꼽히는 공격 마법이다.

게다가 10개가 넘으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

퍼펑-! 퍼퍼퍼펑-!

바위도 부수는 바람의 창이 연달아 우라노스의 몸통을 때렸다.

그러나 상대는 정령왕이다.

이만한 공격으로 타격을 입히긴 힘들다.

우라노스는 공중에서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는 최치우를 향해 권능을 뿜어냈다.

[감히 바다에서 나를 대적하느냐-!]

두개골을 울리는 포효가 물줄기를 일으켰다.

촤락-! 촤라라락!

바다에서 용솟음친 물줄기가 밧줄처럼 최치우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피할 틈도 없었다.

최치우는 순식간에 바닷물에 사지를 결박당했다.

‘아랑권!’

위기의 순간, 최치우는 권왕의 아랑권을 펼쳤다.

패도적이고 날카로운 권기(拳氣)로 물줄기를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라노스가 한발 빨랐다.

뱀 형상의 입이 쩌억 갈라졌고, 그 틈에서 물대포가 직선으로 쏘아졌다.

꽈아앙!

사지가 묶인 최치우는 우라노스의 물대포를 정통으로 맞았다.

첨벙-!

그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바다 깊이 처박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물 대포에 맞는 즉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최치우는 절정의 내공으로 무장했지만, 내장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더럽게… 강하다!’

정령왕은 역시 차원이 다른 존재다.

현대의 지구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최치우는 바다에 빠진 채 통증을 다스리며 현실을 직시했다.

마법과 무공을 조화시켜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를 이겼지만, 정령왕 우라노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공법으로는 답이 없다.

위험해도 무리수, 혹은 승부수를 던지는 수밖에.

꽈악!

최치우는 바지 주머니에서 미쓰릴 필드를 꺼냈다.

다행히 물대포에 맞아 처박히는 과정에서 미쓰릴 단검과 미쓰릴 필드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모든 걸 건다!’

최치우가 내공을 쏟아내며 물살을 갈랐다.

수면 위로 떠오른 그는 우라노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고통의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인간.]

우라노스는 여유로웠다.

자신이 최치우보다 강하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때 최치우가 미쓰릴 필드를 손에 쥐고 외쳤다.

“이거나 처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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