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84화 (184/243)

# 184

***

월드 투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최치우는 때아닌 소문에 시달렸다.

정제국 대통령이 최치우에게 과기부 장관 자리를 제안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미 유력 일간지에서 1면으로 기사가 나갔다.

원래도 바쁜 올림푸스 홍보팀은 기자들의 빗발치는 문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됐다.

최치우는 분명 홍콩에서 정제국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장관뿐 아니라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노리라는 이야기마저 뒤로 물렸다.

자신의 꿈을 담기에 청와대는 너무 작은 그릇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뉴스가 터진 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청와대에 정식으로 항의를 하시겠습니까?”

월드 투어 내내 최치우와 동행한 임동혁이 질문을 던졌다.

그 역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정치권에 잘못 엮이면 기업 이미지가 망가진다.

수면 아래에서 최치우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정치와 연관되어 논쟁거리가 되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정제국 대통령을 싫어하는 국민들은 최치우와 올림푸스까지 싸잡아 미워하게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아직 정치와 얽히는 것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당, 야당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신당을 만들어 대권을 먹을 정도가 아니라면 정치권에 발을 디디지 않는 게 낫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요?”

최치우는 화를 눌렀다.

쉽게 흥분하는 건 하수의 버릇이다.

고수는 극단적인 분노도 다스릴 줄 안다.

대신 누구보다 차갑고 확실하게 빚을 갚는 것이 고수의 법도다.

“아직 확정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습니다. 다만 대표님의 인기를 이용해 정권 초기 지지율을 높이려는 의도가 너무 명확해 보입니다.”

“기자들에게 알림을 주세요. 제안을 받았으나 정중히 고사했다고.”

“아예 사실 무근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뉴스가 많이 났습니다. 어설픈 거짓말은 결국 들킬 겁니다. 그리고 26살에 장관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져서 나쁠 건 없죠.”

“그럼 기자들에게 해명만 하고, 이대로 넘어가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아니, 그건 곤란합니다.”

최치우가 임동혁을 제지했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화를 참고 웃을 때 진짜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임동혁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청와대가 내 이름을 함부로 흘려서 장사를 했으니… 적당한 대가는 받아야죠. 세상에 공짜가 어딨습니까.”

“대표님이 직접 통화하시겠습니까?”

“이런 일로 대통령과 직통하는 건 말이 안 되고, 비서실장 연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임동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표실 밖으로 나갔다.

최치우는 사소한 헤프닝으로 정제국 대통령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계산은 정확해야 한다.

이번 일은 100% 청와대의 실수다.

실수를 그냥 넘어가면 계속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버릇이 나빠진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지 한 달이 됐다.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해야 남은 5년이 편할 것 같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보나마나 임동혁일 것이다.

“들어오세요.”

“대표님, 대통령 비서실장 연결돼 있습니다.”

임동혁은 그사이 청와대와 전화를 연결했다.

물론 아무나 비서실장과 통화를 할 수는 없다.

중요한 용건이 있고, 합당한 자격을 갖췄어도 며칠은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올림푸스는 프리 패스다.

청와대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빨리 최치우와 통화를 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비서실장님, 올림푸스의 최치우입니다.”

-대표님! 말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놀라셨을 텐데… 청와대를 대표해 사과를 드립니다.

비서실장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을 제외하면 청와대 서열 1위다.

어떤 측면에선 국무총리나 여당 대표보다 더 많은 권력을 잡은 사람이다.

그런데 최치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사과부터 한 것이다.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친한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실언을 한 모양입니다. 대표님께서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미리 예단한 것 같습니다.

“기자들에게는 저희 홍보팀에서 해명을 하겠습니다. 제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

-청와대도 곧 입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께서도 곤혹스러워 하셨습니다.

“실수인 것을 받아들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비서실장님, 저희가 조만간 청와대에 부탁드릴 게 있을 것 같습니다.”

-부탁이라 하시면…….

“올림푸스 사옥 건축과 관련된 일입니다. 시간을 내주시면 긴밀히 논의 드리고 싶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연락을 주십시오.

“조만간 인사드리겠습니다.”

최치우는 전화를 끊고 임동혁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청와대는 올림푸스의 부탁 한 가지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비서실장이 실수를 인정했고, 최치우가 분명한 대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예의를 갖춰 말했지만 최치우의 뜻은 분명했다.

실수의 대가를 치르고 공정하게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비서실장이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대표님, 그런데 우리 사옥을 새로 지으실 겁니까?”

“직원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여긴 좀 좁잖아요. 건물을 통째로 사고, 별도의 사옥 건설도 추진할 때가 됐습니다.”

“청와대에는 어떤 부탁을 하실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서울 시내의 공공 부지를 매입해서 사옥을 짓는 게 제일 깔끔하죠. 토지 보상이나 부동산 문제도 없고.”

“일이 잘 풀리면 말실수를 한 청와대 행정관에게 밥이라도 사야겠습니다.”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긴, 그 사람 실수 덕분에 청와대가 우리 부탁을 들어주게 됐으니. 나중에 밥 한번 사죠.”

최치우와 임동혁이 서로를 쳐다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기분 나쁜 사건이 벌어졌지만, 최치우는 그 와중에도 올림푸스의 이익을 최대한 챙겨왔다.

확실히 그는 뼛속까지 CEO가 된 것 같았다.

청와대마저 손쉽게 좌지우지하는 최치우에게 대한민국은 좁은 무대였다.

***

최치우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거실에 랩탑 컴퓨터를 올려놓고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와 자료는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에는 올림푸스 사옥 건설을 위한 부지와 부동산 매입 문제까지 추가됐다.

“임원 발령이 나면 좀 낫겠지.”

최치우는 봄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임원 발령을 내려고 마음먹었다.

백승수와 김지연 팀장 등 내부에서 승진을 시키고, 외부의 전문가들도 대거 발탁할 계획이다.

그래야만 업무가 분산될 것 같았다.

최치우 덕분에 밤낮을 잊고 워커 홀릭이 된 임동혁도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머리 좀 식히자.”

복잡한 금융 결재 서류와 부동산 서류를 검토하던 최치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클릭 몇 번으로 화면을 바꿨다.

모니터에는 세계 곳곳의 기이한 자연 현상이 떠올랐다.

상식을 벗어난 자연 재해의 이면에는 정령이 자리 잡고 있다.

최치우는 오랜만에 대어급 정령을 소멸시켜 쓸 만한 소울 스톤을 얻고 싶었다.

원래 퓨처 모터스의 월드 투어에서도 소울 스톤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공식 행사 일정이 빽빽해 짬을 내기 어려웠다.

소울 스톤 발전소는 올림푸스를 상징하는 히트 상품이 됐다.

사실 이제 겨우 두 개의 발전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나마 라이프치히에 건설 중인 발전소는 공사가 한창이다.

정상적으로 가동이 되는 발전소는 광명의 1호 하나였다.

그러나 온 세상이 소울 스톤 발전소를 주시하고 있다.

오직 올림푸스만 가능한 기술로 친환경 대체 에너지의 새로운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합산 시가총액이 100조를 돌파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비즈니스도 역시 소울 스톤 발전소였다.

소울 스톤만 꾸준히 수급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친환경 사업이다.

한동안 최치우는 독일의 발전소 협상을 마무리 짓고, 퓨처 모터스를 돕느라 바빴다.

하지만 소울 스톤을 찾는 일을 마냥 미룰 순 없다.

“콜로라도에 싱크홀이 연달아 생기는 건… 아무래도 대지의 정령이 움직이는 것 같군.”

최치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최신 뉴스를 꼼꼼히 살폈다.

싱크홀은 아무 이유 없이 땅이 움푹 파이는 현상을 말한다.

대도시의 도로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자연재해다.

서울에서도 싱크홀이 화제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콜로라도의 싱크홀은 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국립 공원의 땅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푹 꺼진 사진을 보니 정령의 소행 같았다.

“대지의 정령은 상당히 까다로운데.”

최치우는 아슬란 대륙에서 대지의 정령을 본 적이 있었다.

불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 순수한 전투에 집중한다면 대지의 정령은 약삭빠르고 교활하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상대를 교란하는 데 선수다.

“다음은 여기다.”

최치우는 목적지를 정했다.

콜로라도에서 싱크홀을 만든 대지의 정령을 찾아내서 소멸시킨다.

올림푸스는 물과 불의 정령에서 나온 소울 스톤으로 두 개의 발전소를 지었다.

과연 대지의 정령에서 얻은 소울 스톤은 어떻게 에너지를 내는지 궁금해졌다.

우웅- 우우웅-

최치우가 한창 집중하고 있는 순간, 부엌의 폰이 울리며 산통을 깼다.

거실 소파에 앉은 최치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왼손을 부엌으로 뻗으며 7서클 마법을 캐스팅했다.

“플래시!”

부엌의 폰이 순식간에 최치우의 왼손에 잡혀 진동을 토해냈다.

어려운 난이도의 7서클 마법이 완전히 손에 익었다.

마법 클래스는 낮지만, 숙련도로 따지면 아슬란 대륙의 현자 제로딘으로 살 때 못지않았다.

“음, 급한 일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최치우는 폰에 뜬 이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은 혼자 조용히 업무에 집중하고 싶어 웬만한 연락은 미리 거절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임동혁이 전화를 건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는 뜻이다.

“여보세요.”

-대표님, 강남에서 덤프 트럭으로 습격을 한 놈들의 신원을 알아냈습니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최치우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누구였습니까?”

-중국 공안 특수부대 출신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나를?”

-공안 소속은 아닙니다. 특수부대를 뛰쳐나와 용병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무척 몸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두 사람 다 혼수상태라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조사는 못 하고 있습니다.

최치우는 괴한 두 명을 너무 강하게 제압했다.

그나마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둘은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다.

“비싼 돈을 치르고 중국 특수부대 출신을 고용해 나를 죽이려는 게 누구일까요?”

-대표님…….

“뻔하죠. 독일에서 탈탈 털린 네오메이슨이 이제 막 나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표님의 어머님을 경호하는 인력을 충원했습니다. 24시간 빈틈없이 경호하게끔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추가로 소식 나오면… 잠시만, 다른 전화가 오네요. 이슈 더 없죠?”

-네.

“그럼 전화 바꿔서 받을게요.”

최치우는 버튼을 눌러 뒤늦게 걸려온 전화를 연결했다.

임동혁의 용건은 전부 들었기 때문이다.

“최치우입니다.”

-최 대표님, 큰일났십니다!

말투만 듣고도 누구 전화인지 알 수 있었다.

독도에서 해저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정기석 단장이다.

그가 이렇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 일은 거의 없다.

최치우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단장님, 무슨 일입니까?”

-배가 뒤집혀가 12명이 실종됐십니다. 그리고 난리가 나서 독도에 세워둔 시추 기계로 접근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걸 대체 어쩌면 좋겠십니까…….

사고 소식이다.

바로 그때, 하급 물의 정령 운딘의 경고가 최치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령의 대적이여, 너에게 심판을 내릴 것이다.]

운딘의 입을 빌린 정령왕의 경고가 실현된 것 같았다.

최치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구조대를 보내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겁니다. 지금 당장 울릉도로 내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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