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83화 (183/243)

# 183

<대권(大權)>

기업의 행사에 한 나라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자리에 영향을 끼치는 대규모 공장이나 투자 시설 유치면 또 모른다.

하지만 제우스 파크는 전기차를 홍보하는 체험관이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홍콩의 오픈 행사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했다.

한중정상회담 일정과 맞았기 때문이지만,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었다.

한국 언론은 당연하고, 중국의 매체도 정제국 대통령의 참석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중국, 특히 홍콩과의 경제 교류 확대를 통해 양국 관계를 공고히 다지겠습니다. 오늘 홍콩에 오픈한 제우스 파크를 통해 전기차 문화가 확산 되어 중국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멋진 자리에 초대해 주신 최치우 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손님은 이만 뒤로 빠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제국 대통령은 힘 있는 연설로 제우스 파크 오픈 행사에 기운을 실어줬다.

그는 확실히 전임 유영조 대통령과는 다른 캐릭터였다.

유영조 대통령이 온건한 외유내강형 지도자라면, 정제국 대통령은 강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보다 젊은 지도자다.

최치우는 정제국을 야당 후보일 때부터 만났지만 특별한 흠을 찾지 못했다.

정당은 달라도 유영조 대통령만큼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국정을 잘 이끌어줄 것 같았다.

“자리를 빛내주신 대통령님께 한 번 더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짝-!

정제국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최치우가 청중의 환호를 유도했다.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최치우는 한국의 영웅을 넘어서 아시아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올림픽에서 100m 달리기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동양인의 한계를 깨부순 게 결정적 이유였다.

국적은 달라도 수많은 중국인, 일본인들도 함께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동양 남자는 공부만 잘하는 샌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다.

헐리웃 영화에도 대부분 비슷비슷한 인물이 등장했다.

그런데 최치우가 서양의 편견을 산산조각 박살 낸 것이다.

“하오- 하오!”

제우스 파크에 몰려든 홍콩 사람들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대중적인 인기는 정제국 대통령보다 최치우가 훨씬 높다.

국제적인 지명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막 대통령이 된 정제국보다 몇 년 내내 주요 뉴스를 만들어낸 최치우의 인지도가 높은 게 당연하다.

“고맙습니다. 홍콩의 환대를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 먼저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홍콩과 중국 대도시의 교통난, 그리고 대기 오염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제는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대책이 필요합니다. 꼭 퓨처 모터스의 제우스 S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전기차를 선택하는 순간, 여러분은 홍콩과 중국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어떤 전기차보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탄생한 모델이 제우스 S입니다. 제우스 파크에서 그 진가를 온몸으로 느끼시길 바랍니다!”

짧고 굵은 연설로 청중의 마음을 흔드는 데 최치우를 이길 사람이 있을까.

수백 번의 연설을 거듭하며 대통령이 된 정제국의 연설도 훌륭했지만, 최치우와 비교하면 2% 부족한 것 같았다.

최치우의 축사는 매번 달라졌다.

뉴욕과 런던, 베를린의 멘트와 홍콩에서의 멘트는 똑같지 않다.

각 도시에 맞춰 가장 적절한 축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래에 투자하라는 키워드는 홍콩뿐 아니라 중국 부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다.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쫓은 G2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대기 오염을 비롯해 급격한 도시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잘 사는 것을 떠나서 삶의 질을 고민해야 할 단계다.

백만장자의 숫자만 1억 명이라는 중국이다.

그들이 전기차를 선택하면 자동차 시장은 더 빨리 변할 것이다.

“최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홍콩 주민들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습니다.”

공식적인 순서가 끝나고 자유로운 파티가 시작되자 정제국 대통령이 말을 걸었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축하는 제가 드려야죠. 12월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인사가 늦었습니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모두 최 대표님 덕분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역시 최 대표님다운 말씀입니다. 괜찮으면 잠깐 자리를 옮겨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물론입니다.”

최치우가 행사장 뒤편의 독립된 공간으로 정제국 대통령을 안내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독대를 나눌 수 있는 방이다.

“잠시 물러나 주게.”

정제국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수행 직원들까지 밖으로 내보냈다.

경호실장이 머뭇거렸지만 정제국 대통령의 표정은 단호했다.

기어코 모든 수행원을 물린 정제국이 최치우를 쳐다봤다.

“최 대표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통령이 됐어도 정제국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그대로였다.

보통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싹 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이나 장관, 대통령이 되면 본색이 드러난다.

그런데 정제국은 의원 시절 최치우를 만날 때와 태도가 같았다.

어쩌면 이제 1달밖에 안 된 대통령이라 나중에는 변할지 모른다.

아직까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해야 한다.

훗날 정제국이 변하면 최치우는 그와 연을 끊을 것이다.

그로인한 어마어마한 뒷감당은 누구도 대신 질 수 없다는 걸 정제국도 알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만약 최 대표님을 과기부 장관으로 임명하면 수락을 해줄 수 있습니까?”

“대통령님, 지금 제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장관직을 제안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1기 내각의 장관으로 최 대표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고위직과 장관 인사가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자신에게 장관 자리를 맡길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우선 나이가 문제다.

만약 정제국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역대 최연소 장관이 된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는 30대 장관이 있지만,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최치우는 30대도 아닌 26살이다.

만 25세 과기부 장관의 탄생은 쇼킹한 사건이다.

“우선 대통령님의 제안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정제국 대통령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보통 집안에서 장관이 배출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장관 자리를 주면 목숨 걸고 충성 맹세를 할 유력인사가 한 트럭은 될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시가총액 100조 원을 돌파한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CEO다.

장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국가의 정책을 디자인하는 것도 큰 기회지만, 제가 할 일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습니다. 사실 최 대표님에게 과기부 장관 자리를 제안한 것은 5년이나 10년 뒤를 바라보라는 뜻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의 혜안이 궁금합니다.”

“나는 임기 중 대통령과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동일하게 25세로 하향할 생각입니다.”

“선진국의 좋은 예시를 따라가는 것이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만 40세가 넘어야 한다.

하지만 캐나다와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정치 돌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

정제국은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헌법을 수정하려는 것이다.

곧이어 정제국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최 대표님, 과기부 장관으로 경험을 쌓으면… 다음은 대권이지 않겠습니까?”

“…….”

최치우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피선거권이 낮아지면 최치우도 출마 할 수 있다.

국민적 인기로 따지면 최치우는 이미 대통령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수면 아래에서는 유경민을 무너트리고 대권의 주인을 결정짓기도 했다.

전직 검찰총장도 최치우의 사람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청와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았다.

“피선거권을 낮추고,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겠습니다. 최 대표님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8년 대통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와 함께 대한민국을 바꾸는 게 어떻습니까?”

정제국은 하루 이틀 생각하고 자안 자리를 제안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의 퇴임 이후까지 내다본 것이다.

최치우는 숨을 고르며 정제국 대통령을 쳐다봤다.

‘내가 과기부 장관이 되면 정권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겠지. 정제국 대통령은 개혁적인 선택으로 찬사를 받을 테고. 그렇게 청와대의 주인이 되는 길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최치우는 1분도 지나지 않아 결단을 내렸다.

“대통령님, 솔직한 답과 예의를 차린 답 중 어느 것을 들으시겠습니까?”

“하하하! 내가 이래서 최 대표님을 좋아합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둘 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기에는, 그리고 대통령을 꿈꾸기에는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습니다. 기업에서 더 경험을 쌓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이건 분명 예의를 차린 답인 것 같습니다. 그럼 솔직한 대답은 무엇입니까?”

“제 꿈을 담기에 청와대는 너무 작은 그릇입니다.”

“하하, 하하하하! 이거이거 제대로 한 방 맞았습니다.”

정제국이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불쾌함을 나타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최치우는 현직 대통령 앞에서 자신은 대통령 자리로도 만족 할 수 없다는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정제국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 대표님의 야망과 패기는 내 생각 이상입니다. 그래서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합니다.”

“우선 국내에서 현기 자동차와 오성 그룹부터 이기겠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아마존, 애플, 벤츠, BMW 등 무수한 경쟁자들을 꺾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가 되겠습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확실히 대통령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목표인 것 같습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꿈을 이루고 나면, 그 뒤에는 나라를 위해 일 할 기회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실 내가 최 대표님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는데 양해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의 뜻깊은 제안, 남몰래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장관은 아니라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정부의 운영을 놓고 펼쳐진 독대가 끝났다.

불과 5분이지만, 최치우와 정제국은 나라의 미래를 놓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다.

“그럼 서울에서 다시 봅시다, 최 대표님.”

정제국이 먼저 방에서 나갔다.

최치우는 혼자 남아 턱 밑을 쓰다듬었다.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세계 초일류 국가로 만든다. 매력적이군.”

정제국과의 대화는 최치우에게 또 다른 화두를 남겼다.

그는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여당, 야당이 나뉘어 싸우는 틈바구니에 끼고 싶지도 않다.

만약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면 정치 다툼 없이 청와대로 직행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감히 태클을 걸 수 없는 절대적 존재가 되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일단은 홍콩에서도 대박을 내야지.”

최치우는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홍콩의 파티를 무사히 끝내고, 제우스 S가 중국에서 몇십만 대 팔리는 기틀을 닦아야 한다.

26살에 장관 제의를 받고도 바로 거절하는 최치우가 과연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세상은 아직 최치우의 진면목을 전부 확인하지 못했다.

올림푸스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으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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