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81화 (181/243)

# 181

<월드 투어>

26살.

여전히 젊은, 아니 어린 나이다.

하지만 20대를 누리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26살은 꺾인 나이다.

25살까지 20대 초반이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절반을 넘긴 26살부터는 30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을 받는다.

남자들도 대부분 군대를 다녀와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시기다.

앞으로의 인생을 고민해야 되는,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닌 것이다.

최치우도 26살이 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물론 또래의 친구들과는 주어진 상황이 많이 다르다.

올림픽 금메달로 군대 문제를 해결했고, 시가총액 100조 원을 돌파한 두 개의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 자산도 수십조에 다다른다.

하지만 최치우 역시 26살이 되면서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는 올림푸스를 세우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렇게 몇 년 만에 100조 기업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왕관을 쓰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는 더 이상 후발 주자가 아니다.

당당하게 세계의 흐름을 선도하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매출이나 시가총액 대비 회사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강점으로 분류된다.

직원이 몇 만 명 넘는 대기업에 비해 비용 절감이 쉽기 때문이다.

이제 올림푸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어졌다.

올해부터는 국내법에 의해 대기업 집단으로 인정받게 됐다.

대기업 집단이 되면 세금부터 기부, 직원 고용 등 여러 문제가 훨씬 까다로워진다.

정부를 비롯해 시민 단체도 눈을 매섭게 뜨고 올림푸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것이다.

비록 올림푸스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가 압도적이지만, 안 좋은 사고 하나만 터져도 여론은 싸늘하게 식을 수 있다.

최치우는 경영자로서 새로운 스테이지에 서게 됐다.

한 발만 삐끗하면 어렵게 쌓은 100조 신화가 무너질 수도 있다.

예전에는 한 번의 실수로 잃을 돈이 기껏해야 수십, 수백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을 잘못하면 수천억에서 1조 이상을 날릴지 모른다.

그만큼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비즈니스 스케일이 커졌고, 투자하는 액수도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최치우의 상념을 일깨웠다.

음성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임동혁이었다.

최치우와 임동혁은 전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맨해튼에 오픈될 퓨터 모터스의 체험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최치우는 세계 주요 도시의 체험관 오프닝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마스코트인 그가 자리를 빛내주면 더욱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다.

뉴욕, 베를린, 런던, 홍콩.

최치우는 마치 월드 스타처럼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4개 도시를 순회하게 됐다.

따지고 보면 스타들의 월드 투어 일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콘서트나 영화 시사회 대신 체험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사람들을 만날 뿐이다.

“욕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욕심…….”

“보통 사람들은 10억을 버는 게 인생의 목표죠. 하지만 10억 다음에는 100억이 보이고, 100억을 벌어도 1,000억을 갖고 싶게 마련입니다.”

최치우의 말을 들은 임동혁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0억에서 100억을 만드는 것보다 100억에서 1,000억을 만드는 게 더 쉽기도 합니다. 그러니 적당히 만족하며 살기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우리도 다르지 않겠죠. 100조 가치의 회사를 만들었어도 1,000조를 위해 세계를 누비고 있는데……. 이 레이스의 끝이 어디인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끝은 없을 겁니다, 대표님.”

임동혁이 최치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매번 최치우에게 구박을 받고 혼나는 게 일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큰형처럼 의젓하게 최치우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었다.

“1,000조를 벌어도 사람은 절대 만족하지 못합니다. 특히 대표님처럼 한계를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우리 영감도 대표님보다는 못하지만 비슷한 과입니다. 한영 그룹을 세우고도 만족을 모릅니다.”

최치우는 잠자코 임동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임동혁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기에 좀 오그라들지만, 과정을 즐기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10조를 벌고, 100조를 벌어도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망치는 놈들이 많습니다. 대신 우리는 100조를 버는 동안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지 않습니까? 앞으로 1,000조까지 더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대표님이,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걸 즐길 수 있다면……. 끝이 없는 레이스도 질리지 않을 겁니다.”

최치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파동이 퍼지는 걸 느꼈다.

목표로 삼았던 시가총액 100조 원을 돌파하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았다.

원래 너무 큰 목표를 생각보다 빨리 이루면 회의감을 느끼기 쉽다.

그런데 임동혁이 최치우의 초심을 자극했다.

시가총액이, 매출이 전부가 아니다.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구라는 넓은 도화지에 자기 생각대로 그림을 그리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이사님, 철이 든 것 같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됐다던데.”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해드리고도 구박을 받아야 하다니, 노동청에 신고하겠습니다.”

“하하, 이 빚은 뉴욕에서 비싼 술로 갚죠.”

최치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오랜 세월, 다양한 차원에서 환생했어도 그 또한 인간이다.

때로는 고뇌에 빠지고 길을 잃기도 한다.

오늘은 임동혁 덕분에 초심을 되찾았다.

뉴욕으로 날아가는 최치우의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100% 전력을 다해 월드 투어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뉴욕의 중심지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동네로 알려져 있다.

타임 스퀘어는 365일 내내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관광지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지만, 세계의 수도는 뉴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맨해튼은 뉴욕의 처음이자 끝이다.

퓨처 모터스는 맨해튼에서도 부자들이 모여 있는 첼시에 체험관을 열었다.

첼시(Chelsea)는 단순한 부촌이 아니다.

사실 맨해튼의 전통적인 부촌(富村)은 타임스퀘어 위쪽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ed)다.

그러나 가장 트렌디한 동네를 꼽으라면 역시 첼시가 1등이다.

첼시 아래쪽으로는 금융인들의 성지인 월스트릿이 펼쳐져 있다.

월스트릿의 잘나가는 직장인들이 잠시 짬을 내 체험관을 들리기 좋은 위치다.

이처럼 체험관을 여는 위치도 치밀한 전략 아래 결정됐다.

퓨처 모터스의 전기차 제우스 S는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하기엔 가격대가 다소 높다.

아직까지 부족한 전기차 인프라도 걸림돌이다.

그렇기에 트렌드를 앞서가며 차를 두 대 이상 유지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 먼저 어필해야 한다.

제주도처럼 공공 기관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퓨처 모터스의 마케팅 타깃은 명확하다.

돈만 많은 게 아니라 환경 보호 같은 이슈에 민감한 신세대 부자.

그들이 퓨처 모터스 고객이 되면 평범한 사람들도 제우스 S를 선마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퓨처 모터스의 전략은 제대로 통하고 있었다.

첼시의 체험관 오프닝 행사에 몰려든 인파가 바로 그 증거다.

유명 인사인 최치우와 브라이언의 참석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순수하게 제우스 S를 궁금해하는 맨해튼 주민들이 벌 떼처럼 모였다.

찰칵, 찰칵-

콧대 높고 도도하기로 유명한 뉴요커들도 스마트폰으로 최치우 사진을 찍기 바빴다.

브라이언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최치우는 유창한 영어로 축사를 시작했다.

“헬로, 뉴욕!”

“와아아아아-!”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저 인사 한마디를 툭 던졌을 뿐인데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최치우는 환호성을 보내준 기자단과 뉴욕 주민들에게 미소를 선사했다.

“고맙습니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CEO, 최치우입니다. 오늘 우리는 뉴욕에 작은 테마 파크를 선물했습니다. 이곳은 전기차 제우스 S를 판매하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당장 전기차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들을 더 반기고 싶습니다.”

역시 최치우의 발표는 남달랐다.

그가 괜히 프리젠테이션의 황제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보통 기업의 홍보 체험관은 고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판매 촉진을 목표로 하기에 일반 사람들에겐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퓨처 모터스의 체험관은 판매와 상관없이 전기차 문화를 퍼트리는 테마 파크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최초로 체험관의 공식 명칭도 발표했다.

“맨해튼의 제우스 파크는 여러분의 놀이터가 될 것입니다. 언제든 편하게 들러 다양한 전시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나만의 제우스 S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겠습니다. 퓨처 모터스는 뉴욕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프렌즈 오브 뉴욕(Friends of New York)이라는 문구는 기자들이 받아쓰기 딱 좋은 슬로건이다.

최치우의 머릿속에서 나온 멘트는 제우스 파크를 상징하는 핵심 문장이었다.

기업과 고객,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를 초월해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브랜드는 오래도록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애플이 그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그 길을 걸었다.

그러한 기업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됐다.

퓨처 모터스도 전기차를 파는 회사가 아닌, 새로운 문화와 함께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회사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벤츠, BMW, 아우디 같은 공룡들을 쓰러트리고 치열한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즐거운 파티입니다. 친구들, 함께 즐기세요!”

최치우가 쾌활하게 축사를 끝냈다.

짧지만 인상적인 연설이었다.

그는 절대 주저리주저리 말을 길게 늘리지 않는다.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스타일로 바쁜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 같아요, 이 분위기?”

마이크를 놓고 내려온 최치우가 브라이언에게 질문을 던졌다.

브라이언은 얼굴 위로 떠오른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기대 이상입니다. 모두 대표님 덕분입니다.”

“놀라긴 이릅니다. 아직 베를린, 런던, 홍콩이 남았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요.”

“사실 홍콩이 제일 기대됩니다.”

“여기보다 10배는 더 열광적일 겁니다.”

최치우는 브라이언과 기분 좋게 환담을 나눴다.

오프닝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뉴욕의 기자와 셀렙들, 그리고 파워 인스타그래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제우스 파크를 둘러보고 있었다.

제우스 파크에서는 제우스 S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외장 디자인부터 인테리어까지 수천, 수만 조합을 직접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VR 체험기계는 제우스 파크가 내세우는 비장의 무기다.

누구나 가상현실 세계에서 제우스 S를 마음껏 운전할 수 있다.

맨해튼의 꽉 막힌 도로는 시승을 하기에 부적절하다.

대신 VR 고글을 쓰고, 가상현실 세계에 접속해 뻥 뚫린 맨해튼 도로에서 제우스 S로 질주를 하면 된다.

최치우는 실제 시승보다 VR 체험기계의 인기가 더 많을 거라 예상했다.

시대가 바뀌었고, 자동차를 체험하는 방식도 변화했기 때문이다.

퓨처 모터스와 제우스 파크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다들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최치우는 시끌벅적한 제우스 파크 내부를 돌아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거금을 들여 첼시의 대형 건물을 통째로 사들인 보람이 있었다.

“치우야.”

그때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최치우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음성이지만, 음악 볼륨과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분명하게 전달됐다.

뉴욕의 행사에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최치우의 이름을 부를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목소리의 주인이 여자라면.

최치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얀 피부와 세련된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UN 본부에서 근무한다는 유은서가 행사장을 찾아온 것이다.

최치우는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몇 년 전 헤어진 여자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됐다.

“은서야.”

서로의 이름을 부르자 아주 잠깐이지만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뉴욕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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