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80화 (180/243)

# 180

***

괴한 두 명의 습격을 받고, 뒤처리를 마친 최치우는 서대문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받은 어머니는 가게에 나가지 않고 최치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어머니께서 정성껏 차린 진수성찬이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아들이 온다고 부랴부랴 실력 발휘를 하신 것이다.

“얼굴이 좀 수척해진 것 같은데…….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것 맞지?”

“네. 뭘 먹어도 집 밥만 못하지만, 그래도 잘 먹고 다니고 있어요.”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손끝으로 전달됐다.

100조가 넘는 회사의 주인이 되고,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어도 어머니는 늘 아들이 밥은 거르지 않는지 걱정이다.

50살이 넘은 아들에게도 자동차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게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다.

최치우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진심 어린 환대를 받았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억이 오가는 세계에서 전쟁을 펼치다 비로소 휴식을 취하게 된 것 같았다.

식탁에 앉은 최치우는 우선 뜨끈한 국물부터 한 숟갈 먹었다.

전날 과음으로 지친 속이 한방에 풀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는 해장에 좋은 북엇국을 준비하셨다.

“진짜 맛있어요. 사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데 딱이네요.”

“회사에서 시무식 겸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며? 신문 기사로 봤단다. 속이 안 좋겠구나 생각했지.”

“아…….”

최치우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매일 최치우와 관련된 신문 기사와 뉴스를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봤다.

그렇기에 딱 맞는 해장국도 준비할 수 있었다.

자식은 부모님의 품을 떠나면 혼자 잘난 듯 세상을 내려다보지만, 부모는 늘 자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말없이 주시하는 법이다.

그 깊은 사랑과 관심은 노력으로 따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도 네 자식을 낳아봐야만 부모 마음을 안다, 는 어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최치우도 자기를 닮은 아들딸을 낳게 되면 어머니의 커다란 사랑을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천천히 많이 먹으렴.”

“네, 어머니.”

최치우는 우선 밥부터 먹기로 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만, 먼저 정성껏 차린 식탁을 깨끗이 비우는 게 어머니를 향한 보답 같았다.

최치우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북엇국을 순식간에 비웠다.

잡채를 비롯한 반찬들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끝내 버린 그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어머니는 역시 아들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최치우가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 집을 찾아왔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새벽녘 덤프트럭과 괴한에 기습을 당한 소식은 뉴스로 나오지 않았다.

올림푸스와 한영 그룹이 모든 로비력을 동원해 기사 송출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괴한 두 명과 덤프트럭을 수습한 경찰은 사건을 철저히 비공개로 붙였다.

단순히 올림푸스의 압박이 무서웠기 때문은 아니다.

사건이 알려지면 경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울의 중심부인 강남에서 올림푸스 CEO 최치우가 습격을 받았다.

심지어 올림푸스에서 신고를 할 때까지 도로를 순찰하는 경찰도 없었다.

경찰의 치안 유지력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경찰도 사건의 실마리가 잡힐 때까지 극비로 보안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

올림푸스와 경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덤프트럭 습격 사건은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것이다.

최치우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사실 제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습격? 몸은 괜찮은 거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어요. 걱정 마세요.”

“아니, 어쩌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저도 우리나라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제가 여기저기서 미움을 많이 샀나 봐요.”

“네 잘못이 아니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떳떳하게 회사를 경영하는지 깐깐한 언론에서도 칭찬이 자자하잖니. 원래 아무 이유 없이 질투하고 미워하는 못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란다.”

어머니가 조근조근 차분한 말투로 최치우를 위로했다.

아들이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람도 잠시, 어머니는 혹시 최치우가 위축될까 염려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릇도 세계적인 CEO가 된 아들을 따라 더 크고 튼튼해진 것 같았다.

“저는 어떤 위험이 닥쳐도 괜찮습니다. 이번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제 한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제일 걱정이 됩니다.”

“내가… 그렇겠구나.”

어머니는 최치우의 말뜻을 금방 이해했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불편하시겠지만, 이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사를?”

“보안이 강화되는 아파트 단지가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사는 여의도로 오셔도 좋고, 강남이나 한남동 쪽 아파트도 괜찮습니다.”

최치우가 말하는 아파트는 평범한 단지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가 살고 있는 여의도 펜트하우스처럼 외부인은 단지 내부로 출입이 불가능한 최고급 아파트를 말한다.

아파트 경비를 위해 상주하는 인력도 일반 단지의 몇 배 이상이다.

그만큼 아파트 가격도, 관리비도 엄청나게 높지만 확실한 보안과 프라이버시 유지라는 장점 때문에 연예인, 정치인, 재계 고위직이 몰려 산다.

최치우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 어머니에게 다른 조건도 덧붙였다.

“가게도 접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어머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제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가게까지? 그래, 사실은 내 욕심이었지. 우리 아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는데…….”

어머니는 올 게 왔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최치우는 세간에서 100조 부자로 불린다.

올림푸스와 퓨처 모터스의 시가총액 100조 원이 모두 최치우의 개인 자산은 아니다.

하지만 100조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성이 크기에 사람들은 참신한 용어를 만들어냈다.

100조 부자인 최치우의 어머니가 김밥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납치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네오메이슨이 나서지 않아도 미친놈들이 최치우의 돈을 노리고 어머니를 위협할지 모른다.

어쩌면 아직까지 사고가 안 터진 게 기적일 수도 있다.

“죄송해요, 어머니.”

“아니야, 그런 말 하면 내가 너무 염치가 없어진단다. 죄송이라니……. 우리 아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이런 호강을 하고 살겠어?”

“그래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네요.”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얻고 살겠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지. 우리 치우가 큰일 하는데 나 때문에 신경이 쓰이면 곤란할 테니 뭐든 편하게 결정하렴. 나도 이참에 가게 정리하고 그동안 꿈꿨던 꽃꽂이 공부부터 시작하면 좋겠구나.”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경호원들도 배치할게요.”

어머니는 무엇이든 받아주겠다는 듯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최치우는 덕분에 한 시름 크게 덜 수 있었다.

현대에서 그의 유일한 피붙이는 어머니밖에 없다.

이제부터 어머니의 안전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 쓸 것이다.

네오메이슨은 서울 한복판에 덤프트럭과 총을 든 괴한을 보냈다.

작정하고 사고를 친 것이다.

그들이 어머니의 존재를 알아내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았다.

‘건드려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최치우는 긴급한 조치를 마치고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라이프치히 테러와 독일의 네오메이슨 소탕은 전면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올림푸스와 네오메이슨은 명실상부 세계의 패권을 놓고 싸우게 됐다.

100조 시대를 연 최치우의 묵직하고 파괴적인 행보가 이어질 것 같았다.

***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최치우는 쉬지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어지간한 담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새벽에 기습을 당하고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사실 목숨을 잃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덤프트럭과 총을 든 괴한 두 명의 기습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운 좋게 살았어도 트라우마에 시달릴 사건이다.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지닌 국가대표 운동선수들도 부상을 당하면 트라우마를 느낀다.

같은 부상을 또 당할까 봐 운동 능력이 대폭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치우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죽하면 임동혁이 며칠 동안 푹 쉬라고 강하게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치우에게 이 정도는 눈 하나 깜박 할 일이 아니다.

괜히 허풍을 떨면서 센 척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치우가 살던 세계, 다른 차원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무림, 아슬란 대륙, 헌터 월드, 기계문명 등등.

어디에서 어떻게 환생을 해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죽지 않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었다.

덤프트럭의 기습은 애교에 가깝다.

더군다나 최치우는 벌써 7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위험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7번의 환생을 거친 티가 나는 것이다.

절대 현대의 보통 사람과 같은 기준으로 최치우를 판단할 수 없다.

“총기의 출처는 알아봤습니까?”

올림푸스 사무실에 도착한 최치우가 임동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괴한의 총기는 한영 그룹 비상 상황실에서 수거해 갔다.

이제 한나절이 지났지만, 총기의 출처를 파악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임동혁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출처 불명의 총기였습니다. 암시장에 떠도는 밀수품 같습니다.”

“예상했습니다. 경찰에서 온 연락은 없습니까?”

“두 사람 모두 중상을 입어 의식불명이라고 합니다. 다만 DNA 조사에서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프로였어요. 연변에서 싼값에 사람을 죽여주는 아마추어가 아니었습니다.”

“대표님께서 프로라고 인정할 정도면 전직 특수부대 출신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신원을 파악하도록 경찰을 압박하겠습니다.”

“경찰에서 우리를 귀찮게 하진 않겠죠?”

“네, 두 사람의 부상은 정당방위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문제없이 차단하겠습니다.”

“이사님이 고생 많았어요.”

“아닙니다. 대표님에게 큰일이 안 나서 다행입니다.”

임동혁은 최치우가 비공식 국내 최강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파이트 클럽에서 최치우를 처음 만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을 든 괴한 두 명을 어떻게 제압했는지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올림푸스의 CEO 최치우가 아닌, 파이트 클럽의 최강자 최치우라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믿을 만한 경호원들 선발해 주세요.”

“24시간 어머님 동선을 따라다니며 경호하는 전담 팀을 만들겠습니다. 대표님은 따로 경호 인력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난 괜찮아요. 공식 행사 정도가 아니면.”

“알겠습니다.”

최치우와 임동혁이 호흡을 맞춘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척 하면 척이었다.

임동혁은 최치우가 어머니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아서 캐치하고 있었다.

“당분간 정체불명의 괴한들은 경찰에게 맡겨놓고, 우리 일을 합시다.”

“퓨처 모터스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에 개장 예정인 체험관에 대표님을 모시고 싶답니다.”

“그 외 다른 현안은 없습니까?”

“독일의 발전소 공사는 순조롭게 재개 됐고, 남아공과 아프리카 사업도 이시환 본부장이 신규 보고서를 올릴 예정입니다.”

“그럼 일정 잡아주세요. 퓨처 모터스에 힘을 팍팍 실어줘야지.”

“비서팀과 논의해서 픽스 하겠습니다.”

최치우는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퓨처 모터스는 런던, 뉴욕, 홍콩 등 주요 도시마다 체험관을 열 예정이다.

고객은 체험관에서 제우스 S를 직접 보고, 시승을 할 수도 있다.

대신 계약은 온라인 전시장에서만 이뤄진다.

따라서 퓨처 모터스의 체험관은 고객 경험에 중점을 둔 작은 테마 파크나 다름없다.

최치우는 체험관 오픈 행사를 돌며 세계 곳곳에서 소울 스톤도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뉴욕에서는…….’

최치우는 뉴욕의 UN 본부에 근무하고 있다는 유은서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끊어진 인연의 실이 다시 연결될 것만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