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79화 (179/243)

# 179

<기습>

최치우는 모처럼 술을 많이 마셨다.

하룻밤 파티에 10억 원을 넘게 썼으니 술을 많이 마시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이돌과 걸그룹의 축하 무대도 흥겨웠고, 직원들이 모인 테이블마다 돌아가며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는 재미도 남달랐다.

올림푸스의 직원들, 그리고 초대를 받은 가족과 친구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놀았다.

적어도 지난 금요일 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화끈하게 논 사람들은 올림푸스 파티에 다 있을 것이다.

최치우는 파티의 호스트이자 주인공이었다.

여기저기서 권하는 샴페인을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았다.

어느새 수백 명으로 늘어난 올림푸스 직원들과 어울리는 자리였기에 뺄 수 없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취기를 몰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단전의 뜨거운 내공을 끌어 올리면 알콜은 금방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무림의 고수들은 술에 무너지지 않는다.

만독불침을 이룬 최치우는 독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기껏 마신 샴페인 알콜을 날려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유은서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시환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전했고, 최치우도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처음에는 단순히 반가운 마음이 전부였다.

그런데 술이 한 잔, 두 잔 더 들어가면 갈수록 가슴 깊은 곳이 아릿해졌다.

최치우는 색을 밝히는 편은 아니지만, 영웅호색을 순리라고 생각하는 천상 남자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여자친구가 계속 생각나는 게 스스로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최치우는 여전히 20대 중반이다.

20대 초반 캠퍼스 커플로 만났던 유은서가 애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치우의 영혼은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경험했다.

새로 환생한 육체의 나이에 맞게끔 정신도 자연스레 조정이 되지만, 첫사랑에 가슴 아파할 정도로 마음이 약해지진 않는다.

아무튼 낯선 느낌이다.

현대의 지구에서 최치우는 처음으로 가족을 얻었고,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워갔다.

모두 이전 차원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연애감정도 다른 인생을 살 때보다 더 특별하게 와닿는지 모른다.

“우습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은데.”

최치우는 파티가 열린 클럽에서 나와 혼자 길을 걸었다.

거리의 조명마저 대부분 꺼진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밤새 파티를 즐기고도 모자라 아직까지 노는 사람들도 남아 있다.

하지만 최치우는 충분히 놀 만큼 놀았다.

그는 미리 예약해 둔 강남 코엑스의 특급 호텔을 향해 움직였다.

낮과 저녁에는 인파로 가득한 강남의 거리가 거짓말처럼 한산했다.

인도 옆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서울의 1월은 러시아보다 더 춥다.

추위와 어둠이 절정인 새벽 시간이니 적막한 게 당연했다.

휘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최치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서늘한 냉기에 옷자락을 여몄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

단전의 내공이 워낙 단단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오랜만에 취기가 제법 오른 상태다.

술기운 덕분이라도 찬바람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그때였다.

골목 건너편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울렸다.

자동차 한 대가 텅 빈 거리를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최치우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다.

목적지인 코엑스의 호텔까지는 2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

그동안 유은서에 대한 잡념을 정리하고 천천히 취기를 가라앉히면 딱 될 것 같다.

찌릿-

그런데 최치우의 본능이 경고음을 쏘아냈다.

아무 예고도 없이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이 정신을 일깨웠다.

부와아아앙!

거리를 지나쳐야 할 자동차, 아니 덤프트럭이 인도를 침범했다.

라이트도 끄고, 소리를 죽인 채 달려온 트럭은 최치우의 등을 덮치고 있었다.

최치우는 술에 취해 있었기에 평소보다 늦게 위기를 느꼈다.

그래도 미리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트럭에 깔렸을 것이다.

탓!

최치우는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땅을 박찼다.

0.1초도 안 되는 찰나지만, 단전의 내공은 기다렸다는 듯 발끝으로 쏘아졌다.

후웅-

어둠 속에서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최치우가 2m, 아니, 3m 넘게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대신 좀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인도는 덤프트럭의 진입으로 난장판이 됐다.

쿠콰콰콰쾅-!

보도블록 깨지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깨웠다.

덤프트럭의 육중한 차체가 인도를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다.

최치우는 공중에서 한 바퀴 우아하게 돈 다음 옆에 착지했다.

불과 1초 사이로 생사의 갈림길이 갈렸다.

경공으로 위기를 모면한 최치우는 단전이 내공을 전신에 퍼뜨렸다.

혈도를 타고 내공이 퍼지자 술기운은 흔적도 없이 증발됐다.

철컥-

곧이어 덤프트럭의 문이 열렸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각각 한 사람씩 내려 최치우를 노려봤다.

‘사고가 아니다.’

최치우는 운전 실수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덤프트럭은 고의로 최치우를 노렸다.

파티 장소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선도 꿰뚫고 있었다.

아마 최치우가 트럭을 피하지 못했다면 교통사고로 위장됐을 것이다.

‘어설픈 놈들이 아니군. 프로다.’

트럭에서 내린 남자 두 명도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최치우는 방금 3m 넘게 공중제비를 돌며 트럭을 피했다.

보통 사람이 그런 광경을 목격하면 얼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둘은 당황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최치우를 주시했다.

검은색 신발, 검은색 옷, 그리고 검은색 마스크와 모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무장한 두 사람이 품에서 총을 꺼냈다.

최치우는 둘이 팔을 움직일 때부터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

‘왼쪽!’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의 동작이 조금 더 빨랐다.

최치우는 총구가 자신을 겨누자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쐐애액-!

궁신탄영의 경지가 펼쳐졌다.

화살처럼, 아니 총알처럼 튀어나간 최치우의 몸이 순식간에 남자의 코앞에 다다랐다.

빠각!

측정 불가능한 속도의 에너지가 최치우의 주먹에 실렸다.

안면을 정통으로 맞은 남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코뼈를 비롯해 얼굴 전체가 내려앉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이익!”

조수석에 내린 사내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손 쓸 틈도 없이 동료가 당하자 뒤늦게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덤프트럭으로 최치우를 처리하지 못했을 때, 그때 도망갔어야 한다.

피슝-

소음기가 붙은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됐다.

그러나 총알은 최치우의 그림자를 관통하고 애꿎은 땅에 박혔다.

잔상을 남기는 이형환위를 펼친 최치우는 여유롭게 남자의 뒤를 잡았다.

최상급 물의 정령 아도니스도 이형환위에 당했다.

총알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쓴 격이다.

퍼어억!

최치우의 손날이 남자의 목덜미 뒤를 후려쳤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남자의 전신 신경을 불태웠을 것이다.

최치우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두 명의 괴한을 내려다봤다.

대한민국에서 총기를 들고 설치는 놈들이 나타나다니.

게다가 덤프트럭으로 최치우를 덮치려던 것도 주도면밀했다.

만약 최치우가 무공과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무조건 당했을 것이다.

한국, 아니, 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수준의 위험한 기습이었다.

“술이 다 깼네. 얼마나 열심히 마셨는데 아깝게…….”

최치우는 맨 정신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우선 근처에 CCTV가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최치우가 공중제비를 돌고, 총을 든 괴한 두 명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CCTV에 찍혔으면 골치 아프다.

예기치 못한 습격 때문에 여러모로 일이 많아졌다.

최치우는 다시 한 번 정체불명의 두 남자를 내려다보고 혼잣말을 읊조렸다.

“날 귀찮게 만든 대가는 꽤 비쌀 거야.”

이미 둘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고,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한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최치우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는 폰을 꺼내 임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사고를 처리하는 데 임동혁은 최고의 전문가일 것이다.

재계의 망나니로 불리던 시절, 수많은 사고를 저지르고 직접 수습한 경험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아까 먼저 나가더니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임동혁은 여전히 클럽에 남아 올림푸스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최치우는 한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덤프트럭 한 대와 총을 든 남자 두 명이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네… 아니, 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클럽에서 코엑스로 가는 길 중간쯤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대표님.”

최치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전화를 끊었다.

임동혁이 도착하면 어렵지 않게 상황이 정리될 것 같았다.

아닌 밤중에 일어난 기습은 결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한국도 안전 지역이 아니다.

최치우는 문제가 없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소중한 사람들이 걱정됐다.

“이렇게 미친 짓을 벌일 놈들은… 역시 네오메이슨이 분명하겠군.”

누가 괴한 두 명을 고용해 최치우를 죽이려 했는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본거지인 독일에서 네오메이슨 조직이 깡그리 숙청당한 게 뼈아팠던 모양이다.

드디어 네오메이슨이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라이프치히 테러도 섣부른 무리수였다.

직접 나서지 않고 I.S를 동원했지만 최치우에게 꼬리를 잡혔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곧 기회다.

네오메이슨의 위협이 거세지면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이겨내면 네오메이슨의 약점을 찾아 반격을 할 수도 있다.

퓨처 모터스의 전신인 T-모터스의 공장 화재, 라이프치히 테러 등 최치우는 네오메이슨에게 반격을 하는 데 도가 텄다.

“이판사판 안 가리는 전쟁이다, 이거지.”

겨우 5분 전 덤프트럭에게 기습을 당한 심각한 상황이지만 최치우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걸어오는 싸움은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최치우의 영혼에 각인된 전투 본능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과연 임동혁은 임동혁이다.

최치우를 만나기 전까지 틈만 나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닌 임동혁의 짬밥이 빛을 발했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24시간 가동되는 한영 그룹의 비상 상황실에 전화를 걸었다.

한영 그룹 직원들이 현장 근처의 CCTV 소재를 파악했다.

다행히 최치우의 전투 장면을 제대로 촬영할 수 있는 위치에 CCTV는 없었다.

그래도 애매한 위치의 CCTV 원본 파일은 관할 공무원에게 거액의 뒷돈을 찔러주고 모조리 삭제하기로 했다.

최치우의 비밀이 탄로 날 일은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비상 상황실 직원들은 현장으로 달려와 괴한의 총기 두 정을 수거했다.

그런 다음에야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재벌이 좋긴 좋군요. 비상 상황실이 국과수 뺨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 만들까요? 24시간 운영되는 사고 전담 팀.”

“됐습니다. 필요할 때 한영 그룹에 신세를 지는 걸로 충분합니다.”

최치우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재벌과 대기업을 욕해도 그들이 만든 시스템은 정교하고 굳건했다.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만약 한영 그룹 비상 상황실이 나서지 않았다면 일 처리가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총기 등록 여부만 따로 파악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점수를 제대로 딴 임동혁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와 함께 아침을 맞이한 최치우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밤새 쌓인 피로를 풀었다.

경찰 조사를 크게 기대하는 건 미련한 일이다.

어차피 괴한들의 신원은 불분명할 게 뻔하다.

결국 최치우가 직접 나서서 괴한들의 정체와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어머니부터 신경 써야겠어.’

최치우는 서대문에서 혼자 지내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서울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최치우는 맹수들이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정글에서 산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글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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